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하긴 미국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은 양반이 나같이 새파랗게 어린 사람한테 지도를 받으니 기분이 상할 만도 하지.’
수혁은 흥분한 기색을 드러내는 정명을 차분하게 쳐다봤다.
“이보게 황 부회장. 대표님 앞에서 이게 무슨 행동인가?”
명길은 엄중한 말투로 정명을 자제시켰다.
“제가 친절하게 설명을 드렸어야 했는데 너무 감추면서 이야기를 한 것 같습니다. 부회장님, 이걸 보면 이해가 충분히 되실 겁니다.”
수혁은 스마트 폰의 여러 기능들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이 되는지 상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는 종이를 정명에게 보여주었다. 그는 건네받은 사업 계획서를 손에 쥐고 묵묵히 내용을 살펴보았다.
“훌륭한 아이디어군요. 현재 컴퓨터의 운영체제와 크게 다르지 않아 고객들이 적응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 거 같습니다.”
“맞습니다. 실행 프로그램의 경우 컴퓨터 바탕화면에 있는 아이콘이 있는 것과 유사한 형태로 표시되어져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거부감도 적을 겁니다.”
수혁은 미소를 지으며 정명의 말에 동의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 괜한 성질을 부렸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저 스스로 다 안다는 오만이 경솔한 행동을 하게 한 것 같습니다.”
정명은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했다.
“아닙니다. 처음부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어야 했는데 제가 뜸을 많이 들인 탓도 있습니다. 앞으로의 대화가 더 중요하니 방금 일은 잊고 넘어가죠.”
수혁은 오히려 자신의 행동에 대해 사과를 했다.
“하하, 보기 좋습니다. 큰일을 논하는 자리에서 자존심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명길은 수혁과 정명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맞는 말씀입니다. 지금부터는 회장님과 부회장님이 가장 궁금해 하실 사안인 스마트 폰 제작방법에 대해 설명 드리겠습니다.”
어플을 통해 미래에서 가져온 스마트 폰을 성공적으로 분석한 수혁은 기기 제작에 필요한 최소사양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듣던 정명은 질문을 던졌다.
“이공계 전공도 아니신 것 같은데 이런 부분은 어떻게 아신 겁니까?”
“고등학교 시절부터 IT사업을 준비하면서 틈틈이 익혔을 뿐 부회장님의 연륜과 지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수혁은 어플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숨겼다.
“역시 듣던 대로 겸손하시군요. 정 회장님께서도 대표님이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고 그러셨는데, 틀림없네요.”
명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WG가 엄청난 회사인건 인정하지만 현재 보유하고 있는 기술 수준으로는 스마트 폰을 만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판단이 듭니다.”
“단기간에는 어려워도 지금부터 개발에 들어가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황 부회장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수혁의 우려 섞인 말에도 불구하고 명길은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였다
“액정이나 반도체와 같이 우리 회사에서 감당할 수 있는 부품들도 있지만 터치기술이라든지 소프트웨어적인 부분들은 개발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거 같습니다.”
“개발 기간이 길어질수록 좋을 건 없을 텐데....... 어떻게든 대책을 강구해보게. 허허, 아무래도 제가 너무 쉽게만 본 것 같습니다.”
명길은 멋쩍은지 너털웃음을 지었다.
“회장님, 시간도 시간이지만 중요한 건 제작에 들어가는 비용입니다. 아이디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핸드폰 사양을 대폭 끌어올려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스마트 폰을 출시해도 고객들이 선호하는 가격대에 맞추기가 어렵습니다.”
정명은 아무리 혁신적인 제품이라도 지나치게 비싼 제품은 고객들이 외면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그 부분은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저한테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대화를 지켜보던 수혁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표님도 아시겠지만, 시중에 거래되는 핸드폰들을 보면 싼 건 20만원 대이고 최신 폰이라고 해봤자 50만원 정도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마트 폰 같은 경우에는 필연적으로 생산 비용이 많이 투입되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100만원을 훌쩍 넘길 수도 있습니다. 정확한 수치는 모르겠지만 부회장님이 예상하는 방향으로 스마트 폰을 생산하면 아마 200만원을 넘길 수도 있겠지요.”
