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금융재벌-6화 (6/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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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규모가 커지다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들이 다다다 기관총처럼 쏟아져 나왔다.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퍼 붙는 수다의 향연 속에서 지여사가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그러니까 1천만 원을 투자해서 오천만원을 벌었다고요? 고달 석 달 만에요?”

순간 지 여사는 동서의 머리위로 현금다발이 쏟아지는 환상을 보았다.

몇 번이나 사실을 확인한 지 여사는 슬슬 배가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친족 간이라지만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보면 배가 아프다.

배가 고픈 것은 참을 수 있지만 배가 아픈 것은 참지 못한다고 했던가.

자기 남편이 자기 몰래 조카에게 투자를 맡긴 것은 까맣게 모르는 작은 어머니 지 여사였다.

“그럼 그거 팔았어요?‘

“아니 아직.”

“팔아야 진짜 돈이 되는 건데.”

주식이란 게 올라갈 때도 있고 내려갈 때도 있는 법.  손에 현금으로 쥐고 있어야 제대로 번 것이 아니던가.

동서의 말에 규태의 어머니가 머리를 흔들었다.

“규태말로는 연말 까지 만원은 더 올라 갈 거라고 하더라고. 그러서 조금 더 올라가길 기다리고 있지.”

“어머! 어머! 그럼 그게 전부 얼마야!”

호들갑을 떠는 동서의 모습을 보며 그동안 쌓였던 응어리가 확 뚫리는 기분에 모친의 기분이 한껏 하늘로 날아올랐다.

공무원 월급이 얼마나 되겠는가. 건축업으로 돈 좀 번다고 유세를 떠는 모습이 그렇게 눈꼴 시렸는데 큰 아들의 효도에 흥이 절로 났다.

빠르게 지여사의 머릿속으로 여러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나도 투자를 할까 에서부터 주식이 그렇게 무섭다던데. 종목은 뭐로 하지? 수많은 생각들이 들었지만 딱히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형님 남 여사의 입에서 나온 소리에 귀가 번뜩 뜨였다.

“글쎄 이 녀석이 미려가 저축해둔 돈도 투자를 했지 뭐야. 계집애도 짭짤하게 올랐을걸.”

미려가 투자를? 그럼 자신의 돈을 조카에게 맡기면 될 것 아닌가?

순식간에 지여사는 마음을 정했다.

“저 형님, 나도 투자 좀 할까하는데. 규태가 내 것까지 해줄까요?”

지여사의 말에 남 여사는 속으로 지화자를 외쳤다.

어젯밤에 규태에게 잡힌 남 여사는 가족펀드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외국의 명문가들은 커다랗게 펀드를 만들어서 주식과, 채권, 부동산을 사들이는데 이게 명문가를 만드는 기초라는 것이다.

외국 명문가라니 손에 와 닿지 않는 소리지만 집안 전체에 돈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공감이었다.

공짜로 해주는 것도 아니고 이익이 나면 수수료를 받는 다지 않는가. 하지만 겉으로는 의뭉을 떨었다.

“나는 잘 모르겠는데? 동서가 규태한테 한번 말해봐.”

낚시에 걸린 것도 모르고 지 여사가 퍼덕거렸다.

“그래요, 내가 한번 말해봐야겠네.”

규태의 작은 아버지 김정웅 사장은 걱정했던 모친의 상태가 생각보다 좋은 것 같아서 한결 마음이 놓였다.

한참동안 모친의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나온 김정웅 사장은 사촌들 사이에서 멀뚱하게 앉아 있는 규태를 잡아 끌고 밖으로 나왔다.

“아! 왜요 삼촌. 한참 수미가 이야기하는 거 듣고 있는데.”

한창 작은 집의 막내인 수미의 귀여운 여우 짓에 빠져있던 규태였다. 남자형제들 사이에서 자라서 그런지 무뚝뚝한 여동생 미려를 보다가 애교가 뚝뚝 떨어지는 사촌여동생 수미를 보면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그건 나중에 듣고. 어떻게 됐냐?”

“뭐가요?”

“너 이 자식! 다 알면서 음흉을 떨어.”

벌긴 했는데 얼마인지는 오면 알려 주겠다는 조카 녀석의 말에 궁금해서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작은 아버지 또 밤에 잠 못 주무셨구나.”

궁금한 게 있으면 밤에 잠을 못 이루는 성격을 알고 있는 규태가 느물거렸다.

“그래 한잠도 못 잤다. 얼마냐?”

