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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회귀-75화 (75/316)

75화

“조교 형이 말했던 수석 입학했다는 사람이 너였구나? 내가 그 형이랑 어렸을 때부터 아는 사이인데 이번에 수능 만점자가 수석으로 우리 과에 들어왔다고 하더라고.”

“아, 그래?”

찬식은 호텔에 올 때까지 입을 쉬지 않았다.

그는 천성이 타인에 대해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올해 입학한 학생들에 대한 정보를 상당히 알고 있었다.

‘도착했다. 와, 규모가 상당한데?’

가만히 앉아 밖을 보니 창을 통해 호텔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삼릉호텔은 한눈에 보아도 다른 호텔에 비해서 화려함과 웅장함이 느껴졌다.

시내 한복판은 아니지만, 서울 안에 이렇게 큰 호텔이 있다는 사실에 수혁은 놀라고 있었다.

버스는 호텔 주차장에 정차했고 사람들은 버스에서 내렸다.

수혁은 찬식과 함께 버스에서 내린 후 조장의 지시에 따라 줄을 서고 있었다. 그런데 신입생으로 보이는 몇몇 사람들은 줄을 서지 않고 학생회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쟤네들은 뭐야?”

수혁은 그들을 발견하고는 찬식에게 물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소유로 보이는 고급 스포츠카 주변에 서 있었는데 버스를 타지 않고 차로 미리 와 있었던 것 같았다.

“저기 가운데 있는 애가 이명학이라는 앤데 일송그룹 손자야. 그 옆에 있는 애들도 다 나름 알아주는 재벌가나 외교관 자식들이야. 내가 알기로 쟤네들 대부분이 외국에서 살다가 한국 온 애들인데 특례입학으로 한국대에 왔을 거야.”

일송그룹은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재벌로 이 때 당시에도 한국에서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했고 미래에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전하는 대단한 곳이었다.

“특례입학?”

“응, 외국에서 오래 지낸 아이들은 우리들과 다른 방식으로 대학에 갈 수 있거든 물론 합법이라 별문제도 없고.”

“그래. 뭐 자기들이 알아서 하는 거니까.”

수혁은 다른 아이들이 어떻게 학교에 들어왔는지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래도 한국대학교에 들어오려면 실력이 어느 정도는 있어야 되나 봐. 내가 알기로 한국에 들어와서 1년 정도 유명 학원 선생한테 고액 과외를 받는 등 엄청난 서포트를 받고 들어온다고 하더라고.”

찬식은 자신이 아는 정보가 나오자 신이 나서 말했다.

“우리 과 말고도 한국대학교에는 잘사는 애들이 되게 많이 다녀. 아마 학교를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야. 그리고 사실 이명학은 소문이 그렇게 좋지 않아.”

“왜?”

“이건 나도 어른들한테 들은 건데 어렸을 때부터 말썽을 너무 많이 피워서 집안사람들도 거의 포기한 자식이래. 중간에 유학을 보낸 것도 시끄러워질까 봐 보냈다는 소문도 있고.”

“어쨌든 들어가자, 우리랑 상관있는 애도 아니잖아.”

찬식은 주변에서 들을까 무서운지 수혁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명학과 그의 친구들은 다른 신입생들이 모두 줄을 서서 호텔에 들어갈 때에도 그들끼리 떠들고 있었다.

수혁은 그들을 무시하고 배정된 객실에 짐을 놓으러 갔다. 우연찮게도 찬식과 수혁은 객실도 같이 쓰게 되었다.

“좀 있다 한 시간 뒤에 호텔 리셉션 장에서 교수님들이랑 졸업한 선배님들이 오신데.”

“응, 나도 선배들한테 들었어.”

그들은 한참을 객실 침대에 누워 대화를 나누다가 호텔 지하에 있는 거대한 연회장으로 갔다. 연회장은 학생들이 앉을 수 있는 원형 테이블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테이블 앞에는 큰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무대는 청중들과 교감할 수 있게 콘서트 무대처럼 디귿자 형태로 되어 있었다.

“내가 듣기로는 이곳에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나 패션쇼 같은 것도 열린 적이 있데.”

찬식은 수혁과 연회장을 구경하며 말했다.

