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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회귀-260화 (260/316)

260화

“대표님. 서류 심사야 기준을 두고 통과 여부를 정하면 되지만, 면접은 어떻게 진행하실 생각이십니까?”

최필재 사장이 직원들을 대신해서 질문했다.

“원래대로라면 인사팀 면접과 임원 면접 등 두 차례의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이번에는 단 한 번의 면접으로 모든 걸 끝낼 겁니다.”

“저…… 질문 양식이나 평가지를 준비해 오긴 했는데, 어떻게 할까요?”

“질문이나 이런 것들은 여러분들이 편한 걸 던져 주세요. 하지만 최종 결정은 제가 내릴 겁니다.”

수혁은 머릿속에 세부적인 계획이 다 서 있는 상태였다.

“지금부터 직원들을 동원해서 합격 통보 다 보내시고, 금일 오후 2시부터 본격적인 면접에 들어갈 예정이니 다들 참고해 주세요.”

“네, 대표님. 한 팀당 면접 시간은 어떻게 설정하면 좋을까요?”

“한 팀당 3명을 기준으로 삼되 시간은 아무리 길어도 10분을 넘기는 일은 없을 겁니다.”

“길어도 10분이라는 말씀은 5분도 안 걸릴 수도 있다는 말씀이신데…….”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에 이필재 사장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대표님께서 어쩌시려고 하는 거지?’

‘우리가 아무리 연혁이 짧은 회사라고 하나 웬만한 대기업들도 무시하지 못할 기업이 됐는데, 너무 안이하신 거 아닌가?’

다른 임원들도 표정 관리를 하고 있었지만, 대표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매한가지였다.

“면접 프로세스에 관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홍보는 잘 이루어진 것 같습니까?”

“네, 3월 둘째 주부터 학교 안에 플래카드도 걸어두고, 홈페이지에도 대대적으로 홍보를 해서 한국대에 학생들 사이에서는 충분히 입소문이 퍼진 듯 보였습니다. 조금 전에 서류 지원 현황을 살펴봤는데, 지원자가 천여 명에 달하고 있고, 추가 접수도 받고 있어 지원자가 미달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수혁의 물음에 이현수 팀장은 공손히 대답했다.

“그 정도면 홍보는 잘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겠군요. 프로그램 준비를 하느라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장학 프로그램의 경우, 제 사비를 털어 예산을 충당할 예정이니 일정 기준을 넘는 학생들은 모두 지급이 되도록 조치해 주세요.”

“대표님, 이런 말씀드리기 죄송하지만…….”

“편하게 말씀하세요.”

내내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보였던 임원 하나가 조심스럽게 수혁을 보며 입을 뗐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돕는 취지는 좋지만, 장학금은 어디까지나 학문을 장려하기 위해 주는 것입니다. 학점 3.0 이상이 되는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게 한다면 장학금의 취지도 무색해지고, 무분별한 지출까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2000년 초반에는 장학금 대부분이 성적 우수생이 받아 가는 형태였다. 비록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자는 논의가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취약 계층의 학생들에게 일률적으로 등록금을 지원해 주는 방안은 정책적으로 전혀 검토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전 그저 학생들이 편하게 학교를 다니는 것을 바라지, 공부까지 잘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사비를 출연한 것이 아닙니다. 돈 많은 집안의 자제야 용돈이 넉넉하니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지만, 가난한 학생들은 과외나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상대적으로 학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한 부분을 감안해서 내린 결정입니다.”

“조금 잔인할 수 있지만,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내는 학생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들을 다른 학생들과 동등한 취급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최필재 사장은 척박한 환경 안에서 열심히 산 학생들이 더 보상을 받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었다.

“어려운 환경에서 그들처럼 노력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기질이 다르고 체력, 정신력에서도 차이가 있는데. 엄격한 잣대로 모든 학생을 바라보는 건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난한 집 자제들에게 남들 하는 것처럼 가끔 여행도 다니고, 데이트도 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주고 싶을 뿐이지 특정 누구에게 혜택을 몰아 주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음, 어떤 말씀이신지 이제야 이해가 갔습니다. 그런 취지라면 소수의 학생은 조금 불만을 갖겠지만, 다수의 학생은 양팔을 벌리고 환영할 겁니다.”

필재는 수혁의 의견에 동의하진 않았지만, 이 이상 주장을 관철하게 되면 무례라는 것을 알았기에 말을 아끼기로 했다.

“이만하면 대화도 충분히 된 것 같으니 식사나 하시죠.”

“업체에서 연락이 왔는데, 10분 안으로 도시락이 도착한다고 합니다.”

“잘하셨습니다. 어차피 어딜 가기엔 부담스러운 상황이니 여기서 점심을 먹고, 바로 업무에 들어가도록 합시다.”

주요 사안에 대한 논의를 마친 수혁은 회의를 마무리했다. 잠시 후 도시락은 도착했고, 임직원들은 점심을 먹으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 * *

오후 1시가 되자, 서류에 합격한 학생들이 면접을 보기 위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원자들이 워낙 많이 몰려 도서관 정문에는 학생들이 줄을 서며 기다렸고, 직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중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대학교 외교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이시원이라고 합니다. 오래전부터 해외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에 외교관의 꿈을 갖고 열심히 정진했지만, 공직자로서의 삶보단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업에 들어가기로 마음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수혁은 차분히 앉아 지원자들의 자기소개와 답변을 듣고 있었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합격 여부는 4월 1일에 알려 드리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면접이 시작한 지 5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수혁은 어떤 학생을 뽑을지 결정을 내렸다.

