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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회귀-199화 (199/316)

199화

‘얘가 웬일로 나한테 왔지?’

수혁에게 말을 건 사람은 다름 아닌 사토였다.

“대표님,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습니다. 혹시 제가 무례하게 굴었거나 기분 나쁘게 한 점이 있다면 부족해서 그런 거니까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토는 지난 이틀 동안의 경험으로 모든 면에서 수혁에게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자만하고 살았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사토 상이 저한테 잘못한 게 뭐가 있다고 사과하십니까? 지난 토론 때도 그렇고, 오히려 제가 많이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에 걸리시는 부분이 있으면 개의치 마시고, 앞으로 잘 지내도록 하죠.”

표면적으로 마찰이 벌어진 적은 없었기 때문에 사과할 게 없다는 수혁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고백하고 먼저 말을 걸어준 사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옹졸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괜찮은 구석이 있었잖아?’

그는 지난 신경전은 어느새 잊고 사토에 대한 좋은 감정이 생기고 있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 일본을 떠나신다고 들었는데 앞으로도 좋은 관계를 맺고 싶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같은 연배인 것 같은데 친구처럼 잘 지냅시다.”

수혁과 사토는 악수를 하며 훈훈한 대화를 나눴다.

“두 분은 또 언제 친해진 겁니까? 정말 보기 좋습니다.”

정우는 이들 곁으로 다가와 덕담을 건넸다.

“제가 그동안 좁은 세계에 갇혀 오만한 마음이 있었는데 대표님을 만난 이후로 깨달은 게 적지 않습니다.”

“사토 군,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실수를 하기만 지금처럼 빨리 뉘우치고 개선해 나가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는 법입니다. 두 분은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또 마주칠 수 있으니, 서로 원만히 지내는 편이 상호 간에 좋을 겁니다.”

정우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나가토모는 어제 둘 사이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는 것을 감지하고 정우에게 보고를 했기 때문에 그는 대략의 사정을 알고 있는 상태였다.

‘걱정했던 거랑 달리 잘 들 지내서 다행이야. 이제 슬슬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눠 볼까?’

“전무님, 학생들과 투어를 시작하시죠. 곧 있으면 점심시간이라 서두르셔야겠습니다.”

정우는 수혁과 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지시를 내렸다.

“알겠습니다. 자, 여러분. 지금부터 회사를 돌아볼 테니 2인 1조로 줄을 서 주시기 바랍니다.”

나가토모는 학생들을 한데 모아 줄을 세운 뒤 탐방을 시작했다.

“학생들과 함께하셔야 하는데 방해를 한 것 같아서 죄송하군요.”

정우는 사람들이 빠져나간 것을 확인한 후 수혁에게 말을 걸었다.

“괜찮습니다. 통역 선생님께서 저 대신 학생들을 맡아 주기로 하셨습니다.”

“잘됐군요. 그럼, 우리도 이동할까요? 괜찮으시면 제 집무실에서 대화를 나누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조용하고 아늑해서 대화하기에는 그만이거든요.”

“전 어디든 괜찮습니다.”

수혁은 소현에게 미리 이야기해 두었던 수혁은 스스럼없이 그를 따라나섰다.

“일본에서 제일가는 기업인의 방치고는 참 검소하네요.”

“잡다한 걸 가져다 놔 봤자 일하는 데 방해만 될 뿐 아무 쓸모도 없거든요.”

정우의 집무실에 들어온 수혁은 흔한 장식장 하나 없는 평범한 방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내부에는 응대를 위한 테이블과 소파, 그리고 업무용 책상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 다소 썰렁한 느낌이 들었지만 일에 집중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보였다.

‘회장님 말대로 업무를 하는 데 필요한 것들 외에는 아무것도 없네? 나도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면 참고해야겠어.’

수혁은 방을 둘러보며 생각에 잠겼다.

“제가 즐겨 먹는 커피가 있는데 한잔하시겠습니까?”

“네.”

정우는 로스팅 기계에 원두를 넣고 커피를 만들기 시작했다.

“최근에 유통 쪽에도 진출하신 것 같던데?”

“올 5월부터 영업을 개시했는데 생각대로 잘되진 않더군요. 그냥 하루하루 살 떨리는 기분으로 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오쇼핑은 유통 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만한 혁신적인 기업입니다. 단지 시대를 앞서갔기 때문에 진통을 겪는 것일 뿐, 안착하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소파에 앉아 있는 수혁에게 다가와 커피잔을 건넸다.

“저도 단기간에 안착하리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조급해하기보다는 호흡을 길게 갖고 가야지요.”

수혁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

“제가 오늘 따로 뵙자고 한 건…… 제안을 하나 드리고 싶어서였습니다. 저는 지오닷컴이 SH에 인수가 됐을 때부터 대표님을 꾸준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훗, 회장님께서 저에게 관심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각종 언론에서 꼽은 촉망받는 기업인인데, 관심을 두지 않는 건 직무유기가 아닐까요?”

김정우 회장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직 갈 길이 멀었는데 주변에서 저를 과대평가하는 거죠. 그것보다 좀 전에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수혁은 더 민망해지기 전에 얼른 화제를 바꿨다.

“알겠습니다. 기왕 물어보셨으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SH그룹에는 여러 자회사들이 있지만 가장 눈에 띄었던 것 SH에듀케이션이었습니다. 성장세도 뚜렷하고 상품성도 확실해서 투자하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음, 회장님께서도 아시겠지만 SH에듀케이션은 입시 외에도 외국어, 각종 자격증 등 다양한 종류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지오쇼핑이나 SH커뮤니케이션을 언급하실 줄 알았는데 의외입니다.”

