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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회귀-282화 (282/316)

282화

“…….”

제이슨은 필요 이상으로 흥분했다는 것을 깨닫고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

“방금 이야기한 대로 발표 내용을 두고 토론이 벌어져도 무방합니다. 만약 동기의 발표에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이의를 제기할 수 있으니 주저하지 마시고 편하게 말씀하세요.”

샌더스는 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첨단기술의 발달로 인해 미래에는 굳이 회사에 나가지 않아도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로 인해 기업들이 몰려있는 실리콘 밸리와 같은 곳이 쇠퇴할 수도 있고요.”

“저는 폴의 견해 중 일부는 인정하지만, 전반적으로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몇몇 기업에서 재택근무를 실시한 결과 근로자의 생산성이 오히려 떨어졌다는 보고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소수의 리포트에서는 생산성이 향상됐음을 보여 주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합니다.”

샌더스가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에게도 평점을 매긴다는 사실을 깨달은 학생들은 이전의 소극적인 태도를 버리고 적극적으로 토론에 임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저의 코멘트로 발언을 마무리하는 것보다 여러분들에게 맡기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고 좋네요.”

‘말은 저렇게 하고 있지만, 기대했던 답변이 나오지 않은 것 같군.’

자존심이 상한 제이슨은 샌더스 교수를 계속 관찰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수혁이 손을 들었다.

“네, 말씀하세요.”

“강수혁입니다. 교수님의 말씀과 여기 계신 분들의 의견들을 들으면서 느낀 점이 하나 있습니다.”

수혁은 시간을 들여 생각한 다음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직장에 출근하지도 않고도 업무 처리가 가능해진 점, 문화 콘텐츠의 발달, 1인 미디어의 확대는 스마트폰이 출현한 이후에는 이미 실현 가능한 현실이 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앞선 분들의 예측보다 조금 더 먼 미래를 고민해 봤습니다.”

“호오, 본인만의 참신한 견해 있는 모양이군요. 한번 말씀해 보세요.”

이제까지 관망하는 자세로 사람들을 보던 샌더스는 수혁의 말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기술이 고도로 발달 되면 인간이 속으로만 떠올리는 상상들을 현실 세계로 가져오는 게 가능해질 겁니다. 예를 들면, 자신의 기억을 추출해서 이미 죽은 사람을 3D 그래픽으로 구현해서 대화를 나눈다는지, 혹은 가상 현실 속에서 오감을 느끼게 하여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 수도 있고요.”

“그건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 아닙니까? 물론, 홀로 그래픽 기술은 지금도 나와 있기에 사물이나 인간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건 언제든지 가능하지만, 죽은 사람과의 대화라니요. 터무니없습니다.”

‘재수없는 새끼, 그냥 발표하면 될 일을 대단한 걸 소개할 것처럼 밑밥을 깔고 난리야?’

제이슨은 수혁을 얄밉다는 듯 쳐다보며 반론을 제기했다.

“90년대 말 스마트폰의 개념이 처음 나왔을 때 대중들은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한참 후에나 나올 것으로 기대했지요. 이처럼 제가 하는 말도 지금은 허무맹랑하게 들리겠지만, 미래는 모르는 법입니다.”

“풋. 스마트폰이 분명 대단한 개념이긴 하지만,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정확성이 담보되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핸드폰으로 컴퓨터의 기능을 모두 수행하는 것은 사양이 개선된다는 전제하에 가능성이라도 가늠할 수 있었지만, 죽은 사람과 대화라니요. 인식 공격을 하기 전에 본인이 내뱉은 말을 검토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수혁이 은근슬쩍 비꼬는 발언을 했음에도 제이슨은 흥분한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맞받아쳤다. 2020년 때만 하더라도 과거에 찍어 둔 영상 자료와 홀로그램 기술을 접목하여 죽은 사람을 살아 있는 것처럼 구현하는 게 가능했다. 게다가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유족과 함께했던 추억과 대화 패턴 등을 삽입하면 실현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말하기는 상당히 어려웠다.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지 만을 염두에 둔 미래 예측 개념은 예언서나 점술가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미래 예측은 인간이 어떤 방향으로 발전을 도모할지 짐작해 보는 겁니다. 실제로, 전쟁이 만연했던 20세기 초중반에 원자 폭탄, 항공 모함, 잠수함 등이 개발된 것은 과연 우연이었을까요?”

“제가 언제 가능성만 염두에 두라고 했습니까? 저는…….”

“잠시만요. 토론을 하는 것은 좋지만, 반대를 위한 반대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수혁 군, 하시려던 말씀마저 하세요.”

‘이런 젠장! 감히 내가 말하는데 끊어?’

샌더스 교수는 시간을 고려해서 부득이하게 한 말이었지만, 제이슨은 기분이 몹시 상하여 얼굴이 새빨개졌다.

“네, 알겠습니다. 방금 말을 이어서 하면 가상 공간의 발달은 SF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을 현실에서 가능하게 해 줍니다. 이 외에도 가상 국가, 더 나아가 가상 화폐가 출현할 거라는 것도 쉽게 예측할 수 있지요. 그리고 지금까지는 3D 프린터가 개발됐음에도 활발히 사용하지 않았다면, 신소재의 발견과 기술력의 향상으로 인해 도안만 있으면 웬만한 제품의 출력이 가능해질 거라고 예상합니다.”

“흠…… 답변, 인상 깊게 잘 들었습니다.”

