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이걸 어쩌지? 사업을 하려면 당장 돈을 벌어야 되는데.’
고서의 내용을 확인한 수혁은 고민에 빠졌다.
히든 퀘스트가 뜰 때면 지체 없이 해결했던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망설여졌다.
수혁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좋은 생각이 났는지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오호, 퀘스트로 사업자금을 마련할 수 있겠는데?’
수혁은 문화재를 발견했을 때 국가에서 받을 수 있는 보상체계에 대해 알아보았다.
당국은 민간인이 문화재를 발굴하면 유적, 유물의 가치를 파악한 뒤 일정 비율로 보상을 해주고 있었다.
단, 보상금은 1억이 최대였기 때문에 일확천금을 노리기는 어려웠다.
‘1억이라, 금액이 아쉽긴 하지만 이거면 사업을 하는데 문제는 없지.’
수혁은 사업을 위해 1억원 상당의 돈이 필요했는데 마침 히든 퀘스트를 통해서 돌파구를 찾아내자 속이 홀가분해졌다.
그는 고서의 내용을 꼼꼼히 살핀 후 섬과 마을을 찾는데 필요한 정보를 종이 위에 자세히 적어나갔다.
‘이 정도면 되겠지?’
수혁은 서점 내에 있는 지도책을 꺼내어 고서와 비교한 뒤 어느 지역에서 가까운지 비교를 해보고 대략적인 위치를 선정했다. 그리고 종이에 그림을 그려 섬의 모양과 마을의 위치를 표시했다.
작업을 마친 수혁은 우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한국대학에 입학했다면서? 늦었지만 축하하네.”
우진은 오랜만에 전화가 걸려온 수혁에게 축하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것보다 제가 고서를 번역하던 중에 꽤 특별한 것을 발견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특별한 거?”
“네, 제가 방금.......”
수혁은 칠부도에 관한 내용을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었고 설명을 들은 우진은 몹시 흥분하며 말을 이어갔다.
“정말인가? 옛 고려귀족들이 피신을 갔던 섬이 있고 그곳에 그들의 터전이 있다는 게.”
“네, 고서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틀림없습니다. 제가 대략 위치를 파악해보았는데 태안에서 보트를 타고 1시간 정도 가면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뭐하는가? 당장 준비해서 가지 않고?”
우진은 자신의 일인 것 마냥 수혁을 재촉했다.
“가기 전에 준비를 좀 해야 될 것 같습니다. 먼저 보트를 빌려야 되고요, 섬을 탐험할 때 우리를 가이드해줄 사람도 필요합니다.”
“준비물들은 내가 알아보겠네, 배야 일단 태안 근처의 주민들에게 문의하면 되는 거고 사람이라면 내가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래요?”
“내가 오지를 탐험하고 다니는 젊은 생물학자를 아는데 그 친구는 연구를 위해서 세계 곳곳의 깊은 정글이나 무인도를 많이 돌아다녀 본 사람이네.”
“괜찮겠네요, 그런데 이번 탐사는 생물학보다는 역사와 관련된 건데 관심이 있으실까요?”
수혁은 우진이 말한 남자가 순순히 동행을 할지 걱정이 되었다.
“나랑 친분도 있고 모험이라면 마다하지 않는 친구야, 언제 출발하면 좋을까?”
우진은 호언장담하며 약속을 잡으려고 했다.
“제가 목요일 날 오후에 수업이 끝나는데 괜찮으면 그날 오후에 출발하는 걸로 하죠. 제 차로 모시겠습니다.”
“알겠네, 그럼 목요일 날 보지.”
수혁은 우진과 약속장소를 잡고 탐험에 대한 세세한 논의를 한 뒤 전화를 끊었다.
‘그럼 나도 준비를 해볼까?’
수혁은 번역작업을 멈추고 정보를 적은 종이를 챙긴 다음 서점 밖을 나섰다. 그는 등산용품과 탐험용품을 파는 상점을 찾아내어 탐사에 필요한 도구와 옷을 구입 했다.
* * *
시간은 흘러 목요일이 되었다. 그동안 수혁은 수업을 듣고 가끔씩 찬명을 만날 때를 제외하고는 칠부도 여행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교수님 여깁니다!”
수혁은 우진의 집 근처에 차를 정차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우진과 남자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것을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벌써 와있었구먼, 일단 소개부터 하지 이쪽은 현재 한국대학교에 재학 중인 강수혁 군이네.”
“안녕하세요.”
