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금융재벌-4화 (4/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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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을 마련하다

“예, 형님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나중에 제가 술 한 잔 사드릴께요.”

다음날 오후에 김하성에게 현대차 10,000주가 5,540원에 매입되었다는 소식을 전화로 전해 듣고는 규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지금 타이밍이 투자하기에 최적이었다.

지어진지 20년이 넘어서 낡은 집이어서 재건축이 필요하지만 규태의 부친이 이 집을 산 것은 위치가 역주변이라 집값이 싸기 때문이다.

투자가치가 있기에 전에 살던 넓고 잘 지은 집을 팔고 이집으로 이사한 것이다.

부친이 나름 직위가 되는 공무원으로 집과 차까지 있는 집이었지만 규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기업에 연대보증을 서준 것이 문제가 되어서 집안이 망하느냐 마느냐 하는 기로에 섰었다.

나중에 대충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집안에 꽤 큰 타격을 받아서 규태는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지방 국립대로 진학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일이 가슴에 맺혔는지 전까지 집안에서 고압적이고 강압적이던 부친이 규태에게 큰소리를 치지 못했다.

팔다리를 쭉 펴고 거실소파에서 뭉개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지난 생에서 많은 돈을 번 것은 사실이다.

사모펀드를 운영하면서 수천 억 달러를 운용하기도 했고 개인자산만 해도 죽기 전에는 이 천억 달러를 가뿐히 넘었다.

하지만 돈이 많아질수록 그의 삶은 평안하지 못했다.

수많은 이권과 그에 수반된 다툼에 연관되었고 마지막까지도 그리 편하게 죽지는 못했다.

‘성질머리를 줄였어야 하는데’

지난 생을 떠올리면 반성할 점이 많았다. 손해를 본 카르텔의 공격을 한번쯤은 참고 넘어갔다면 지난 세월 흘린 피의 절반은 줄어들었을 것이다.

이번생의 목표는 평온하게 돈을 벌고 잘 먹고 잘사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손에 피를 묻히는 일도 없도록 해야겠지. 규태는 속으로 혼자 다짐했다.

잘 먹고 잘 살기라?

사람은 일을 해야 한다.

머릿속에 떠올린 다음에 할 일은 공인중개사 시험을 보는 것이다. 1985년 9월에 처음으로 공인중개사 시험을 치른다.

중개사시험이 시행되기 전까지만 해도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84년에 법이 통과되면서 시행되는 것이다.

처음으로 치르는 시험이니 그 내용은 설왕설래 말들도 많고 기대도 많았지만 결국에는 쉬운 문제 출제로 한꺼번에 만 명이 넘는 합격자가 나온다.

규태가 이 시험을 노리는 이유는 간단했다.

86년 이후의 고도 성장기에 부동산 가격도 급등한다. 목 좋은 자리에 사무실을 하나 차려 놓으면 이것보다 나은 수익이 나오는 장사가 따로 없다.

대학학점은 포기했고 대충 시간만 때우다 졸업할 생각이다. 그 사이에 부동산사무실을 차려서 돈을 벌 생각이었다.

혼자서 하기는 힘들고 사람을 구해야 한다. 이에 대한 생각도 해두었다.

친한 후배 둘을 데려다가 같이 일을 할 생각이었다.

똑똑한 친구들이었다.

나중에는 모르겠지만 이 시기의 지방 국립대 상과대학은 입학성적이 높았다.

서울로 대학을 진학할 경우 드는 생활비와 학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가난한 집안출신들이 많이 입학했다.

장학금을 받는 것도 까다로워서 규태도 입학할 때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장학금을 받은 적이 없다.

성적이 뛰어나도 집안사정이 어려운 이들에게 밀린다.

다들 인정하던 시기라서 그것에 불만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규태가 3학년 1학기를 등록하기 위해 낸 학비가 54만원이다. 이것도 싼 것은 아니다. 아버지의 한 달 월급에 근접하는 금액이니까. 공무원 25년차인 부친의 월급이 60만원을 넘지 않았다.

나중에 규태가 취직해서 첫 월급을 탓을 때 규태의 첫 월급과 아버지의 급여가 비슷했다. 그만큼 공무원의 월급이 낮은 것이다.

규태의 아버지 김상웅씨는 요즘 기분이 묘했다.

