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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회귀-263화 (263/316)

263화

“대표님의 대책은 총 2가지에서 문제가 있는데, 첫째는 합리적이지 않다는 점입니다.”

김정협 대통령은 찻잔을 입에 갖다 대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떤 점에서 합리적이지 않다는 말씀이신지요?”

“기회의 균등과 공평의 측면에서는 흠잡을 데 없는 결정이지만, 명문대와 지방의 대학 간의 수준 격차를 생각하면 오히려 역차별 이야기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득을 가장 우선시하는 기업의 선택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자칫하면 잘못을 덮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보일 수도 있고요.”

“지방의 인재 중에도 서울 소재 명문대 학생들과 충분히 경쟁할 수 있는 인재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집 근처의 대학을 가는 학생들도 상당수 존재하는 것으로 압니다.”

수혁은 정협의 날카로운 질문에 차분히 대답했다.

“말씀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언론에서 흠잡을 요소가 너무 많아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대통령님께서 방금 기업이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라고 표현하셨는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회사라고 사회적 책무를 피해 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표를 보시면 국내 50대 기업 사원들의 학교 분포를 알 수 있습니다.”

“확실히 소수의 명문대에 집중되어 있군요.”

김정협 대통령은 수혁이 건넨 서류를 검토하며 말했다.

“10년 전만 해도 지방 국립대학과 서울 소재 대학 간의 학력 차이가 크지 않아 어느 정도의 균형이 맞춰졌지만, 지금은 사정이 변하여 소수 대학의 학생들만이 양질의 일자리를 가질 수 있습니다. 솔직히 언론사가 어떤 식으로든 흠을 잡을 수야 있겠지만, 전 떳떳하기 때문에 굳이 저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대표님의 말씀에는 동의하지만, 실력이 있는 학생들이 좋은 일자리를 갖는 것이 보편타당하다는 게 국민의 정서입니다.”

정협은 심정적으로는 수혁의 의견에 동의했지만, 역차별을 느낄 국민의 마음을 외면할 수 없었다.

“대학과 연계한 채용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회사의 사정을 고려한 특별 채용이라 올해에 한하여 한시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역차별이라고 느끼지 않게 능력 있는 인재들을 추려 낼 계획이고, 채용 규모도 한국대에 비해서 훨씬 작기에 부정적인 여론을 어느 정도 달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국립대와 협약을 맺으시는 겁니까? 서운하실 것 같아 말을 아꼈지만, 특정 기업이 공공 기관인 국립대와 밀약을 맺었다는 인상을 주면 우리로서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공정과 정의를 외치시는 분도 여론에는 이토록 예민하시구나. 하지만 어쩌겠어, 정치하시는 분들인데, 내가 이해해야지.’

수혁은 공익에 도움이 되는 결정임에도 노골적으로 본인의 입장을 주장하는 대통령이 껄끄러웠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SH가 사립대와 연계했어도 비슷한 논란은 발생했을 겁니다. 사립대라고 해서 교육부의 감독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대통령님께서 큰 부담을 느끼신다면 방안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말씀해 보세요.”

“SH와 같은 일류 기업이 지방 대학 학생들을 고용한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환영한다는 뜻을 밝히시는 겁니다. 그러는 편이 공정과 정의를 표방하는 이 정부에도 훨씬 유리하지 않겠습니까?”

수혁은 행여 대통령의 마음이 상할까 조심스러운 투로 말했고, 이야기를 들은 정협은 턱에 손을 괴고 고민에 빠졌다.

“말씀을 들어 보니 일리가 없지는 않네요. 내일 교육부 장관과 대변인을 불러 검토를 해 보겠습니다.”

한참을 말없이 찻잔만 응시하던 정협은 수혁을 믿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대통령님께 무리한 제안일 수도 있다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무례를 저지른 점은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 주십쇼. 내일 특별 기자 회견을 열 생각인데, 내키지 않으시면 그걸 보시고 판단하시길 간절히 청하겠습니다.”

“후, 용서할 게 뭐 있습니까? 대표님께서 미래 비전 연구소 고문으로서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 주시는데, 검토 정도는 해 드리는 게 예의겠지요.”

“아, 네…….”

대통령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말이 나오자 수혁은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잊어버렸다.

“재경부 장관과 한국 기업인 연합의 현명길 협회장님 말로는 대표님께서 국내 기업들이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적응할 수 있게 적극적으로 도와주신다고 들었습니다.”

‘SH소프트를 말씀하시는 거구나.’

수혁은 정협의 말을 금세 알아들었다. 그는 대화가 잘 풀리지 않으면 양질의 앱을 국내 기업에 제공한 것을 들며 연구소 고문으로서의 활동을 어필하려고 했지만, 대통령이 먼저 말을 꺼낸 덕분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대한민국 경제에 이바지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다 같은 동료가 아니겠습니까?”

“SH가 제공한 프로그램 덕택에 적지 않은 기업들의 매출이 상승했고, 해외 진출의 교두보가 마련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비록 리스크가 조금 있지만, 대표님을 믿어 볼까 합니다.”

정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대통령께 누가 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게 신경 써서 일을 처리하겠습니다.”

“하하, 말씀만 들어도 든든합니다. 이런 벌써 12시가 다 되었습니다. 대화는 이쯤 하기로 하고, 이만 들어가세요.”

“피곤하실 텐데, 푹 쉬시기 바랍니다. 오늘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수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깍듯이 인사했다.

“대표님과 저는 기업인과 공무원으로 다른 신분을 가지고 있지만, 국정 운영의 중요한 파트너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디, 앞으로도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는 좋은 활동들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정협의 당부에 수혁은 고개 숙여 대답했다.

