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없는 회귀-246화 (246/316)

246화

“다양한 정보를 취합해서 대책을 세운다는 부회장님의 의견은 일견 타당하지만, 제품 출시까지 2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선 적합하진 모르겠네요.”

이경욱 회장은 아들의 대응이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옆에 직원들이 있기에 함부로 대하기 어려웠다.

“아, 만약 대책 마련에 적지 않은 시일이 소요된다면 신제품에 역량을 집중시켜 최대한 돌파구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할 겁니다.”

“Z1에 대항할 신제품이라면 스타일 폰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비록 강수혁 대표가 발표한 제품에 비해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Z1은 90만 원에 달하는 고가의 상품이기 때문에 틈새시장이라도 공략해야 합니다.”

“스타일 폰의 제품 가격도 중저가는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들 앞인데도 계속 이러시는 걸 보면 내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야.’

이정찬 부회장은 아버지의 끊임없는 질문에 점점 마음이 조급해졌다.

“중저가 상품들 중에 쓸 만한 것이 있는지 검토해 보겠습니다.”

“후, 됐습니다. 스타일 폰은 기존 계획보다 축소 생산하시고, Z1과 같은 핸드폰을 만드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시키세요.”

“회장님. WG가 이번 분기에는 승자가 될지 모르지만, 우리 회사와 비교했을 때 3분의 1 수준밖에 되지 않는 작은 기업입니다.”

정찬은 경욱이 Z1을 과대평가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시장 내의 선두적인 위치를 이용하면 예상되는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다고 자신했다.

“쯧쯧, 잔소리 그만하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 그동안 부회장 역할을 잘해 와서 눈이 뜨인 줄 알았는데, 이야기하는 걸 보니 많이 멀었구나.”

“…….”

아들이 본인의 기대와 어긋나는 대답을 계속하자, 이경욱 회장은 혀를 차며 한탄했다.

“이 부회장이 볼 때 Z1이 단순히 한 해를 가름하는 상품 정도로밖에 안 보이십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WG는 Z1으로 인해 에이카를 뛰어넘는 엄청난 회사로 성장할 겁니다. 모두 들으세요. 박람회가 끝나면 전 직원들은 Z1에 버금가는, 아니 뛰어넘는 핸드폰을 만드는 데 총력을 다하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네, 회장님.”

주변 임직원들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에이카는 핀란드의 전자회사로 핸드폰 시장을 석권한 기업인데, 2위에 자리하고 있는 일송전자보다 2배 이상의 판매량을 자랑했다.

“음, 대담이 끝난 모양이군.”

지시를 내린 경욱은 플래시 세례를 받고 있는 수혁을 보며 혼잣말을 했다.

* * *

‘훗, 보아하니 제법 충격을 받은 것 같네.’

단상에서 내려온 수혁은 항상 거만한 태도를 보였던 경욱이 고민에 빠진듯한 표정을 짓자 고소해했다.

“대표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사장님께서도 3일간 절 도우느라 많이 피곤하셨을 것 같습니다.”

박찬명 사장은 어느새 수혁에게 다가와 있었다.

“기자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닙니다. 현재 세계 주요 언론사에서 실시간으로 Z1에 대한 기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국민들도 소식을 접했겠군요.”

수혁은 찬명의 보고에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UBC에서는 프레젠테이션을 생중계해 준 덕분에, 국내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대표님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UBC는 세계적인 명성에 걸맞게 수많은 나라에 방송을 송출하고 있었다.

“제가 조금 유명해지는 게 대수겠습니까? SH와 WG가 잘 되는 게 훨씬 중요하지요.”

“대표님께서 기자들의 질문에 한국어나 영어 외에도 다양한 언어로 대답하는 모습이 큰 화제를 끌고 있습니다. 현재 펀 갤러리를 비롯한 국내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도 대표님에 대한 게시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있고요.”

박찬명 사장은 자신의 일처럼 흥분하며 이야기했다.

“발표자가 밋밋한 것보단 특색이 있어 보이는 편이 이목도 끌 수 있고 훨씬 낫지요. 다음 일정은 어떻게 됩니까?”

“오후 6시에 기업인들과 기자들을 대상으로 정찬 모임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센터 측에서 지하에 뷔페를 준비했다고 들었습니다.”

“하하, 박람회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타가 되셨는데 소감이 어떠십니까?”

현명길 회장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수혁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아이템이 워낙 획기적이라서 그런 거지요.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발표를 했어도 상황은 똑같았을 겁니다.”

수혁은 손을 저으며 겸손한 반응을 보였다.

“우리들 중 그 누구도 대표님만큼 기자들의 시선을 끌 수 없었을 겁니다. 원래도 뛰어나신 줄 알았지만 이번에 또다시 보게 됐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저녁 식사까지 시간이 아직 남았으니 같이 구경이나 하러 가시죠.”

“알겠습니다.”

발표가 끝나면 현명길 회장과 함께하기로 약속했었기에, 기꺼이 제안에 응했다.

“제 바로 뒤에 일송에서 가전제품 발표가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됐습니까?”

“이 회장이 우리 순서 바로 뒤에 발표를 넣었던 데는 분명 대담 자리를 망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본인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으니 속이 꽤 쓰릴 겁니다. 허허, 살다 보니 이런 일도 다 있습니다.”

박람회 때마다 일송의 견제 밀려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명길은 속이 시원한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대화 중에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누구지? 아니 저 사람은 설마…….’

수혁은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말을 걸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안녕하십니까? 아벨리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코리 몬조스라고 합니다.”

“WG의 현명길 회장입니다.”

“안녕하세요, 강수혁입니다. 아벨리의 명성은 익히 들었는데 이렇게 뵙게 되니 반갑습니다.”

