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아까 약속한 건 다 까먹었어? 내가 졌고 싸움은 여기까지야.”
“하지만......”
“야, 그만 두자.”
중앙회 멤버들은 뭐라 항변하려 했으나 이내 그의 말에 순응하고 말았다. 혁수는 친구들을 말린 뒤 수혁에게 말을 건넸다.
“강수혁, 앞으로 우리는 너뿐만 아니라 너희 학교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겠다.”
“그래, 그래야 곽혁수답지.”
종욱은 그제야 긴장을 풀고 차분하게 상황을 지켜봤다.
“알았다. 나도 너희랑 있었던 일들은 모두 잊을게. 그런데 조건이 하나 있어.”
수혁은 수용적인 자세를 보였지만 조건을 하나 내세웠다.
“조건은 약속에 없었던 것 같은데....... 말해봐라.”
혁수는 찜찜했지만 들어보기로 했다.
“조성준하고 맞짱 한 번 뜨고 싶은데 괜찮을까? 생각해보니까 너희들은 이 일이랑 크게 상관도 없는데 저 자식 때문에 괜히 나선거 아니야?”
“뭐라고?!”
이야기를 들은 성준은 갑작스러운 수혁의 제안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혁수 말 못 들었어? 네가 이겼어 애들 데리고 그냥 돌아가!”
“내가 예전에 한 말 기억 안 나? 일 벌여놓고 남의 뒤에 숨는 쥐새끼 같은 행동 그만하라고 했잖아. 비겁하게 굴지 말고 나와라.”
성준은 당황하여 말을 쏟아냈지만, 수혁의 태도는 싸늘하기만 했다.
“맞는 말이네. 저 새끼는 항상 일만 벌릴 줄 알지 뭐 하나 책임지는 게 없었잖아.”
종욱도 옆에서 말을 거들었고 듣고 있던 혁수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성준, 네가 싸놓은 똥 치우느라 우리 애들이 많이 다쳤다. 가서 강수혁이랑 붙어봐.”
“뭐? 이제까지 클럽, 술 마시고 한 거 다 네가 말한 그 똥으로 마신 거야! 그리고 싸워서 너희가 져놓고 왜 나한테 화풀인데?”
성준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싸움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붙어봤자 자신만 크게 다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혁수는 다시 차갑게 쏘아붙였다.
“휴, 넌 어떻게 혼자선 아무것도 못하냐. 뒤에서 시키기만 하지 말고 이 일은 네가 직접 해결 해.”
“야 솔직히 너도 못 이긴 강수혁을 내가 어떻게 이겨? 그냥 날 패라 속이 풀릴 때까지. 이건 아니지. 안 해 아니 절대 못 해.”
“아이씨 진짜 말 많네, 실망이다 조성준. 남자새끼가 싸워서 지면 지는 거지. 뭘 그렇게 쫑알거려? 쪽팔리지도 않아? 그리고 너 때문에 우리 망신당한 거랑 애들 다친 거는 생각 안 하냐?”
성준의 비겁한 행동에 철민이 참지 못하고 일갈했다.
“쪽팔리면 네가 해보든가. 난 못해. 애들아 가자. 별 거지같은 소리를 다 듣겠네. 이 문제는 나중에 또 이야기하자고. 그리고 강수혁 이게 끝이 아니니까 안심하지 말아라.”
성준은 종명과 애들에게 눈짓을 하고 공사장을 빠져나가려 했다.
“보자보자 하니까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 새끼네? 가만 보니까 우리를 친구가 아니라 자기 대신 싸워주는 도구 정도로 생각한 모양인데?”
“쳐 맞고 싶냐? 왜 그렇게 병신같이 굴어? 우리가 사람을 잘 못 봤네.”
철민과 나머지 중앙회 멤버들은 나가려는 그들을 막아서고는 위협을 가했다.
“성준아, 어떻게 해?”
“닥쳐 새끼야!”
종명은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벌벌 떨기 시작했다.
성준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 머리가 멍해져서 어떤 사고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조성준, 넌 오늘 네가 벌인 일을 모두 책임지고 마무리까지 한다.”
혁수는 그에게 다가오더니 냉정하게 말했다.
“내가 왜? 난 원래 싸우는 역할이 아니잖아. 후, 혁수야. 내가 다시 판짤 테니까 오늘은 그냥 같이 돌아가자.”
성준이 계속 싸움을 피하려 변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짝하는 소리와 함께 주변은 조용해졌다.
혁수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그대로 뺨을 후려쳤던 것이다.