“대표님. 말씀을 나누시지도 않고, 어떻게 인재인지 판단하십니까?”

“비록 제가 나이는 어리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사람을 보는 눈이 생겼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사장님께서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귀띔해 주시면 따로 체크해 드리겠습니다.”

최필재 사장이 질문하자 수혁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저도 프로그래밍 방면은 안목이 있는 편인데, 신기하게도 대표님께서 알아서 체크를 해 주시고 계셔서 딱히 할 말이 없습니다.”

필재는 면접자들에게 주로 프로그래밍에 관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지원자들의 역량을 파악하고 있었다.

“하하, 어쩌다 보니 얻어걸린 거지요. 좀 있으면 또 지원자들이 들어올 테니 준비하시죠.”

“네, 대표님.”

‘이 기능을 이렇게 쓸 줄은 상상도 못 했어.’

수혁은 과거 조성준과의 대립에서 통찰력 기능을 사용한 적이 있었다. 통찰력이 일정 수준 이상 되면 상대방의 스탯을 상세히 알아볼 수 있는 기능이 생겼는데, 그는 이를 적재적소에 사용하며 지원자들의 역량을 확인하고 있었다.

‘지능, 통찰력, 운, 체력, 정신력. 이 다섯 가지 항목에서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는 사람들 위주로 뽑으니 너무 편한데? 물론 회사를 오랫동안 다닐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정도면 시간을 효과적으로 줄 일 수 있을 거야.’

똑- 똑-

“들어오세요.”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노크 소리와 함께 지원자들은 방 안으로 들어왔고, 수혁은 기능을 활용하여 사람들의 스탯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오. 정신력은 좀 떨어지긴 하지만, 지능이 물음표가 뜰 정도라니? 저 사람은 누굴까?’

사용자의 스탯을 상회하는 능력을 갖춘 사람의 스탯은 물음표로 떴고, 수혁은 곧바로 어플을 켜서 상대의 이력을 확인했다.

‘저 사람이 훗날 위즈덤 컴퍼니의 대표가 되다니. 우리 학교에 생각보다 대단한 사람이 많았잖아?’

어플은 수혁이 상대의 이력을 궁금해하면 회귀하기 전의 시점인 2020년까지의 정보를 탐색하여 전생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제공해 주었고, 이는 인물 판별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기업의 오너라고 마냥 뽑을 게 아니야. 주체성이 너무 강한 사람은 조직 생활에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어.’

수혁은 화려한 내력을 가진 사람이더라도 회사에 잘 적응하지 못할 것 같으면 과감히 제외하는 등 합리적인 기준을 갖고 신입 사원을 뽑았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 속도라면 3일 안에 필요한 인재를 모두 뽑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면접에 같이 들어간 임원 중 하나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이들이 회사에서 어떤 역할을 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기존의 직원들에 비해 역량 면에서는 뒤지지 않을 겁니다. 하, 잠깐 30분만 쉬었다 할까요?”

수혁은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는 시계를 보며 제안했다.

“고생하셨습니다, 대표님.”

“30분 후에 뵙겠습니다.”

계속되는 면접에 지쳐 있던 임원들은 개인 용무를 보기 위해 면접실을 빠져나갔다. 수혁은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 잔 뽑은 뒤, 도서관 밖을 나와 캠퍼스 풍경을 바라봤다.

‘좋은 기능을 갖고 있어도 써먹지 못하면 무용지물이야. 통찰력 기능과 어플이 이렇게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 줄 까먹고 있었어.’

수혁은 면접 중에 느꼈던 점들을 복기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이경률 총장이 비서와 함께 그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총장님, 여기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잘하고 계시는가 궁금해서 와 봤습니다. 도서관에 사람들이 북적대서 혼선이 빚어질 거라는 보고를 들었는데, 기우였나 봅니다.”

빠른 면접 진행으로 인해 길게 늘어져 있던 대기 줄은 많이 짧아진 상태였고, 직원들이 질서 유지에 힘쓴 덕분에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던 학생들은 아무런 피해 없이 공부할 수 있었다.

“총장님께서 배려해 주신 걸 생각하면 민폐를 끼쳐서는 안 되지요.”

“하하, 오히려 우리가 큰 배려를 받았지요. 면접을 보셨다고 들었는데, 쓸 만한 학생들은 많이 보이던가요?”

“모교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예상보다 뛰어난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역시, 대한민국 최고의 인재들이 모이는 학교다웠습니다.”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배울 점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한 해가 다르게 학생들이 수준이 높아지니, 교수님들도 수업 준비에 신경을 많이 쓰시고요. 아, 저번에 부모님을 잠깐 뵙는데, 대표님께서 왜 성공하셨는지 알겠더군요.”

지금으로부터 1주일 전 수혁은 한국대에서 주관하는 수상식에 참여했고, 그곳에서 ‘자랑스러운 동문인 상’을 받았다. 수상식 날, 부모님은 총장의 배려로 맨 앞 좌석에서 상을 받는 아들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덕분에 부모님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수혁은 고개를 숙이며 정중히 감사를 표했다.

“허허, 아닙니다. 대표님께서 모교를 위해 정성을 보여 주시는데, 총장으로서 이 정도는 당연한 겁니다.”

“지금 해 주신 것만으로도 차고도 넘칩니다.”

이경률 총장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하자 수혁은 겸연쩍은 반응을 보였다.

- 261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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