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어플이 켜지자 검은색 바탕에 커다란 문이 수혁의 눈앞에 나타났다.
<사용자 이름을 설정하시오.>
검은 문 앞에는 이름을 쓰라는 메시지가 담긴 창이 떴고 수혁은 덤덤하게 강수혁을 기입 했다. 이름을 기입 하자 문이 열리고 다양한 목록들이 뜨기 시작했다. 목록들이 뜸과 동시에 창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설정사항 이라고 표시된 창에는 특이하게도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라는 문구와 함께 나이를 설정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뭐, 여기다 설정하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건가?’
수혁은 믿기지는 않았지만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기로 했다.
‘언제가 좋을까? 수능을 보고 망치기 전? 아니면 인턴 후 취직이 안 됐을 때? 아니 좀 더 본질적
인 사건이 있기 전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그러다 그는 문득 자신이 왜 중간에 고등학교를 그만두어야 했는지를 떠올렸다.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때 전학 온 조성준이 떠올랐다. 원체 내성적인 그였지만 몇 안 되는 친구들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조성준에게 찍힌 이후 괴롭힘을 당하게 되었고 그나마 있던 친구들이 자신을 버리는 과정을 경험한 수혁은 학교를 그만두게 된 것이다.
‘그때만 생각하면 정말, 현재 내가 사람들의 눈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된 것은 다 조성준 때문이었지. 그리고 고교시절로 돌아가면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시는 것도 막을 수 있을 거야.’
괴롭힘으로 인한 충격으로 자퇴 이후 수혁은 정신과 진료를 받기 시작하였고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의 우울감과 대인기피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 상흔은 가라앉지 않았고 평생 그에게 굴레가 되어서 무엇을 하든 항상 위축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 열여덟 고2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게 최고일 것 같네.’
수혁은 열여덟 살로 나이를 설정하였고 확인버튼을 클릭했다.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수혁은 눈앞이 번쩍함과 동시에 의식을 잃었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확인 버튼을 눌러 어플이 작동되자 의식을 잃은 수혁은 긴 악몽을 꾸었다. 어렸을 때 괴롭힘을 당하던 자신의 모습과 무엇을 하든 항상 두려움과 위축된 마음으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던 그의 과거들이 꿈속에서 나왔다.
‘이것들은?’
수혁은 과거의 모습들이 영상처럼 펼쳐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열심히는 해보지만, 항상 기대에 어긋나는 안 좋은 결과가 반복되던 나날들이 영화 속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리고 잠시 후 수혁은 꿈속에서 깨었다.
‘여긴 어디지?’
고통스러운 기억들로 인해 슬픔의 눈물을 흘리며 눈을 뜬 수혁은 자신에게 익숙한 한 장소에서 눈을 떴다.
‘뭔가 많이 와본 곳 같은데?’
회귀한 시점이 6월 여름이라 속옷만 입고 누워있던 수혁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뭔가 익숙한데? 이 몸도 그렇고 정말 과거로 돌아왔는지 확인을 해볼까?’
자리에서 일어난 수혁은 눈앞에 보이는 화장실로 향했다.
“뭐야?”
수혁은 화장실에 들어가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보더니 화들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을 했다. 거울에 비친 수혁의 외모는 그의 기억 속 고등학생 시절과 똑같았다. 살이 옷 밖으로 비집고 나올 정도로 비대한 몸, 작은 키까지는 전생과 비슷하였으나 앳된 외모와 여드름투성인 얼굴은 과거 고교 시절 모습 그대로였다.
“설마?”
수혁은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화장실에서 나와 집 밖으로 나가 주변을 돌아봤다. 그곳은 과거 수혁이 살던 서울 달동네 옥탑방이 분명했다.
‘말도 안 돼.’
수혁은 혼비백산이 되어 집 안으로 들어와 달력을 찾아보니 고2때인 1998년이었고 날짜는 6월 말, 방학을 한 직후였다. 그의 고등학교는 다른 학교에 비해 비교적 일찍 방학을 했는데 그 이유는 학교 이사장이 최소 수업일 수만 채우면 남은 날은 모두 쉴 수 있게 학생들을 배려해줬기 때문이었다.
“진짜 돌아왔다. 대박이네. 하하하하”
수혁은 어플이 제대로 작동했다는 사실에 기쁨의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돌아왔으니 뭐부터 하면 좋을까?’
회귀에 성공한 수혁은 벅찬 심정을 누르며 고민을 하다가 우연히 방안에 뒹굴고 있는 성적표를 발견했다.
