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화
“지오스토리가 시장에 안착하면 곧바로 데일리 스타를 론칭할 거니까 프로그램 개발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게 신경을 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데일리 스타는 다양한 기능이 있는 지오스토리와 달리, 주로 사진이나 이미지를 공유하는 데 특화된 프로그램으로 다른 SNS 사이트에 연동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었다. 수혁은 경쟁사에서 유사 사이트를 만들기 전에 선수를 쳐 시장을 빠르게 선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이미 작업을 어느 정도 해 놓은 상태라 늦어도 2월 초까지는 출시할 수 있게 준비하겠습니다.”
“너무 무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양 사이트 간에 출시 시점이 너무 가까우면 둘 중 하나가 피해를 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 일단 완성을 시켜 놓고 대표님과 출시 일정을 논의하는 방향으로 잡겠습니다.”
최필재 사장은 지오스토리가 정착도 되기 전에 데일리스타가 나와 버리면 고객 이동 현상이 생긴다는 수혁의 말을 금세 이해했다.
“고객들이 두 가지 SNS를 같이 사용하게 만들어야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회사 현황을 수시로 모니터링해서 적당한 타이밍 때 데일리 스타를 공개하도록 하죠.”
“아, 대표님. 경황이 없어서 미처 말씀을 못 드린 게 있는데요.”
김민호 지점장은 한창 대화를 나누고 있는 수혁을 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네, 말씀하세요.”
“여러 언론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는데, 내일까지 스케줄을 정해서 알려 주겠다고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시간을 여유 있게 뒀어야 했는데, 기회라는 생각에 대표님의 입장을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민호는 수혁이 숙고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 것에 대해 섬세함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하셨습니다. 물이 들어올 때는 노를 저어야지요. 인터뷰 제의가 들어온 언론사를 목록으로 만들어 저에게 주세요.”
“안 그래도 목록을 작성해서 프린트해 두었습니다.”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민호는 미리 준비해 둔 문서를 수혁에게 건넸다.
‘쟁쟁한 언론사들이 너도나도 신청한 걸 보면 지오스토리가 핫하긴 한 모양이야.’
수혁은 UBC, 뉴욕매거진 등 영향력 있는 언론사가 적힌 목록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대표님, 이전에 중국과 일본에 진출할 때는 한국 기업이라는 색채를 최대한 감췄는데, 지오스토리의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전에는 ANA나 왕씨 가문의 협력으로 타국 고객들이 느낄 위화감을 줄이지 않았습니까?”
최필재 사장은 지오스토리의 해외 진출이 SH그룹의 자력으로 이루어진 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지오스토리의 주요 시장은 미국이란 것을 생각하면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혹시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전 차라리 레일로에 약간의 지분을 준 다음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하면서 글로벌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면 어떨까 생각했거든요.”
필재의 의견은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는 대신 세계 최고의 검색 사이트인 레일로의 강점을 활용하자는 이야기였다.
“저도 그 방안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봤을 때 우리 대한민국은 경쟁 상대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지오스토리나 데일리스타가 성공을 거둔다고 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겁니다.”
“씁쓸하지만,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최근에 떠오르고 있는 중국이나 일본의 기업이 론칭을 했다면 사장님의 말씀대로 하는 것이 타당하지만, 대한민국의 국제적인 위상을 고려하면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민호는 수혁의 말에 공감했다.
“인터뷰가 가능한 날짜랑 언론사 옆에 우선순위를 적어 놨습니다. 이걸 참고하셔서 지점장님이 일정을 잡아 주세요.”
수혁은 종이를 다시 민호에게 줬다.
“관계자들에게 일일이 연락해서 시간을 조율해 보겠습니다.”
민호는 두 손으로 공손히 받으면서 대답했다.
“첫 스타트가 나쁘지 않지만, 지오스토리의 잠재력을 생각하면 아직 가야 할 길이 멉니다. 대화는 일단 여기까지만 하기로 하고 추가로 논의할 사안이 있으면 그때 다시 모이도록 하죠.”
