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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는 주식은 널리 알려라
60평이 넘는 공간은 부동산 사무실로만 쓰기에는 너무 넓다. 애초부터 창투사와 함께 사용할 생각에 큰 면적을 계약한 것이다.
창투사라고 해봐야 직원 5인이면 충분하다. 이런 생각에 문제가 생겼다. 부동산 사무실이 처음 예상보다 너무 잘되고 있다.
증권지점 객장에서 만난 투자자들이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는 규태에게 하나 둘 조언을 청하면서 인맥이 만들어지고 아름아름 재력가들과 선이 닿았다.
건물주들이 하나 둘 규태의 부동산사무실에 건물을 내놓아서 창투사 사무실은 뒤쪽의 건물을 따로 구할 생각이었다.
사무실에 앉아서 이리저리 고심하다가 장금란의 요청대로 사무실 한쪽에 가벽을 세우고 안을 새롭게 꾸몄다.
아예 장금란에게 중개사무소 실장이란 호칭으로 명함을 파 주었다.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사무실에 있는 태하와 혁민과 함께 고용 계약서를 작성하고 수수료 배분비율도 명문화했다.
자신의 이름이 떡하고 박힌 명함을 본 장금란은 감격했다.
집에서 살림하면서 애 키우는 게 일인 장금란이 명함을 만들 이유가 없다. 몇 번이나 자기이름이 적힌 명함을 어루만졌다.
규태도 처음 직장생활하면서 명함 받았을 때를 떠올리며 장금란의 심정을 이해했다.
“어머 동생, 이렇게 명함까지 만들어 주고 정말 고마워. 그런데 실장이면 뭘 하면 되는 거야? 나도 전, 월세 중개하고 그럼 되는 거야?”
부동산에 남자들만 득시글거리고 여자는 드물 던 시절, 나중에야 여자들이 하는 부동산도 많아지지만.
“여기는 전월세 취급 안 해요. 매매만 주로 하는 부동산 이예요. 주변에 건물 가진 사람 있으면 팔라고 해봐요.”
장금란이 적어온 이력서를 주욱 살핀 규태가 호들갑을 떨었다.
“와아! 누님, Y대 영문과 나왔네. 영어 잘하시겠네.”
상대방을 띄워주는데 하나의 방법이 학력을 칭송하는 것이다.
“아이, 뭐 대충은.”
어라! 규태는 속으로 갸웃했다. 이정도 반응이면 상당히 자신이 있다는 소리.
“Do you love to get business card (명함 받으니까 좋아요)”
“yes, Exactly what to do (예, 정확하게 무엇을 하면 되나요.)”
규태는 50년이 넘게 뉴욕에서 살았었다. 10여분 대화를 한 끝에 장금란의 영어 실력이 꽤 수준급이라 생각했다.
영어발음이 한국에서만 배운 수준이 아니다.
“누님 캘리포니아에 살았어요? 발음이 그쪽이 섞였는데?”
장금란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어떻게 알았어? 교환학생으로 캘리포니아에 있었는데. 동생도 영어 잘한다. 미국사람이라고 해도 믿겠는데?”
조금은 나이어린 규태를 우습게 생각했던 장금란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영어로 질문을 하더니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레벨이 보통이 아니다.
“험, 뭐 이정도야. 나 5개 국어 하는 사람이야.”
판이 깔아지면 자랑 질을 해야 하는 법이다. 입 꾹 다물고 있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엥? 형이 외국어를 그렇게 많이 한다고?”
“어느 나라 말인데?”
“외국어는 영어, 불어, 중국어, 일본어. 내가 말이야 예전에......”
말을 하면서 규태는 속으로 아차 싶었다.
“예전에 뭐? 말을 하다가 끊냐.”
“예전에 공부 열심히 했다는 말이지.”
대충 얼버무렸다. 다중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을 보기가 힘들었다. 규태야 이리저리 사업상 돌아다니면서 배운 것이지만.
능력이 있는 게 소문나면 이리저리 부려먹으려는 놈이 생긴다. 당장 군대만 해도 한미연합사 훈련에 통역병으로 끌려가면 무슨 개고생인가.