수혁이 볼 때도 거대한 규모의 연회장은 다양한 용도로 쓰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은 배정받은 테이블에 앉아 행사가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다른 학생들도 자리에 앉았고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학생들은 연회장 뒤편에 마련된 다과와 음료를 들고 테이블을 오가며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교수들과 졸업한 선배들이 무대에 마련된 좌석에 거의 다 앉았을 때쯤 수혁의 테이블에 남자 둘이 앉았다.

“좀 있다 끝나고 뭐할 거야? 재미도 없을 거 같은데 설마 여기서 자고 갈 건 아니지?”

“어떻게 하겠어, 집안에서 참석하라고 그렇게 말을 하는데.”

그들은 좀 전에 신입생들과 있지 않고 따로 떨어져 있었던 명학과 그의 친구였다.

행사 준비가 거의 다 끝나고 학과장이 인사말을 하려고 할 때까지도 이들은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각 테이블에는 조장이 있어 조용히 시켜야 했지만 이상하게도 명학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조용히 좀 하세요.”

수혁은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명학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어.”

명학은 수혁을 힐끔 바라 본 뒤 반말로 대답하고 다시 자신의 친구와 대화를 나누었다.

‘뭐야? 왜 초면부터 반말이야?’

수혁은 안하무인 같은 그의 태도에 화가 났다.

“조용히 하라고. 교수님들이랑 어른들 계시는데 적당히 해.”

“수혁아 냅둬.”

수혁이 싸늘하게 말하자 찬식은 말리려고 했다.

“야, 너 뭐야?”

명학은 또다시 자신을 제지하자 얼굴이 빨개졌고 뭐라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 학과장이 연설을 시작했기에 입을 다물고 수혁을 노려보기만 했다.

“우리 한국대학교 경영학과는 대대로 사회에 크게 공헌한 훌륭하신 선배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여러분들은 이곳에 입학하게 됨으로써 사회생활의 첫 걸음을 아주 잘 떼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학과장은 무대 중앙에 배치된 연단에 서서 학과의 간략한 역사와 과를 빛낸 선배들 이름을 열거하며 이야기를 했다.

이후에는 과거 장관을 역임하고 현재 국회의원을 하고 있는 선배가 졸업생 대표로 축사를 했다. 그리고 잠시 뒤 선배들의 장학금 수여식이 이어졌다.

무대에는 3명의 이름이 호명되었는데 그중 수혁의 이름도 있었다.

“우리 선배님들께서 후배들의 공부를 장려하기 위해서 장학금을 마련했습니다. 호명된 인원은 앞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수혁은 호명된 나머지 둘과 무대에 올라갔고 대표로 장학증서를 수여받았다.

이는 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 자들에게 주는 장학금이었는데 수석인 수혁이 대표로 받았던 것이다. 장학 금액은 500만원이었다.

“쟤가 수석으로 입학했나봐.”

“강수혁이면 이번에 수능 만점 받았던 사람 아니야?”

짧은 시간동안 친해진 학생들은 수혁을 두고 조용히 대화를 나누었다. 우레와 같은 박수를 들으며 무대에서 내려온 그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명학은 그런 수혁을 보며 말을 걸었다.

“공부는 좀 했나보네?”

“그래봤자 거기 까지지. 공부 잘한다고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잖아? 딱 봐도 샌님과 아니야?”

명학과 옆에 있는 남자는 수혁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서슴치 않았고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

거기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공부로 성공한 학생들이었기 때문에 이를 무시하는 발언을 하는 그들이 거북했다.

“후. 조용히 좀 해라. 주변에서 불편해 하는 거 안 보이냐?”

“너만 불편한 거 아니야? 되게 예민하네?”

수혁과 명학은 또다시 신경전을 했다. 그러자 조장이 참다못해 말했다.

“공적인 자리에서 다들 뭐하는 거야. 그만해라.”

조장은 굳어진 표정으로 수혁과 명학에게 말했다.

그들은 서로를 노려보며 하던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식사 시간이 되었다.

“여러분, 식사는 바로 이 연회장에서 할 생각입니다. 연회장 뒤편을 보시면 뷔페가 마련되어 있으니 편하게 식사를 하시기 바랍니다.”