이전까지 큰아들인 규태는 큰 의욕 없이 학교만 다녔다. 주변의 다른 집 자식들도 마찬가지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술 마시고 늦게 귀가하는 것이 일상이었고 말이다.

다행이라면 시위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이다.

친한 고향 선배 아들이 데모에 주동자로 나서서 보안사와 안기부에서 요주위로 사찰한다는 소식에 오금이 저렸다.

하필이면 데모한다는 선배아들놈이 큰아들의 대학, 같은 과 선배였다.

혹시라도 모를까 큰아들의 주변을 살폈지만 전혀 그쪽하고도 연관되지 않아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었다.

젊은 놈들이 시국이 어수선하다보니 배가 불렀지. 상웅은 혀를 끌끌 찼다.

자신이 젊은 시절, 군대를 가기 전까지 정말 힘들었었다.

그가 공무원이 되기 전까지 집안에 땅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뼈가 빠지게 농사를 지어도 남는 것이 없으니 정말 살길이 막막했었다.

어렵사리 시작한 공무원 생활이었다.

고향에 있던 논밭을 팔아 대전에 땅을 사고 과수원을 꾸렸다. 자신이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고 농사까지 지으니 형편이 나아져 제법 먹고 살만 하니까 부친이 돌아가셨다. 서른이 되기 전에 한집안을 책임지는 가장이 되니 정말 어깨가 무겁기만 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하나 둘 생기고 셋이 되었다.

밑에 남동생과 건축 사업을 시작했다가 말아 먹기도 했다.

상웅씨가 공무원이 아니었다면 정말 온가족이 길바닥에 나앉을 뻔했다. 오죽 답답했으면 장인에게 사업자금을 빌리려다가 모진소리를 들어 홧김에 마누라와 이혼을 할 뻔도 했다.

몇 년 전에는 지역의 슈퍼마켓 체인점과 엮여서 보증을 서주었다가 전 재산을 날려 먹을 뻔했다.

그 일만 생각하면 아찔했다.

무슨 마가 끼었는지 평소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투자였다. 회사가 돈을 잘 번다는 소문이 있어서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공무원 생활이라는 게 학연과 지연이 없으면 위로 올라가기가 힘들다. 그는 타지 출신에 고졸이다. 학연과 지연이 없으니 공무원생활에 애로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악착같이 성실함으로 승부해서 나름 높은 자리를 차지했지만 한계가 보였기에 무리를 한 것이다.

그 일만 잘만 됐으면 이사자리는 차고 들어갔을 텐데.

상웅씨는 쓴 입맛을 다셨다.

이제 정년이 칠년 남았는데 그 안에 자식들 대학교육 끝내고 혼사까지 치러야 하는데 갈 길이 멀었다.

더군다나 요즘에는 큰아들이 자꾸 주식투자를 권하는 소리를 하는데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여겼던 마음이 슬그머니 돌아서는 중이었다.

주변에서 주식투자를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꽤나 짭짤하게 버는 모양이었다. 입성이 꾀죄죄하던 이들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안색이 환해지는 모습을 보면 귀가 솔깃하기도 했다.

밥상머리에서 자꾸 현대차이야기를 꺼내고 눈치를 살살 보는 것이 녀석도 아내와 함께 투자를 한 눈치였다.

현대차라?

신문을 보면 현대차의 미국수출이 잘된다던데 나도 한번 사볼까? 은행이자보다야 더 나오겠지?

상웅씨도 얼마나 투자할지를 고민하며 자신이 가진 여유 돈을 헤아려 보았다.

“에휴! 손가락이야.”

규태는 저린 손을 흔들었다. 리포트를 손으로 직접 쓰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학기에 일곱 개의 강의를 듣는데 5개 강의에서 리포트를 제출해야 한다.

아무리 학점을 포기했다고 해도 바닥을 길수는 없는 노릇.

최소 평균 C정도는 나와야 집안에서 잔소리를 듣지 않는다.

전에는 평균 졸업학점이 3.0을 넘기려고 애를 썼지만 이제야 장학금을 받을 생각도, 취직할 생각도 없으니 학점 때문에 신경 쓸 일도 없다.

손으로 리포트를 쓰기가 너무 귀찮아서 타자기를 사서 작업을 해볼까 했지만 뒷일을 감당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포기했다.

