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없는 회귀-134화 (134/316)

134화

“실례지만 전공이 뭡니까?”

명길은 수혁에게 질문했다.

“현재 경영학부에 재학 중입니다.”

“과가 달라서 아마 잘 모르실 겁니다. 현보성이라고 한국대 전자 컴퓨터공학부를 다니고 있는데 나중에 학교에서 보게 되면 친하게 지내세요.”

명길은 선선히 손자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기회가 되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회장님, 시간이 거의 다 된 것 같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좀 있다 연회 시간에 나누시지요.”

명길의 옆에 있던 비서가 개회식 시간이 다 되었음을 알려줬다.

“강 대표, 좀 있다 뵙기로 하죠.”

명길은 비서의 안내에 따라 단상으로 올라갔다.

“이경문 장관님을 비롯한 귀빈분들은 자리에 앉아 주시길 바랍니다. 곧 제52회 기업인의 밤 행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사회를 맡은 남자는 단상에 설치된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그는 공영방송의 간판MC로 모르는 국민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먼저 한국기업인연합회의 현명길 회장님의 개회사가 있겠습니다.”

기업인들이 모두 착석한 것이 확인한 사회자는 마이크를 명길에게 넘겼다.

“안녕하십니까? 국내 경제발전을 위해 힘써주시는 장관님과 기업인 여러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로 먼저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명길의 개회사와 이경문 장관의 인사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드디어 수혁의 차례가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SH스터디와 SH커뮤니케이션의 대표 강수혁입니다. 사업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동료 기업인들과 교류를 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었는데 이런 좋은 자리에 참석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수혁은 자신을 내세우기보다는 참석자들을 칭찬하는 내용으로 연설을 구성했다.

“여러 선배님들이 한국 경제의 토대를 잘 닦은 덕분에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제에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았지만 모두가 합심해서 다 같이 발전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나가면 좋겠습니다.”

수혁은 회사가 안착하고 발전한 공을 타인에게 돌리며 연설을 마쳤다. 그 후로 정부 부처의 직원들이 나와 한국 경제 상황에 대한 짧은 브리핑을 했다.

“올해 대한민국의 GDP는 작년에 비해 4.2퍼센트 이상 성장하였습니다. 이는 지난 IMF때 기록했던 마이너스 성장을 탈피하는 것을 넘어 우리 경제가 다시 안정권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기업을 비롯한 중견기업에서 힘을 내준 덕분에 우리나라의 수출은 20퍼센트 이상 상승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여러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재정경제부 직원들은 자신이 맡은 발표를 통해 한국 경제 발전에 공헌한 기업인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다음으로 시상식이 있겠습니다. 협회의 임원들과 정부의 추천을 받아 올해의 기업인을 선정했는데 수상자 발표는 현명길 회장님이 해주시겠습니다.”

행사는 어느새 막바지에 이르렀다. 마지막 순서로 기업인들과 정부 부처 사람간의 교류를 위한 연회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이는 시상식이 끝난 직후 열릴 예정이었다.

“매년 뽑는 올해의 경제인은 한 해 동안 괄목할 만한 발전을 한 기업인에게 주는 상입니다. 수상자를 호명하기에 앞서 저는 간략하게 이분에 대해 소개를 하려고 합니다.”

명길은 수상자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는 상태였다.

“수많은 매스컴에서 주목해야 할 경제인으로 뽑혔던 이분은 자신이 만든 혁혁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저 또한 회사를 운영하는 선배 경영인이지만 그분의 태도에서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뭐야? 꼭 내 이야기 같잖아?’

수혁은 명길이 수상자에 대해 논평하는 것을 들으며 생각했다.

“이 정도 이야기하면 수상자가 누구인지 대부분의 귀빈분들께서는 눈치를 채셨을 텐데요. 제52회 기업인 밤의 마지막을 장식할 올해의 경제인은 SH스터디의 강수혁 대표입니다.”

수혁은 대화 중간에 자신이 호명될 거라는 것을 예상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단상 위에 올라갔다. 그는 자신을 대신해서 공치사를 해준 명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올해의 경제인에 뽑힌 강수혁 대표님께 다시 한번 축하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다음으로 강 대표님의 소감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자는 상패와 상금을 먼저 전달한 후 마이크를 그에게 넘겨줬다.

“경험이 부족한 초심자로서 이런 상을 받게 된 데에는 운이 많이 따라줬다고 생각합니다. 올해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더욱 열심히 하여 내년에도 시상대에 오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수혁은 간단하게 소감을 말한 뒤 단상에서 내려왔다.

“지금까지 자리를 지켜준 귀빈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적지 않은 시간 의자에 앉아계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을 텐데요. 지금부터는 옆 홀로 자리를 옮겨 귀빈분들이 서로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 우측 벽면에 있던 커다란 문이 열렸다.

“홀 안에 음식들과 마실 음료들이 준비되어 있으니 마음껏 즐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참석한 인원이 많은 관계로 부득이하게 자리를 배정했습니다. 대신 자유롭게 사람들을 만나러 다닐 수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시상식을 끝으로 행사가 마무리되자 사람들은 각종 뷔페가 마련된 옆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테이블 위치를 모르시는 분들은 저희가 알려드리겠습니다.”

좌석 배치도를 손에 든 호텔 직원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자리를 알려줬다. 수혁은 직원의 안내에 따라 가장 중앙에 위치한 테이블에 도착했는데 장식이 다른 테이블에 비해서 화려한걸 보면 가장 귀빈들이 앉는 자리인 것 같았다.

“대표님, 저는 좀 있다 뵙겠습니다.”

“네, 연회가 끝나면 정문에서 뵙도록 하죠.”

