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없는 회귀-206화 (206/316)

206화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대표님도 고생하셨어요. 저녁은 이것들로 대충 때워야 할 것 같네요.”

룸카페에 다시 모인 일행들은 빵과 케이크를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배들 채우셨으면 조사해 온 것들을 한번 이야기해 볼까요?”

혜선은 그릇이 모두 비워진 걸 확인하고 말했다.

“일단 저부터 할까요, 아니면 혜선 씨네 먼저 할래요?”

“저희부터 할게요. 잠시만요.”

그녀는 가방에서 녹음기와 메모장을 꺼냈다.

“대학가에 있는 상점들을 쭉 돌았는데, 수확이 적지 않았어요. 일단 녹음 파일 먼저 들려 드릴게요.”

혜선은 말함과 동시에 녹음기를 실행시켰다.

“말도 마세요. 처음 한 번은 그러려니 했지만 요즘은 수시로 찾아와서 난리를 피운다니까요?”

“하, 심지어 테이블이 꽉 찼는데도 자리를 만들라는 둥 어찌나 사람을 괴롭히는지.......”

녹음기에서는 자영업자들의 생생한 증언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거라면 학생회에 제법 치명타를 안길 수 있겠는데요?”

“넌 못 봐서 모르겠지만, 기자님이 정말 대단하셨어. 학생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말씀을 삼가시던 사장님들을 순식간에 설득하시는데…… 이건 말로는 안 돼, 직접 봐야 해.”

“저희는 사실상 한 게 거의 없었습니다. 이혜선 기자님께서 증언을 확보해 주셨고, 나중에 인터뷰할 사장님들까지 포섭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찬식과 진태는 혜선의 활약을 극찬했다.

“처음에는 피해를 받을까 하는 마음에 다들 주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우리들이 하는 활동에 대해 익명의 제보자로 기사화할 거라고 말씀드리니까 그제 서야 증언을 해 주시더라고요.”

“현명하게 잘 대처하셨군요.”

“훗, 아니에요. 진태 씨랑 찬식 씨가 옆에서 도와준 덕분에 더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어요.”

칭찬 세례에 뿌듯해진 혜선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사장님들께서 무단으로 취식한 학생회 사람들이 찍힌 CCTV 영상도 제공해 주신다고 해서 일이 더 쉽게 풀릴 거 같아.”

“잘됐다. 이렇게만 일이 풀린다면 생각보다 사건이 금방 끝날 수도 있겠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게 일이 진행되자, 수혁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제 다음으로 대표님 차례네요.”

“그래, 수혁아. 뭐 알아낸 거라도 있어?”

일행들은 잔뜩 기대하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나도 녹음을 하나 뜨긴 했는데, 잠깐만.”

수혁이 품속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들어 보면 알겠지만, 룸살롱 직원이 이명학과 학생회 간에 연관성이 있다는 걸 이야기하더라고.”

“그게 진짜야? 얼른 틀어 봐, 수혁아.”

“알았어.”

찬식의 다그침에 수혁은 녹음 파일을 실행시켰고 핸드폰에서 수혁과 김종범의 대화가 재생되었다.

“재벌 자제가 룸살롱을 운영하는 것도 놀라운데…… 학생회가 수시로 회식을 했다는 점은 많이 수상한데요?”

녹음을 다 듣고, 진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사장님들이랑 달리 룸살롱 사람들은 피해자들이 아니라 증언을 따기가 어려웠을 것 같은데 수고 많았어, 수혁아.”

“저, 대표님. 묻고 싶은데 있는데요.”

찬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혜선이 질문을 던졌다.

“말씀하세요.”

“미리 알려드리지 못했지만 저는 녹음 상대에게 사전에 공지하고, 질문을 알려 준 다음에 녹음을 진행한 거예요. 반면에 대표님은 상대방의 동의 없이 녹음을 하신 것 같은데, 맞나요?”

그녀는 인위성이 전혀 없는 대화 내용 안에서 몰래 녹음한 사실을 유추했다.

“상대방 동의 없이 녹음한 것은 불법이고 증거 능력 인정이 안 된다는 말씀이시죠?”

“잘 알고 계시네요? 제가 무리를 한다면 녹음 내용을 토대로 기사를 쓸 수야 있겠지만, 자칫하면 소송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와, 그럼 이 사실을 그냥 덮어야 하는 거야?”