그동안 발표했던 사람들에게는 보완할 점이나 아쉬운 점 위주로 코멘트를 남겼던 샌더스는 처음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제이슨,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교수는 제이슨이 자신을 뚫어지듯이 쳐다보고 있다는 걸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기존 학생들의 논리적인 답변에는 인색하시던 분이 저런 허무맹랑한 답변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조금 당황스럽네요. 설마, 제가 특정 학생을 편애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다른 학생들을 대변해서 이야기했을 뿐, 교수님을 모욕할 의도는 없습니다. 하지만 말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그렇게 느끼셨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고 봅니다.”

“말은 바로 하도록 하죠. 제가 그렇게 느낀 게 아니라 본인이 그렇게 느낀 거지요. 안 그래도 방금 답변에 대한 설명하려던 참이었는데, 질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제이슨은 다소 공격적인 발언에도 능숙하게 받아 내는 샌더스 교수의 모습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제이슨이 말한 것처럼, 조금 전 발표는 공상 과학 소설이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문학을 전공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고전이라 불리는 소설이나 영화는 무의식 저변에 깔린 사람들의 공통 심리를 묘하게 건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논리를 인기 SF영화에 대입하면 어떨까요?”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20세기 초부터 출간된 인기 과학 소설들을 살펴보면 아직 현대의 기술로도 발명이 안 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타임머신이나 광속으로 날아가는 우주 비행선처럼 말이죠.”

흥미롭게 이야기를 듣던 학생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소설 속 제품들을 실제로 만들 수 있냐 없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기술의 한계로 억눌린 인간의 욕망을 파악하는 게 미래학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영화나 소설 속 제품들이 현실 세계에도 출품된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화상 통화, 인공 장기 등 지금 떠오르는 것만으로도, 족히 5개 이상은 되니까요. 잠깐만요.”

샌더스 교수는 목이 마른 지 물을 벌컥벌컥 마신 뒤 설명을 재개했다.

“3D 프린터, 가상 공간의 발달을 예측한 것도 분명 놀랍지만, 그보다 더 대단한 건 수혁 군이 미래 예측의 본질을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러분, 당장 보이는 유행에만 매몰되지 마시고 인간 기저에 흐르는 욕구와 기술 발전 정도를 근간에 두고 미래를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요.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럼 이틀 후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샌더스 교수는 금일 발표자들의 명단을 서류철에 넣은 뒤 유유히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말씀이 어려운 건 아닌데, 참고할 내용이 정말 많은 것 같아.”

“난 솔직히 이전 경영학 수업보다 훨씬 좋았어. 정교하고 난해하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써먹기 어려운 이론들도 제법 있는데, 교수님 수업은 친근하면서도 본질을 다루는 것 같아서 마음에 들었어. 그것보다 수혁이라고 했나? 발상이 정말 남다르던데?”

“처음엔 뻔한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는데, 들을수록 배울 점이 많더라고. 나중에 저 친구가 운영하는 회사를 검색해 봐야겠어.”

수혁은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미 화제의 인물이 돼 있었다.

‘저놈이 뭐가 대단하다고 호들갑을 떠는 거지? 후, 저 건방진 낯짝을 한 번 뭉게 줘야 하는데,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제이슨은 수혁을 두고 설왕설래하는 사람들을 보며 분노했다.

“수혁, 정말 대단해. 어”

샌더스 교수가 방을 떠난 것을 확인한 루나는 수혁을 보며 감탄했다.

“대단하긴, 그냥 되는 대로 뱉은 말이 얻어걸린 거지 뭐.”

“그래도 그게 어디야. 교수님이 다른 애들 말에는 별 반응이 없었던 거 너도 알잖아. 평가지를 공개하지 않아 장담은 못 하지만, 아마 점수도 후하게 주셨을 거야.”

수혁의 활약에 루나는 자기 일처럼 신난 상태였다.

“어차피 졸업 기준만 넘기면 되는데, 점수가 무슨 필요가 있겠어. 연회까지 1시간 정도 남았네? 호텔에 먼저 가서 커피나 마시고 있을까?”

“그래, 좋아!”

수혁과 루나는 짐을 챙긴 뒤, 케이턴 대학 근처에 있는 쉘턴 호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녁 6시, 수혁과 루나는 허드슨강 바로 옆에 위치한 쉘턴 호텔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폴네 집안에서 이 호텔을 운영한다는 거지?”

“응, 내가 알기로 폴이 자기 아버지 다음으로 지분을 가장 많이 갖고 있다고 들었어. 마음에 들진 않지만, 부모님 덕분에 평생 먹고 사는 걱정은 없을 거야.”

루나는 커피 향을 맡으며 수혁의 물음에 대답했다.

“훗, 레일로의 외동딸이 호텔집 아들한테 질투하는 거야?”

“무슨 소리야, 쉘턴 호텔이 세계 곳곳에 체인을 갖고 있다고는 하지만, 매출 면이나 규모 면에서 레일로에는 안 될걸?”

“농담이야, 농담. 레일로가 대단한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딨겠어?”

쉘턴 호텔의 명성이 대단한 건 맞았으나 세계 최대의 포털 사이트를 운영하는 레일로에는 한 수 접어 줘야 했다.

“사람 씹는 건 우리 전문인 줄 알았는데, 이놈들도 만만치 않은데?”

“언제부터 와 있었던 거야?”

수혁은 등 뒤에 들리는 목소리를 듣고 몸을 돌렸다.

‘상황을 보니 대화를 다 들은 모양인데?’

흥미롭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제이슨과 달리 폴은 소태 씹은 표정을 지으며 루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야, 폴. 뭐라고 좀 해 봐.”

“닷컴 붐으로 갑자기 성공한 회사에 소비할 감정 같은 건 없어. 하지만 오늘 들었던 말은 절대 잊지 않겠어.”

폴은 레일로에 밀리는 현실을 인정했지만, 분이 풀리지 않는지 루나를 보며 씩씩댔다.

- 283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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