“네, 대표님.”
“고생하셨습니다.”
“여러분들 덕에 회사가 굴러가는 겁니다. 초반이라 조금 힘들겠지만, 최선을 다해 주세요.”
수혁은 지점장을 비롯한 직원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긴 뒤 사무실을 떠났다.
* * *
지오스토리가 본격적으로 서비스를 개시한 지 5일이 지났다. 초반 기세가 약하던 수혁의 우려와 달리 회원 수는 가파르게 증가하여 어느새 1억을 돌파했고, 기존에 시장을 점유하던 소셜스페이스는 점점 쇠퇴하기 시작했다.
“지오스토리가 뭐길래 사람들이 이렇게 난리야?”
“주변 친구들이 이용하는 바람에 나도 지오스토리에 가입해서 쓰고 있어. 솔직히 말해서 소셜스페이스보다 쓰기도 훨씬 편하고 괜찮던데? 너도 이미 깔아서 쓰고 있는 거 아니야?”
제이슨은 케이턴 MBA 강의실에서 폴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재수 없는 놈이긴 하지만, 능력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네. 후, 최근에는 잠잠한가 싶었는데, 뒤에서 이런 걸 개발할 줄이야……”
“어제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강수혁에 대한 기사가 떴는데, 혹시 봤어?”
“인터넷이고 신문이고 그 녀석 이야기 천지인데, 월스트리트 저널에 있는 기사까지 내가 왜 굳이 찾아서 보겠어?”
폴의 질문에 제이슨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지오스토리의 반응이 워낙 뜨거워서 곧 주식에 상장할 것 같더라고. 그런데 전문가 말로는 이번 상장으로 강수혁의 재산이 단숨에 40조 원에 이르게 될 거래.”
“40조 원? 그 정도면 스티브 콜 회장하고도 얼마 차이가 안 나겠는데?”
스티브 콜은 MC소프트의 회장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부를 갖고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스티브의 재산이 약 53조 원으로 알려져 있으니까 첫째가는 부자는 아니어도 3번째나 4번째는 충분히 될 수 있을 거야.”
“기껏해야 사람들끼리 의사소통하는 사이트가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두고 봐. 막상 상장하고 기업 평가가 들어가면 거품이 다 빠질 거니까.”
“너 못 들었어? 지오스토리의 사용자 수가 출시된 지 1주일도 안 돼서 1억을 넘기고 2억을 향해 달려가고 있어. 내가 볼 땐 거품은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회사가 점점 더 커질 것 같은데?”
폴은 제이슨의 속도 모르고 흥이 나서 설명했다.
“쳇, 강수혁이 그렇게 좋으면 저 녀석이랑 친구 하지 뭐하러 나랑 어울리냐? 그리고 원래 우리 가문이나 헨더슨 가문은 재산 집계에서 제외되는 거 몰라?”
헨더스 가문은 세계 제일의 금융 기업인 HB금융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산업혁명 시대 이전부터 영국에서 고리 대금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다음 미국으로 넘어와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모리 가문이나 헨더슨 가문같이 유서가 깊은 재벌들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실처럼 부의 단위가 차원이 다르다고 여겨져 항상 논외 대상으로 분류됐다.
“그러니까 편하게 이야기하는 거 아니겠어? 아무리 애를 써도 너희 집안의 적수는 못 되니까 너도 그냥 그러려니 해.”
“됐어, 그놈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자.”
“그건 그렇고 카일은 왜 저렇게 울상인 거야? 원래 말수가 많진 않았지만, 요즘에는 아예 한마디도 안 하던데?”
폴은 강의실 맨 뒷자리에 조용히 앉아있는 카일 그레엄을 보며 말했다.
“이게 다 12월에 있는 선거 때문이지 뭐겠어? 쟤네 아버지가 이번에 대선 출마하잖아.”
