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학부모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은 것을 확인한 수혁은 자신감을 갖고 말을 이어나갔다.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학생의 의지입니다. 의지가 없는 학생은 학원에 다니더라도 높은 성과를 내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학원을 다님으로서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는 것까지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수혁은 질문을 듣고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여 유려하게 답변했다. 그 외에도 곳곳에서 여러 질문들이 나왔고 그때마다 그는 적절하게 대처했다.
“네 다음, 저기 계신 어머니한테 마이크를 주세요.”
수혁은 어느새 자신의 발표를 중단하고 질의응답 시간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과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아까부터 손을 들었던 사람에게 발언기회를 주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제가 궁금한 것은 강사진에 관한 부분인데요. 기존의 온라인 강의가 많이 부족했다는 이야기들이 돌고 있는데 회사 차원에서 이를 대대적으로 보완하기 위해 새롭고 유능한 강사들을 모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좀 들을 수 있을까요?”
많은 청중들은 그녀의 대답을 듣자 수혁에게 집중했다.
사실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궁금한 것은 탄탄한 강사진이라고 홍보한 SH스터디가 어떤 강사들을 보유하고 있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네, 좋은 질문 감사드립니다. 원래 다음 순서에서 소개될 예정이었으나 그냥 지금 하도록 하죠. 소개하겠습니다. 우리학원의 대표강사 겸 총괄이사인 한정길 강사님이십니다.”
수혁은 발표를 끝마치지 못했으나 질의응답시간을 통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충분히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음 순서로 넘어갔다.
정길은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호명하는 소리를 듣고 단상 위로 올라왔다.
“안녕하십니까? 한정길입니다.”
정길은 청중들에게 인사를 했고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정길 강사면 우리가 아는 그 사람 맞지?”
“응, 내 큰애도 선생님한테 배워서 한국대학교 갔잖아.”
강남에 사는 어머니들은 인지도가 어느 정도 있는 정길을 한 눈에 알아보았고 그를 두고 설왕설래하였다.
“저는 오랜 기간 동안 과외를 했었고 학원 강사로서도 업계에서 인정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대표님을 만나지 얼마 안 됐습니다. 하지만 대표님의 교육에 대한 철학과 비전이 마음에 들어 SH스터디와 뜻을 함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약력과 많은 강의경험 그리고 살면서 거둔 성과들을 나열했고 중간중간에 SH스터디에 참여한 이유를 밝혔다.
“제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군요. 지금부터 SH스터디의 강사진을 소개하겠습니다. 모두 무대로 올라와 주세요.”
정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동안 대기하고 있던 강사들이 단상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무선마이크를 잡고 한 줄로 서있는 강사들과 차례대로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여기 계신 김학수 선생님은 긴 시간동안 과학을 가르쳤던 분입니다. 아마 부모님들 중에서는 선생님을 이미 알고 계신 분들이 상당할 겁니다. 선생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서울 대치동에서 강사 생활 15년차에 접어든 김학수입니다. 앞으로 SH스터디를 통해 최상의 강의를 여러분들에게 제공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학수의 인터뷰가 끝나자 나머지 강사들에 대해서도 짧은 소개시간을 가졌다.
“지금까지 소개드렸던 강사님들과 제가 대표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합리적인 가격으로 최상의 퀄리티를 가진 강의를 제공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지금까지 자식 교육하느라 힘드셨던 부모님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길은 자신의 순서를 마치고 연단에서 내려왔고
사람들은 각자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느라 여념이 없었다.
“저 강사한테 과외 한 번 받는데 얼만 줄 알아?”
“그러게, 나도 큰아들 대학 보낼 때 돈이 엄청 들었는데 저 가격으로 강의를 들을 수 있게 됐네?”
“조금만 더 빨리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강사진을 확인한 사람들은 SH스터디에 대한 호감이 더욱 커졌다.
검증된 사람들로 꾸려진 강사진을 보고 나니 강한 믿음이 생겼던 것이다.
“여러분,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뒷자리에 보면 테이블들이 마련되어 있는데요. 이제부터 여기 계신 강사님들과 우리 직원들이 학부모님들과 상담을 하고 교육 커리큘럼을 설명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찬명은 다시 마이크를 잡고 행사를 진행했다.
잠시 뒤 대략적인 발표는 끝이 났고 참석한 학부모와 학생들은 저마다 관심 있는 과목의 강사들에게 찾아가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대성공이군요.”
찬명은 수혁의 옆에 서서 말했다.
“뭐, 오늘은 잘 마무리한 것 같네요.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내일 목동 설명회에서도 최선을 다해야죠.”
그들은 상담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다음에 있을 설명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날 행사는 성황리에 잘 마무리 되었고 다음 날 목동에서 있었던 설명회도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다.
* * *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회사에서는 수혁을 포함한 직원들이 한데 모여 회의가 벌어졌다.
“강의를 신청하는 고객의 수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설명회가 예상했던 거보다 훨씬 효과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 직원이 늘어난 고객의 수를 언급하며 보고를 했다.
“이 세계는 학부모들의 입소문이 가장 파급력이 큽니다. 참석하셨던 고객들이 지인들에게 부지런히 회사홍보를 하고 있을 거예요.”
직원의 보고를 들은 정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아직은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새로 오신 강사님들이 서비스를 제공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낙관할 때가 아닙니다.”