“200만원이라…… 아무리 좋은 상품이라도 고객들이 감당할 수 없다면 출시를 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명길은 답답한지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걱정하지 마십쇼. 생산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회장님은 혹시 아웃소싱이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아웃소싱이요? 어디서 들어본 거 같긴 한데 정확한 의미는 모르겠군요.”
명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수혁을 바라봤다.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품 생산에 필요한 주요 부품들을 다른 회사에 외주를 주는 개념으로 기억합니다. 확실히 그러한 방식이라면 비용으로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겠네요.”
정명은 명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을 했다. 이때 당시에는 아웃소싱의 개념이 널리 퍼져 있지 않았던 시기로 기업인들에게도 조금은 낯선 경영 방식이었다.
‘스마트 폰을 최초로 출시했던 미국의 한 기업이 기기의 가격을 낮춰서 출시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로 아웃소싱이 언급되곤 했지.’
수혁은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던 미국기업의 CEO가 어떤 방식으로 수월하게 스마트 폰을 제조할 수 있었는지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요 부품들을 외부 업체들에게 공급받게 되면 그만큼 불리한 점도 많습니다. 우리 WG는 과거 일본기업들에 의지했던 것을 탈피해서 제품의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는 중인데 대표님의 말씀은 이러한 우리의 원칙에 조금 어긋나 보입니다.”
명길은 수혁의 말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우리나라의 첨단 제품들이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은 사실이지요. 그리고 그로 인해 경제적으로 눈치를 봤던 과거가 분명 존재합니다. 그러나 WG에서 자체적으로 스마트 폰을 생산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핸드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아웃소싱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수혁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저도 대표님 말씀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상품을 출시해서 시장 점유율을 높인 후 나중에 충분한 자본이 쌓이면 그 때 부품들을 직접 생산하는 방향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해외 유수 기업들의 기술들이 모두 모이면 빠른 시일 내에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이점도 있고요.”
“꼭 유명 기업과 거래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핸드폰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자재들을 싸게 공급받을 수 있는 곳이라면 대만, 중국, 동남아 등 국적을 가리지 않고 계약을 맺는 과감성을 가져야 합니다.”
“스마트 폰이라 하면 첨단기술의 집약체인데 그런 나라와 거래를 해서 되겠습니까?”
정명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스마트 폰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부품들 중에 반도체와 같은 첨단 소재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최대한 비용을 아끼자는 측면에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하긴, 핸드폰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플라스틱이나 기타 소재들은 꼭 일류기업에서 공수해 올 필요는 없지요.”
정명은 수혁의 말을 대번에 알아들었다.
“정말 다행인 점은 WG가 강점을 갖고 있는 사업체들 중에 반도체와 통신사업이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WG와 같이 규모가 큰 회사들은 시장에 출시된 제품보다 더 나은 사양의 제품들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아직 시중에 나오지 않은 프로토 타입 같은 것들 말이죠.”
“맞습니다. 우리 회사는 반도체 시장에서 큰 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종 전자제품에 들어가 있는 반도체들보다 월등히 좋은 반도체를 이미 보유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정확한 건 회사에 가봐야 알겠지만 스마트 폰을 개발하는 데 있어 반도체가 우리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을 겁니다.”
명길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하지만 시장가격을 생각하면 생산비용을 지금보다 더 경감해야겠지요. 그 부분은 WG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입니다.”
“중요한 건 WG가 스마트 폰을 만드는데 필수적인 기술을 하나 정도는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회장님께서 우려하시는 건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수혁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정명을 위로해주었다.