규태가 손가락을 셋을 쭉 폈다.

“세 개? 삼백만원? 그 정도면 잘했다. 손해만 안 봤으면.”

조금은 아쉬웠지만 돈을 준지 일주일도 안되어 3백만 원을 벌었으면 그게 어딘가 싶은 정웅씨였다.

“허허! 어디 삼백이라고 하십니까! 삼천입니다요.”

“삼천! 고작 일주 일만에?”

정웅이 화들짝 놀랐다.

“타이밍이 좋았죠.”

추석 전에 바쁘게 올라갈 거란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강한 움직임을 보일 줄이야. 규태도 짐작하지 못했었다.

“허허! 형이 너한테 돈 귀신이 붙었다고 하더니 그게 사실인 모양이다.”

형이 전화를 걸어서 아들 규태의 투자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을 했었다. 혹여나 싶은 마음에 가지고 있는 여유자금을 보냈지만 단기간에 낸 기대이상의 수익에 정웅은 말문이 막혔다.

“앞으로 주식이 어떨 것 같냐?”

“이제 시작이죠. 그동안 한국 주식시장은 너무 낙후되어있었어요. 소수의 투자자들이 짜고 벌이는 주가담합도 심각했고요. 내년부터 증권사에 전산화가 시작되어 컴퓨터로 주문을 넣은 시스템으로 발전을 할 겁니다. 외부적으로도 엔화환율이 급등하면서 한국기업들의 수출이 활발해지고 있어서 올해, 내년의 주식시장은 계속 오를 겁니다.”

“계속 오를 거란 말이지?”

나름 정웅도 규모가 작은 건설업을 하는 사업가다. 경기가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한참동안 곰곰이 생각하던 정웅이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내가 가진 여유자금이 삼억이 있다. 너도 알다시피 건설업이란 게 언제 돈이 필요할지 몰라. 평소 같으면 은행에 넣어 둘 돈이지만 네가 관리를 좀 해볼 테냐. 기한은 내년 초까지.”

규태는 흠칫 놀랐다. 사업을 하기에 어느 정도 여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김정웅의 자금동원력이 큰 탓이었다.

그가 기억하기로 작은 아버지는 2,000년쯤 사업을 그만두고 은퇴를 하는데 그때 남은 재산이 거의 없었다.

훗날 여유가 생긴 규태가 도움을 주어서 작은 건물하나를 매입해 노후를 보냈다.

하지만 80년대 신발산업으로 대표되는 부산 경기는 호황이었다. 그리 크지 않은 사업규모를 가진 김정웅이지만 상당한 돈을 벌었다.

이후 90년대부터 이어진 부산바닥의 장기불황에 그동안 번 돈을 다 까먹은 것이다.

투자금액이야 크면 클수록 좋다. 기대보다 늘어난 투자자금에 규태는 신바람이 낫다.

“작은 어머니는 모르셔야죠.”

“그렇지. 그게 제일 중요하지.”

남자만의 동병상련의 미소를 공유한 두 사람은 2층 규태의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 사인해 주세요.”

규태가 내민 서류를 보며 정웅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뭐냐?”

“이건 투자자산 운용계획서고 이건 수익배분에 대한 계약섭니다.”

규태가 내민 서류를 꼼꼼하게 살핀 김정웅이 탄식을 내뱉었다. 몇 장 안 되지만 투자계획서의 내용이나 계약서가 보통 세밀한 게 아니다.

“잘 만들기는 했는데 가족 간에 이런 걸 꼭 받아야겠냐?”

김정웅의 말에 규태가 정색을 했다.

“에이, 작은 아버지. 가족 간에도 돈 문제는 깔끔해야 합니다. 이런 걸 흐리멍덩하게 처리했다가 나중에 의만 상합니다. 돈 문제는 명쾌해야죠. 이미 아버지한테도 사인 받았는걸요.”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뭐 조카 녀석이 원한다면 그대로 해주겠다고 마음을 먹은 김정웅이 계약서를 다시 자세히 살폈다.

사회 경험 많은 어른으로서 미숙한 조카를 가르칠 부분이 있는지 아무리 살펴도 나오지 않았다.

“수익률이 100%를 넘지 않으면 10%, 수익률이 100%가 넘어가면 이익의 20%를, 200%가넘어가면 30%를 가져간다? 이 정도 수익이 과연 나오겠냐?”

“걱정하지 마세요. 나중에 수익이 나오는걸 보면 입이 벌어지실 겁니다.”

