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없는 회귀-98화 (98/316)

98화

“잘 알고 계셔서 이야기가 편해질 거 같군요. 죄송하지만 학생들 상담이 끝날 때까지만 쉬었다가 바로 가겠습니다.”

관계자들 중 한 사람이 작심하고 말했다. 그러자 수혁은 현재 유통되고 있는 모의고사들을 비판하며 그들의 주의를 끌었다.

“지금 학원들이 제공하는 사설모의고사에 만족하십니까? 평가원에서 주최하는 모의고사나 수능문제와 달리 사설모의고사는 매 시험마다 오류들이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 아는데요?”

“그건 사실이지만 사설 모의고사라는 것이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학원에서 만드는 것이 다 거기서 거기지요.”

한 남자가 사설모의고사의 한계를 이유로 항변했다.

“문제에 오류만 있으면 다행이지만 수능의 출제경향과 전혀 다른 문제들도 나오는지 않습니까? 그런 문제들은 오히려 수능에 대한 감각을 무뎌지게 하는 부작용을 발생시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다른 학교도 마찬가지겠지만 사설모의고사는 잘 보나 평가원과 수능은 잘 못 보는 학생들이 간혹 있지 않습니까?”

대화 중 처음으로 수혁의 말에 호응을 해주는 선생이 나왔다.

그녀는 사설모의고사에 대한 불신이 많은 사람으로 예전부터 학원에서 만든 문제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곤 했다.

“그건 평가원에서 문제를 어떻게 출제하는지 그 원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강사가 제작을 해서 그런 겁니다. 하지만 우리 학원은 다릅니다.”

수혁은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서류봉투 안에서 모의고사 문제지들을 꺼냈다.

“이 문제지들은 우리 학원의 최고 강사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문제들입니다. 한 번만 살펴봐 주실 수 있으십니까?”

“흠, 아무리 뛰어난 강사도 별 수 없던데.......”

“일단 궁금하니 한 번 보고 판단하죠.”

“그래요, 어차피 지금 딱히 할 일도 없잖아요.”

몇 몇 선생들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대체적으로는 궁금해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수혁은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그는 관계자들에게 문제지를 돌렸다. 선생들은 모두 수능에 관련된 과목들을 가르치고 있고 학교 내 입시상담 담당자들이라 문제를 보는 안목은 충분히 갖고 있는 편이었다.

“확실히 문제의 질이 좋군요.”

“맞아요, 보통의 사설모의고사라면 종종 오타라든가 한두 문제는 오류가 있기 마련인데 전혀 보이지 않아요.”

“단순히 오류만 없는 것이 아니라 수능 유형과 굉장히 유사해요. 제가 본 사설모의고사 중에서는 가장 퀄리티가 좋은 것 같습니다.”

교사들은 빠르게 문제지를 검토한 뒤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문제들을 낼 수 있죠? 다른 학원들은 아무리 공을 들여도 이 정도로 평가원문제와 유사하게 만들지는 못하던데?”

한 교사가 궁금하여 물어보았다.

“우리가 양질의 문제를 만들 수 있는 데에는 유능한 강사들이 제작했다는 거 외에도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회사 특성상 고객들과 쉽게 접촉할 수 있다는 것을 활용하여 샘플 문제들을 온라인으로 제공한 다음 학생들이 선호하는 문제유형에 관한 데이터를 확보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가 핵심인데 이것을 좀 보시죠.”

수혁은 모의고사가 들어있던 서류봉투의 뒷면을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검수위원들의 명단이 있었다.

“이 분들은 대학교수님들 아니십니까?”

질문을 한 사람이 놀라며 말했다.

“단순히 대학교수님들이 아닙니다. 이 분들 중에는 과거 수능출제위원으로 계셨던 분들도 있습니다.”

“정말 대단하군요.”

“어쩐지, 문제들이 수능 문제마냥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은 수혁의 설명을 듣고 납득이 가는 표정들을 지었다.