우진은 남자에게 수혁을 소개시켜줬다. 그러자 그는 악수를 청하며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대한생물학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정승대입니다.”
40대 초반의 승대는 공부를 많이 하는 연구원답지 않게 탄탄한 체격을 자랑하고 있었다.
“네, 교수님께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짐을 많이 갖고 오신 거 같은데 트렁크에 놓으시죠.”
“알겠습니다.”
수혁은 트렁크를 열어 짐을 받아 넣은 다음 차에 탔고 뒤이어 우진과 승대도 탑승했다.
“언제 차를 뽑았어?”“이건 제 차가 아닙니다. 잠시 부모님한테 빌렸습니다.”
“그렇구먼, 그건 그렇고 둘이 사이좋게 지내도록 해. 앞으로 며칠 동안은 같이 다녀야 하니까.”
“네. 교수님.”
승대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저한테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나야 그렇게 말해주면 고맙지.”
그는 수혁의 권유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시동을 켠 수혁은 차를 끌고 태안으로 이동했다.
겨울이 끝 난지 얼마 안되서였을까 3월의 날씨는 따뜻하기보다는 약간의 서늘함을 머금고 있었다.
그들은 고속도로를 타고 태안으로 향했고 저녁이 다 돼서야 바닷가에 도착을 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힘들 것 같아, 내가 보트 주인에게 전화를 해보니까 밤에 바다를 나가는 것은 위험해서 안 된다는데?”
우진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오늘은 숙박할 때를 먼저 찾아보고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면 어떨까요?”
“좋습니다.”
“그렇게 하지.”
승대의 말에 동의한 이들은 숙박할 곳을 찾아 나섰다. 다행히도 바닷가 근처에 민박집들이 여러 군데 있었고 그들은 쉽게 방을 잡을 수 있었다.
“칠부도는 여기서 한 시간쯤 걸린다고 했지?”
“네, 이 지도를 보시면 이해가 빠르실 거예요.”
수혁은 자신이 그려온 지도를 우진에게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는 지도를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 근방만 해도 섬이 100여개가 넘는 것으로 아는데 내일 찾을 수 있을까?”
“쉽지는 않겠지만 제가 섬의 특징을 적어왔어요, 우선 칠부도 옆면에는 해안절벽이 있는데 봄이랑 여름에는 그곳에 파랑색 꽃이 많이 피어있다고 했어요. 그리고 산의 모양도 그려왔는데 직접 보면서 비교해보면 찾는데 큰 무리는 없을 거예요.”
“이 정도면 문제없겠는데? 뭐 기왕 왔으니까 직접 보고 판단하죠.”
승대는 패기 넘치게 말했다.
“나도 당연히 그럴 생각이야. 일단 이야기는 대충 됐으니까 눈 좀 붙일까?”
수혁과 이들은 내일 일정에 대해 짧게 논의를 한 뒤 불을 끄고 잠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었다.
그들은 선착장에서 보트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 8시쯤이 되었을까 한 중년 남성이 보트를 타고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누가 김우진씨 인가요?”
한 눈에도 거칠어 보이는 커다란 체격의 남성이 우진을 찾고 있었다.
“제가 연락드린 사람입니다.”
우진은 공손하게 대답했다.
“어제 넣어주신 돈은 확인했습니다. 필요하신 만큼 타시다가 이쪽에다 주차해주신 뒤에 연락만 해주시면 됩니다. 그런데 보트는 운전할 수 있으시죠?”
남자는 보트를 넘겨주며 물었다.
“제가 보트를 몰 줄 압니다. 보트면허도 있고요.”
승대는 손을 들며 대답했다.
“그러면 걱정할 건 없겠군요. 아무쪼록 잘 타시고 좋은 여행되세요.”
그는 보트에서 나와 바닷가에 있는 마을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 혹시 배를 빌릴 때 들어간 비용은 나중에 저한테 알려주세요. 나중에 꼭 갚겠습니다.”
수혁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우진에게 말했다.
“우리 사이에 무슨 그런걸 따지나? 그렇게 생각 말게. 자네가 아니었으면 귀한 유적지를 보러 갈 기회나 있었겠어?”
우진은 손을 내저으며 그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그래, 나도 여기 자발적으로 왔다고. 난 즐거운 시간만 보내면 되니까 신경쓸 필요 없어.”
승대도 쾌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수혁은 자신을 배려해주는 이들에게 감사함을 표시했고 잠시 후 이들은 보트에 탑승했다.
