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없는 회귀-224화 (224/316)

224화

“안녕하십니까? 대한언론인 협회의 김진석 부협회장입니다. 날이 추워지는 데 어려운 걸음을 해 주신 각 언론사 기자님들께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강수혁 대표님의 성명서 발표 시간이 있겠습니다.”

이날 사회는 김진석 부협회장이 자처하고 나섰다.

“통상적인 성명서 발표라면 보통 2분에서 3분 정도 낭독을 한 뒤 끝나기 마련인데, 사회자가 있을 필요가 있나?”

“이야기 못 들었어? 오늘 강수혁 대표의 사과 성명이 끝나면 대담 시간을 갖는다고 했잖아?”

“정말? 질문거리를 하나도 준비 못 했는데 어쩌지? 지금이라도 빨리 만들어 봐야겠다.”

기자들 중 몇몇은 단순한 성명서 발표 자리인 줄 알고 준비를 미흡하게 해 온 자들도 있었다.

“성명서 발표 이후에는 강수혁 대표님과 여러분들 간에 질의응답 시간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자, 그럼 강수혁 대표님. 앞으로 나와 주시길 바랍니다.”

진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혁은 무대 위 단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녕하십니까? SH 대표 강수혁입니다. 성명서 발표를 하기에 앞서, 최근 이슈로 인해 마음이 불편하셨을 국민과 기자님들께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수혁은 허리를 숙이며 사과의 의사를 밝혔다.

“본래 성명서 발표라는 건 형식은 소박하고 내용은 진실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랑거리도 아닌 일로 거창한 장소에서 사과 성명을 읽게 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뭐야? 진짜 사과 성명이잖아?’

‘반전이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시시하네. 아무리 강 대표라도 일송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건가?’

만평일보와 성동일보 기자들은 의외의 발언에 깜짝 놀라 멍하니 있었다. 반면에 다른 언론사 기자들은 바쁘게 손을 움직이며 수혁의 말을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지난 한 달 동안 SH에듀케이션을 두고 발생한 각종 논란들을 안이하게 대처해 왔습니다. 비록 기자회견을 한 차례 열기는 했지만, 국민 여론에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본의 아니게 언론과 대치되는 상태까지 치달았습니다.”

쉬지 않고 이야기하던 수혁은 가볍게 호흡을 고른 뒤 다시 발표를 이어 갔다.

“사전에 기자회견 녹화에 대한 합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언론사에서 영상 촬영한 것을 그대로 방치한 것은 적절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 날 참석한 기자님들과 언론사에 종사하시는 모든 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SH커뮤니케이션에서 운영하는 지오라이브 사이트에 해당 영상이 송출되었음에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건 부주의에서 비롯됐음을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휴, 이 사건이 대표님께서 고개를 숙이면서까지 사과할 일인가? 기자라고 개인 방송을 하지 말라는 법도 없는데 왜들 난리인지 모르겠네.’

무대 뒤편에서 수혁의 발언을 듣던 찬명은 한숨을 내쉬며 안타까워했다.

“사회에 물의를 빚고 언론계에 큰 혼란을 초래한 제 잘못을 사죄하는 의미로, 지오라이브의 서비스 중지를 선언하겠습니다.”

지오라이브 사업을 포기하겠다는 말이 나오는 순간 주변이 술렁이더니 사방에서 플래시 라이트가 터지기 시작했다.

“강수혁 대표가 지오라이브를 폐쇄하겠다는데?”

“쯧쯧, 자신들의 치부를 녹화했다고 SH에 압력을 넣었나 보네.”

“언론에 사죄를 한다고? 신문사들이 SH에 사죄해야 하는 거 아니야?”

케이블 방송으로 뉴스를 보던 시민들은 큰 관심을 보였고, 인터넷에도 빠르게 기사들이 올라왔다.

“이 조치만으로 기자님들을 포함한 언론계 종사자분들의 마음을 달래기 어렵다는 건 잘 압니다. 이후에도 항상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경영에 임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수혁은 단상에서 나와 다시 한번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이후 그는 1분 남짓한 시간 동안 성명서의 남은 부분을 모두 낭독하였고, 기자들은 이를 빠르게 받아 적으며 어떤 기사를 쓸지 고민했다.

‘만평일보와 한바탕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어. 후, 오늘도 그냥 평범한 기사를 쓰겠구나.’

‘강수혁 대표 본인으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지만, 우리로서는 이대로 이슈가 끝나면 조금 허무할 것 같아. 뭔가 파격적인 내용이 있을 줄 알았는데…… 내 기대가 너무 컸나 보네.’

지오라이브를 포기한 수혁의 선택은 기사를 쓸 거리는 되었으나 서비스를 개시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사이트의 폐쇄는 큰 이슈가 될 수 없었다.

“이상으로 강수혁 대표님의 성명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지금부터는 남은 시간 동안 자유 대담 시간을 갖겠으니 기자님들은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혁은 사회자가 말하는 동안 마이크가 부착된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만평일보 기자님부터 발언권을 드리겠습니다.”

김진석 부협회장은 손가락으로 배석현을 가리켰다. 그는 일전에 기자회견 자리에도 참석한 자로, 수혁과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강수혁 대표님, 질문에 앞서 우리 기자들과 언론사에 사과 성명을 발표해 주신 점에 대해 감사의 뜻을 밝힙니다.”

‘훗,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군. 계속 감사해할지 어떨지는 나중에 보면 알겠지.’

수혁은 석현의 이야기에 헛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꾹 참았다.

“준비해 온 질문이 몇 개 있는데요. 우선 지오라이브를 폐쇄하기 된 배경 먼저 설명 부탁드립니다.”