수혁이 앉은 테이블은 장관을 포함한 국내 굴지의 대기업 회장들이 앉는 곳이었다. 찬명은 수행 비서들이 식사하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셨습니까?”

“고생 많으십니다.”

이경문 장관이 테이블에 오자 앉아있던 대기업 회장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았다.

“다들 왜 그러십니까? 편하게 식사들 하시죠.”

경문은 음식이 있는 접시를 테이블에 놓은 뒤 먹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람들도 뒤따라 식사를 하였다.

“회장님은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십니까? 뉴스를 보니 요즘도 쉬지 않고 일을 하시는 거 같은데 대단하십니다.”

경문은 경욱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그는 일송재단의 장학생 출신으로 젊은 시절부터 경욱과 교류가 있던 사람이었다.

“제가 하는 일이 뭐 있나요. 아래 사람들이 열심히 해서 회사가 잘 굴러가는 거지요.”

“회장님을 보면서 매일 반성하고 있습니다. 저는 벌써부터 몸이 말을 잘 안 들어서 고생하고 있는데 말이죠.”

중년으로 보이는 남자가 대화에 참여했다. 그는 대한민국 여객산업의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국항공의 대표 조현제였다.

“하하, 조 회장이야 뭐 한창이지 않습니까? 몸에 좋은 것도 많이 드시고 운동을 하면 금방 좋아질 겁니다.”

경욱은 기분이 좋은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어지간히 이 회장 눈치를 보는군. 과연 명실상부한 최고 권력자답네.’

경욱은 재계를 넘어 정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거물이었다. 일송재단은 오랜 시간 동안 장학사업을 한 덕분에 정계, 법조계 등에 많은 인물들을 배출했고 이들은 경욱의 뒤를 봐주는 든든한 토대가 되었다.

“여러 선배님들이 잘 이끌어준 덕분에 우리 같은 후배들도 잘 클 수 있었지요.”

현제는 분위기가 좋아지자 아부를 아끼지 않았다.

“강 대표 같은 젊은 기업인들이 앞으로 우리 경제를 이끌어야지요.”

침묵을 지키고 있던 명길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자 옆에 앉아있던 석호도 그를 거들었다.

“학원을 하시는 분들 중에서는 우리 모임에 참석한 분은 강 대표님이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우리 제일물류에서 편의점 사업에 뛰어들었는데 강 대표님의 도움이 컸습니다.”

“그래요?”

“네, 강 대표님이 만들어준 사업계획서를 바탕으로 편의점을 론칭했는데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석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SH스터디도 그렇고 사업적 혜안이 대단하십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우리 회사도 도와주세요.”

명길과 석호가 수혁을 치켜세우자 주변 기업인들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아닙니다. 저는 정 회장님이 하시는 일에 첨언만 했을 뿐 크게 도와드리지 않았습니다.”

수혁은 칭찬에도 불구하고 겸손한 반응을 보였다.

“우리 아이도 SH스터디로 공부해서 올해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확실히 기존의 학원들에 비해 저렴해서 편리하고 좋더군요.”

경문은 대화를 지켜보다가 수혁에게 말을 걸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인터넷 사업도 하신다고 들었는데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경문은 수혁에게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강 대표가 같은 인재가 우리 협회에 들어와야 할 텐데 아쉽네요. SH가 성장세가 무섭기는 하나 가입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테니 말이죠.”

경욱은 수혁을 중심으로 대화가 진행되자 심기가 불편했다.

“이제 2년차라 중견기업이 될 조건을 채우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내년이면 이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을 겁니다.”

수혁은 순순히 그의 말을 인정했다.

“안 그래도 다음 달 총회에 안건을 내놓으려고 합니다. 협회 가입 조건이 너무 까다로운 것 같아요. 이제부터는 매출 천억이 넘는 기업은 모두 협회에 들어올 수 있도록 바꿔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명길은 협회가 소수의 기득 세력에 의해 편협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현재 회장으로 계신다지만 그런 이야기는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협회 임원들하고 논의도 안 된 사안을 장관님도 계시는데 꺼내는 이유가 뭡니까?”

경욱은 명길을 노려보며 말했다.

‘왜 저렇게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거지?’

수혁은 경욱의 반응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퀘스트 창이 활성화 되면서 화면이 눈앞에 떴다.

<히든퀘스트가 발동되었습니다. 현명길 회장을 도와주고 그와 친분을 쌓으십시오.>

‘뭐지? 지금 이 신경전에서 현 회장님을 도와주라는 이야긴가?’

<맞습니다. 현명길 회장을 지지하여 그와 돈독한 관계를 맺으십시오. 사용자께서 나중에 큰 도움을 받는 순간이 있을 겁니다.>

수혁은 도움말의 설명을 들었음에도 고민이 되었다.

이경욱 회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으로 그와 척을 진다는 것은 사업상에 좋지 않기 때문이다. 한참을 망설이던 수혁은 자신에게 호감을 드러냈던 명길의 편에 서기로 마음을 먹었다.

“저의 독단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전국에 있는 협회 지부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수렴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협회 간부인 우리한테 이 의견을 물어본 적은 있습니까?”

경욱은 계속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5년에 한 번 열리는 협회장 선거에서 명길에게 진 이후 악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듣기 좋은 소리만 해서 표를 구걸한 놈은 인정 못 하지.’

경욱은 명길이 회장이 되기 이전에 20년 이상 협회장을 역임했었다. 그리고 그는 재임기간 동안 철저히 대기업 위주로 안건을 처리했다. 하지만 명길은 재벌 회장임에도 불구하고 중견기업, 더 나아가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강조하여 많은 기업인들의 지지와 존경을 얻을 수 있었다.

- 135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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