카일 그레엄은 미국 정치 명문가의 장손으로 그의 집안에서는 5명의 상원의원과 4명의 주지사가 배출되어 큰 명성을 자랑하고 있었다.
“평화당에 잭과 대적할 인물이 없으니까 존을 내놓은 거지. 참 불쌍하게 됐어. 내내 탄탄대로를 걷다가 당의 희생양이 되었으니 말이야.”
현 미국의 대통령은 잭 웰링턴으로 미국의 주요 정당 중 하나인 자유당의 총수로 역임하며 인지도를 쌓다가 지난 대선 때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잭은 뚜렷한 정치적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지지층이 워낙 탄탄했기 때문에 재선 승리를 낙관하고 있었다. 반면에 존 그레엄 상원의원은 화려한 정치 이력을 가졌으나, 언변과 카리스마가 부족하여 잭을 상대하기에는 미흡한 면이 적지 않았다.
“원래는 뉴욕 주지사 선거에 나가려고 했는데, 당에서 대선에 나가 달라고 읍소를 했나 봐. 항간에는 존이 충분히 거절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당을 위해서 나서기로 마음을 먹었데.”
“고고한 척해 봤자, 선거에서 떨어지게 되면 정치적으로 엄청난 타격을 받을 거야. 쯧쯧, 멍청한 놈 하나 때문에 가족들만 고생하는 거지.”
제이슨은 혀를 차며 비아냥거렸다.
“어? 저것 좀 봐.”
폴은 수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카일이 있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것을 발견했다.
“저 녀석이 카일에게 무슨 볼일이지?”
제이슨은 이들 사이에 아무런 접점이 없는 것을 알기에 수혁의 의중을 알 수가 없었다.
‘회귀하기 전에는 11월에 선거가 있었던 것 같은데, 왜 여기서는 12월에 치러지는 걸까?’
수혁은 카일에게 말을 걸기에 앞서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런데 그때, 어플이 활성화되더니 화면이 그의 눈앞에 떴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사용자께서 과거로 오신 이후 미래가 조금씩 뒤틀리고 있습니다.>
도움말은 수혁의 궁금증을 풀어 주기 위해 어플이 알고 있는 선에서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한국대학에 들어간 것도 그렇고 SH그룹의 설립, 스마트폰 개발에 관여한 점까지 사용자께서 바꾼 미래가 적지 않습니다. 따라서 큰 틀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세부적인 부분들에서 과거 생과 차이가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하긴, Z1의 출시와 지오스토리만 생각하더라도 기존 미래를 6년 이상 앞당긴 거니까…….’
도움말의 설명을 읽은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미래가 바뀐 게 오히려 나한테는 잘 된 거야.’
수혁은 지사 건설 건을 해결하고, 모리 집안의 정치적 영향력을 낮추기 위해 선거판에 뛰어들기로 마음을 먹었다. 모리 가는 당에 상관없이 폭넓은 인맥을 가지고 있었지만, 친환경 정책과 사회 복지를 화두로 삼는 평화당보다는 자유당과 더 친분이 깊었다.
‘자유당이고 평화당이고 제이슨을 견제할 수 있으면 어디든 상관없어.’
수혁은 본인에게 이득이 된다고 생각하여 평화당을 선택했지, 특별한 신념이나 정치관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혹시, 할 말이라도 있어?”
카일은 아까 전부터 말없이 서 있는 수혁을 이상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안녕, 카일. 너한테 긴히 할 말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어. 괜찮다면 잠시 시간을 내줄 수 있어?”
수혁은 급하게 어플을 종료한 뒤 카일에게 시선을 돌렸다.
“뭐 때문에 그러는데?”
“여기서 말하기 좀 그러니까 걸으면서 이야기하자. 어차피 수업까지 40분 정도 남았잖아.”
“후, 잠깐만 기다려 봐.”
카일은 대화를 거절할 이유가 딱히 없었기 때문에 겉옷을 챙기고 천천히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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