운전대를 쥔 승대는 수혁이 말해주는 방향에 따라 보트를 움직였다.
“우선 이쪽으로 쭉 가시면 되요. 제가 중간에 멈춰달라고 하면 멈춰주세요.”
“오케이.”
수혁은 지도를 보느라 주변 풍광을 구경할 여유가 없었다. 섬이 많았기에 중간 중간 멈춰서 위치를 파악해야 했고 지도상에 표기된 섬과 육안에 들어오는 섬을 비교해야했기 때문에 생각보다 시간은 많이 걸리고 있었다.
“잠깐 먹고 할까요?”
아침도 먹지 않고 일찍 나온 일행들은 허기가 진 상태였다. 승대는 보트를 세워놓고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이건 군대에서 보급해주는 식량 아닌가?”
우진은 승대에게 건네받은 물건을 살펴보며 말했다.
“이런데 올 때는 항상 챙겨서 옵니다. 친구 중에 군대에 근무하는 애가 있는데 걔한테 부탁해서 넉넉하게 가져 왔습니다.”
승대는 수혁에게도 전투식량을 건넸다.
그들은 주변에 섬밖에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 위에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이것도 나름 운치가 있구먼.”
우진은 일회용 포크로 식량을 먹으며 말했다.
“뭐 한 두 끼는 괜찮은데 계속 먹으면 조금 질릴 수도 있어요. 넉넉하게 챙겨왔으니까 더 드시고 싶으면 말씀하세요, 너도 더 먹고 싶으면 이야기 해.”
“네.”
수혁과 그들은 바다 물결에 흔들리는 보트 위에서 식사를 해결했다. 그리고 승대는 다시 모터의 시동을 키고 보트를 움직였다.
“잠시만요, 이 근처 섬들 중에 한 군데 일거 같아요.”
“좋아 하나씩 살펴보자.”
수혁은 지도에 표시된 곳 근처에 온 것을 직감했다.
보트를 멈춘 승대는 근방 섬들의 숫자를 파악한 후 한군데 씩 돌아보았다.
“찾았다. 다들 여기 좀 봐, 이쪽 절벽에 파란 꽃이 많이 피었어!”
섬들을 유심히 살펴보던 우진은 수혁이 말한 절벽을 발견했다.
“맞네요, 저 섬이 칠부도 같아요. 산의 모양도 제가 그린 그림과 일치해요!”
수혁은 우진이 가리키는 섬을 보며 말했다.
“좋았어.”
승대는 보트의 방향을 틀고 칠부도로 향했다.
그는 섬 주변을 돌며 보트를 세워놓을 만한 곳을 찾은 후 해안가에 정차했다.
* * *
칠부도의 해안가는 육지처럼 갯벌이 형성되어 있었다.
승대는 큰 바위들이 모여 있는 쪽에 보트를 정차했다.
“교수님 조심하세요.”
보트에서 먼저 내린 수혁은 우진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그를 내려주었다.
“여기 좀 도와줘.”
“네.”
승대는 보트 안에 있던 두꺼운 밧줄과 끌을 꺼냈다.
그는 밧줄을 보트에 연결시킨 다음 반대쪽 밧줄을 바위들에 묶기 시작했다.
그동안 수혁은 끌들을 돌 틈에 박아 넣은 후 고정을 시켰다.
“좀 있으면 이 근방에 물이 들어올 건데 제대로 고정시켜놔야 배가 떠내려가지 않아.”
승대는 소매로 땀을 닦으며 말했다.
“잠시 쉬었다 갈까요? 아니면 바로 섬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수혁은 하루종일 보트를 운전하느라 고생한 그에게 의견을 물었다.
“아니야, 난 괜찮아. 그런데 이제 곧 해가 질 거 같은데?”
해는 벌써 바다너머로 저물고 있었다.
노을은 섬의 갯벌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는데 이는 육지의 해변과는 또 다른 장관이었다.
“정말 멋지군.”
우진은 저물어가는 해를 보며 혼자 감상에 잠겨있었다.
그들은 한동안 그렇게 서서 일몰을 쳐다보았다.
“저녁이 되고 어두워지면 섬을 탐사하는 것이 쉽지 않아. 해충들이나 뱀 같은 경우는 야행성이 많기 때문에 밤에 움직이는 것은 위험해.”
승대는 일행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그러면 오늘은 근처에서 잠을 자고 내일 아침에 섬을 돌아보도록 하죠.”
수혁은 선선히 그의 말에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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