판교에 위치한 SH그룹 본사, 회사 1층에 있는 대형 미팅룸에는 기자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다들 밥도 안 먹고 여기서 죽치고 있었던 거야?’

만평일보의 배주현 기자는 수혁이 긴급 기자 회견을 연다는 소식에 급하게 왔지만, 이미 도착한 기자들로 인해 맨 뒷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사전 예고 없이 기자 회견을 열어 기자님들께 불편을 끼쳐드린 점, 사과드리겠습니다. 다들 바쁘신 만큼 자유 형식으로 기자 회견을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간단한 성명 발표를 하겠습니다.”

수혁은 사회자도 없이 단독으로 기자 회견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는 마이크가 부착된 테이블에 앉아 성명서를 낭독했다.

“오늘도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고 계실 국민과 SH를 아껴 주는 고객님들께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성명서를 읽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SH그룹의 강수혁 대표입니다. 며칠 전 만평일보에서 한국대학과 SH와의 협약을 두고 부적절한 만남이라며 논평한 것에 대해 저희의 입장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저 녀석이 간덩이가 부었나? 감히, 언론사의 이름을 함부로 언급해?’

배석현 기자는 수혁이 만평일보를 거론하자 황당해했다.

“먼저, 한국대학과 SH가 맺은 협약 내용을 간략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한국대는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만큼 역사가 깊은 강의실이 적지 않습니다. 문화재청에서 특별히 관리하는 건물만 세 동으로 파악되고 있고, 추후에 문화재로 선정될 만한 것들도 적지 않습니다. 따라서…….”

수혁은 이경률 총장과 허심탄회하게 나눴던 대화를 형식에 맞춰 대중들에게 공개했다.

성명서에는 새로운 종합 강의실 건축과 장학금을 위해 거액의 사재를 출연한 사실과 양질의 일자리를 동문에게 제공하려고 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상으로 최근 붉어진 SH와 한국대 사이의 논란에 대한 해명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작금의 사태에 대한 우리의 대응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수혁은 목이 탔는지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말을 이어 갔다.

“앞으로 우리 SH는 만평일보와 어떠한 관계도 맺지 않을 것을 선언합니다. 그동안 여러 거짓 기사가 양산됨에도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했기에 직접적인 대응은 고려하지 않았지만, 갈수록 심해지는 모략과 음해에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저기요, 강수혁 대표님!”

‘예상대로 저놈이 나와 줬군.’

수혁은 맨 뒷자리에서 소리를 지르는 배석현 기자를 발견했다.

“죄송하지만, 이야기가 들리지 않으니 앞으로 나와주실 수 있습니까? 상무님, 기자님에게 마이크 좀 전달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단상 뒤에서 수혁을 수행하던 직원 하나가 단상 근처로 다가오는 배석현 기자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우리 회사에 불만이 있는 건 이해하지만, 이런 식으로 하시는 건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대중들이 볼 때, SH의 이런 행동은 언론 탄압으로 비칠 수도 있는 사안입니다.”

석현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수많은 기자 앞에서 언성을 높였다.

“마침, 잘 오셨습니다. 배석현 기자님께서 쓴 기사를 보니, 제가 청와대의 힘을 등에 업고 이경률 총장님께 압력을 넣었다는 식으로 소설을 썼던데, 하실 말씀이라도 있습니까?”

“기자가 사건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삽입하는 게 뭐가 그렇게 문제입니까? 오히려 특정 언론사를 호명하며 압력을 넣는 대표님의 행위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안 드십니까?”

배석혁 기자는 수혁의 질타에도 주눅 들지 않고 뻔뻔한 태도를 유지했다.

“제가 특정 언론사에 압력을 넣고 있다고요? 만평일보야 말로 작년부터 주구장창 우리 회사에 대한 거짓 기사를 쓰지 않으셨나요? 장동주 대표님께서 우리 회사에 사과 성명을 발표한 게 불과 5개월 전입니다. 양심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정중히 사과하시기 바랍니다.”

“설사 사실 관계가 다르다고 해도 정정 보도를 해 주면 될 일 가지고, 뭘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십니까? 그리고 사기업이 한국대 학생들과 같은 인재들을 독점하는 게 대중들 눈에는 정상으로 보일 것 같습니까?”

“우리 SH는 채용 과정에서 어떠한 강압도 없었습니다. 최근 회사의 빠른 성장으로 대규모의 인력 공백을 손쉽게 메꾼 것이 얄미웠다면, 그 점은 사과드리겠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기회를 제공한 것이 뭐가 그렇게 문제가 됩니까?”

“크흠, 우선 대표님과 이경률 총장님으로 인해 한국대의 명예가 크게 훼손되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기자님의 사견입니까?”

수혁은 기자를 한심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석현은 회사가 정면으로 공격당한 상황이라 이성을 잃고 되는 대로 지껄이고 있었다.

“저를 포함한 제 주변 한국대 동문들 사이에선 대표님 때문에 학교 명예가 실추됐다며 혀를 차고 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기회를 준 거라고 말씀하셨죠?”

“그렇습니다만?”

“한국대 학생들만 학생입니까? 국민이 볼 땐 사기업이 학교와 결탁하여 특정 집단에 혜택을 몰아 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걸 지적한 건데, 뭐가 그렇게 불만이 많으십니까?”

“기사에 그런 식으로만 썼어도 저도 이렇게까지 반응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 내는 석현과 달리 수혁의 태도는 태연자약 그 자체였다.

- 264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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