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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회귀-265화 (265/316)

265화

“만평일보가 쓴 기사 중 동문들이 한국대의 명예가 실추된 것을 개탄한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 동문회장께서 입장을 표명하겠다는 뜻을 밝히셨습니다.”

“총장님께 연락을 드린 걸 보면 우리를 도와주겠다고 하셨을 것 같은데요?”

수혁은 여러 가지 상황을 미루어 봤을 때, 긍정적인 이야기가 오갔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렇습니다. 학교에 큰 공헌을 한 강수혁 대표님께서 대중들의 오해를 사는 건 가당치도 않은 일이라며 동문회 차원에서 지원할 방법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보겠다고 하셨습니다.”

“참, 감사한 일이네요.”

“논의할 사안이 있으시다고 하셨는데, 뭔지 알 수 있을까요?”

“뒤에서 모의를 하는 건 제 성격과 안 맞지만, 더 이상 가만히 있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총장님, 조만간 한국대에서도 성명 발표를 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수혁은 보유한 인프라와 인맥을 활용하여 총공세를 펼치기로 마음을 먹었다.

“물론이지요. 구체적으로 원하시는 내용이 있을까요?”

“좀 부끄럽긴 하지만, SH가 한국대에 기여한 부분과 모든 프로그램은 사심 없이 진행되었다는 내용이 첨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경률 총장은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고, 수혁은 사실 관계를 왜곡하지 않는 선에서 상황을 유리하게 바꿀 방안을 설명했다.

‘일단 하나는 끝냈지만, 쉬지 말고 바로 다음 스텝으로 나가자.’

경률과의 통화를 마친 수혁은 곧바로 박유신 사장을 호출했다.

“대표님, 박유신 사장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지오쇼핑에 연락을 넣은 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직원 하나가 유신을 대표실로 데리고 왔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수혁은 책상에서 일어나 응접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급하게 절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뉴스는 확인하셨지요?”

“네, 회사에서 실시간으로 기사를 체크하고 있었습니다.”

“놀라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덤덤하시네요?”

“예전부터 만평일보와 한판 붙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서 그렇게까지 놀라지는 않았습니다.”

유신은 작년에도 만평일보에 대해 강경 대응을 주장했던 터라 수혁의 깜짝 발언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가만히 두고 보니 도를 지나쳐서 손을 좀 봐주려고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대표님께서 그동안 너무 점잖게 대하신 면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이것들을 그냥 두었다가는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히겠더군요. 그래서 특단의 조치를 취할까 합니다.”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유신의 말에 공감했다.

“뭐부터 하면 좋을까요?”

“일단, SH커뮤니케이션에 연락해서 만평일보의 기사는 모두 내리라고 하세요. 그리고 이들이 작성한 어떠한 기사도 모두 거부한다고 말씀하시고요.”

“알겠습니다.”

박유신 사장은 주머니에서 메모장을 꺼낸 다음 지시 사항을 메모하기 시작했다.

“현재 우리 회사에서 출시한 앱이 모두 몇 개입니까?”

“포털, 강의, 게임, 메신저 등 다 합해서 8개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회사가 커 나가는 만큼 대대적인 광고를 할 예정입니다. 광고를 실을 만한 신문사들을 알아봐 주시길 바랍니다.”

“네? 신문사요?”

수혁의 말을 들은 유신은 의아해하는 반응을 보였다. 신문지면 상에 광고를 실은 경우는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만평일보와 견줄 만한 회사들을 중심으로 알아보세요. 아, 디지털 데일리에도 몇 개 챙겨 주시는 건 잊지 말고요.”

디지털 데일리는 SH를 발벗고 도와준 이혜선 사장이 운영하는 회사였다.

“성동일보도 말입니까?”

성동일보는 만평일보와 더불어 SH를 가장 많이 공격한 언론사로 SH로서는 눈에 가시 같은 회사였다.

“사장님이 오시기 전에 알아보니 만평일보의 힘이 생각보다 대단하더군요. 이들의 기세를 죽이려면 성동일보를 포함한 다른 언론사들을 키워 줘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수혁은 만평일보의 매출이 2위를 기록한 성동일보의 매출보다 3배 가까이 높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어차피 광고가 만료되는 회사들이 있어 고민하던 참이었는데, 잘됐습니다. 저…… 그런데 이걸로 충분할지 걱정입니다.”

“어떤 점을 걱정하시나요?”

“만평일보의 가장 든든한 후원사는 일송을 비롯한 대기업들입니다. 특히 일송에서 벌어다 주는 광고 수익은 다른 회사들 몇 개를 합친 규모이기 때문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유신은 가장 큰 언론매체인 만평일보가 탄탄한 수익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훗, 만평일보가 그동안 기세등등했던 이유는 수많은 구독자에 기반한 영향력 덕분이었습니다. 저쪽에서 죄를 지었다고 하면 무고한 사람도 죄인이 될 정도였으니 뭐가 무서웠겠습니까? 하지만 스마트폰이 나온 이상 저들 마음대로 세상이 돌아가진 않을 겁니다.”

미래를 이미 경험한 수혁은 뉴스를 읽는 사람들의 취향이 크게 변할 거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Z1이 나오긴 했지만, 종이 신문의 매출이 눈에 크게 줄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습니다. 대표님께서 예전부터 스마트폰의 파급력에 대해서 강조했지만, 과연 만평일보에 결정타를 입힐 수 있을까요?”

