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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규모가 커지다
첫 번째 거래가 성사된 이후로 부동산 사무실은 바쁘게 돌아갔다. 한번 거래를 해본 다음이라 후배들도 경험이 쌓였는지 거침없이 부딪혔다. 건물을 사겠다는 사람의 숫자는 찬바람이 불면서 점점 늘어났다.
경기가 호황으로 접어들면서 자금 여유가 생긴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수중에 돈이 들어오면 땅이나 건물을 사려는 것은 80년대가 2000년대보다 더하면 더했다.
그중에서도 매달 일정한 수익이 들어오는 상가건물은 최상의 인기였다.
매물이 없어서 거래를 못하게 되자 후배들은 발 빠르게 멀리 떨어진 부동산들을 찾아가 매물을 구했다.
첫 번째 거래에서 본대로 서류파일을 만들어서 매수자를 잘 설득한 끝에 이룩한 성과였다.
4억 원짜리 상가매매계약을 체결하고는 두 녀석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매도 쪽은 상대방 부동산이 가져가기로 했지만 매수 쪽에서 지급한 수수료만 360만원.
규태는 이중에서 40%인 144만원을 제외한 216만원을 둘이 나누어 가진다. 두 번째 거래가 성사되고 12월이 되기 전까지 사무실에서 중개한 상가매매는 전부 12건에 달했다.
거기에 식당의 중개거래까지 하면 과장을 조금 보태 하루에 한건은 계약서를 썼다고 봐야 했다.
여력이 없어서 돈 안 되는 주택매매는 아예 포기 한 상태였다. 등기부 등본 같은 서류를 떼 오는 잡다한 일들은 아르바이트를 고용해서 처리했다.
규태가 처리한 계약이 절반이고 나머지는 두 녀석이 한 것들이다. 한쪽의 수수료만 받은 것도 있고 양쪽 수수료를 다 먹은 것도 있어서 계산이 복잡했지만 규태의 몫으로 떨어지는 수수료를 20일까지 계산해 보니 2,500만원이었다.
후배들도 인당 1천만 원을 벌어들였다.
규태도 생각보다 많은 수수료에 놀랐는데 후배들은 아예 눈에 불을 켜고 매물을 찾아 다녔다. 대학교 2학년짜리가 도저히 벌 수 없는 수입이 나온 것이다.
“8층짜리 건물이라?”
차를 끌고 다니더니 활동 반경이 늘어났는지 유성에 위치한 건물을 매물로 받아왔다. 유성에 있는 부동산에 나온 매물을 받아온 것.
등기부등본을 떼어보니 깨끗했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것 말고 걸려있는 것이 없었다.
매도사유는 나이가 들어서 상속세 때문에 적당한 가격에 판다는 소리이니 크게 문제가 될 것도 없다.
문제는 이 매물을 받으면서 규태의 촉이 꺼림칙한 기운을 느낀 것이다. 서류상으로 문제가 없는 건물인데 느낌이 좋지 않다면 결론은 하나였다.
저쪽 유성 부동산에서 소개한 건물의 주인을 매수자가 나타났으니 이쪽 부동산에 들러 주십사했다. 기사가 모는 고급차를 타고 건물주라고 나타난 사람은 허연 백발이 잘 어울리는 풍모를 지닌 노년의 신사였다.
흔치 않은 명품 버버리를 차려입고 목도리까지 한 노인은 한눈에 보기에도 돈이 많아보였다.
규태와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무서에서 근무를 하다가 정년퇴직했다는 노인은 서울 영동에도 작은 건물이 있다는 자랑을 늘어놓았다.
자식에게 유산으로 물려주려 했지만 미국으로 이민 간 자식이 건물보다 현금으로 물려주기를 바라서 팔게 되었다는 소리를 조근 조근 늘어놓은 노인은 차를 한잔 마시고는 기사를 불러서 휭하니 떠났다.
“와 진짜 돈 많나보네! 차봐 저거 외제차잖아.”
“퇴직했으니 눈치 볼일 없겠지. 저차는 얼마나 하지? 저 건물 넘기면 수수료로 얼마나 떨어지는 거야.”
노인을 본 두 녀석이 감탄했다. 규태가 보기엔 한심스런 노릇이었다.
뭐든지 좋은 일이 있으면 마가 끼인다고 하지 않던가. 돈을 조금 벌게 되니 별 오만 잡동사니가 사기를 치려고 끼어든다.
“멍청한 놈들, 저거 사기꾼이야.”