“제가 알아본 결과 WG에서는 스마트 폰에 들어가는 액정 제조기술과 반도체 생산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큰 강점으로 다른 회사보다 앞서 나갈 수 있는 발판이 될 겁니다. 그리고 WG텔레콤도 스마트 폰 사업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WG텔레콤은 국내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통신업체로 WG그룹에 막대한 수익을 올려주는 자회사였다.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기 때문인가요?”
정명은 수혁의 의도를 간파했다.
“그렇습니다. 스마트 폰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고객들이 어느 곳에서나 값싼 요금으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야 되는데 그러려면 WG텔레콤에서 스마트 폰이 출시되기 전에 무선 인터넷 환경을 미리 만들어야 합니다.”
“와이파이를 말씀하시고 계시군요.”
정명은 목이 탄지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말했다. 와이파이는 특정 구간대의 주파수를 이용하여 그림이나 각종 프로그램 같은 데이터들을 무선으로 주고받을 수 있게 만드는 기술로 1997년에 미국의 전기전자기술자협회에서 발표한 바가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와이파이보단 무선 네트워크라는 표현이 더 알맞다고 생각합니다. 와이파이는 공유기를 기준으로 근거리에 무선인터넷 환경을 만드는 거니까요. 것보다 통신사업은 국책사업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언젠간 정부 관계자들과 논의를 해야 할 사안입니다.”
“물론이죠. 특정 주파수를 사용하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니까요.”
명길은 수혁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을 표시했다.
“대표님 말씀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반신반의 했지만, 대화를 하면 할수록 이 사업에 대한 확신이 듭니다.”
“한 번 믿어보십쇼. WG는 스마트 폰을 통해서 일송을 넘어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겁니다.”
수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명길이 자신을 신뢰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귀한 아이템을 WG에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맨입으로 받을 수는 없고 제가 적절한 보상을 드리고 싶은데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까?”
명길은 조건 없는 거래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큰 보상을 바라고 말씀드린 것은 아닙니다. 그저 WG가 우리나라 경제에 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행동입니다.”
수혁은 바라는 바가 없지는 않았지만 의중을 바로 드러내지 않았다.
“아닙니다. 제 마음이 불편해서 그렇습니다. 이렇게 획기적인 아이디어와 구체적인 사업안을 주셨는데 거저 받을 수는 없지요. 저는 스마트 폰 출시 시점에 맞춰 핸드폰 부서를 따로 독립시킨 후 자회사를 하나 만들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회사 지분의 30퍼센트를 대표님께 드리고 싶은데 어떻습니까?”
“회장님, 강 대표님이 우리 회사에 큰 도움을 준 건 사실이지만 조금 과한신 것 같습니다.”
명길의 제안을 들은 정명은 곤란하다는 태도를 보였다.
‘훗, 황 부회장이 많이 배운 사람이긴 하지만 통찰력은 부족하네. 스마트 폰으로 창출되는 이익을 생각하면 현 회장의 제안이 그리 매력적인 것도 아닌데 말이야.’
수혁은 안절부절 못하는 정명의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제 말이 믿기 어렵겠지만 WG에서 스마트 폰 시장을 주도하게 되면 회사의 규모는 못해도 10배 이상 커지게 될 겁니다.”
“하하, 대표님. 과장이 지나치십니다.”
“과연 그럴까요? 부회장님께서는 지식은 많은 듯 보이나 사업을 보는 안목은 부족하시네요.”
수혁은 정명의 비웃음에 감정이 상했다.
“기분이 상하셨으면 죄송합니다. 저도 스마트 폰의 잠재력을 크게 보고 있으나 대표님이 말씀하신 수치가 실감이 나지 않아서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정명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수혁에게 정중히 사과했다.
“무선인터넷과 스마트 폰 시장에서 WG가 선구자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되면 WG는 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될 겁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정 부회장이 회사를 생각하는 마음에 경솔하게 굴었습니다.”
명길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수혁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 142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