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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회귀-177화 (177/316)

177화

“안 그래도 확실한 제품들에 대해서만 당일 배송이 가능하다고 표시를 해 두었습니다. 예를 들면 SH에듀케이션에서 제공하는 교재나 학습 용품 같은 것들처럼 말이죠.”

“교재의 경우에는 SH에듀케이션에서 강의와 함께 자체적으로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큰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당일 배송이 가능한 물품들의 숫자를 점진적으로 늘려야 할 겁니다.”

수혁은 다소 긴장된 얼굴로 영업 현황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당일 배송이 가능하려면 주문이 들어온 즉시 운송이 가능한 수준이어야 하는데, 현재 시스템으로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한정길 사장님께 연락해서 강의용 교재 외에도 일반 참고서를 만들라고 할 겁니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수학과 영어 교재를 편찬한 다음 지오쇼핑에서 독점해서 판매하면 적지 않은 수익이 발생할 겁니다.”

“지오쇼핑에서 독점적으로 판매하는 것은 원활한 판매에 도움이 안 됩니다. 타 출판사들과 서점에서도 유통을 하되, 우리 사이트를 이용할 시 할인을 해 주는 방향 정도가 적당한 듯 보입니다.”

수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네, 방금 말씀하신 부분을 참고해서 한정길 사장님과 논의해 보겠습니다.”

“제 의견 외에도 직원들이 내놓는 방안들 중에 참신하고 쓸 만한 것들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반영해 보세요. 실무를 맡은 직원들에게서 더 좋은 의견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우리 회사는 주요 제조 업체들이 생산하는 제품들을 사이트에 올리고 주문을 받고 있습니다. 운송의 효율을 위해 일정 정도의 주문량을 기다린 다음 일괄적으로 제품을 재고창고에서 가져오고 있는데 나중에는 시스템을 손봐야 할 듯싶습니다.”

유신은 현재 시스템으로는 당일 배송이 어렵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었다.

“옳은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는 운송까지 하루의 시간을 허비하고 있습니다. 제조 업체와 협의해서 재고창고에 가지 않고 가까운 직영점에서 물품을 보낼 수 있는 방법도 논의해 보세요.”

“넵, 당장 오늘이라도 논의를 해보겠습니다.”

수혁은 상황을 보고받으며 생각나는 것들을 하나하나 말해 주었고 유신은 메모하며 조금씩 개선 방향을 잡아갔다.

* * *

종로에 위치한 일송유통의 본사, 명학은 집무실에서 정수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회장님, 오늘 지오쇼핑이 사이트를 오픈했다고 합니다.”

“그래? 기업들의 협력을 받기 어려웠을 텐데 미련한 선택을 했구나.”

정수는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음, 그런데 예상보단 많은 기업들이 지오쇼핑과 제휴를 맺었더라고요.”

“기껏 해 봤자 이병섭 회장이나 정석호 회장이 도와주는 정도겠지. 뭘 얼마나 된다고 호들갑이냐.”

그는 명학의 말을 일축하고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게…… 유통 업체 쪽은 우리의 입김이 먹혔지만, 제조사들의 경우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본인들에게 이득이 된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몰라도, 지오쇼핑과 협약을 맺은 기업들이 제법 되더라고요.”

“멍청한 새끼들, 큰 그림은 못 보고 당장의 이익에만 눈이 멀다니…… 쯧쯧.”

정수는 인상을 쓰며 혀를 찼다.

“그래서 제가 지오쇼핑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은 회사들의 명단을 뽑아 왔습니다.”

“이것들은 왜?”

정수는 그를 의아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일송에서 공개적으로 강수혁 그놈과 척을 졌는데 눈치 없이 손을 내민 녀석들에게 제재를 가해야지요.”

“지금 여기 적힌 기업들을 대상으로 말이냐?”

“네, 우리 일송이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 재벌 그룹인데 누가 거역할 수 있겠어요?”

명학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멍청한 녀석, 일을 그런 식으로 진행하면 사람들의 이목만 끌고 기업 평판만 안 좋아질 뿐이야. 그리고 섣불리 그런 행동을 했다가는 회장님께서 크게 화내실 거다.”

