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없는 회귀-100화 (100/316)

100화

수업이 끝난 수혁은 곧장 노량진 SH스터디에 가서 몇 가지 업무를 처리한 뒤 컴퓨터를 켜고 발표준비를 시작했다.

그는 PPT파일을 켜놓고 다양한 주제를 생각해보았다.

‘앞으로 미래에서 유행하게 될 상품들 중 괜찮은 것이 있을까?’

향후 20년 정도의 미래를 아는 수혁은 세상에서 한 획을 그었던 여러 제품들을 떠올리며 발표에 쓰일 상품을 선정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명학을 떠올린 수혁은 인상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

‘그냥 발표하는 거면 좋은 상품을 소개하는 PPT를 만드는 것으로 충분하겠지만 색다르게 발표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단순하게 PPT를 잘 만들어 발표를 하는 것만으로는 명학에게 확실한 우위를 점하는 것을 장담할 수 없다고 판단한 수혁은 컴퓨터를 켜 놓은 채 아이디어를 생각해보았다.

‘그래, 학생들에게 모의주식게임을 소개해봐야겠다.’

수혁은 경영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주식을 이용하여 시각적인 효과까지 극대화할 수 있는 상품을 찾아냈다. 그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용민에게 연락을 했다.

“여보세요? 용민아 나야.”

“응 수혁아. 무슨 일이야?”

통화 신호가 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용민은 전화를 받았다.

“내가 수업에서 중요한 발표가 하나 있는데 네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서 전화했어.”

“그래? 어떻게 도와주면 되는데?”

용민은 순순히 그의 부탁을 들어줄 의향을 내비쳤다.

“너랑 같이 게임을 하나 만들고 싶거든. 말이 나온 김에 물을게. 혹시 너랑 같이 일할 만한 곳이 있을까?”

“그거라면 문제없어. 내 자취방에 2대의 컴퓨터가 있어서 같이 작업하기에 나쁘지 않을 거야.”

용민은 가끔씩 친구들을 원룸에 초대하여 프로그램을 만들곤 했다.

“잘 됐네. 그럼 지금 만날 수 있을까?”

“난 괜찮아.”

“어디로 가면 돼?”

“여기가 어디냐면......”

용민의 자취방은 수혁의 원룸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있었다. 전화를 끊은 수혁은 택시를 타고 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여기야 수혁아.”

택시에서 내리자 미리 마중 나와 있던 용민은 손을 흔들었다. 그는 수혁을 데리고 자신이 사는 원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면 이제 뭘 하면 되는 거야?”

용민은 컴퓨터가 놓인 책상에 앉아 물었다.

“지금부터 우리는 온라인 모의주식게임을 만들 거야.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오늘부터 바로 개발에 들어가야 돼.”

“그렇구나. 뭐부터 하면 좋을까?”

“일단 거래소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주식데이터를 받아온 뒤에 게임에 연동을 시켜야 돼. 온라인 게임이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정보를 전송받아 오는 것이 가능할 거야. 아, 그리고 그전에 게임 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드는지 먼저 보여줄래?”

“갑자기?”

“응, 그냥 만드는 과정을 쭉 보여줘봐.”

“흠, 알았어.”

용민은 컴퓨터를 켠 뒤 프로그램을 실행하여 온라인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수혁은 옆에서 게임 컨셉에 대해서 말해주면서 그가 어떻게 게임을 만드는지 유심히 지켜봤다.

지능 스텟이 충분히 높은데다가 만능도구 이용 프로그램이 있었기 때문에 용민이 프로그래밍 하는 것을 이해하고 적용하는데 문제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요령을 익히면 같이 게임을 만들 요량으로 열심히 관찰했다.

“사용자들이 로그인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해. 그리고 실시간으로 접속자 수랑 가지고 있는 재산이 표시되었으면 좋겠어.”

“오케이, 로그인 부분이면 문제없어. 예전에 작업했던 게임들에서 사용했던 모델을 살짝만 수정해서 쓰면 되거든.”

“잘됐네.”

용민은 이전에 여러 게임들을 만들어보았기 때문에 게임을 제작할 때 필요한 여러 샘플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고 이로 인해 수혁은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작업이 진행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대충 어떻게 하는지 알겠다. 이제부터 나도 작업 들어갈게.”