이시기 타자를 잘 치는 것도 일종의 기술이어서 리포트를 타자로 쳐 내는 순간 교수님들의 노예 확정이었다.

돈 되지도 않는 일에 정력과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난관인 리포트를 마치고 과사무실에 가서 제출한 다음 서클룸에서 느긋하게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있자니 후배 녀석들이 들어왔다.

군대에 갔다 온 선배들이야 취직 준비한다고 서클룸에 거의 오지 않으니 현역 3학년인 규태가 제일 선임자이나 마찬가지였다.

“형, 안녕하세요. “

“안뇽. 선배 있었네. “

“그래 너희들 잘 왔다.”

인사를 꾸벅하며 들어오는 두 녀석을 보곤 규태가 반색을 했다.

조현민과 곽태하, 경영학과 2학년인 두 녀석은 쌍둥이도 아닌 놈들이 항상 붙어 다닌다.

집안이 어려운지 항상 아르바이트 일을 찾아다니는 모습이 먹이를 찾아 떠돌아다니는 하이에나 같다는 놀림을 받을 정도다.

또래들은 여자문제나 학점 따위에 신경을 쓰고 다니는데 둘은 일자리를 찾아 다녔다.

알바자리라고 해봐야 기껏해야 커피숍에서 일하는 정도. 진짜 이 시절 대학생들의 일자리는 드물었다.

과외도 금지조치로 인하여 꿈도 못 꾸는 상황이다.

“뭐, 좋은 일 있어요?”

“너희 운전 할 줄 알지?”

“아뇨.”

조현민이 머리를 흔들었다.

“그럼 태하 너는.”

“나도 운전면허 없어요.”

“이러면 골치 아픈데.”

“뭐 면허가 있어야 일할 수 있어요?”

“내가 가을쯤에 사무실을 하나 내려고 하거든.”

“사무실요? 무슨 사무실?”

“부동산 사무소. 가을쯤에 하나 내려고.”

바싹 달아올랐던 두 사람이 기운이 빠졌다는 듯 시큰둥했다.

“에이 그게 뭐야.”

부동산 사무소는 할아버지나 동네아저씨 들이 모여서 고스톱이나 치는 곳이란 인식이 강했다.

사실 어느 곳을 가던지 비슷한 풍경이었다.

새파랗게 젊은 놈이 사무실 차려봐야 장사가 되겠는가.

오던 손님도 얼굴 보고는 돌아갈 판이다.

시큰둥한 후배들의 모습을 보며 규태가 손가락을 흔들었다.

“쯔쯔, 너희가 그래서 안 된다는 거야. 이번에 중개사 시험 보는 거 알지? 그거 합격해서 자격증 떡하니 걸어놓고 차려봐라 장사가 되나 안 되나.”

“자격증이요? 그게 시험 어렵 다던데?”

“어렵긴 생각을 해봐라. 이미 사무실 차려 놓은 수많은 중개인들이 있는데 어렵게 내면 그 사람들 호구는 어떻게 하고. 쉽게 나올 테니 두고 봐라.”

“그런가?”

두 놈이 쉽게 믿어지지 않는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시험은 이제 두 달 남짓 남았다.

“그러니까 너희 둘도 이번 방학 때 운전면허 따고 중개사 자격증 공부해라. 합격하면 너희 둘 내가 고용할 테니까.”

“......”

“글쎄요.”

“글쎄는 훈장이 내는 거고. 그렇게들 알고 있어. 기말고사 끝나면 며칠 쉬고 도서관으로 나와 같이 공부하는 거다.”

내키지 않아하는 후배들을 규태는 강압적으로 밀어붙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자기 생활에 바쁜 탓에 보지 못했지만 둘 다 잘 풀리지는 못했다는 소식은 전해 들었었다.

긴가민가하는 후배들을 달래야 할 필요를 느낀 규태가 말했다.

“너희도 생각해봐라. 우리가 취직하면 보나마나 기업체 아니면 은행이겠지. 은행이면 낫지만 기업이면 거기서 얼마나 버틸 수 있겠냐. 잘 올라가 봐야 부장이다. 그러면 40대 중반에 나와야 하는데 자격증이라도 하나 있으면 얼마나 든든하겠냐. 거기에 기업체나 은행들도 부동산 전담부서가 있어 자격증 있으면 그리로 간다. 진급에도 도움이 되고 나중에도 보탬이 될 텐데 이걸 왜 안하냐.”