규태는 자신이 있었다. 그가 선택한 종목들은 10월 한 달 내내 숨 가쁜 상승세를 보일 것이다.

호언장담하는 규태였다.

떠들썩한 한가위였다. 고삼이라고 얼굴에 짜증이라는 단어를 붙이고 살던 여동생도 모처럼 환하게 웃었고 아직 채 수술의 후유증이 가라앉지 않은 할머니도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규태는 그 와중에도 바빴다. 아버지에게는 오천만원 투자의 결과물을 하나하나 설명했고 어머니에게도 따로 주식투자의 성과를 설명했다. 그 옆에선 작은 어머니 지여사가 귀를 세우고 규태의 설명을 들었다.

규태의 원칙은 가족 간에도 서로의 투자규모를 알리지 않는 것이다.

서로 말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하여간 규태는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도 어머니의 투자규모를 짐작만 할뿐,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반대로 어머니도 아버지의 투자규모를 모른다. 처음부터 통장을 여러 개 만든 것도 그 때문이었다.

추석이 끝나고 조금씩 기온이 내려가면서 반대로 주식시장은 달아올랐다.

9월의 플라자 합의이후로 엔화가 빠르게 강세를 보이면서 기업들의 수출환경이 좋아졌다. 직접적인 수혜주라 할 수 있는 전자주와 자동차관련주들이 강세를 보였다.

학교강의를 최대한 한쪽으로 밀어서 사흘만 가도록 조절을 했다. 그리고 동기와 후배들을 총동원해서 대출로 강의 출석을 채웠다.

이 당시 대학은 출결에 크게 민감하지 않았다. 학점에 신경 쓰지 않는 규태에겐 더할 나위없는 판이었다.

작은 아버지가 추가로 보낸 3억 원과 작은 어머니가 따로 보낸 5천만 원을 단기로 굴렸다.

아침에 출근해서 매수를 하고 사나흘정도를 가지고 있다가 매도를 하는 식이었다.

10월말에 목표했던 주가가 되자 모든 계좌를 청산했다.

현대차를 22,000선에서 정리를 시작했다.

작은 아버지의 계좌가 10억에 조금 못 미치는 9억 8천만 원, 작은어머니의 계좌가 13,500만원으로 늘어났다.

오천을 투자한 부친의 계좌는 2억 2천, 각각 1천만 원씩을 투자한 모친과 규태의 계좌는 1억이 조금 안 되는 금액이었다. 가장 규모가 작은 여동생의 계좌는 1,500만원으로 늘었다.

부지런히 전화를 돌려 투자를 계속 할지를 물었다.

부친이 1억을 남겨두고 돈을 찾아갔고 모친이 3천만 원을 빼갔다. 작은 집 식구들은 그대로 홀딩.

여동생이야 계좌를 보여주니 ‘돈 좀 벌었네,’ 한마디 하더니 무덤덤했다.

저건 도대체가 속을 알 수 없단 말이야. 규태는 혼자 속으로 투덜거렸다.

계좌들을 정산 하고 나니 규태의 계좌는 2억 8천으로 늘어났다. 투자종목들마다 거래량이 급등하면서 가격 저항을 받는 모습이라 당분간은 주가가 조정기간을 거칠 것으로 보였다.

이럴 때는 무조건 투자를 쉬어야 한다.

규태는 제일 먼저 차를 샀다. 현대에서 나온 포니 엑셀로 신차가격이 삼백만원이 되지 않았다. 옵션으로 자동변속기를 달고 보험까지 가입했다.

마이카시대가 시작되지 않아 도로는 한산했다. 교통체증이란 아직 먼 시대의 이야기.

건강을 위해 걸어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차를 사서 몰고 다니니 생활반경이 넓어졌다.

교수들도 차 없이 다니는 사람이 대부분인 대학에서 차를 몰고 다니는 학생은 극소수.

자연스럽게 학생들 사이에 규태의 이름이 퍼져나갔다.

이런 저런 뒷말들이 나왔지만 규태는 그런 말들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제대로 얼굴한번 보지 못할 사람들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국내에서 여러 회사를 다녔지만 대학동기를 만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사무실도 하나 구했다. 대로변의 2층, 60평짜리 사무실을 구해 부동산 간판을 붙였다.

보증금 이천에 월세 70만 원으로 계약을 하고 이런저런 인테리어까지 하다 보니 들어간 자금이 만만치 않았지만 강의실보다 자주 오가는 증권사 부근에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무실이 번화가에 있다 보니 2층이라도 세가 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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