수혁은 초반에 잘 풀린다고 성공이 보장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직원들에게 긴장의 끈을 놓치지 말라고 당부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쇼. 강사님들께서 열정적으로 참여해주고 계시고 무엇보다 실력이 검증된 분들이기 때문에 안심이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리고 고객들이 확실히 과거와는 다른 반응을 보여주고 있고요. 물론 대표님 말씀대로 항상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찬명은 새로운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들을 몇 개 보여주며 이전과 다르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 후에도 수혁과 직원들은 여러 안건을 두고 토의를 했고 향후 계획에 대해서도 논의를 계속하였다.
* * *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한 건물에서 장년의 남자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사무실의 입구에는 서울 학원협회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고 서울에 본사를 둔 여러 학원의 원장들이 한데 모여 모임을 가지고 있는 중이었다.
“방금 의결을 마지막으로 상정된 안건에 대한 회의를 마치겠습니다.”
협회장으로 보이는 자는 회의를 마무리하려고 했다.
“회의 끝나기에 앞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참고로 최근에 설립된 SH스터디 관련된 사안입니다.”
머리가 하얗고 나이는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말을 꺼냈다.
그는 명성학원과 더불어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학원인 신일학원의 대표 성덕수였다.
“SH스터디 이야기라면 저도 할 말이 있습니다.”
회의 내내 조용히 있던 명성학원의 대표 천규식도 나섰다.
“먼저 말씀하시죠.”
협회장은 말을 꺼낸 덕수에게 발언 기회를 주었다.
“직원에게 보고받은 바에 의하면 SH스터디가 절반도 안 되는 가격으로 강의를 제공한다고 합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이야깁니까? 이건 명백히 학원뿐만 아니라 강사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행위입니다.”
덕수는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였다.
“맞습니다. 저희 학원 같은 경우는 이번 달부터 새로 유입되는 학생 수가 눈에 띄게 줄고 있습니다.”
한 남자가 덕수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들어보니까 한정길 강사가 사람들을 모아 SH스터디로 들어갔다고 하던데요?”
다른 남자도 SH스터디 이야기가 나오자 입을 열었다.
“일단은 경박하지 않습니까? 나름 유명하다는 강사들이 돈 좀 벌겠다고 인터넷으로 강의를 찍겠다는 꼴이 말입니다. 제 학원 강사들 중에는 반발심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규식도 회의 분위기가 성토의 장처럼 되어가자 한마디 거들었다.
“우리가 어렵게 만들었던 학원 업계의 기조가 흔들리려고 하고 있어요. 지금 많은 학원 원장들은 SH스터디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덕수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맞습니다. 이건 엄밀히 말해서 학원의 생태를 교란시키는 행위입니다. 들어보니 대표라는 사람이 대학생이라는 말이 있더군요.”
누군가 수혁의 인적사항을 언급했다.
“맞습니다. 직원에게 들어보니 20살 남짓으로 보이는 젊은 청년인 것 같더군요. 어린 친구가 패기는 있는데 어찌 이리 무모한지, 쯧쯧.”
규식은 혀를 차며 말했다. 회의장에서 그저 침묵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규식과 덕수를 중심으로 몇몇 사람들은 끊임없이 SH스터디와 수혁을 비판했다.
“자자,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에요. SH스터디 건은 다음에 논의하도록 합시다.”
“아니 그래도.”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잘 돌아가세요.”
협회장은 성토 분위기로 변한 회의를 간신히 끝마쳤고 사람들은 각자 학원으로 돌아갔다.
* * *
6월 말이 다 돼가는 어느 날, 본격적인 여름은 시작되지 않았지만 서울은 찜통 같은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었고 수혁은 한국대학교에서 기말 시험을 치루고 있었다.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다.’
수혁은 SH스터디에서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가방을 챙기고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했다.
그는 무난히 시험을 치룰 수 있었고 현재는 누군가를 만나러 대학가에 있는 카페에 가는 중이었다.
“수혁아 여기야.”
수혁이 카페 안으로 들어서자 예전에 수업에서 만났던 김용민이 기다리고 있었다.
“빨리 왔네.”
“응, 시험은 잘 치렀어?”
“그럭저럭.”
수혁은 차분히 대답했다.
그가 오늘 약속을 잡은 이유가 다 있었다. 용민에 대해서 더 알아보기 위함도 있었지만 SH스터디 이후의 미래도 조금씩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어?”
수혁은 용민에게 물었다.
“나? 나는 계속 짬짬이 시간 내서 프로그램도 만들고 그러고 있지.”
“무슨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뭐, 다양하게 만들고 있어. 문서작업용 프로그램도 만들어보고 있고 시험 삼아 사이트 같은 것들도 만드는데 가장 공들여 만드는 것은 아무래도 게임이야.”
“그래? 그런 것들을 다 너 혼자서 만들어?”
수혁은 커피를 마시면서 말했다.
“아니, 우리 과에 프로그래밍 좋아하는 친구들을 몇 명 만났거든 게네들이랑 같이 만들고 있어.”
“동아리 같은 거야?”
“동아리는 아니고 그냥 소소한 모임이라고 보면 될 것 같은데? 취업이나 돈 버는 것보다는 정말 컴퓨터를 좋아하는 아이들끼리 취미생활 하는 거거든. 혹시 너도 관심 있어?”
수혁의 계속되는 질문에 용민은 그의 의중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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