규태의 계속되는 설득에 후배들의 얼굴도 펴졌다.

아무리 들어도 규태의 말이 그럴듯하게 들린 것이다.

그들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돌린 것은 이어진 규태의 말 다음이었다.

“월급은 기본급으로 인당 이십, 성과급이다. 근무시간은 자율.”

“그런 정도라면 야.”

“콜입니다요.”

* * *

기말시험이 끝나고 규태의 일상은 크게 변함이 없었다.

8월부터 아침에 눈을 뜨면 밥을 먹고 학교에 가서 도서관에서 시험공부에 열중했다. 뜨거운 바깥에 비하면 시원한 에어컨을 하루 종일 틀어주는 도서관은 천국이다.

불투명한 미래에 반신반의하며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명확하게 목표를 가지고 하는 공부이기에 큰 어려움도 없었다.

시험일이 한 달 조금 남은 시간이 되자 벌써 시험 과목 전부를 세 번쯤 읽었다. 법률이 후에 많이 바뀌기에 헛갈리는 것을 제외하면 크게 문제가 되는 부분은 없었다.

피곤할 때마다 열람실에 가서 보는 경제신문의 내용이 그의 피곤을 덜어주었다.

매입후 며칠 조정을 거치는가 하더니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주식은 거침없이 올랐다.

전일에도 현대차는 상한가를 기록했다.

하루 가격제한폭이 4%.

어제 현대차의 주가는 8,600원.

가지고 있는 현대차의 주식 수는 10,700주 , 주당 평균 매입가격은 5,500원이다.

주당 3,100원의 이익을 보았으니 총 3,300만원의 이익을 보고 있는 것이다.

매도하려고 하는 가격은 2만 원선. 이미 모친 남 여사에게도 연말까지 기다렸다가 2만원이 넘으면 판다고 말해 두었다.

들고 있으면 3만원이 넘게 올라가지만 내년 2월에 사야할 주식이 있다.

80년대 전설의 증권주다. 최고수익 67배의 상승을 기록하는 전설적인 주식이다.

1986년 2월부터 시작되는 증권주의 랠리에 올라탈 생각을 하고 있기에 연말까지는 주식을 매도할 생각이었다.

신문을 보며 미소 짓던 규태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아픈 추억 하나.

할머니의 문제를 빨리 처리한다는 생각이 들은 것이다. 할머니를 병원으로 모시고 가야하는데 병을 발견한다고 해도 워낙 고령이시라서 수술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할머니의 병명은 위암이었다. 초기라고 해도 수술후유증을 견디기 힘드실텐데 중기이상이면······.

돌아오자마자 병원으로 모시고 갔어야 하나 규태는 자책했다.

하지만 규태는 할머니를 누구보다 잘 안다. 집안 말아먹을 거리고 절대로 수술을 받으려고 하시지 않을 분이었다.

의료보험 없이 들어가는 수술비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잘 아시고 계실 것이다. 할머니를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했었다.

그리고 할머니의 주민등록 문제도 처리를 해야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무적자라 사망신고도 하지 못해 얼마나 가슴을 쳤었던가. 그 절절한 슬픔과 아쉬움을 다시는 느끼지 않기 위해서라도 빠른 조치가 필요했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규태가 처음으로 부딪힌 사람은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퇴근에 맞춰 근무지인 시청을 찾아갔다.

“아버지. 제가 오늘은 드릴 말이 있습니다. 특별한 약속이 없으시면 저랑 저녁 먹으면서 이야기 좀 하시죠.”

처음으로 찾아온 아들의 모습이 비장해서 김상웅씨는 고개를 갸웃했다.

“할 말 있으면 집에서 하면 되지. 여기까지 찾아왔냐? 조금만 기다려 봐라.”

사실 퇴근 후에 친구들과 한잔을 할 생각이던 김상웅씨였지만 아들놈이 직장까지 찾아왔으니 전화를 걸어 불참을 통보했다.

“어어, 난데. 오늘 한잔하기로 한 거 취소해야겠다. 아들 녀석이 찾아와서. 그래, 할 말이 있다는데.”

가까운 선화동의 고기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 넓지도 않지만 제법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두툼하게 썬 삼겹살을 파는 가게다.

고기가 익어가고 한참을 지난 후에 규태는 가슴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꺼냈다.