학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먹을 것을 가지러 갔다. 그들은 저마다 먹고 싶은 음식들을 퍼서 테이블에 가져와 점심을 먹었다. 명학은 점심을 먹지 않고 연회장을 빠져 나갔다.

“아까 잠깐 화장실 가러 밖에 나갔다 왔는데 게네들 담배 피러 나갔더라.”

찬식은 뷔페 음식을 먹으며 수혁에게 말했다.

“담배를 피든지 뭘 하든지 알바 아니야.”

수혁은 냉정하게 말했다.

“그래도 조심해. 너한테 직접적으로 피해는 못 줘도 괜히 귀찮게 할 수 있으니까.”

“그러든지 말든지.”

수혁은 신경 쓰지 않고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식사시간이 끝나자 각조 조장은 테이블에 졸업한 선배들을 모셔왔다.

“식사 잘하셨습니까? 지금부터 멘토와의 대화 시간이 있겠습니다. 선배님들 말씀 잘 들으시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봐주시기 바랍니다. 자, 그럼 대화들 나누시길 바랍니다.”

학생회장은 연단에 서서 행사 진행을 했고 멘토들은 조장들의 에스코트 아래에 테이블에 착석했다. 수혁의 자리에 앉은 사람은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성이었다.

“후배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일송전자 전무로 일하고 있는 고병수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병수는 자리에 일어나 인사를 했다. 그러자 앉아있던 학생들도 자리에 일어나 맞 인사를 했다.

“제가 신입생일 때 선배들을 이런 자리에서 만났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흘러 제가 멘토로 초대받아 오게 되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병수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학창시절의 이야기와 입사했던 과정들을 말했고 학생들은 모두 눈을 반짝이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선배님은 다른 곳도 갈 수 있었을 텐데 왜 일송에 가셨습니까?”

“하하, 일송 말고도 여러 회사에서 입사제의가 들어왔던 것은 사실입니다. 저는 여러 선택지들을 두고 고민했는데 현재는 은퇴하신 일송기획의 인사담당자님께서 연락이 오셔서 일송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병수도 오랜만에 오는 모교에서 옛이야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그 때 명학과 그의 친구가 테이블로 다가오고 있었다.

“뭐야? 뭔가 하는 모양인데?”

명학의 친구가 연회장 테이블에 그릇들이 치워지고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

“어? 우리테이블에 앉은 사람은 우리 회사 아저씨 같은데?”

병수는 종종 명학의 집에서 그의 아버지와 식사를 하며 회사 경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래서 명학은 병수를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아저씨 여긴 어쩐 일이세요?”

명학은 테이블에 한달음에 가 한창 대화를 나누고 있는 병수에게 아는 척을 했다.

‘휴, 미친놈.’

수혁은 그런 명학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도 학교 행사와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저런 식의 언사는 예의에 많이 어긋나는 행동이기 때문이었다.

활기를 띠던 테이블은 금세 조용해졌다.

“아, 명학이구나, 한국대에 들어간 소식은 들었는데 같은 과 동문이 된 줄은 몰랐구나. 마침 네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는데 자리에 앉아라.”

“알겠어요.”

병수는 불쾌한 기분이 들었지만, 직장상사의 아들인 명학에게 함부로 할 수 없기에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명학은 자리에 앉으러 돌아가며 친구에게 아무 생각 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아시는 분이야?”

“우리 아버지 밑에서 일하는 분이셔.”

그들의 대화가 이어질수록 병수의 표정은 조금씩 굳어져 갔다. 이를 눈치챈 조장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질문을 했다.

“저 선배님, 현재 일하시는 일송전자는 우리나라에서 으뜸가는 회사인데 앞으로 추구하실 발전방안이나 비전은 무엇인가요?”

조장의 띄어주는 말에 기분이 좋아진 병수는 표정을 다시 밝게 하며 학생들에게 말했다.

“우리 회사에서 주력으로 밀고 있는 제품들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제가 이끌고 있는 경영전략팀은 일송을 위한 여러 가지 비전들을 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를 설명하기보단 여러분들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혹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병수는 혼자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학생들과 소통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대화 방식을 바꿨다.

- 76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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