“하라면 해, 더 이상 우리 쪽팔리게 하면 죽여 버린다.”
“아, 알았어.......”
혁수가 코앞까지 다가가서 으름장을 놓자 성준은 벌벌 떨다가 끝내 모든 것을 체념하고 앞으로 나갔다.
“내가 언젠가 제대로 손봐준다고 했지? 준비됐으면 시작하자.”
수혁은 성준이 오자마자 바로 몸을 풀고 싸울 준비를 했다. 그런데 그 순간 퀘스트 창이 활성화되었다.
‘히든 퀘스트? 되게 뜬금없네.’
수혁은 의아했지만 무슨 퀘스트인지 궁금하여 내용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히든퀘스트가 발동되었습니다. 조성준과의 질긴 악연을 정리하고 모든 일을 마무리 하십시오.>
‘어플이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드디어 이놈과 끝을 보겠구나, 잘됐네.’
그는 망설이지 않고 퀘스트를 수락했다.
“수, 수혁아. 내가 진짜 미안하다. 만약에 이번 한 번만 용서해주면 진짜 다 그만둘게, 아니. 자퇴하고 네 눈앞에서 꺼져줄게. 제발 부탁이다. 딱 한 번만 기회를 줘라.”
판이 깔아지고 싸움을 목전에 둔 성준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빌기 시작했다.
“기회? 말 같지 않은 소리는 그만하고 몸이나 풀어 새끼야. 그리고 네 애들한테 쪽팔리지도 않아? 그렇게 있는 척 센 척 다하더니, 꼴이 그게 뭐냐? 한심한 새끼.”
“하하하 강수혁, 만약에 날 건들면 무사하지 못할걸? 우리 꼰대한테 말하면 넌 바로 끝이야. 그리고 학교도 내 편인데 내가 뭐가 무섭겠어? 야, 해볼 테면 해봐.”
아무리 빌어도 상황이 변할 가망이 없어 보이자 성준은 갑자기 표정을 싹 바꾸며 허세를 부렸다.
“와, 진짜 할 말이 없다.”
“저런 놈이 무슨 휴, 머저리 같은 새끼.”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중앙회 멤버들은 성준의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느라 잠시 멈칫했던 수혁은 대꾸도 하지 않고 그의 입을 있는 힘껏 후려쳤다.
“으아악!”
커다란 충격으로 인해 입안이 그대로 다 터진 성준은 고통으로 인해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했다. 흘러나오는 피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이도 몇 개 부러진 것 같았다.
“내가 개소리 하지 말라고 분명히 경고했지? 넌 오늘 죗값 다 치러야 되니까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그 뒤 수혁은 감정 없는 표정으로 성준을 구타하기 시작했다.
그는 고개를 숙이며 입을 감싸고 있는 성준의 등을 팔꿈치로 찍어 넘어뜨린 뒤 인정사정없이 복부와 다리 등을 가리지 않고 걷어찼다.
“제발 살려줘…….”
성준은 몸을 웅크리고 도움을 요청하다가 그대로 실신했다.
수혁은 기절한 것을 확인한 뒤에도 한동안 구타를 멈추지 않았다.
“수혁아,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아. 죽겠다 그러다가.”
종욱은 뒤에서 끌어안으며 만류했다. 그리고 상황을 지켜보던 혁수는 종명을 쳐다보며 말했다.
“야, 네가 조성준 병원에 데려가라. 친구니까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그럼 너희는? 너희도 친구잖아.”
“저런 놈은 더이상 우리 친구가 아니야. 저 자식 깨면 네가 전해. 다시는 우리랑 어울릴 생각하지 말라고.”
‘이런 젠장,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라고....... 앞으로 난 어떻게 해야 돼지?’
종명은 성준이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된 것을 깨달았다.
그는 더이상 성준과 엮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혁수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강수혁, 김종욱. 다 해결된 거 같으니까 먼저 간다. 너희도 친구 챙겨서 조심히 들어가라.”
종욱과 수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중앙회 사람들은 바로 자리를 떴다.
“휴, 잘 끝나서 다행이다. 우리도 그만 갈까?”
경현은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는지 스스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조심해, 그렇게 함부로 움직이면 안 돼.”
수혁은 깜짝 놀라며 경현을 부축하려 했다. 그러나 그는 괜찮다는 손짓을 했다.
“아, 어차피 배종명이랑 애들한테 맞은 거라 어디 부러지거나 그러지는 않은 것 같아. 병원 갈 것 없이 며칠 푹 쉬면 될 거야. 우선 밖으로 나가자.”