아벨리는 세계 최대의 전자상거래 사이트로, 오너인 코리 몬조스는 훗날 MC소프트 회장 스티브 콜을 제치고 제일가는 갑부가 되는 사람이었다.

“오, 마침 WG의 오너 분께서 이 자리에 계셨군요.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현명길 회장은 코리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대충 Z1 출시를 축하해 주는 것으로 짐작했다.

“이제 WG는 에이카, 일송, 케이코 등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전자회사로 발돋움하게 될 겁니다. 회사로 돌아가면 직원들에게 WG의 주식을 잔뜩 사 두라고 해야겠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가 봐야 알겠지만, 말씀이라도 고맙습니다.”

“두고 보시면 제 말이 틀리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강수혁 대표님, 발표 정말 잘 들었습니다. 처음 직원에게 보고를 받고 살펴봤을 땐 의문점이 몇 가지 들었는데, 질의응답 시간에 훌륭히 답변해 주신 덕분에 궁금증이 모두 해소됐습니다.”

명길과 이야기를 나누던 코리는 몸을 돌려 수혁을 쳐다봤다.

“WG에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말씀을 들으니 마음이 편안해지네요.”

“사실, SH라는 회사가 있는 줄 모르고 있었지만, 이번 기회에 알게 돼서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리 회장과 친분을 쌓아서 나쁠 건 없지. 발표도 끝났으니 이제 슬슬 퀘스트도 신경을 좀 써야겠어.’

수혁은 히든 퀘스트의 존재를 잊지 않고 있었다. 어플은 Z1 출시 후 급변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제 환경에서 SH가 안착할 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물과 연을 맺을 것을 권했다.

‘어플이 별말 없는 걸 보면 코리 회장은 아닌 것 같은데, 누굴까?’

“저, 대표님?”

“아, 네. 저도 회장님께서 우리 회사에 관심을 가져주시니 기분이 참 좋습니다.”

생각에 빠져 있던 수혁은 코리 회장의 목소리를 듣자 정신이 번쩍 들어 감사 인사부터 했다.

“아부다비 센터에서 가장 주목받는 상품의 소프트웨어를 독점으로 제공하는 회사인데 어떻게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WG는 물론이고 핸드폰을 생산하는 다른 전자회사들이 앞다퉈 계약을 제시할 겁니다.”

코리 몬조스는 스마트 폰 운영체계를 개발하고 앱 플랫폼 독점권을 가진 SH를 범상치 않게 여기고 있었다.

“박람회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상품인지 아닌지는 저녁 발표가 있기 전까지는 장담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회장님이 보이질 않아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여기 계셨군요.”

코리는 이들의 대화에 끼어든 남자의 정체를 아는 듯 보였다.

‘거물들이 연달아 등장하는군.’

수혁은 코리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남자가 세계 제일의 포털 사이트인 레일로의 회장, 아담 힐즈라는 것을 대번에 알아봤다.

“안녕하십니까?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오랜만입니다. 현명길 회장님.”

명길과 아담은 작년 영국에서 열린 세계경제인 포럼에서 안면이 트인 상태였다.

“Z1에 대한 소식을 듣고 소프트웨어 개발 작업에 착수했는데 SH가 만든 운영체계가 생각보다 훌륭해서 무척 놀랐습니다.”

아담 회장은 수혁에게 말을 건넸다.

‘훗, 내가 과거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스마트 폰 소프트웨어는 레일로에서 제공했을 거야.’

수혁이 최필재 팀장에게 제공한 소스 코드는 레일로에서 제작한 것이었기에, 아담을 바라보는 그의 감정은 복잡미묘했다.

“SH의 강수혁 대표입니다. 세계 최고의 검색 사이트인 레일로의 회장님을 이렇게 뵙게 되니 영광입니다. 마침 저도 지오닷컴이라는 포털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데 나중에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오, 지오닷컴이 SH그룹 소유인 줄은 몰랐습니다. 레일로는 지금 지오닷컴과 푸른닷컴에 밀려 한국에 정착하지 못하는 상황인데…… 대표님이 저에게 배울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미국을 포함한 수많은 나라에서 성공을 거둔 레일로였지만 몇몇 나라에선 인기를 끌지 못했는데, 그 목록에는 대한민국이 들어있었다. 사이트에 검색엔진 외에 부가적인 기능을 거의 넣지 않은 레일로는 심플하고 깔끔한 스타일이 강점이었지만 한국에서는 먹히지 않고 있었다.

‘이거 퀘스트 맞아? 미션치곤 너무 쉬운데?’

수혁이 아담 힐즈와 대화를 나누자 어플이 자동으로 실행되더니, 그가 미션 해결에 필요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려 줬다.

“지오닷컴의 인기는 대한민국에 국한된 거지만 레일로는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지 않습니까? 회장님께서 여유가 되시면 노하우를 배우고 싶습니다.”

“노하우라고 할 게 뭐 있겠습니까? 그저 열심히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지.”

‘대답이 왜 이렇게 시원치 않지?’

친분을 맺기 위해 노력하는 수혁과 달리 아담 힐즈의 반응은 조금 시큰둥했다.

‘만날 일이라도 많으면 형식상으로라도 친하게 지내겠지만 남한 기업인이면 볼 일이 거의 없잖아. 가면을 쓰고 지내는 것보단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게 훨씬 편할 거야.’

아담은 자신의 회사가 SH와 여러 분야에서 경쟁하게 될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는 경쟁 상황에선 서로 얼굴 붉히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기에 수혁과 함부로 연을 맺는 것을 경계했다.

‘표정을 보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충은 알겠군. 우리 회사와 맞붙을 수 있는 상황이라 나와 친하게 지내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거야.’

수혁은 미래에서 넘어왔기 때문에, 아담이 스마트 폰 운영체계에 관심을 가질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 247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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