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없는 회귀-198화 (198/316)

198화

“와, 진짜 장난 아니다. 내가 먹어 본 초밥 중에서는 최고였어.”

“그런데 가격이 엄청 나왔을 것 같은데?”

“정확한 액수는 말씀 안 해 주셔서 모르겠지만, 계산이 된 걸 보면 생각보다 안 비쌀지도 몰라.”

“예산이 초과된 건 확실해. 아까 보니까 단장님이 본인 카드로 계산하시더라고.”

‘잘 먹었으면 그걸로 된 거야.’

수혁은 학생들에게 일부로 가격을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생색을 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들 먹었으면 이만 호텔로 돌아갈까요?”

“네, 단장님.”

“잘 먹었습니다.”

“당연히 해 드릴 수 있는 거니까 마음 쓰지 마세요. 자, 그럼 나가죠.”

단원들은 감사한 마음을 표했고 수혁은 학생들을 데리고 버스를 탄 뒤 호텔로 돌아왔다.

“저, 선생님 잠깐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네, 말씀하세요.”

수혁의 말에 엘리베이터를 타려던 소현이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이 티켓 좀 맡아 주실 수 있으실까요? 죄송하지만 저는 공연을 보러 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따로 해야 할 일이 있거든요.”

“아, 그러세요? 너무 아쉽네요. 어제도 혼자 호텔에 계셨잖아요.”

“그러게요. 다음에 올 때는 좀 더 여유 있는 상황이었으면 좋겠네요.”

수혁도 내심 이들과 함께 공연장을 가고 싶었으나 한국에서 가져온 일거리들이 있어 가지 못하게 되었다.

“걱정 마시고 가서 일 보세요. 학생들은 제가 안전하게 인솔할게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다음에 꼭 사례하겠습니다.”

“사례는 아까 초밥집에서 했던 거로도 충분합니다.”

소현은 흔쾌히 그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수혁은 그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호텔 방으로 돌아왔다.

‘어제 실컷 쉬었으니까 오늘은 열심히 해 보자.’

그는 응접실에 있는 테이블에 노트북과 서류들을 펼쳐 놓은 뒤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 * *

시간은 흘러 다음 날이 되었다. 사토와 동경대 학생들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ANA 본사에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토, 어제는 왜 이렇게 일찍 들어간 거야? 공연 끝나고 롯본기에서 술 한잔하기로 했었잖아?”

“어, 갑자기 몸이 좀 안 좋은 거 같아서 그렇게 됐어. 다음에 마시게 되면 내가 쏠 거니까 이해해 줘.”

어제 사건으로 인해 기분이 상한 사토는 동아리 부회장에게만 말하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갔었다.

‘후, 내가 알기로 오늘 마사토모 회장님이 잠깐 들르신다고 했었어. 비록 아버지랑 함께 두어 번 본 게 다지만 이번 기회에 누가 더 우위에 있는지 확실히 보여 줘야겠어.’

사토는 어제 느꼈던 굴욕감을 오늘 싹 씻어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야, 근데 너희 아버지가 마사토모 회장님이랑 친하다는데 사실이야?”

친구들 중 하나가 궁금해 하는 얼굴로 물었다.

“응, 아이소프트가 설립되기 전부터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사이셨나 봐. 조금 이따 오시면 인사드려야지.”

“마사토모 회장이면 일본에서 제일가는 부자잖아? 그런 분이랑 아는 사이라니…… 대단한데?”

“사토는 역시 우리랑은 다르다니까?”

“훗, 뭘 이런 걸 가지고.”

사토는 친구들의 칭찬에 어깨가 한껏 올라갔다.

“회장님, 한국대 학생들이 오려면 시간이 좀 남았는데 잠시 후에 오시면 어떻겠습니까?”

“가서 기다리면 되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나가토모와 정우는 대화를 나누며 세미나실에 들어왔다.

‘날 기억하고 계시겠지?’

친구들에게 해 놓은 말이 있었기에, 사토는 주변의 눈치를 살피다가 정우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어? 우리 어디서 뵌 적이 있지 않나요? 낯이 많이 익는데?”