“그래 수혁아, 어디 가서 좀 쉬자 이제.”
이야기를 듣던 종욱도 경현의 말에 동의를 했다.
“알았어.”
수혁은 이들과 함께 공사장 밖으로 나갔다. 그는 나가면서 종명과 아이들에게 말했다.
“너희들, 오늘은 일이 끝나서 그냥 넘어가지만, 경현이에게 했던 행동은 책임져야 할 거야.”
“정말 미안해, 수혁아! 우리는 정말 시킨 데로 했을 뿐이야.”
“맞아. 진짜 미안하다. 그리고 사실 우리도 피해자야.”
“피해자? 이것들이.......”
녀석들은 경현과 수혁에게 싹싹 빌었다. 심지어 몇몇은 우는 애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냉랭하기만 했다.
“수혁아, 그냥 가자. 더 이상 여기엔 있고 싶지 않아, 너희들도 그만 들어가.”
“경현아......”
“난 괜찮으니까 보내주자. 솔직히 좀 불쌍하잖아.”
경현은 그들을 동정하고 있었다.
“고마워 경현아, 우리가 반성할게. 정말 미안해.”
그들은 머리를 조아리며 고맙다고 말했다. 수혁은 놈들을 뒤로하고 친구들을 챙겨 공사장 밖으로 나왔다. 이들은 어느새 밤이 다 되어 캄캄한 밤길을 걸으며 대화를 나눴다.
“일이 끝나니 마음이 가볍긴 하네. 오늘은 다들 고생했으니까 일찍 쉬어.”
수혁이 먼저 말을 꺼냈다.
“조심해 수혁아, 조성준은 이렇게 끝낼 놈이 아니야. 이번 일을 계기로 분명 자기 아버지를 이용해서 너를 끌어내리려고 할 거야.”
종욱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점은 이미 감안하고 있었어, 그 부분은 내가 감당할 거니까 너희는 신경 쓰지 마, 각오는 돼있어.”
그는 태연한 태도로 애들을 안심을 시켰다.
“수혁아, 별일 없을 거야. 난 당연하고 이제까지 당했던 애들도 그동안 조성준이 했던 일에 대해 증언하면 학교에서도 널 함부로 건들 수 없을 거야.”
경현은 수혁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뭐, 거기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 아닐까 싶네, 우선 오늘은 이만 헤어지자. 잠깐 할 일도 있고 너희도 쉬어야 하니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 너무 고민하지 말고 일찍 집에 가서 쉬어.”
“알겠어, 너희도 가서 쉬어.”
수혁은 친구들을 택시 태워 보낸 후 고민에 빠졌다.
‘조성준을 처리했음에도 퀘스트 완료 표시가 뜨지 않은 걸 보면 아직 마무리해야 할 일이 남은 거겠지. 앞으로 어떡하지? 학교 선생들도 그렇고 내 편은 없는데....... 흠, 잘하면 학교생활은 여기까지가 될 수도 있겠다.’
수혁은 착잡한 마음이 들자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길을 걸었다.
그는 바로 집에 가기에는 마음이 심란하여 칸타빌레에서 잠시 쉬고 집에 들어가기로 했다.
걷다 보니 어느새 서점 앞에 도착한 수혁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우선 대책도 생각해보고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을 때를 위한 계획을 세워보자. 후, 이러다가 검정고시를 또 볼 수도 있겠는데? 차라리 이 기회에 돈을 많이 벌어 놔서 사업 밑천이나 만들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문을 열고 들어간 수혁은 서점이 잠겨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안을 살펴보니 불은 이미 켜져 있는 상태였다.
‘할아버지가 오셨나 보네.’
수혁은 곧장 사무실로 향했다. 문을 열어보니 평우는 혼자서 돋보기안경을 쓴 채 서책을 읽고 있었다.
“할아버지 계셨네요?”
“오, 수혁이구나. 내 마침 널 부르려고 했다. 우연히 괜찮은 고서를 발견해서 구매하고 오는 길인데 네가 좀 살펴주려무나.”
“아, 넵 바로 해드릴게요, 그전에 샤워 좀 하고 와도 될까요?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바로 해드릴게요.”
수혁은 양해를 구한 후 옷가지를 챙긴 뒤 샤워실로 갔다.
“녀석, 뭔가 얼굴이 어두운데? 무슨 일 있나?”
평우는 수혁의 안색이 어두운 것을 발견했다. 그는 고서를 한쪽에 치워두고 샤워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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