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없는 회귀-102화 (102/316)

102화

발표가 마무리 된 후 강의실 내에서는 총 30명으로 이루어진 학생들과 교수를 포함한 31명의 평가지에 관한 합산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저는 다 끝났습니다.”

“저도 완료했습니다.”

교수를 보조하던 학생들은 금세 자신에게 할당된 평가지 점수를 모두 합산하였고 교수도 곧 이어 계산을 끝마쳤다.

“그러면 지금부터 총점 순대로 등수를 매겨보겠습니다. 물론 1등만 공개할 예정이니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교수는 이전에 있었던 발표들의 총점과 오늘 합산했던 점수들 간의 순서를 매기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두 명의 동점자가 나왔군요. 강수혁 학생과 이명학 학생 둘 다 총점 128점으로 공동1등이 되었어요.”

교수는 강의실 교탁 위에서 작업을 마친 후 입을 열었다.

“맞아, 저 두 명이 가장 잘했어.”

“그래도 나는 게임을 소개한 발표가 더 나았던 거 같은데?”

“무슨 소리야, 비록 모의주식게임이 참신하기는 했지만, 인터넷 사업은 완결성이 있고 자료 수준도 높았다고.”

학생들은 공동 1위를 한 수혁과 명학에 대하여 설왕설래를 했다.

교수는 이 광경을 난감하게 지켜보다가 학생들을 진정시켰다.

“누군가 꼭 1등을 할 필요는 없어요. 두 명다 훌륭히 준비를 했기 때문에 여기서 더 우열을 가릴 이유는 없습니다. 아, 그리고 본인의 점수가 궁금한 사람들은 수업이 끝나면 개별적으로 저한테 오세요.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교수는 슬슬 발표 수업을 마무리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명학이 손을 들더니 다소 당돌한 제안을 했다.

“교수님, 죄송하지만 강수혁과 저 중에서 누가 더 나은지 한 명만 골라주시면 안 되나요? 교수님이 추가 점수를 더 줘서 우열을 가려주셨으면 합니다.”

“흠, 좀 그런데....... 꼭 그렇게 할 필요가 있나요?”

교수는 명학의 말에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저도 이명학 학생의 말에 공감합니다. 교수님께 죄송하지만, 오늘 1등을 뽑기로 하셨으니 둘 중에 더 우수했던 학생을 정해주셨으면 합니다.”

수혁은 명학의 말에 동의하며 나섰다. 그는 오늘 있었던 승부의 끝을 보고 싶었다.

“하하 이거 참. 알겠습니다. 당사자들이 원하니 제가 1등을 결정 하도록 하죠.”

교수는 뜻밖의 제안에 난감한지 헛웃음을 짓다가 명학과 수혁의 말을 수용했다. 그는 그들의 발표를 떠올리며 잠시 고민을 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3번에 걸쳐 진행된 발표들 사이에서 가장 우수한 발표를 한 사람은 강수혁 학생입니다.”

학생들은 흥미진진하게 교수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가 수혁의 이름이 입에서 나오자 크게 박수를 쳤다. 명학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자리에 앉아 있다가 박수소리가 멎자 교수에게 물었다.

“제가 아니라 왜 강수혁이 1등을 한 거죠?”

“둘의 발표는 모두 훌륭했기 때문에 누가 더 나은지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저는 평가지에 둘 다 5점을 매겼었지요. 하지만 제가 수혁학생을 선택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교수는 말을 하다가 책상 위에 널브러진 평가지들을 모았다. 그리고 자신이 채점한 명학의 평가지를 찾은 뒤 의견란에 쓴 자신의 코멘트를 읽기 시작했다.

“PPT의 구성과 발표력 모두 우수, 상품 선정도 훌륭했음. 단 질문의 답변을 전문가의 의견을 토대로 한 것은 감점사유가 되지는 않으나 누군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힘으로 보완을 하였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사유됨.”

교수는 의견란의 코멘트를 차분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읽었다.

“누군가의 도움이라니요? 전 단지 전문가의 식견을 활용해서 사업에 대한 신뢰성을 더한 거라고요.”

명학은 납득이 되지 않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교수는 대번에 얼굴이 굳어졌다.