“고생해서 녹음한 건데 정말 안타깝게 됐네요.”

혜선의 이야기를 들은 진태와 찬식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렇게 하고 끝냈으면 여러분들을 볼 면목이 없었겠지만, 다행히도 증거 확보에 성공했습니다.”

수혁은 이들의 반응을 비웃기라도 하듯 주머니에서 영수증을 꺼냈다.

“이건 영수증이잖아?”

“설마, 학생회가 쓴 내역을 보여 주는 영수증인 겁니까?”

김빠진 표정을 짓고 있던 사람들은 수혁이 꺼낸 영수증을 보자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제공한 카드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사진은 룸살롱의 장부를 찍은 건데 제법 유용할 것 같더라고요.”

수혁은 현우에서 돈을 썼다는 내용이 적힌 장부를 다른 이들에게 보여 줬다.

“사진을 보면 장부에 붙어 있던 영수증하고 이 영수증들이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거 학생회에서 빼도 박도 못하겠는데요?”

진태의 목소리는 결정적인 증거를 획득한 기쁨에 들떠 있었다.

“저, 괜찮으면 이것들을 가져가도 될까요? 오늘 밤에 당장 기사를 써야겠어요. 내심 걱정했는데, 우리가 작업한 것보다 훨씬 대단한 걸 얻어오셨네요. 덕분에 확실한 증거 자료를 얻게 됐어요.”

혜선은 결정적인 증거를 획득한 수혁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사진 파일은 즉시 보내 드리겠습니다. 단, 기사는 모든 준비가 완료되고 나서 쓰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논의했던 사안들에 대해서는 증거 확보가 끝난 거 같은데, 더 준비할 게 있을까?”

“당연히 있지. 사이비 종교와의 연관성과 처장들에 관한 비위사실은 이대로 넘어갈 거야?”

찬식의 물음에 수혁은 오히려 반문하였다.

“그렇게 되면 축제 전까지 사건을 처리하지 못할 수도 있어. 오늘은 운이 좋아서 그렇지, 우리가 움직이고 있다는 걸 학생회랑 이명학이 알게 되면 엄청난 압박에 시달리게 될 거야.”

찬식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진태와 함께 활동하면서 학생회의 숱한 견제를 받아 왔기에, 섣부르게 추가 활동을 하기보다는 일을 안전하게 진행하고 싶었던 것이다.

“걱정하지 마. 압박은 우리가 아니라 학생회 놈들이 받을 테니까. 지금부터 형하고 너는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면 돼. 나머지는 기자님하고 내가 알아서 할게.”

“수혁아, 그래도…… 처장 건이랑 다른 것들은 다음에 진행하자.”

“찬식아, 그만해. 수혁 씨, 믿고 맡길 테니 잘 마무리해 주시길 바랍니다.”

오히려 진태가 찬식을 제지하고 수혁에 대한 신뢰를 드러냈다.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표님, 어찌 됐든 우리랑 함께 하는 분들인데 오늘 이후부터는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가볍게라도 설명해 주시면 안 될까요? 사실 이 두 분이 사건의 당사자들이잖아요.”

혜선은 사건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극심했을 진태와 찬식이 안쓰러웠다.

“당연히 설명해 드려야죠. 내일부터는 학생회 임원들에게 하나씩 접근할 건데, 어떻게 할 거냐면…….”

수혁은 늦은 밤이 되도록 향후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고, 사람들은 모두 그의 의견에 찬성하는 입장을 내비쳤다.

‘기왕 시작한 거 확실하게 한번 해 보자.’

일행들과 헤어진 수혁은 생각에 잠긴 채 집으로 향했다.

* * *

다음날이 되었다. 이날 수혁은 수업을 마치고 혜선과 함께, 형석이 소개시켜 준 변호사를 만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벌써 와 계셨네요?”

캠퍼스에 있는 한 카페에 도착한 수혁은 혜선을 발견하고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쪽에 앉아 계신 분이 대표님이 말씀하신 변호사님이세요?”

“저도 본 적은 없지만, 카페에 있는 사람은 우리뿐이니 아마 맞을 겁니다.”

수혁은 카페 구석에 앉아 있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김형석 변호사님이 보내신…….”