“엥? 무슨 사기? 저쪽 부동산에서 건물 주인이 확실하다고 했는데?”
“금액이 큰 거래라 의뢰받기 전에 부동산에서 주민등록까지 확인했데.”
“저런 놈들이 주민증 위조하는 게 크게 어려운 줄 알아. 그쪽 부동산이 낀 사기거나, 아니면 그쪽도 사기꾼한테 속은 거겠지.”
앞에 남은 커피를 홀짝거리며 마신 규태가 혼잣말로 투덜거렸다.
“벌써 저런 놈이 꼬이나? 주변에서 견제를 하는 건가? 아니 이놈들이 주어온걸 보면 작업하던 중에 엮여 버린 게 맞겠지.”
겉모습은 젊은 청년이지만 규태야 말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백년 묵은 노괴. 80년대의 허접한 사기꾼을 보고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지난 세월이 아쉬울 일이다.
남은 차를 다 마신 규태가 전화기를 잡았다.
- 형님, 저 규탠데요. 사기꾼이 있어서 신고하려고요. 아 글쎄, 이자식이 주민증도 위조한 것 같아요.......“
한참이나 상대와 통화를 마친 규태가 자리에 앉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후배들이 덤벼들었다.
“누구랑 통화한 거예요?”
“대전경찰서 형사과에 문반장이라고 있어.”
대충 상대가 누군지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건물주와 대화를 하자마자 경찰서에 신고를 한 것은 너무 한 것 아닌가 싶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문제도 없는데?”
태하의 말에 규태가 코웃음을 쳤다.
“혁민이 넌 어떻게 생각하냐? 내가 실수한 것 같냐?”
“아니 나야......”
긴가민가 싶었는지 혁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건물주라고 나타났던 사람이 너무 그럴듯했던 것이다.
“너희들 정신 차려. 사기꾼일수록 언제나 번듯한 외모로 나타나거든. 그래야 사람들이 믿으니까. 큰 거래 일수록 주의를 기울여야해. 아무리 수수료로 많이 벌어도 부동산 중개라는 게 사고 한방이면 끝이야. 사기꾼이 언제 나 사기꾼이다 표시하는 것 봤냐? 항상 주의하고 또 조심해야해.”
규태의 훈계 질에 두 후배가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아무리 봐도 별것 아닌 것 같은데 규태가 큰일을 벌이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매수자를 구하면 수수료가 얼마인데 하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12억짜리 건물이니 매매가 성사되면 떨어지는 수수료만 1천만이다.
두 후배의 반응을 보며 규태가 속으로 투덜거렸다.
‘이놈의 자식들이 위대한 선배께서 악의 구렁텅이에서 구해준 것도 모르고 배은망덕한 놈들, 에잉, 어린놈들은 똥인지 된장인지 꼭 먹어봐야 안다니까.’
연말이 가까워 오자 단기 급등에 이어진 조정을 보이던 주식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규태는 가지고 있는 현금으로 주식매입을 시작했다.
주가가 20,000원에 접근하면서 공격적으로 사들였다가 24,000원이 넘어가면 매도했다.
다시 주가가 20,000원에 접근하자 규태는 매수를 재개했다. 가지고 있는 계좌만 다섯 개다.
김하성의 책상 앞에 앉아서 정신없이 매수주문서를 작성했다.
한꺼번에 주문을 넣어버리면 편하겠지만 거래량을 생각해서 조절을 하면서 주문을 넣어야 하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이럴 때면 정말 전산화된 주식시장이 그리웠다.
이건 주문을 넣어도 체결이 됐는지 안 됐는지 모르는 깜깜한 상태에서 주문을 넣어야 하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어떨 때는 체결이 안됐다고 연락이 왔다가도 나중에 보면 주문이 체결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주식시장이 바닥을 치고 올라가면서 거래량이 증가하면서 손으로 주문을 체결하는 방식의 한계가 드러나는 것이다.
매수주문을 넣었다가 체결이 되지 않았다고 해서 다시 가격을 변경해서 매수를 했는데 나중에 이전 주문까지 체결되어 버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건 영업직원의 잘못이 아니라 본사 시장부의 잘못이지만 덤탱이는 영업직원이 뒤집어쓴다.
매수한 주식이 올라가면 말없이 끝나지만 반대로 떨어지면 객장은 난장판이 된다.
마지막으로 작성한 주문서를 확인하면서 규태가 기지개를 켰다.
“올해 납회(폐장)도 얼마 안 남았는데 오늘 한잔 할까요?”