“다른 분들도 계시는데 질문을 여러 개 하시려는 건가요? 아, 궁금해서 묻는 거니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질문이 길어질 것 같으면 적절한 선에서 끊겠으니 일단 답변하시죠.”

수혁이 대담의 형식을 짚으며 의구심을 표함에도 불구하고 김진석 부 협회장은 적절한 대처를 하지 않았다.

‘하여간, 만평일보가 뭐라고 저리 눈치를 보는 건지.’

배석현 기자의 독단적인 행위는 타 언론사 기자들의 불만을 불러일으킬 만했지만, 다들 침묵할 뿐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수혁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태연한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오라이브를 폐쇄하게 된 이유는 성명서 발표 때 충분히 말씀드렸으니 간략하게 대답하겠습니다. 디지털 데일리 기자님께서 사전 동의를 받지 않고 촬영한 영상을 송출하게 된 점에 대해 책임을 지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게만 말씀하시면 언론사들이 사기업을 가혹하게 다루는 게 아니냐며 대중들이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다른 이유는 없으신가요?”

“흠, 굳이 말씀을 드려야 할까요? 이야기해 봤자 서로 좋을 게 없을 것 같은데요.”

“서로 좋지 않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뜻입니까?”

수혁이 시큰둥하게 답하자 배석현 기자는 침착하게 다시 물었다.

‘건방진 놈, 그냥 말하면 될 것을 꼭 저렇게 어깃장을 놓는단 말이야? 공개적으로 사과를 했다고 해도 사람 성격이 어디 가겠어?’

석현의 성격상 평소라면 날 선 반응을 보이겠지만 실시간으로 중계가 되고 있었기 때문에 언행에 주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알겠습니다, 말씀드리죠. 저는 몇몇 언론사들부터 엄중한 항의를 전달받았습니다. 지오라이브에서 기자가 개인 방송을 함으로써 품격을 떨어뜨리고 언론의 소임을 침해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원만한 해결을 위해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어느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던가요?”

“죄송하지만 문제 해결을 위해 결단 내린 부분에 포커스를 맞춰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더 이상의 논란은 만들고 싶지 않아서요.”

수혁은 자연스럽게 기자의 물음을 피해갔다.

‘바보 같은 놈, 스스로 무덤을 파는구나.’

석현은 실수를 유발시키기 위해 꼬투리를 잡았지만, 수혁은 의도적으로 답변을 피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 것이기에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시간 관계상 이젠 다른 분에게 기회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대담이 정체되는 것을 우려한 사회자는 가장 먼저 손을 든 사람에게 발언권을 줬다.

“안녕하세요, 성동일보의 박종구 기자입니다.”

‘저 사람도 지난 기자회견 때 온 사람이잖아? 배석현 기자랑 친해 보이던데…… 신중하게 말해야겠어.’

박종구 기자를 한눈에 알아본 수혁은 차분히 그의 질문을 기다렸다.

“오늘 국민과 언론에 사과 말씀을 드렸지만, SH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SH에듀케이션의 경우 사교육 시장의 85퍼센트를 SH커뮤니케이션은 포털 시장의 58퍼센트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자칫 독점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인데 대표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SH에듀케이션, SH커뮤니케이션 양사 모두 시장독점의 상태까지 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답변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수혁은 SH의 시장 지위가 시장을 홀로 독식하는 독점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짚으며 포문을 열었다.

“개념적 정의를 떠나서, 기자님과 많은 국민들이 우리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전 기자회견 때 우리 회사가 시장점유율이 높음에도 타 회사에 비해 양질의 서비스를 저가에 제공한다는 자료를 공개한 바 있지만, 단순해명으로는 국민들의 감정을 달래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오랜 시간 이야기를 한 수혁은 목이 건조해져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답변을 재개했다.

“원래는 조용히 진행하려고 했으나, 기자님께서 마침 질문해 주셨기에 이 자리에서 발표하겠습니다. SH는 늦어도 연말까지 재단을 설립할 계획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여론을 재단을 통해 극복하시려는 건가요?”

종구는 수혁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런 이유도 분명 있겠지요. 하지만 재단 설립의 본질은 많은 고객들에게 받은 사랑과 혜택을 사회에 돌려드리자는 겁니다. SH는 상생은 도외시하고 자신의 이익만 추구한다는 주위의 충고를 뼈아프게 생각해서 내린 결정입니다.”

‘형식적인 성명 발표 자리가 아니라 다행이야. 대담이 진행될수록 점점 이야깃거리가 나오고 있어.’

‘건질 게 없어서 떠날까 했는데 좀 더 지켜봐야겠어.’

새로운 정보가 나오자, 지루한 표정을 짓던 기자들은 눈을 반짝이며 이들의 대화를 경청했다.

“조금 전에 본부에서 연락이 왔는데, 시청률이 4퍼센트까지 상승했다고 합니다.”

케이블 방송의 직원 하나가 촬영팀 담당자에게 다가와 보고했다.

“그게 사실이야? 4퍼센트면 완전 대박인데?”

“성명 발표 때부터 완만하게 오르던 시청률이 대담이 시작되자 확 뛰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본부에서 방송 스케줄을 조정했으니 끝까지 촬영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알겠어, 촬영 기자한테 바로 이야기할게.”

케이블 방송국은 협회장의 부탁으로 참석했기에 성명 발표가 끝나면 20분 내로 철수할 계획이었으나, 수혁과 기자들 간의 대화가 예상외로 화제를 끌자 방송 시간을 연장했다.

“답변 잘 들었습니다. 다음 질문입니다. 조금 전에 배석현 기자님과의 대화에서 언론의 비판 중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하셨는데,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예상대로 미끼를 무는군.’

박종구 기자는 나름 날카로운 질문이라고 던진 것이었지만, 수혁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 225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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