“일송의 핵심부서 팀원에게 기업분석을 맡기는 것이 어디 보통 학생이 할 수 있는 겁니까? 더 길게 이야기 안 하겠으니 더이상 반론하지 마세요.”

“.......”

교수가 엄하게 말하자 명학은 머쓱해 하며 더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반면에 강수혁 학생은 자신이 만든 상품을 시연하여 학생들을 설득했다는 점에서 명학 학생보다 더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여기 앉은 학생들마다 저마다의 평가 기준이 있겠지만 저는 이런 적극성을 높게 평가합니다. 그러면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교수는 이들에 대한 짧은 코멘트를 마친 뒤 수업을 마무리했다. 점수를 알지 못하는 학생들은 강의실에 남아있는 교수에게 점수를 물어보러 몰려갔고 수혁은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천천히 짐을 챙겼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승부였어, 그래도 이겼으니까 기분은 좋네.’

예상보다 치열했던 승부에서 이기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수혁은 강의실을 나가기 전에 명학을 한 번 쳐다봤다. 그는 결과에 승복할 수 없는지 자리에 앉아 인상만 쓰고 있었다.

“애썼다. 다음부터는 상대를 얕보지 말고 좀 더 신중해지는 편이 좋을 거야.”

수혁은 명학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며 말했다.

“꺼져, 이 승부는 무효야. 교수가 자기 멋대로 승부를 결정지은 거라고.”

명학은 부서져라 주먹을 쥐며 수혁을 째려봤다.

“찌질한 새끼. 졌으면 인정을 좀 해라.”

수혁은 명학을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뭐라고? 찌질? 넌 언젠가 내 앞에서 살려달라고 할 때가 올 거야. 구멍가게 같은 사업이나 잘 꾸려나가라. 사회 나가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는 것이 있을 거니까. 애당초 너랑 나는 출발선이 달라.”

명학은 끝까지 허세를 피우며 수혁에게 비아냥거렸다.

“어휴, 도저히 못 들어주겠네. 조금만 불리하면 집안 들먹이는 건 여전하구나? 꼴값 떨지 말고 집에 가서 나한테 왜 졌는지 반성이나 좀 해라. 난 먼저 간다.”

수혁은 부들거리며 앉아있는 명학을 뒤로하고 강의실을 떠났다.

“개 같은 새끼. 언제까지 뻣뻣하게 굴 수 있을지 두고 보자.”

명학은 혼잣말을 하며 수혁의 뒷모습을 부서져라 노려보았다. 강의실 밖에 나온 수혁은 퀘스트 창이 활성화 되어 화면이 눈앞에 뜬 것을 확인했다.

‘역시, 발표가 끝나자마자 바로 뜨는 군.’

수혁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퀘스트 창의 내용을 확인했다.

<히든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으로 매력과 지능이 3씩 증가하였습니다.>

내용을 확인한 수혁은 지체 없이 스텟 창을 열어 지능과 매력 스텟을 체크했다.

이번 퀘스트를 통해 스텟이 상승한 덕분에 매력과 지능은 각 각 30과 40을 돌파했다.

수혁이 높아진 스텟을 체크하고 프로그램을 종료하려고 할 때 갑자기 도움말이 자동으로 켜졌다.

<매력 수치가 일정 수치를 넘어섰기 때문에 사용자에게 특별한 변화가 발생하였습니다.>

‘특별한 변화?’

수혁이 도움말의 내용을 확인하고 생각을 하자 이를 감지한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답변했다.

<그렇습니다. 사용자는 매력 수치 30이상을 달성하였기 때문에 앞으로 사람들을 만날 때면 이전보다 쉽게 호감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이를 위해서 사용자의 얼굴과 목소리를 미세하게 조정할 예정입니다.>

‘이거 완전 대박이잖아?’

수혁은 프로그램이 뭘 설명하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이는 앞으로 그가 어떤 모임에 가더라도 이전보다 더 쉽게 호감을 사고 주목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얼굴과 목소리 조정이 40퍼센트 진행되었습니다.>

수혁이 예상 밖의 보상으로 인해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도움말은 조정 진행률을 표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프로그램은 작업을 끝마쳤다.

<조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사용자는 상승된 매력 수치로 인해 보정된 목소리와 얼굴을 갖게 되었습니다.>

수혁은 내용을 읽자마자 화장실에 가서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생각보다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다.