‘공부는 나와 거리가 멀었지.’
수혁은 민망한 듯 머리를 긁으며 성적표를 확인했다. 380명 중에 376등, 본인이 보기에도 민망한 그런 점수였다. 그는 원체 공부에 소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과거를 떠올리자 씁쓸한 감정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던 수혁은 방 안 책상 위에 놓인 핸드폰을 발견했다.
‘과거로 올 때 같이 넘어 온 건가?’
수혁은 어플의 작동을 위해 핸드폰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자 급하게 폰을 작동시켜 보았다. 핸드폰을 킨 수혁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보통 폰 화면의 우측 상단에는 배터리 충전 상황이 바 모양으로 표시되어있기 마련인데 수혁의 핸드폰에는 그 부분이 없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지?”
핸드폰을 키며 배터리 충전 상태에 대해 걱정을 하던 수혁은 뜻밖의 상황에 당황했다. 그 때 폰으로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이 번호를 과거 사람들 중 아는 사람이 없을 텐데?’
수혁은 의아해하며 문자 메시지의 내용을 살펴보았다.
[나, 조물주야. 보아하니 어플을 사용하여 과거로 돌아가는데 성공한 것 같네? 내가 응원 차원에서 핸드폰은 충전하지 않아도 계속 쓸 수 있게 설정을 해두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잘 쓰도록 해!]
수혁은 메시지를 읽고 난 뒤 바로 답장을 보내려 했으나 문자 발신자의 정보는 없는 상태였고 답장을 할 수 없게 되어있었다.
‘정말 고마워, 그나저나 정말 다행이다.’
수혁은 조물주에 대한 고마움 마음이 들면서 한 편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배터리 문제가 해결된 수혁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고민을 했다.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것은 큰 강점이야, 이 점을 잘 활용해서 돈을 많이 벌어볼까? 어쩌면 이 지긋지긋한 가난도 헤쳐 나갈 수 있을지 몰라.’
수혁은 방안에 보이는 낡은 가구들과 허름한 집안 내부를 둘러보며 생각을 했다. 부자가 될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들뜬 상태로 있던 수혁은 문득 조성준이 떠올랐다.
‘하, 생각해보니 2학기 개학까지 두 달밖에 남지 않았구나. 개학 후 얼마 안 돼서 조성준이 전학을 오고 지옥 같은 생활이 시작되었지. 그놈은 이전 학교에서도 말썽을 부렸던 유명한 양아치라 현재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놈이 아닌데 어떻게 하지.’
잠깐의 기쁨을 뒤로하고 우울감에 젖어든 수혁은 멍하니 방에 주저앉았다. 생각 없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그는 인터넷을 켜보았다. 그러나 1998년 대한민국에는 무선인터넷 기술이 활성화되지 않은 때라 인터넷은 연결되지 않았다.
‘하긴, 인터넷이 될 리가 없지. 어? 그럼 어플도 작동이 안 되려나?’
수혁은 다급해진 마음으로 급하게 어플을 실행해보았다.
“휴 살았다.”
다행히도 어플은 잘 작동되었다. 수혁이 어플을 켜자 많은 목록들이 나왔다. 수혁은 그 중 상태창이라고 표시된 항목을 클릭하였고 다양한 스텟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상태 창은 힘, 지능, 매력, 통찰력, 지혜, 운, 정신력 등으로 표현된 사용자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수치가 높은 것 같지는 않은데?’
수혁이 확인한 결과 그의 스텟들은 대부분 4 아니면 5로 표시되어 있었다. 한동안 스텟들을 확인하던 수혁은 화면 구석에 상태창 참고목록이라는 부분이 눈에 들어와 클릭을 해보았다.
‘어플 안에 여러 기능이 있는 것 같네.’
수혁이 참고목록을 클릭하여 열어보자 그곳에는 상태 창에 관련된 도움 사항들이 열거되어있었다. 도움 사항에 관한 내용을 읽던 수혁은 자신의 이목을 가장 끄는 항목을 클릭했다.
‘확실히 현재 상황에서 가장 궁금한 거긴 하지.’
수혁이 특정항목을 클릭하자 현재 인류의 평균 스텟 수치와 사용자의 스텟을 비교해보았을 때 어느 정도 수준인지 표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특정 스텟을 올렸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변화도 밑에 서술되어 있었는데 양이 너무 방대하여 다 읽지 못했다.
“성인들의 평균 스텟 수치가 15정도는 되구나, 인생이 왜 이렇게 흘러갔는지 이제 이해가 되네.”