“그런데 대학 교수님들이 사기업으로 볼 수 있는 학원과 협업을 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안경을 쓴 중년의 남성이 수혁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이미 검수위원들을 선정할 때 은퇴한 교수님들이나 교수직을 중간에 그만 둔 분들을 대상으로 하였습니다. 추후에 모의고사와 관련해서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을 것을 보장 드리겠습니다.”

수혁은 자신감 있게 말했다.

“우리 학교는 10월에 모의고사가 예정되어있습니다. 혹시 계약을 할 수 있겠습니까?”

드디어 관계자들 중 처음으로 SH스터디와 계약을 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수혁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제가 명함을 드릴 테니 이쪽으로 연락을 주세요. 월요일부터 모의고사 계약을 진행할 예정이니 편할 때 전화 하십쇼.”

수혁은 찬명의 연락처가 적힌 명함을 질문한 사람에게 주었다.

“참고로 다른 학원 모의고사들은 문제지당 11000원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학원은 10000원만 받을 테니 질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비용적인 부분에서도 학교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수혁이 SH스터디의 사설모의고사가 질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가격적인 면에서도 우월하다는 것을 설명하자 사람들은 서로 앞다퉈 계약을 하려고 했다.

“우리 학교도 계약을 하겠습니다.”

“저희도 하겠습니다.”

“고2 학생들이 풀 수 있는 문제지는 없나요?”

관계자들은 초반과는 달리 SH스터디와의 사설모의고사 계약에 대하여 호의적인 태도로 변했다.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을 위한 문제지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괜찮으시다면 저에게 명함을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학원에서 월요일부터 직접 연락드리겠습니다.”

수혁은 찬명의 연락처를 준 다음 접수를 받으려고 했으나 생각보다 반응이 뜨겁고 관계자들이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자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여기 있습니다.”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관계자들은 각자의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기 시작했고 수혁은 직원을 시켜 명함들을 받아오게끔 했다.

교사들과의 첫 상담이 잘 끝난 이후로는 모의고사 관련한 계약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SH스터디 한 번 가보세요. 입시설명에 관한 부분도 좋은데 모의고사 문제가 정말 좋더라고요.”

“그래요?”

상담을 받고 나간 고등학교 관계자들은 주변 지인들에게 SH스터디의 모의고사에 관해 언급을 하기 시작했고 이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저, 사설모의고사 관련해서 상담하러 왔는데요.”

어떤 교사는 대놓고 모의고사를 문의하러 부스에 오는 경우도 있었다. 오전부터 상담을 개시한 수혁은 점심도 먹지 않고 늦은 오후까지 수많은 관계자들을 만나며 이야기를 나눴고 상담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주객이 전도된 기분인데요?”

입시설명회가 마무리가 되어 부스를 정리할 시간이 되자 찬명은 수혁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하하, 원장님 덕분에 학원 홍보도 엄청 잘됐잖아요.”

수혁은 웃으며 찬명에게 말했다.

“저야 수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님들 때문에 엄청나게 바빴지만, 대표님은 학교 관계자들만 만났는데도 저 못지않게 바쁘셨잖아요.”

찬명은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

“저기, 아까 걷은 명함들 이리 좀 가져와 보세요.”

수혁은 부스를 정리하고 있는 직원들 중 한 명을 불렀다. 그는 명함들이 든 명함케이스를 꺼낸 다음 찬명에게 건넸다.

“이것들은 관계자들 명함인데요. 월요일 아침에 행정직원들 교육시킨 다음 명함에 적힌 번호로 연락해서 학교들과 계약을 맺으라고 하세요.”

“수백 장은 돼 보이는데 대단하십니다.”

찬명은 혀를 내두르며 명함케이스를 받았다.

“인력이 부족하면 교무실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동원해서라도 일을 진행하세요, 사람들이 구매의향이 사라지기 전에 최대한 빨리 연락하는 것이 좋으니까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수혁은 찬명에게 고객들을 놓치지 않도록 신신당부했다. 이렇듯 SH스터디의 입시설명회는 성황리에 마무리 되었다.

‘이제 돌아갈까?’

수혁은 직원들을 모두 집으로 돌려보낸 후 마지막까지 남아 있다가 컨벤션 센터를 떠났다.

