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회귀
뜬금없는 회귀
어느 날 누군가의 의도로 일이 시작되었는지 몰라도 나는 살아간다.
하늘이 맑다. 눈이 부시도록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며 규태는 잠시 멍하니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희뿌연 미세먼지로 가득한 하늘만 바라보다 이토록 청명한 가을 하늘이라니.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고 멍청하게 그저 고개를 들어 하늘만 바라볼 뿐이었다.
분명 기억나는 마지막 순간은 칠흑같이 어두운 허공 속으로 영혼이 빨려 들어가는 것 까지였다.
그런데 어째서······.
규태는 잠시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낡디 낡은 늙은 몸이 아니라 기름칠이 잘된 기계가 돌아가듯 생생한 몸이다.
육질로 따지자면 A+급.
그보다 높은 등급을 주지 못하는 것은 역시 부족한 운동 탓에 빈약한 몸 때문이다. 젊은 날의 자신의 몸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그리 썩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철저하게 계획된 스케줄에 따라 관리 된 몸은 역시 나이가 먹어서 부터이지 젊은 시절에는 막살다 싶이 했으니까.
그가 서있는 길은 익숙한 길이었다.
집에서 대학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가는 길.
서대전역 옆, 2000년대에는 커다란 오피스텔 건물로 바뀌는 이층의 낡은 단독주택에 살고 있는 시절이다.
그렇다면 대학교 3학년, 한참 무엇을 하면서 먹고 살아야 할지를 한참 고민하던 시기였다.
서대전 사거리 쪽으로 나가서 버스를 타면 다니는 대학교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한 시간.
손에든 가방이 제법 귀찮을 정도로 무겁다.
어째서인지 몰라도 자신이 1985년으로 돌아왔음을 느꼈다.
후우!
규태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머릿속이 혼란스럽고 어지럽다.
“제기랄, 이게 뭔 뻘 짓이야! 누구야, 너야!”
규태는 하늘을 향해 손가락 짓을 했다.
“에이 시발, 내가 쉬는 게 그렇고 아니꼽냐. 지겹다. 지겨워.”
그를 지나치는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건 말건 규태는 한참을 길 위에 서서 지랄 발광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삶을 근 반백년 넘게 해왔다.
열다섯 번의 총격전, 다섯 번의 음독암살시도, 세 번의 폭발사건까지.
모두 합치면 23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살다보니 지칠 대로 지쳤던 것이다.
이외에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목숨의 위협을 받았었다.
죽음을 앞두고는 이제야 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회귀라니!
한참을 지랄 발광을 하다가 힘이 빠진 규태는 눈에 보이는 만화방을 찾아들어갔다.
조용히 생각을 정리할 장소가 필요했다.
커피숍이라도 있으면 차나 한잔 마시면 좋겠지만 이 시절에는 중심가가 아니면 커피숍을 찾을 수가 없다.
서대전역 주변으로 가면 다방이 있기야 하지만 그 분위기에서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담배를 피워 물고 만화책을 보고 있자니 들끓던 속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80년대의 만화란게 일본만화의 해적판이나 공장만화가 전부이던 시절이니 제대로 눈에 들어 올리는 없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만화라 그런지 나름 재미도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도 그는 회귀했다.
누가 말해 주지 않아도, 이리 저리 따져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근 백년이 넘는 시간을 뛰어넘어서.
“흐흐흐, 생각해보니까 나쁜 것만은 아니네.”
만화책에 시선을 두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규태의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처음에야 너무나 황당한 탓에 이리저리 난리를 피웠지만 얼마나 좋은 일인가.
대낮에 이렇게 당당하게 보디가드들도 없이 혼자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가게 주인에게 부탁한 커피한잔을 마시자 머리가 맑아졌다.
이제 자신을 노리는 적들은 없다.
죽어라고 싸워댔던 삼합회도 뻑하면 총질을 해대던 마약카르텔도 심지어는 이슬람의 미친놈들도 자신을 노리지 않는다.
“어우! 생각해보니까. 진짜 내 주변에 미친놈들이 많았네.”
한 대맞으면 두 대 때린다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를 가졌다고 자부하던 규태였기에 자신을 노리던 개자식을 그냥 두고 보았을 리 만무.