“네, 맞습니다. 강수혁 대표님이시죠? 반갑습니다.”

남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수혁에게 악수를 건넸다.

“저도 반갑습니다. 서로 인사들 하시죠. 변호사님, 이쪽은 투데이 서울의 이혜선 기자님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신평 법무법인에서 근무하고 있는 박정철 변호사입니다.”

“이혜선입니다. 투데이 서울의 이혜선 기자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대표님과 기자님을 도와 사건을 해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세 사람은 서로 통성명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변호사님, 제가 보내 드린 자료들은 검토해 보셨습니까?”

“네, 오늘 아침부터 지금까지 사건과 증거들을 분석했는데…… 법률적으로 다룰 수 있는 쟁점들을 적지 않게 발견했습니다.”

“어떤 부분들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일단, 공금과 관련해서는 횡령죄가 적용될 소지가 충분히 있어 보입니다. 이 외에도 대학가에 있는 상인들에게 했던 행위는 위력에 의한…….”

정철은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 학생회에 적용할 수 있는 죄목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잘 들었습니다. 조금 이따 학생회 임원들을 만나러 갈 텐데, 방금 하신 말씀들을 축약해서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예, 가능합니다.”

“며칠간은 저랑 함께 하느라 로펌 업무를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는데 괜히 귀찮게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수혁은 자신을 따라 궂은일을 하게 될 정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김형석 변호사님께서 대표님을 도울 수 있도록 저를 업무에서 제외시켜 주었습니다.”

“변호사님께서 저를 이 정도로 배려해 주실 줄은 생각도 못 했네요.”

“사실, 지시를 받고 오긴 했지만, 김형석 변호사님이 의뢰인을 이렇게 챙기는 모습은 처음 봤습니다.”

정철은 오히려 수혁에게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야기는 이쯤 해야 할 것 같아요. 곧 있으면 진태 씨가 말한 학생회 임원이 나올 시간이에요.”

혜선은 시계를 보며 이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주지시켰다.

“임원을 만나서 뭘 해야 할지는 굳이 말씀을 안 드려도 다들 숙지하셨을 거라 믿습니다. 이만 일어나죠.”

수혁은 옷가지를 챙기고 혜선과 정철과 함께 카페를 빠져나왔다.

‘이 일로 시간을 많이 잡아먹긴 했지만, 비리 사건을 처리하고 이명학도 끌어내릴 수 있다면 시간 낭비는 아닐 거야.’

그는 지오쇼핑을 론칭한 이후 사사건건 방해 공작을 일삼는 명학을 이번 기회에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저 사람인 것 같은데요?”

“확실합니까?”

“네, 어제 CCTV에서 봤던 인상착의랑 많이 흡사해요.”

혜선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혁의 물음에 답했다. 이들은 자연대 건물에서 수업을 마치고 나오고 있는 한 남자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학생회 임원, 고석현은 그들을 보지 못하고 오늘 뭐 할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심심한데 당구나 칠까? 애들한테 한번 연락해 봐야겠다.’

남자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대학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때, 뒤편에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고석현 씨 맞으십니까?”

‘누구지?’

석현은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네, 맞는데…… 누구세요?”

“저는 한국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강수혁이라고 합니다. 몇 가지 여쭤볼 게 있는데,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으세요?”

“음, 죄송하지만 제가 지금은 바빠서 나중에 보도록 하죠.”

그는 수혁의 뒤에 서 있는 정철과 혜선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고, 황급히 자리를 빠져나가려 했다.

“고석현 씨, 저는 투데이 서울의 이혜선 기자입니다. 홍보 업무를 핑계로 대학가에 있는 여러 상점들을 돌아다니며 무전취식을 일삼았다는 제보가 들어왔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저는 할 말 없습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학생회에 정식으로 인터뷰를 신청하세요.”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대표님, 저 사람은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증거도 확실하고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으니, 굳이 대화를 나눠봤자 시간 낭비일 것 같습니다. 차라리 다른 사람과 인터뷰를 하시죠.”

정철은 석현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게요.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면 정상참작으로 해 주려 했는데 안 되겠네요. 가시죠.”

“……저기요. 도대체 저한테 왜 이러시는 겁니까?”

이들의 대화를 엿들은 석현은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돌아왔다.

- 206화에 계속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