* * *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한 저택 안, 명학은 일송전자 부회장이자 그의 아버지인 이정찬과 독대를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항상 싸돌아 다녀서 집에도 잘 안 오는 놈이.”

정찬은 거실 소파에 앉아 찻잔에서 풍기는 커피향을 맡으며 말했다.

“아버지한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아줌마 저도 커피 한 잔 주세요.”

명학은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에게 커피를 가져오라고 시켰다.

“어떤 걸로 날 또 귀찮게 하려는 거야? 사달라는 것은 다 사준 걸로 아는데, 혹시 차를 또 바꾸고 싶은 거냐? 너희 형들을 좀 본받아라. 같은 뱃속에 낳은 자식이지만 어찌도 이렇게 다른지. 쯧쯧.”

정찬은 혀를 차며 질린다는 듯이 말했다.

명학은 그 모습을 보자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참고 침착하게 말했다.

“제가 아버지 돈을 많이 쓰긴 했죠. 그리고 형들과 달리 말썽도 많이 피우고요. 하지만 이번에는 달라요. 저도 가족들에게 제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요.”

명학은 보통 때와 달리 진지하게 말했다.

“뭘 증명한다는 거야? 증명하고 싶으면 정수네 회사 들어가서 일 배우라고 내가 누차 이야기했을 텐데?”

정찬은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일송 안에서 다른 계열사를 운영하고 있는 동생네 회사에 명학을 넣으려고 했다.

“제가 왜요? 형과 누나는 아버지 회사 다니는데 저는 왜 삼촌네 회사를 다녀야 하는 거죠? 그리고 아직 저는 학생이잖아요.”

기분이 상한 명학은 볼멘소리로 말했다.

“철없는 자식. 네 누이와 형은 회장님이 허락해주셔서 그런 거 아니냐? 그러게 행실을 똑바로 하지 그랬어? 그리고 우리 일송가문 사람이라면 성인이 되자마자 회사에서 일을 배우는 것이 관례야. 그것도 모르면서 어디서 투정이야?”

정찬이 말하는 회장은 명학의 할아버지이자 일송그룹 회장인 이경욱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룹회장임과 동시에 그룹 내 가장 큰 계열사인 일송전자 회장이었다.

“저는 아직 회사에 들어갈 생각이 없어요. 것보다 전 개입사업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고요.”

명학은 개강총회 때 있었던 설전 이후로 자신도 회사를 차려 사업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수혁의 기를 죽이고 싶었던 것이다.

“네가 사업을 한다고? 철없는 소리 하지 말고 들어가서 쉬어라.”

정찬은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그는 명학이 평소에 뭐하나 제대로 한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믿음이 가지 않았다.

“제가 그동안 부족한 모습을 보여드렸던 건 사실이지만 이번에는 달라요. 한 번만 지원해주세요. 만약에 사업이 잘 안되면 삼촌네 회사에 가서 일을 배우겠습니다.”

명학은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애원했다.

“그게 정말이냐? 나중에 가서 딴소리 하지 말거라.”

정찬은 명학이 못 미더웠으나 그가 회사 일을 배우겠다는 이야기를 듣자 마음이 혹했다.

“걱정 마세요. 제가 계획하고 있는 사업이 있어요. 요즘 IT기술이 발전하면서 인터넷 회사들이 잘 나가고 있다고요. 맡겨만 주시면 제가 능력을 증명해보일게요.”

“그거는 두고 볼 일이지. 그리고 일을 배우겠다는 약속을 잊지 말아라. 나중에 딴 소리하면 자식이라도 가만두지 않을 거니까. 내가 사람을 시켜서 자금을 마련해줄테니 하고 싶은 것을 해봐라.”

“아버지, 감사합니다.”

정찬은 끝내 아들의 부탁들 들어주었고 명학은 기분이 좋은지 커피를 마시며 히죽댔다.

‘강수혁 두고 보자. 내가 너보다 더 멋진 회사를 만들어서 고개도 못 들게 만들겠어. 그리고 이번 기회에 집안 내에서 내 이미지도 바꿔야지.’

그는 사업에서 성공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 99화에 계속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