수혁은 자신의 스텟들을 평균수치와 비교를 해보고는 답답한 듯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그는 비록 현재 나이가 아직은 성인에 이르지 못 했지만 평균에 한참 못 미치는 자신의 상황에 쓴웃음이 지어졌다.
‘어? 되게 중요한 내용 같은데?’
수혁은 다른 참고사항들을 쭉 읽고 있던 중 특정 문장을 발견했다.
<사용자의 스텟은 어플의 컨텐츠를 익히거나 현실 퀘스트를 수행함으로써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서를 찾은 수혁은 이어지는 참고사항의 내용을 읽어보았다.
‘자세히 읽어보자.’
수혁은 시간을 들여 문장들을 읽어보았다. 참고사항에 따르면 어플의 목록들 중에 향상이라고 표시된 부분이 있었는데 그곳을 클릭하면 상태 창과 마찬가지로 스텟들이 열거되었다. 그리고 그 중 향상시키고 싶은 스텟을 클릭하면 현실에서 내가 수행해야 할 퀘스트가 주어진다는 것이었다.
‘이거면 되겠어. 어플에 많은 기능들이 있는데 좀 더 살펴봐야겠다.’
해결책을 찾은 수혁은 다른 기능들도 확인하기 위하여 어플의 목록들을 살펴보다가 외부활성화모드라는 폴더를 발견했다.
‘뭐지 이건?’
폴더를 확인한 수혁은 호기심이 생겨 클릭을 했다. 그러자 그의 눈앞에 화면이 홀로그램처럼 떠서 보이기 시작했다.
“신기하다.”
수혁은 창을 손으로 더듬어 보다가 창의 내용을 확인해 보았다. 내용을 살펴보니 활성화모드 사용TIP이라는 문구가 화면에 떴고 수혁은 망설임 없이 클릭을 했다..
‘역시 보통 어플이 아니었어.’
수혁은 사용TIP의 내용을 확인했다. 요약을 하자면 수혁이 마음속으로 활성이라고 생각하면 이를 감지한 프로그램이 창을 뜨게 만든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퀘스트에 대한 알림과 스텟이 향상되었을 때 자동으로 표시되게 알림설정이 가능했다. 마지막으로 사용자가 종료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면 화면은 사용자의 시야에서 사라지게끔 설정되어 있었다.
‘굳이 스마트 폰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어지게 되다니 참 편리하다.’
수혁은 미소를 지으며 스마트 폰을 자신의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두었다. 그는 이 시대에 없는 제품을 굳이 가족들에게도 보일 필요도 없고 혼란만 불러올 거라고 판단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수혁이 한참 어플을 살펴보는 동안 어느새 밖에는 해가 져가고 있었고 곧 있으면 부모님이 퇴근하여 집에 들어올 시간이 되었다. 수혁의 아버지인 강선웅은 공사현장에 일이 있으면 매일 나가서 일을 했고 어머니인 정혜정은 부잣집 가정부로 일하고 있었다.
“나왔다 수혁아!”
선웅은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가득한 채 먼저 집으로 들어왔다.
“아버지….”
이전 삶에서 일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선웅을 회귀하여 만난 수혁은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수혁아, 무슨 일이야?”
선웅은 울고 있는 수혁의 모습에 놀라 말했다.
“아니에요, 아버지. 잘 오셨어요. 정말 보고 싶었어요.”
“녀석 참, 매일 보는데 왜 그러느냐?”
선웅은 영문 모를 소리를 하며 울고 있는 수혁을 안고 달래주었다. 그리고 곧이어 혜정도 집에 들어왔다.
“나왔어.”
혜정은 궂은일을 많이 하여 허리가 굽은 모습이 아닌 정정한 모습으로 수혁의 눈앞에 나타났다.
“엄마.”
수혁은 혜정을 보고는 말없이 그녀의 품에 안겼다. 혜정은 그런 수혁의 모습에 당황해하며 말했다.
“애가 무슨 일로 어리광을 피우지?”
“나도 모르겠어, 수혁이가 오늘 좀 이상하네?”
선웅과 혜정은 이전과 다른 수혁의 행동이 의아했다. 잠시 후 혜정은 저녁시간이 다 되자 음식을 만들러 부엌에 갔고 선웅은 옷을 갈아입으러 방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달라요, 열심히 해서 제가 호강시켜드릴게요.’
오랜만에 본 아버지와 전생과 달리 고생한 흔적이 거의 없는 혜정을 본 수혁은 스스로 다짐했다.
- 3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