“할머니가 요즘 몸이 좋지 않아 보이거든요.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아요. 거동도 불편하신 것 같고 식사도 제대로 못하시잖아요. 걱정스러워서 조만간 할머니 모시고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은데.”

“그건 나도 고민하던 차다. 아무래도 어머님이 연세가 많으시니까. 노인네라 어떤 병이 있을지 모르고.”

김상웅씨도 술잔을 앞에 두고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노모를 모시고 살다보니 별 생각이 다 들기 마련, 나이 드신 양반들은 한순간 잘못되는 일이 비일비재다.

날씨가 추워지면 장례식장에 가는 일이 하나 둘 생긴다.

“아무래도 할머니 몸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한번 병원에 모시고 가야 할 것 같아요.”

“그래, 그렇다면 그래야지.”

아버지의 낯빛이 어두운 것을 본 규태가 물었다.

“병원비 때문에 그러시는 거죠? “

“내가 생각해도 불효자 같지만 돈 걱정이 안 될 수 없구나. 너도 대학생이고 내년에는 네 동생도 대학에 가야 할 텐데. 막내도 어떻게 될지 모르고.”

한집에 대학생이 한명도 아니고 두 명이면 뼛골이 빠지게 마련이다. 대학을 상아탑이 아니라 소 팔아서 쌓은 우골탑이라 불렀다.

집안을 책임지는 가장으로 규태의 부친은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규태가 준비한 것이 있었다.

“이걸 보시죠.”

상의 주머니에서 통장을 꺼내들었다.

“이건 뭐냐?”

통장을 의아한 눈으로 펼쳐 본 김상웅은 눈을 가늘게 떴다.

“증권사 통장입니다. 현대차 5,000주를 매입했죠. 5400원에서 오늘은 8,800원이니까. 천 삼백쯤 번 것 같네요.”

천 삼백이라니! 김상웅의 2년 연봉에 맞먹는 금액이었다. 기가 막힐 일이다.

“네가 돈이 어디 있어서 이걸 샀단 말이냐?”

“어머니한테 부탁했죠.”

그 말만 들어도 대강 돌아가는 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김상웅씨도 급전이 필요할 땐 아내의 도움을 받곤 했으니까.

이자야 은행보다 조금 비싸지만 단기간 돈을 사용하기엔 좋았다.

그래도 그렇지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마누라나 자식 놈이나 간이 부었나 싶었다.

“아버지도 아시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할머니가 큰 병이라면 병원비가 만만치 않게 들어갈 겁니다. 의료보험도 되지 않는 분이니까요. 제가 투자한 이것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김상웅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이리저리 알아보니 이삼천은 족히 들어갈 것 같았다.

“그래서 어쩌자는 거냐?”

“아버지도 투자를 하시죠. 현대차가 많이 오르긴 했지만 이제 시작입니다. 지금은 8,800원이지만 연말까지 2만원은 넘는다고 생각합니다.”

“2만 원이라? 지금보다 배 이상 올라간다는 소린데.”

김상웅씨가 앞에 놓인 소주잔을 비웠다. 익은 고기를 한 점 집어먹고 다시 소주잔을 비웠다. 잔이 빌 때마다 아들 녀석이 눈치 빠르게 잔을 채웠다.

김상웅씨의 뇌리에 만감이 교차했다.

어리기만 했던 녀석이 언제 이렇게 자랐는지 아이가 자라는 만큼 부모는 늙는다던데.

어렵게 여기던 자신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데 주저함이 없고 확신에 가득한 눈은 믿음직스러웠다.

모친에 대한 걱정과 이젠 훌쩍 커버린 자식에 대한 신뢰.

오랜 공무원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보아왔다. 눈앞의 아들 녀석과 같은 눈빛을 가진 사람은 크게 성공하거나 크게 망하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투자를 권하는 종목도 현대차니 망할 위험은 거의 없는 종목. 시원하게 소주 한잔을 들이 킨 김상웅씨가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좋다. 투자하마.”

“아버지가 무리하셨네.”

사흘이 지난 후에 내민 봉투 안에는 오천만원이란 거금이 들려있었다. 아마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은 전부 탈탈 터셨을 듯 했다.

규태는 손바닥을 비볐다.

이제 집안이 날개를 펼칠 준비가 마무리 된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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