정우는 사토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봤다.

“아이소프트를 운영하시는 사토 타다스케가 저희 아버지 되십니다. 제가 어렸을 때 몇 번 뵌 적도 있었는데 기억하십니까?”

“오, 그때 그 아이가 이렇게 장성하다니, 세월이 정말 빠르네요. 타다스케는 잘 지냅니까? 3년 전에 기업인 컨퍼런스에서 본 이후 연락을 통 못했었거든요.”

사토의 이야기를 들은 정우는 반가운 기색을 드러냈다.

“저기 좀 봐 바. 마사토모 회장님이 사토랑 정말 아는 사이인가 본데?”

“사토는 애당초 우리랑 출발선이 다른 애야. 아이소프트가 개발한 게임이 지금 일본을 넘어서 해외에서도 잘 팔리고 있잖아.”

“나도 들었어. 게임 회사로는 이례적으로 1조 원을 넘는 매출을 올렸다던데?”

“컴퓨터 게임도 아니고 콘솔 게임으로 그런 성적이면 정말 대단한 거지.”

콘솔 게임은 키보드가 아닌 조이스틱이나 조이패드로 실행하는 게임으로, 미래에는 컴퓨터에도 연결해서 많이 했지만 현재는 게임기로 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사토는 이제 잘될 일만 남았네? 나중에 아이소프트를 물려받을 거 아니야?”

“어제 마츠코츠시에서도 사토가 샀잖아. 사실 학생 신분에 거기서 식사하는 게 어디 쉽냐?”

동경대 학생들은 사토를 두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후, 알아봐 주셔서 다행이다. 어제는 강수혁이라는 한국인 때문에 일이 잘 안 풀렸지만, 오늘은 다를 거다.’

사토는 수혁이 오면 정우와의 친분을 과시할 생각으로 기대에 부풀었다.

“회장님, 한국대 학생들이 왔습니다.”

나가토모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수혁과 단원들을 발견했다.

“대표님, 어서 오시죠. 진작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오사카에 출장을 다녀오는 바람에 이제야 인사를 드리게 되네요.”

“아닙니다. 배려해 주신 덕분에 편하게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정우는 악수를 건네며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저 한국인, 회장님이랑 엄청 친해 보이는데 어떻게 된 거지?’

사토를 비롯한 동경대 학생들은 한국어로 오가는 대화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정우가 수혁에게 큰 호감을 드러내고 있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강수혁 단장님하고 안면이 있으신 모양이군요?”

“네, 몇 주 전에 한국에서 뵌 적이 있었습니다. SH그룹이라고 하면 이야기가 쉬워질 것 같군요.”

“SH라면…… 회장님과 함께 분석했던 기업 아닙니까?”

“맞습니다. 강수혁 대표님은 제가 요즘 관심을 두는 SH그룹의 오너이십니다.”

‘저놈이 회사 대표라고? 쳇, 그래 봤자 한국에서나 좀 유명하지, 별 볼 일 없을 거야.’

나가토모와 정우의 이야기를 엿듣던 사토는 마음 깊은 곳에서 질투심이 솟구쳤다.

“여러분, 오늘 원래 본사 탐방으로 일정을 시작하려고 했으나 마사토모 회장님이 출장에서 일찍 돌아오시게 되어서 이렇게 자리에 오게 되었습니다. 탐방은 미팅이 끝나고 정상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니까 양해 부탁드립니다.”

학생들이 모두 온 것을 확인한 나가토모는 단상에서 모두 발언을 하였다.

“그럼 지금부터 회장님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말씀이 끝나시면 질의응답 시간도 있으니, 궁금하신 점이 있으면 미리 생각해 두시기 바랍니다.”

발언을 마친 나가토모는 마이크를 정우에게 넘겼다.

“안녕하세요. ANA 그룹의 마사토모 회장입니다. 한국에서는 김정우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요. 저는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대한민국에 대해서도 깊은 애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양국의 미래를 이끌 인재들이 이번 견학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워 가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우는 짧은 환영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제 나가토모 전무가 진행한 세미나를 통해, 창업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갖춰야 하는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이론보다는 구체적인 사례를 여러분들에게 알려 주고자 합니다. PPT를 띄워 주시겠습니까?”