수혁은 옆에 있는 컴퓨터를 켜고는 게임 제작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수차례의 홈페이지 제작 경험과 프로그래밍에 관련된 여러 서적들을 탐독한 수혁은 도구 이용 프로그램과 지식들을 활용해서 게임을 만들었다.

“용민아, 이거는 어떻게 하는 거야?”

“어, 잠깐만.”

수혁은 작업을 하다가 중간에 모르는 부분이 발생하면 수시로 물어보았고 그때마다 용민은 친절하게 방법을 알려주었다.

“이걸 이렇게 빨리 적용한다고?”

용민은 복잡한 컴퓨터 코드를 입력하여 그래픽으로 구현하는 법을 알려줄 때마다 수혁이 금세 익히고 활용하는 것을 보며 놀라워했다.

“가르쳐주는 사람이 훌륭해서 그런 거지 뭐.”

수혁은 용민의 가르침을 스폰지처럼 흡수했고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실제로 온라인화 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토 타입으로만 활용하는 거니까 내가 설명해준 설정만 잘 들어가면 돼.”

“아니야, 그래도 기왕 하는 거 잘 만들어야지.”

어차피 발표 때만 쓰고 실제로 상용화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적당히 만들려고 했으나 용민은 최선을 다해서 프로그램을 짜고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내일 또 하려면 체력을 아껴야 돼.”

“벌써 새벽 2시네?”

초저녁부터 진행되었던 작업은 새벽이 다 되도록 계속되었고 그들은 다음 날 학교를 가야했기 때문에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는 작업의 연속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곧장 용민의 집에 가서 같이 게임을 만들었고 심지어 숙식도 그곳에서 모두 해결하는 날도 종종 발생했다.

“저는 당분간 회사 출근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급한 용무가 있으면 연락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수혁은 생각보다 작업량이 만만치 않자 찬명에게 전화하여 양해를 구한 뒤 주말도 헌납해가며 게임을 만드는데 열중했다.

“예상보다 할 것이 엄청 많은데?”

수혁은 용민을 보며 말했다.

“아무리 단순한 게임이라도 작정하고 만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은 걸리는 법이니까.”

용민은 손을 바쁘게 움직이며 대답했다. 작업을 막상 하니 거래소에서 주식 데이터를 연계하는 부분이나 접속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빠른 시일 내에 마무리가 되었으나 문제는 그래픽이었다.

수혁은 게임 내에서 증권거래소나 집과 같은 건물들이 있는 동네를 만들려고 했는데 단순한 건물 하나를 그래픽화 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지만 그는 전혀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래도 도구이용프로그램이 있어서 다행이야.’

비교적 많은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었지만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여 쉬지 않고 일을 하자 질적인 측면은 뒤로 하더라도 작업속도 면에서는 용민을 앞서나가고 있었다.

“진짜 빠르다. 너 혹시 천재 아니야?”

용민은 매 시간마다 달라지는 게임 상의 동네를 보며 감탄했다.

“단순하게 만들어서 그래. 어차피 실제 게임으로 출시한 생각은 없으니까 완벽하게 만들 필요는 없잖아? 아무튼 적당한 동네 하나 만들면 작업을 마무리하자.”

“응, 알겠어.”

수혁은 게임이 점점 완성되어가자 박차를 더욱 가했고 용민도 덩달아 더 열심히 일을 했다. 그리고 점점 발표 날이 다가왔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9월은 지나가고 어느덧 10월이 되었다.

계절은 이제 완연한 가을에 접어들어 밤공기가 제법 쌀쌀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이만하면 됐어.”

수혁은 만들어진 게임을 실행 해보고는 용민에게 말했다.

“설정들이 대부분은 들어갔는데 부족한 점들이 많아.”

용민은 작품을 영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지 않았다.

“고작 2주하고 며칠 정도의 시간을 투자해서 만든 거 치고는 훌륭한 편이야. 그리고 발표용이니까 너무 집착하지 않아도 되고. 어쨌든 고생 많았다 용민아.”