일송이 비록 국내 굴지의 기업이긴 했지만, 타 기업들의 자유로운 영업 활동을 중지시키는 행위는 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께서요?”

“그래, 물론 아버지가 직접 나서서 기업 총수들에게 부탁을 한다면 SH그룹을 고립시키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할 수 있는데 가만히 있을 이유가 있나요?”

명학은 정수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버지가 일전에 강수혁에게 모욕을 당한 일로 상심이 크실 거 같아서 의중을 여쭤본 적이 있다. 하지만 회장님께서는 강 대표를 애송이라고 여길 뿐, 신경도 안 쓰시는 눈치였다.”

“음, 한마디로 말해서 안중에도 없다는 이야기군요.”

“이제야 머리가 좀 돌아가는 모양이구나. 그러니까 일 벌일 생각하지 말고 해야 할 일이나 잘해라. 내가 봤을 땐 지오쇼핑은 크게 될 수 없는 회사야.”

그는 명학을 한심스럽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가 표면에 나서서 강수혁을 처리할 수 없다는 건 알겠어요. 하지만 그놈은 삼촌이 생각하는 것보다 위험한 녀석이에요.”

수혁을 얕잡아보다가 여러 번 당한 경험이 있는 명학은 보통 때와 달리 진지하게 간언을 했다.

“나도 안다. 비록 일송에 비하면 영세기업이긴 하지만, 한 기업의 총수라는 직함은 실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허락되는 자리가 아니지. 하지만 다방면으로 고려해도 우리 입장에서 부화뇌동할 이유는 없다. 할 말 다 마쳤으면 그만 돌아가라.”

“삼촌, 아니 회장님, 가만히 두면 언젠간 우리 목에 칼을 겨눌 녀석이라니까요? 일송유통 차원에서라도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요.”

느긋하게 수혁을 지켜볼 여유가 없던 명학은 자기도 모르게 정수를 재촉했다.

“야 이 새끼야? 누가 안 그런다고 했어? 일단 지켜보고 알아서 대처하려고 하는데 어디서 주제넘은 말을 하고 있어!”

“죄, 죄송합니다…….”

선을 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명학은 고개를 조아리며 잘못을 빌었다.

“너, 대전에 있을 때 현장 시찰 나갔었지?”

“네.”

“당장 시찰 보고서 작성해서 금일 중에 갖고 와.”

“예?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지금 가져 오라고…….”

갑작스러운 지시를 받은 명학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시찰을 다녀왔으면 업무 보고서를 제출하는 건 기본이다. 건방지게 조언할 생각하지 말고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워라.”

“…….”

명학이 선을 넘었다고 생각한 정수는 노골적으로 그를 무시했다.

“대답 안 하냐?”

“하, 아버지 말씀 듣고 삼촌네 회사 온 거지만 해도 해도 너무하시네요.”

명학은 은근슬쩍 아버지를 언급하며 기분이 상했음을 어필했다.

“그래? 그래서 일하기 싫냐? 내가 여기서 형님께 전화 드릴까?”

“......”

‘뭐가 이렇게 당당해? 우리 아버지가 아무리 날 못 미더워하신다고는 해도 이런 반응은 너무 이상한데?’

그는 눈을 껌뻑거리기만 할 뿐 어떤 대꾸도 하지 못했다.

“형님을 언급하면 내가 봐줄 줄 알았나 본데, 일송그룹 내에서 나 말고 누가 널 받아 주겠냐?”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우리 형제들 중 누구도 네가 오는 걸 반기는 사람은 없었다. 그나마 내가 형님이랑 친하니까 널 데려왔지, 일송유통을 떠나면 갈 데라도 있을 거 같아?”

“그, 그건…….”

의기소침해진 명학은 입을 꽉 다문 채 어떤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할 말 더 없으면 나가라. 좀 있다가 손님이 오시기로 했다.”

정수는 현재 추진 중에 있는 사업에 전념하느라 지오쇼핑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는 서울과 광역도시에 있는 터미널 주변 부지를 사들인 후 백화점을 설립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네, 아까는 제가 죄송…….”