“네, 회장님.”

나가토모는 스크린에 화면을 띄웠다.

“이 자료는 인베스트먼트 부서에서 작성한 보고서를 PPT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이걸 보시면, 저희가 어떤 기준으로 전도유망한 기업을 선정했는지 알게 되실 겁니다.”

‘뭐야? 저건 우리 회사잖아?’

수혁은 화면에서 SH스터디의 로고를 발견하자 깜짝 놀랐다.

“한국에서 오신 분들은 이미 아시겠지만, SH스터디는 여기 계신 강수혁 단장님이 설립한 회사입니다. 학생들에게 온라인 강의를 제공하자는 취지로 2000년 5월부터 서비스를 개시했는데, 불과 2년 만에 매출 1조 5,000억에 달하는 거대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정우는 SH스터디를 예시로 들며 열띤 설명을 이어 갔다.

‘……이게 무슨 말이야? 마사토모 회장님이 주목하는 기업의 오너가 저놈이었다고?’

사토는 넋이 빠진 얼굴로 화면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온라인 강의라는 참신한 아이템과 강수혁 대표님의 기획력이 맞물려 폭발적으로 성장한 SH스터디는 최근 SH에듀케이션과 한데 묶여 대학 입시뿐만 아니라 다양한 카테고리의 강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우리 회사가 SH에 주목한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한국의 포털 사이트에서 10대와 많이 검색한 단어들 중 몇 개를 근거 자료로 사용했다.

“여길 보시면 10대에서 가장 많이 검색하는 분야로 연예, 스포츠 등이 있지만 입시에 관한 것도 이에 못지않다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현재 펀 갤러리를 비롯한 각종 커뮤니티에서도 SH에 관한 게시글이 활발하게 작성되고 있지요. 즉, SH스터디는 고객 취향과 트렌드에 맞는 회사라는 이야기지요. 게다가…….”

‘흠, 다 맞는 이야기이긴 한데 애들 앞이라 그런가 쑥스럽네.’

수혁은 자신의 회사가 호평을 받아 기분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민망하기도 했다.

“SH그룹은 SH스터디의 성공을 기반으로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는 데 성공했으며, 현재 추산되는 총매출은 2조 8천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참고로 말씀드리면 그룹 내 다른 자회사들의 경우에도 미래에 대한 전망이 무척 밝아 우리 회사에서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애당초 저 한국인이랑 나는 게임이 안 됐었구나. 앞으로는 그냥 조용히 있어야겠어.’

사토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며 수혁에 대한 경쟁심을 내려놓기로 마음먹었다.

“이상으로 발표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부터는 질의응답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아, 나가토모 상, 저기 앞줄에 손드신 분께 마이크를 주시겠습니까?”

“네, 회장님.”

나가토모는 곧장 마이크를 들고 손을 든 한국대 학생에게 건네주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대학교에서 온 정유정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SH를 사례로 들어 설명해 주신 덕분에 이해가 잘 되었는데요. 제가 궁금한 건…….”

15분간의 짧은 발표를 마친 정우는 학생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일본어 한국어 모두 능통했기 때문에, 통역사 없이도 문제없이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아쉽지만 시간 관계상 질문은 여기까지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10분간 휴식을 취하고 회사 곳곳을 차근차근 둘러볼 예정이니 화장실 가실 분들은 지금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나가토모는 적절한 선에서 질의응답 시간을 마무리했고, 할 말이 있는지 수혁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대표님. 회장님께서 따로 뵙자고 하시는데, 혹시 괜찮으십니까?”

“네. 통역사님이 계셔서 다른 학생들도 문제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수혁은 소현에게 학생들 인솔을 부탁하면 됐기에 무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감사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회장님께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나가토모는 질의응답이 끝난 뒤에도 학생들과 못다 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정우에게 갔다.

“저, 단장님…….”

‘누구지?’

수혁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 199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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