수혁은 SH에듀케이션이 교육 시장에서 침투할 수 있는 분야는 모두 진출한 상태라는 것을 돌려 말하고 있었다.

“국내만 생각하면 대표님의 말씀이 옳겠지요. 하지만 저는 해외 염두에 두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해외라면…… 일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어디 일본뿐이겠습니까? 시험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능하겠지요.”

정우는 미리 준비해 둔 서류를 꺼내 수혁에게 주었다.

“이건……?”

“SH에듀케이션이 해외에서 성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보고서입니다. 길지 않으니 한번 살펴보시죠.”

“알겠습니다.”

수혁은 30쪽 내외로 정리된 문서를 손에 들고 진지하게 읽기 시작했다.

‘그냥 막무가내로 꺼내신 말씀이 아니구나.’

보고서에는 각종 통계와 데이터가 열거되어 있었고, ANA 내에 있는 투자 전문가의 견해까지 상세히 적혀 있었다.

“확실히 서양 쪽은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군요.”

한동안 말없이 있던 수혁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유럽이나 미국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균형 잡힌 삶을 살기를 바라지 공부에 매몰되기를 바라지 않거든요.”

“입신양명을 지향하는 유교권 국가 외에는 진출이 어려울 듯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일단은 전 세계를 노리기보다는 일본과 중국에 포커스를 맞추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우는 수혁의 말에 공감의 뜻을 밝혔다.

“특히 일본 시장보다는 중국 시장에 집중하라는 내용이 참 인상적입니다. 회장님께서 도와주신다면 중국보단 일본이 안착하기가 훨씬 쉬울 텐데 말이죠.”

“현재 중국은 일본에 미치지 못하지만 향후 5년 안으로는 미국 다음가는 국가로 발전할 수 있는 곳입니다. 두고 보세요. 한·중·일 3국의 경제 규모가 유럽과 미국을 뛰어넘는 날이 곧 도래할 거니까요.”

‘방금 한 말 중에 틀린 게 하나도 없어. 정말 엄청난 통찰력이야.’

미래에서 과거로 온 수혁은 정우의 예측에 소름이 끼쳤다.

“만약에 같이 일하게 된다면 제가 해야 할 일은 뭡니까?”

수혁은 자신의 역할이 무엇이지 궁금했다.

“SH에듀케이션의 경영 노하우를 제공해 주고 일본과 중국에 세울 법인을 잘 운영해 주시는 게 전부입니다.”

“그 말씀은…… 설립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회장님께서 대주신다는 것처럼 들리는데요?”

“하하, 눈치가 빠르시네요. 맞습니다. 제가 다른 건 몰라도 회사를 보는 안목이 있는 편인데 대표님의 회사는 투자할 가치가 충분하거든요.”

“아직 결정을 내린 건 아니지만 조건이 궁금하군요.”

수혁은 대가 없는 투자란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국과 중국 진출에 드는 모든 비용을 내주는 조건으로 일본에 세울 법인 지분의 30퍼센트를 요구하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음, 고민을 해 봐야겠군요.”

얼핏 들었을 때는 정우가 후한 조건을 제시한 것처럼 들릴 수도 있었으나 유통 회사와 달리 교육 회사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마냥 좋은 조건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사실, 우리 회사의 자본만으로도 중국과 일본 진출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은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제가 고민하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제가 일본 시장에 물꼬를 터주길 바라서 그런 거 아닙니까?”

본격적으로 사업 이야기를 시작하자, 정우의 눈은 날카롭게 빛났다.

‘중국 쪽 지분을 요구하지 않는 이유는 중국에서는 할 수 있는 역할이 그만큼 많지 않아서지, 욕심이 없어서가 아니야. 정신 똑바로 챙기고 협상에 임하자.’

수혁은 정우에 대해서 호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사업에 관한 논의는 감성보다는 이성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업계에 잘 정착하고 대중들에게 위화감 없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일본에서 깊은 신뢰를 얻고 있는 ANA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는 회장님께 30퍼센트가 아니라 40퍼센트의 지분을 드리려고 합니다.”

“대가는요?”

“SH에듀케이션 외에도 SH그룹 내의 자회사가 일본에 진출할 때 적극적으로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예상을 뛰어넘는 제안이군요? 역시 만만히 볼 분이 아니시네요.”

정우는 수혁을 흥미롭다는 듯이 쳐다봤다.

“말씀하신 40퍼센트가 타 자회사의 지분도 포함된 건가요?”

“죄송하지만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수혁은 평소 친절했던 태도와 달리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SH에듀케이션 외에 다른 회사의 지분까지 양도하는 것은 수지에 안 맞았기 때문이었다.

“생각할 시간을 좀 주시겠습니까? 간단히 결정할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입니다. 천천히 생각하시죠.”

‘기회가 왔을 때 확실히 잡겠다는 심산인데…… 보통 사람이 아니군. 이거 재미 좀 보려다가 완전히 코가 꿰이겠는데?’

대화 초반에는 수혁이 제안을 받고 고민을 했었다면 이제는 양상이 완전히 반대로 변해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손해 보는 기분이 안 드는 건 아니지만 제 육감이 대표님과 함께하라고 계속 그러는군요.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대신, SH에듀케이션을 제외한 다른 회사들은 금융 지원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한참을 생각하던 정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안착하는 데 도움을 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구두로 합의를 했지만 만난 김에 확실히 해 두기로 하죠. 계약서를 작성하면 어떨까 하는데?”

“좋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죠.”

수혁은 흔쾌히 계약서를 만들기로 동의했다.

- 200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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