술자리라면 빼지 않는 김하성의 얼굴에 곤란하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오늘은 그렇다.”
“연말이니 약속이 있으신가 보네요.”
“나도 장가는 가야지.”
하긴 이전 생에도 김하성은 이때쯤 결혼하고 아이도 하나 낳았었다.
“오오! 여자 친구랑 약속인가보네요.”
놀리는 규태의 말에도 김하성은 싱글벙글 웃음을 지었다.
아직 실적에 따른 인센티브를 주는 시스템은 아니지만 영업사원에게 실적이란 거대한 짐이다.
규태 때문에 실적에 대한 걱정을 던 하성은 정말 편한 직장 생활을 하는 중이었다.
규태가 매매하는 금액이 지점영업의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
증권사 직원의 주식투자는 법적으로 금지 되어있지만 타인 명의로 하는 주식투자로 짭짤하게 수익도 내고 있으니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주식시장이 활황이면 증권사 직원만큼 편한 직업이 없다.
바쁘게 움직이는 김하성을 뒤로 한 규태는 객장을 눈으로 훑었다. 역시나 눈에 익은 객장 상주자들의 면면이 보였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곤 흡연실로 들어가니 뿌연 담배연기가 그득했다. 밖으로 여는 창이 반쯤 열려있어서인지 공기가 매우 차가왔다.
“여! 김사장 마침 잘 왔어.”
“사장님 여기 계셨네요.”
인사를 한 사람은 인근 상가건물을 몇 개 가진 전태만 사장이었다. 젊어서 건축업을 했다는데 기골이 장대한 눈빛이 형형했다. 주변에서는 깡패출신이라 수군대는 사람이었다.
주식으로 굴리는 금액이 커서 객장에 모습을 드러내면 지점장이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연초까지 주식으로 많이 말아먹었지만 규태의 코치를 받아서 산 전자5인방으로 손해를 복구해선지 낯빛이 밝았다.
“여기 김사장이 젊어도 주식에는 고수야. 아마 대한민국에서도 이정도 고수를 찾아보기 힘들 걸. 굴리는 돈도 만만치 않아. 여기 박사장이 주식으로 많이 물렸다고 해서 내가 한수 가르쳐주는 중이야.”
“아! 형님 그걸 뭔 자랑이라고요.”
큰 목소리 탓에 주위의 시선이 집중되자 박사장이 짜증을 냈다.
“걱정을 하지 말라니까. 김사장한테 코치를 들어보면 세상이 달리보일거야. 나도 오억 까먹고 나서 밤에 잠을 못 이뤘었다니까. 이젠 본전 찾았고 이익도 확실하게 챙겼네. 이친구가 나한테 전자주를 사라고 했는데 그게 배가 넘게 올랐어.”
그 말에 혹했는지 박사장의 시선이 달라졌다.
박명기 사장도 작은 건물하나를 가지고 있지만 퇴직하고 받은 퇴직금 이억을 주식에 투자해서 절반이나 날렸다. 친구가 호언장담을 해서 들어간 주식이 반 토막이 난 것이다. 아직 막내 녀석 장가도 보내지 못했는데 들어갈 돈을 생각하면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주식으로 날린 돈만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다시는 이쪽으로 오고 싶지 않았지만 건물주로 안면이 있는 전사장을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서 반강제로 끌려온 것이다.
“그럼 전자주 사시면 되겠네요. 마침 조정이 마무리 되는 것 같던데.”
“그래? 오늘 사면된다고?”규태의 말에 당장 반응을 보인 것은 박사장이 아니라 전사장이었다. 규태가 팔라는 소리에 가지고 있던 주식을 전부 팔았던 것이다.
“가지고 계시다가 내년 2월쯤에 전부 정리하세요.”
“알았네, 자네말이라면 들어야지. 오늘 사라고.”
전사장이 당장 밖으로 나갔다. 그의 담당은 지점장이나 지점장에게 전자주를 매수하라고 할 모양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주식매수주문을 끝낸 규태는 느긋했다.
전사장이 나가자 뻘쭘하게 남아 있던 박사장이 캐물었다.
“정말 전자주가 오를까?”
“아마 오늘 사시면 30%이상은 올라갈 겁니다. 시장이 좋으면 더 올라갈 수도 있고요.”
처음 보는 규태의 추천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 모양이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박사장이 사던지 말던지 규태야 추천만 할뿐이니까.
하지만 이미 객장에는 규태의 전설적인 투자실력이 소문난 상태. 옆에서 담배를 피우던 사람들이 슬금슬금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