“스마트폰이 출시된 지 아직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믿지 못하시는 것 같으니 제가 묻겠습니다. 인터넷 뉴스가 활성화된 이후 종이 신문의 판매량을 살펴보신 적이 있습니까?”

수혁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유신에게 반문했다.

“네,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인터넷을 사용한 이래로 판매 부수가 15%가량 줄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스마트폰의 출현은 PC로 뉴스를 보는 행위보다 훨씬 큰 편리함을 제공합니다. 두고 보세요. 인터넷 뉴스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종이 신문 시장은 후퇴하기 시작할 겁니다.”

“대표님 말씀을 들으니 저들이 상대를 잘 못 건드렸다는 생각이 드네요.”

유신은 수혁의 예언이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만평일보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시간이 없으니 얼른 돌아가서 사장님들께 지시를 전달하세요. 저는 마저 일을 해야겠습니다.”

수혁은 머릿속에 세워 둔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촌음을 아끼고자 했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추가로 지시하실 사안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불러 주십쇼.”

“감사합니다. 마중은 못 나가니 조심히 들어가세요.”

박유신 사장이 꾸벅 인사를 했지만, 수혁은 곧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느라 그가 나가는 것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정석호 회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저야 항상 하던 대로 회사를 경영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뉴스를 보니, 전국이 SH로 인해 떠들썩한 것 같던데, 기분은 괜찮으십니까?”

제일물류의 정석호 회장은 만평일보와 전면전을 선포한 수혁이 걱정되었다.

“사실, 회장님께 그 사안을 두고 부탁드릴 게 있어 고민 끝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뭐든 말씀만 하세요. 안 그래도 아버지께서 기사를 보고 노발대발하셨습니다.”

석호의 아버지인 평우는 수혁이 바쁜 관계로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항상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혹시, 만평일보에 광고를 넣고 계십니까?”

“네…… 같은 비용이라면 만평일보에 광고를 싣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 부득이하게 광고를 넣고 있습니다.”

정석호 회장은 행여나 수혁의 마음이 상할까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회사의 오너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선택이니 제 상황은 개의치 않으셔도 됩니다.”

“흠, 우리 회사의 광고를 빼기를 원하시나요?”

“아, 뭐. 딱 그렇게 집어서 이야기하긴 어렵지만, 그렇게 해 주시면 정말 고마울 것 같습니다. 물론, 제일물류가 광고 효과를 볼 수 있게 우리 회사 차원에서 나름의 안배를 해 놓을 예정이고요.”

수혁은 석호가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자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이내 차분히 대화를 이어 갔다.

“그것 말고 더 필요하신 건 없습니까?”

“마음은 감사하지만, 이 이상 배려해 주시는 건 너무 민폐인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힘이 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지원하라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떠나서 개인적으로도 대표님을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보답하겠습니다.”

예상치 못한 답변을 들은 수혁은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공치사할 거였으면 이런 말씀도 안 드렸을 겁니다. 광고 건 외에 저희가 도와드릴 부분은 또 뭐가 있을까요?”

“대한 유통 협회 회원님들과 접촉을 하고 싶습니다.”

“제가 협회장이니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알려 주세요.”

“회장님들을 직접 뵙고 이야기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수혁은 거듭되는 배려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지만, 중대 사안을 논의하는 만큼 직접 이야기를 하는 게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말고도 연락해야 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속전속결로 움직여야 합니다. 만평일보는 지금 이경욱 회장을 비롯하여 갖은 인맥들에게 연락을 돌리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

수혁은 내키지 않았지만, 정석호 회장의 말이 틀리지 않음을 알았기에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저랑 전화를 끊으시면 현명길 회장님께도 연락을 돌리시고, 그동안 친분을 쌓았던 정·재계 인사들에게 지원을 요청하세요.”

“회장님이야 오래된 사이라서 괜찮지만, 다른 분들은 껄끄럽지 않을까요?”

“대표님께서 그간 사람을 대하셨던 걸 생각하면 주변 지인들이 외면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겁니다. 오히려 힘든 상황에서 자신을 찾지 않은 것에 대해 서운해할 수도 있고요.”

“현 회장님 정도는 말씀드려도 될 것 같네요.”

수혁은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면 깊은 대화를 잘 나누지 않았기에 선뜻 대답이 잘 나오지 않았다.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닙니다. 제 말 명심하시고, 지원해 줄 수 있는 인맥들에게 모두 전화를 돌리세요.”

“조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상대가 온갖 술수를 부리며 압박해 오는데. 마냥 양반처럼 군다면 대표님의 품격은 지킬 수 있지만, 주위 사람들이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걸 명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회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성격에 안 맞다고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저보단 회사 직원들이라는 걸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

석호의 진심 어린 말에 수혁은 체면 따위는 잠시 잊기로 마음을 먹었다.

“자, 서두르세요. 저도 협회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려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아, 협회 차원에서 지원해 줄 부분이 있는지 고민해 보신 건 있나요?”

정석호 회장은 대한 유통 협회에서 어떻게 해 주길 바라는지를 묻고 있었다.

“생각한 게 있기는 한데…….”

“편하게 말씀하세요. 기왕 나서기로 한 거 화끈하게 도와드리고 싶으니까요.”

계속되는 호의에 부담감을 느낀 수혁이 답변에 주저하자 석호는 시원하게 이야기할 것을 권했다.

- 266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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