자칫하면 방위병으로 꿀 빨면서 군 생활을 하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되고 현역으로 연합사의 통역병으로 끌려가는 악몽이······.
거기까지 떠올린 규태가 부르르 떨었다.
군대는 안 가는 게 최고고, 차선은 짧게 가는 것이다. 80년대 현역의 복무기간은 30개월, 꼬박 2년 반이다. 1. 2학년 교련과 전방입소까지 채웠으니 3개월 조기전역 혜택을 받는다. 현역으로 끌려가면 27개월을 군에서 개고생하면서 썩어야 한다.
“다 뻥이고, 영어만 조금 하는 거지. 내가 무슨 수로 외국어를 그렇게 잘하겠냐?”
“에이, 그럼 그렇지.”
“무슨 뻥을 그렇게 화려하게 쳐.”
옆에서 규태를 지켜본 태하와 혁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장금란의 반응은 달랐다. 규태가 얼버무린 변명을 그다지 믿지 않는 것 같은 모습에 규태는 그녀의 입을 단속할 필요를 느꼈다.
“동생, 동생. 아까 그거 거짓말이지?”
호들갑을 떠는 그녀의 모습에 규태는 한숨을 쉬었다.
“아니라니까.”
“에이 아닌 것 같은데. 아까 영어로 말하는데 확하고 감이 왔다니까. 동생, 언어의 천재 아니야? 내가 아는 친구 중에 엘리라고 있는데 걔가 6개 국어를 하더라고. 스웨덴 친군데 센프란시스코에서 나랑 교환학생으로 만났지······.”
장금란은 속에 담아두었던 것을 다다다 쏟아 부었다.
대학졸업하고 살림 살다보니 까맣게 잊었던 시절의 기억이 규태와의 영어대화로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한참을 떠드는 수다쟁이 장금란의 말을 규태는 열심히 들어주었다.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다.
무엇을 하던지 믿을 수 있는 사람을 구해야 하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기업하는 사람들이 몰라서 후배, 친인척을 자기 기업에 취직시키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그놈들도 믿을 수 있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사람은 언제나 변하기 마련이다.
뒤통수 맞고 눈물 흘리면서 한강가기 싫으면 기업의 내부통제는 철저해야 한다.
장금란의 수다를 열심히 들어주는 것도 그 일의 하나.
고용계약서에 도장 찍었으면 믿어야 하고 또 의심하지 않고 믿으려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 지를 알아야 한다.
알아서 떠들어 주겠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적당히 장단을 맞춰주니 흥이 오른 장금란이 자신의 인생사를 풀어냈다.
***
증시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규태가 산 주식이 앞장서서 가격이 치솟기 시작하면서 연일 대량거래가 터졌다.
객장에 나가 자리에 앉아서 살펴보니 화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객장을 오가는 사람들의 숫자가 반은 늘어난 것 같다.
그동안 현대차 주가가 오를 때마다 매도하고 가격이 내려가면 매수를 거듭하면서 수익을 늘려왔지만 이젠 끝물이었다.
규태는 한 움큼 매도 주문지를 가져다가 마지막 남은 현대차를 매도하기 시작했다. 오후 내내 매달려 가지고 있는 주식을 전부 팔아 치웠다.
전화통화로 주식계좌의 주인들이 원하는 대로 작은 아버지가 요구한 5억을 보내고 작은어머니와 부친, 모친도 조금씩 돈을 찾아갔다.
남은 금액이 작은 아버지의 계좌에 5억, 아버지 1억, 작은어머니 1억, 어머니 9천, 김미려 2천이었다.
규태의 계좌에는 11억이란 현금이 남았다.
가지고 있는 주식을 모두 처분한 규태는 지점출입을 하지 않고 부동산 사무실에 콕 틀어박혔다. 아직 매서운 날씨 탓에 방문하는 이도 없는 부동산 사무실에 틀어박혀 무료한 시간을 보내길 보름여.