“입 닥치고 나가. 꼴도 보기 싫으니까. 당분간은 이 방에 얼씬도 하지 마라.”

말을 마친 정수는 터미널 운영 권한을 가진 공무원을 만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명학은 그런 삼촌을 잠시 바라보다가 힘없이 집무실을 떠났다.

“언제나 철이 들까?”

축 처진 명학의 뒷모습을 보던 정수는 책상 위에 놓인 자료들로 시선을 돌린 뒤 업무에 집중했다. 항간에는 일송그룹 계열사 회장들이 혈육들로 채워진 것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그러나 정수는 아버지인 이경욱 회장의 인정을 받은 진짜배기였다. 비록 일송전자에 비하면 규모는 작았지만 그룹의 모태에 해당하는 일송유통을 물려받은 이유는 순전히 그의 실력 덕분이었다.

‘이번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면 아버지께서 크게 기뻐하실 거야.’

정수는 명학의 아버지인 정찬을 뛰어넘어 그룹을 물려받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박차를 가했다.

* * *

‘휴, 도대체 왜 일을 이딴 식으로 처리하는 거야?’

수혁은 차를 몰고 청량리에 있는 엘마트 지점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그는 엘마트 측과 제휴를 맺은 뒤 사람을 보내 협업을 위한 작업을 지시했지만 지점 직원들이 제대로 협조를 하지 않는다는 보고를 듣고 화가 난 상태였다.

‘이병섭 회장에게 연락하면 되는 문제이긴 한데…….’

그는 당장이라도 병섭에게 전화해서 항의하고 싶었지만 어디까지나 도움을 받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사안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회장님, 오셨습니까?”

지오쇼핑 측 직원은 수혁을 맞으러 미리 나와 있었다.

“여기 지점장은 제가 온다는 걸 모르고 있나요?”

“저, 그게 지점장께 말씀을 드렸지만 오전에 처리해야 할 업무가 많다며 저 모셔 오라는 말씀만…….”

남자는 면목이 없는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아무리 엘마트라지만 기업의 대표가 찾아왔는데 예의가 없군. 하지만 이게 우리 회사의 현실이다. 너무 집착하지 말자.’

수혁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사적인 감정은 배제하는 편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강수혁 회장님 맞으시죠?”

“네, 그렇습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지점장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려고 하는데 중년의 남성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저는 이규태 부지점장이라고 합니다. 절 따라오시면 됩니다. 이 과장, 가서 일 보세요.”

“네?”

직원은 회사 오너인 수혁의 앞에서 거침없이 지시를 내리는 규태의 행동에 크게 당황했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넵, 회장님.”

수혁이 괜찮다는 손짓을 하자 남자는 인사를 한 뒤 자리를 떴다.

‘보아하니 지오쇼핑을 하청 회사쯤으로 취급하는 것 같네. 이런 식으로 사람을 대하니 우리 쪽 직원들이 위축됐던 거구나.’

그는 규태의 언행 안에서 상대를 깔보는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차를 직접 몰고 오셨나봅니다?”

“네, 종종 그러곤 합니다. 지점장님은 어디 있습니까?”

“현재 다른 업체 관계자와 미팅을 하고 계실 겁니다.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계시면 점장님께서 오실 겁니다.”

‘건방진 새끼들. 시간에 맞춰서 찾아온 손님을 이런 식으로 대하다니.’

처음엔 저자세로 나가려 했지만, 계속되는 푸대접에 수혁도 점점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서 쉬고 계시면 됩니다. 차라도 한잔하시겠습니까?”

사무실은 마트 옆에 지어진 작은 별관 안에 위치해 있었다.

점장실 안에 들어간 규태는 수혁과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점장님께선 몇 시쯤 오십니까?”

“현재 11시니까…… 30분 안으로는 오지 않을까요? 혹시 많이 바쁘십니까?”

“아닙니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습니다.”

규태가 반쯤 비아냥거리며 물었지만, 수혁은 화를 꾹꾹 누르며 침착하게 대응했다.

- 178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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