단지 알 수 있는 것은 얼굴이 이전에 비해서 좌우의 대칭성이 더 강해져 얼굴이 균형 잡혀 보인다는 거였다.

<얼굴 좌우의 대칭성이 증가할수록 상대방에게 신뢰와 호감을 더 줄 수 있습니다. 비록 사람들은 외모자체에선 눈에 띠는 변화를 쉽게 느끼지 못하겠지만 무의식 차원에서는 사용자를 이전보다 호의적으로 바라보게 될 겁니다.>

거울을 보며 얼굴을 뜯어보고 있는 수혁은 도움말의 친절한 설명을 천천히 읽었다.

다음으로 그는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내보았다.

“아, 아.”

수혁은 저음이면서 부드럽게 들리는 자신의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건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왜 호감을 사는지 알겠어.’

얼굴과 마찬가지로 큰 변화가 없던 탓에 주변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줄 정도는 아니었지만 수혁은 미세하게 조정된 자신의 목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통찰력 때 이후로 특정 스텟이 올라서 기능이 생긴 건 이번이 2번째인 거 같은데?’

수혁은 매력상승으로 인해 받은 보상들을 모두 확인하였다.

<맞습니다. 매력이나 통찰력과 같은 스텟들은 사용자가 일정 수치 이상을 달성했을 시 프로그램이 기능지원을 해줍니다. 이 외에도 몇몇 특정 스텟들도 상승 시에 부가되는 기능들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하는 게 새삼스럽긴 하지만 보면 볼수록 신기하단 말이야.’

수혁은 도움말의 설명을 들으며 어플에 대해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오랜만에 회사를 좀 가볼까?’

어플의 기능을 살피던 수혁은 프로그램을 종료한 뒤 학교를 빠져나와 노량진으로 향했다.

* * *

10월이 되어 가을의 기운이 만연한 종로 한복판에는 신일학원의 본사가 위치하고 있었다.

고층의 건물은 아니지만 나름의 역사를 자랑하는 본사에는 임직원 회의가 벌어지고 있었다.

“SH스터디에서 제작한 모의고사 문제지는 입수하셨습니까?”

덕수는 임원으로 보이는 남자를 보며 물었다.

“네, 학생이 가져온 모의고사를 잠시 빌려 복사를 해두었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그는 복사해둔 모의고사 문제지를 건넸다. 덕수는 문제지를 받은 뒤 대충 훑어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살펴보셨습니까?”

“네, 어젯밤에 꼼꼼히 살펴봤는데 평가원에서 출제되는 문제들과 수준차이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잘 만든 문제지더군요. 아무래도 어느 정도의 타격은 감수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남자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타격은 무슨 타격입니까? 모의고사에 관한 거라면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덕수는 상황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느긋한 자세를 유지했다.

“그렇지만......”

남자는 예상과 다른 덕수의 반응에 당황했다. 그는 신일학원에서 만드는 문제들의 수준으로는 SH스터디보다 나은 모의고사를 제작할 수 없다고 느끼고 있었다.

“다들 잘 들으세요. 전 이 모의고사 문제들을 조금만 손을 본 뒤 무료로 원생들에게 배포할 생각입니다.”

덕수는 회의실에 있는 직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신일학원의 대표강사 중 한 사람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거 참, 말귀를 못 알아 들으셨습니까? 이 문제지에 나온 숫자나 단어 몇 개 정도 수정한 다음에 무료로 배포하라고요.”

덕수는 강사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 당시에는 학원 사이에서 저작권의 개념이 널리 퍼져있지 않았기 때문에 학원 간에 모의고사 무단 도용이나 유출과 같은 사건들이 종종 있던 시절이었다.

덕수는 SH스터디가 정성들여 만든 문제지를 살짝만 고친 뒤 무료로 유포하여 피해를 줄 심산이었다.

“두 번 말하지 않을 테니 잘 들으세요. 모의고사 문제를 수정하고 나면 우리 학원뿐만 아니라 연계되어 있는 중소형 학원들에게도 무료로 나눠주세요. 아시겠습니까?”

직원들 중에는 그의 지시가 불편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감히 토를 달지 못했다.

‘우리 학원에 피해를 준만큼은 되갚아 줘야지.’

생각에 빠진 덕수는 비열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103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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