아침에 배달된 경제신문을 읽던 규태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바닥을 기면서 좀처럼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증권주가 조금씩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주식시장이 열리는 시간이 되자마자 사무실로 가지 않고 증권사로 출근한 규태는 거래량이 많은 대형증권사를 중심으로 매수주문을 넣었다.
가격을 건드리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계좌에 있는 현금으로 주문을 체결했지만 오후 들어서면서 가파르게 거래량이 늘어나자 미수거래로 공격적으로 증권주를 사들였다.
대우증권과 대신증권, 동원증권과 같은 종목으로 매매가 체결되었다.
평균 매입단가 대우증권 2,800원, 대신증권 1,800원, 동원증권 1,500원이었다. 이 주식들이 3년동안 미친 듯이 상승해서 대우증권이 5만원이 넘어가고 대신증권은 3만 5천까지 올라간다.
증권주 평균 33배, 제일 많이 오른 대신증권의 경우 바닥 최저가에서 67배가 오르는 대폭등의 시작이었다.
주식을 매수하고 돌아온 규태는 사무실 한쪽에 만들어진 전용 방에서 놀고 있는 장금란과 일행을 떠올리고 뺨을 긁었다.
당장 안에 들어가서 증권주를 추천했다간 천지 사방에 소문이 퍼질 것이다.
먼저 전화로 증권주식을 사라고 할 사람이 있는지를 한참 생각하던 규태가 이마를 쳤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투자자가 기억이 난 것이다.
외갓집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규태의 외가는 같은 대전에 있어 해마다 명절이면 인사를 드렸다.
외삼촌들과도 친분이 두터워서 자주 교류를 했지만 규태가 나이를 먹으면서 외가에 가는 일이 줄어들었다. 최근에는 경황이 없어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 바보 같다며 자책을 한 규태가 전화기를 들었다.
성우재활원
규태의 외조부가 근무하던 곳이다. 항상 일손이 부족한 곳이라 외조부가 정년퇴직을 했음에도 연을 끊지 않고 주기적으로 후원을 지속했다.
원래 공무원이던 외조부가 재활원에 근무하게 된 것은 복잡한 시대의 흐름에 부딪힌 탓이다. 규태의 모친이 7남매의 맏이로 외가 사람들이 규태형제들을 많이 귀여워했다.
규태가 외가에서도 첫 번째 손자였다. 외삼촌들이 장가를 늦게 가서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외삼촌의 아이들은 규태와 나이차이가 심해서 동생이라기보다는 조카 같은 느낌이었다.
석교동의 외가는 이층으로 길가에 지어진 단독주택이다. 1층은 상가로 주어서 세를 받고 이층에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막내외삼촌이 함께 살았다. 큰외삼촌과 둘째 외삼촌은 인근에서 분가해 살면서 농사를 지었다.
전화로 찾아뵙는다고 해서인지 외할머니가 상을 거하게 차려 놓았다. 대대로 땅 많은 부자로 살아 서인지 할머니의 손이 컸다.
군대 가서야 정신을 차린 탓에 늦은 나이에 대학에 들어가 규태와 같은 학번인 막내외삼촌은 집에서 자는 날보다 밖에서 자는 날이 더 많다더니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오랜만에 뵌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넙죽 절하고 저녁상까지 받으니 훌쩍 시간이 흘렀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로 시간을 보내다가 규태의 생각을 밝혔다.
규태의 외할아버지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느린 충청도 양반의 전형이었다. 성격답게 조용히 규태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는 한참을 궁리를 했다.
“그러니까 네 얘기는 앞으로 주식이 많이 오를 것 같으니 나한테 사라는 거지?”
외할아버지가 규태의 긴 이야기를 간단히 정리를 하셨다.
“경제상황이 좋아지면서 주식이 앞으로 많이 오를 겁니다. 사두시면 많이 이익을 볼 겁니다.”
“네 말은 알아 듣겠다 만 내가 수중에 가진 돈이 없는데 어떻게 주식을 사겠냐. 좋은 기회 같지만 여력이 없구나.”