죽고 죽이는 개싸움 속에서 느껴지던 팽팽한 긴장감이 사라지자 온몸이 나른해졌다.
그자신이 미친놈들의 대장이었다는 것은 아직도 절대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머릿속에 복잡한데 굳이 수업에 들어갈 필요가 있나싶어 집으로 돌아와 보니 그제야 기억이 났다.
이시기에 아직 할머니가 살아 계시다는 것을.
할머니는 규태가 대학교 4학년이 되는 86년에 돌아가신다. 그러니까 내년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다음에 규태는 가을이 되면 이름 모를 울적함에 시달리곤 했다.
할머니를 묻고 돌아오는 길에 보았던 코스모스가 그렇게 애잔했었는데.
어릴 적에는 몰랐는데 커서 알고 보니 할머니는 주민번호가 없는 분이었다.
어렸을 적 크게 병을 앓아서 죽을 거라 생각했는지 할머니의 부모님이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것이다.
당연히 학교라고는 가본적도 없으니 문맹이셨다.
가장 큰 문제는 주민번호가 없으니 의료보험이 안 된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할머니의 고향인 마산까지 모시고 가서 어떻게든 호적을 살려보려고 했지만 할머니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마산과 80년대의 마산은 하늘과 땅차이만큼 변화했다.
논밭이 공장과 아파트 단지로 변했는데 어디에서 흔적을 찾겠는가.
결국에는 포기하고 말았는데 급작스럽게 할머니의 몸이 안 좋아졌다.
연세가 일흔이 넘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들었을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막상 아파서 누워계시는 모습을 보면서 무척이나 가슴이 아팠다.
실상 어린 시절부터 규태를 업어서 키운 것이 할머니 이었다.
부모님과 따로 살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규태가 장손이기 때문에 갓난아이시절부터 조부모님이 끼고 살았던 것이다.
기억도 안 나는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의 품에서 자랐으니 규태에게 할머니란 존재는 반은 어머니나 마찬가지다.
성격이 카랑해서 젊은 시절 어머니를 꽤나 시집살이 시키셨다고 돌아가신 다음에 어머님의 투덜대는 소리를 들었다.
규태에게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지만 말이다.
할머니를 보니 눈물이 찔끔 났지만 억지로 참고는 한참을 같이 시간을 보낸 규태는 자신의 방에서 자리를 잡고 펜을 잡았다.
회귀한 자의 보너스는 무엇인가.
미래를 안다는 것 아닌가.
책상에 노트를 펼쳐놓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렸다.
1985년.
다시 돌아오지 않을 대한민국의 황금시기였다.
정치적으로는 5공화국의 압제가 서슬 퍼럴때지만 경제적으로는 저유가,저금리,저달러의 삼저로 인한 호황으로 앞으로는 꿈도 꾸지 못할 고성장이 이어지는 시기였다.
플라자합의로 엔화가 초강세를 이어가면서 일본의 버블경제가 시작될 때이기도 했다.
일본 버블이라고 써놓고는 규태는 머리를 긁적였다.
이게 참 좋기는 좋은 건데 방법이 없네.
1980년대 한국은 외화유출을 우려해서 개인의 해외투자를 허용하지 않았다.
개인이 해외에 투자하려면 여러 가지 편법을 써야했다.
미래의 규태라면 숨 쉬는 것처럼 쉬운 일이지만 현재의 규태는 인맥도 돈도 없다.
“일본에 투자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커튼치기를 하는건데. 에휴 내가 가진 게 얼마나 있지.”
커튼치기란 물건을 바꿔치는 것을 말한다. 수출업체가 수출한 대금을 한국으로 가져오지 않고 외화로 가지고 있으면 한국에서 원화로 바꿔치는 것이다.
환거래가 활발하지 않고 규제가 많았던 시기에 돈 빼돌리는 용도로 알음알음 사용하는 수법이었다.
규태는 책상을 뒤적여서 통장을 찾아보았다.
새마을 금고통장과 상업은행 통장.
이리저리 합쳐보아도 돈 십만원을 넘지 않았다.
“나 거지로 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