“내가 뭘,...... 중간부터는 네가 거진 다 만들었잖아.”

수혁은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이 날 밤, 그는 용민을 데리고 나가 술을 사주며 회포를 풀었고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털어내었다.

게임이 완성되고 며칠이 지났을까, 수혁은 발표 날 당일이 되자 조금은 긴장되는 마음으로 한국대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발표들이 예상을 벗어나진 않았어.’

세 번의 발표수업 중 마지막 날로 배정된 수혁은 앞선 발표들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저마다의 상품들을 PPT로 꾸며 발표했다.

처음에는 적당히만 잘해도 점수를 잘 주었지만 발표가 진행될수록 학생들의 기준은 높아졌기 때문에 셋째 날 발표가 예정된 학생들 입장에서는 점수를 따기 불리한 측면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 신경 쓰지 말고 내 것에만 집중하자.’

수혁은 마음을 다잡고 자신 있게 강의실로 들어가 발표 준비를 했다.

“오늘은 발표 마지막 날입니다. 지금까지 다양한 상품들이 소개되었고 중간중간에 학생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것들도 있었습니다. 오늘 발표에서는 어떤 상품들이 나올지 확인해 봅시다.”

교수는 발표의 진행에 앞서 짧게 이야기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첫 번째 발표를 맡은 학생을 호명했고 그렇게 발표는 시작되었다.

“제가 이번에 소개하려는 상품은 태양광 전지입니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현재, 많은 사람들은 환경에 무해한 에너지 자원에 관심이 많습니다.”

첫 번째 발표를 진행하는 학생은 최신 트렌드에 맞는 상품을 PPT로 소개했다. 발표 뒤에는 여러 질문들이 이어졌고 질문이 끝이 나면 사람들은 평가지에 점수를 매겼다.

“저는 식수가 부족한 아프리카 사람들을 생각하여 휴대용 정수필터기를 상품으로 소개해볼까 합니다.”

다음 발표자도 세계에 산재하는 여러 현안들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품을 발표 소재로 갖고 나왔다.

이렇게 앞선 발표들도 마찬가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래지향적이거나 트렌드에 맞는 상품들을 소개했다. 그러나 이들은 발표가 끝나면 날카로운 질문들을 받아내야 했다.

“아이디어는 좋은데 실제로 휴대용 정수필터기 개발이 가능한가요? 공학적인 이론들 말고 실제 상품으로 개발될 수 있는지를 묻는 겁니다.”

“저도 질문 있습니다. 그 제품으로 어떻게 수익을 낼 생각이죠?”

“많은 제품들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욕구에 기반 하여 제작된 것을 참고하면....... 저 죄송하지만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이렇듯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져 들어왔고 발표자들은 종종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수혁은 느긋한 표정으로 발표들을 지켜보고 있었고 그저 자신의 발표순서가 오기를 기다렸다. 세 번째 발표도 끝이 나고 명학의 차례가 되었다. 그는 교수가 호명하자 앞으로 나갔다.

“강수혁, 잘 봐라. 아마 발표하고 싶은 생각이 뚝 떨어질 거야.”

“흠.”

명학은 자리에 나오면서 수혁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는 어떤 대꾸도 하지 않았다.

‘건방진 놈, 보고 나면 깜짝 놀랄 거다.’

명학은 수혁을 힐끔 쳐다본 후 자신만만한 태도로 학생들 앞에 섰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4번째 발표를 맡은 이명학입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한 뒤 준비한 PPT를 켰다. 그러자 학생의 솜씨로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화려한 PPT가 사람들 눈앞에 나타났다.

“와, 장난 아니다.”

“그러게, PPT 템플릿부터 디자인까지 완벽한 것 같아.”

몇몇 학생들은 명학의 자료를 보고 감탄했다.

‘아무리 날고 기는 한국대 학생이라도 놀랄 만 하지. 이 PPT는 일송 그룹 기획팀 직원이 만든 거니까.’

명학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학생들을 쳐다봤다. PPT를 본인이 직접 만들지 않고 중요한 발표를 많이 해본 직원에게 대신 만들게 함으로써 엄청난 퀄리티의 자료를 준비할 수 있었다.

- 101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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