당연한 소리다. 7남매 키우고 공부시키느라 외가는 허리가 휘었다. 하지만 규태도 생각이 있었다.
“할아버지 땅이 있잖아요. 그 땅 제게 파시죠.”
“땅? 어느 땅?”
“고모할머니 주유소 옆에 있는 땅이요.”
“허! 그 땅을 말이냐? 그거 제법 값이 나갈 텐데? 네가 그럴 여유가 있느냐?”
도심에서 산내로 가는 왕복 4차선 도로변에 위치한 땅은 위치가 좋아서 노리는 사람이 많았다.
가격이 맞지 않아서 빈 땅으로 내버려 두고 있었다.
“그 정도 여유는 있고요. 할아버지, 솔직히 말해서 요즘 큰외삼촌이 난리를 치죠. “
외가의 문제는 큰삼촌이 자꾸 욕심을 부려서 땅을 상속해 달라고 조른다는 것이다. 슬하의 자식들 건사한다고 땅을 많이 팔았어도 아직도 가지고 있는 땅이 많았다.
처음에는 외조부가 거절을 했지만 아예 온 집안을 뒤집어엎으며 난리를 피웠다.
큰 외삼촌은 그렇게 야금야금 외갓집의 땅을 대부분 가져간다.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형제들이 큰외삼촌과 절연을 하게 된다.
외조부와 자식들 간의 사이도 벌어져서 90이 넘도록 장수하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말년을 쓸쓸하게 보낸다.
그래서 아예 외가에 일어날 분란을 미연에 방지할 목적이었다.
“크흠, 녀석이 난리를 피운다만 내가 호락호락하지 않아.”
규태가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런 양반이 대부분 땅을 큰아들에게 넘겨줘’
충청도 양반가문 출신에 유한 성격을 가진 외조부가 어떻게 그런 드센 자식을 낳았는지 몰라도 큰외삼촌은 외가에선 별종이었다.
규태의 모친과 나머지 형제들은 크게 욕심이 없는 사람이다.
“아닐걸요. 지금 할아버지도 반쯤은 넘어갔잖아요. 몰래 큰외삼촌에게 땅을 넘겨주실 생각이시죠?”
움찔
속마음을 들켜서일까 할아버지가 머쓱한 얼굴로 천장을 보았다. 반은 더 이상 시달리기 싫어서 나머지 반은 그래도 큰아들이 제사를 지내줄 놈이기에 원하는 대로 땅을 넘겨줄까 고민하던 차였다.
“큼, 그녀석말도 일리가 있지 않니. 그래도 그놈이 제사를 지낼 놈인데.”
“큰외삼촌만 자식인가요. 나머지 자식들은요. 셋째하고 막내외삼촌은 언제 취직하고 장가가나요. 막내이모도 아직 이잖아요.”
통렬한 팩트공격에 할아버지가 말을 못하고 눈만 멀뚱거렸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할머니도 거들었다.
“규태 말이 맞아요. 큰애한테만 땅을 주면 나머지 애들은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할머니는 말도 못하고 속만 끓이던 차였다.
“그래서 네게 좋은 생각이 있니?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아예, 이번 기회에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땅을 전부 나눠줘 버리세요. 큰 외삼촌한테 많이 넘겨주더라도 나머지 형제들에게 고루 나눠줘 버리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겁니다. 어머니 몫은 제가 말씀드린 땅을 제가 사는 것으로 할게요.”
그런 생각은 못했는지 할아버지가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한참을 생각하던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참! 전부 나눠준다? 전부.”
할아버지가 생각하기에도 규태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어차피 자식들에게 물려줄 땅이다.
“예, 전부 나눠줘 버리면 큰 삼촌도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못하겠죠.”
“너는 큰아이가 더 욕심을 부릴 거라 생각하는구나.”
“당연한 거 아닌가요. 아마 큰외삼촌은 할아버지 땅을 전부 가지기 전까진 계속 난리를 피울걸요.”
실제로도 그랬기에 규태는 거침없이 단언했다.
“내가 한번 생각해보마.”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 할 말은 다했기에 규태는 외조부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털고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