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3화 소선은 항복을 결정하고, 동현은 소선의 결정을 받아들이며 그를 높게 대우해주려 하다.
소선이 헛웃음을 터뜨리자 주변 수하 장수들이 소선에게 말한다.
“폐하!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차지한 형주이고 세운 나라입니까?! 강하로 어떻게든 도망을 쳐야합니다!”
“…….”
“폐하!”
소선이 의욕을 잃은 듯한 모습에 수하들이 그런 모습을 감지하고는 절대로 항복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런 모습을 본 동현이 소선에게 외친다.
“아직 결정을 못한 것 같으니 시간을 주지! 시간은 사흘(3일)이다! 사흘 안에 답이 없으면! 난 그대들이 계속 저항한다는 줄 알고 공격을 할 것이니 그리 알라!”
동현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사훈과 함께 군사들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소선의 군사들이 있는 곳을 빙 두른 채 포위를 한 형태로 영채를 세웠다.
쉽게 말해서 소선의 앞에는 동현의 군대가 가로막고 있고 뒤에는 강릉성이 있으니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소선도 그제야 어쩔 수 없다는 듯 영채를 세우고 고민에 빠졌다.
그런 소선에게 신하들은 소선을 찾아와 그를 설득했다.
“폐하. 절대 포기하셔서는 안 됩니다! 얼마나 고생해서 여기까지 왔으며 나라를 세우고 황제가 되신 만큼 이 영토는 폐하와 많은 신하들의 피와 땀으로 일구어진 영토니 말입니다!”
“영토라…….”
소선의 머리에서 과거의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는 밑의 수하에게 술을 가져오라고 말을 한 후 혼자 술 한 잔을 기울이며 하루를 뜬 눈으로 지새웠다.
그리고 다음 날 밤.
소선은 밤새 혼자 술을 마셨기에 늦게 일어난 소선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 지필묵을 가져오라고 하더니 무언가를 쓰기 시작한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소선은 자신의 신하들을 막사로 모두 불러 모았다.
“모두 모였는가?”
“예! 폐하!”
소선이 모두 군을 모았다고 말을 하며 신하들을 모아 무언가를 말하려는 그때, 막사 밖을 지키고 있던 군사가 들어와 군례를 올리며 말한다.
“폐하! 형남으로 갔던 세작이 왔습니다!”
“음? 지금 고구려 군에 포위되어 있어서 이곳에는 절대 올 수 없다. 어떻게 들어온 것이냐?”
“그게… 고구려 군이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길을 열어주었다고?”
“예. 저는 사실 이곳에 오려다 생포당하여 고구려 군에 잡혔었는데… 고구려 군사들이 저를 잡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제가 어떤 소식을 폐하께 전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좋은 소식이 아닐 것이니 보내준다고 말입니다.”
“…….”
소선은 세작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그것은 같이 있던 신하들도 마찬가지였는데 세작이 정적을 깨며 말한다.
“그리고… 고구려 군사들의 말대로 좋지 않은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
“형남4군이 모두 함락 되었다는 겁니다. 이제 남은 곳은… 강하뿐입니다.”
“하아… 김동현 녀석의 말이 사실이었구나.”
“그렇습니다. 폐하. 크흐흑…….”
세작은 자신의 나라 운명을 직감한 듯 눈물을 흘렸다.
소선은 그런 세작을 보더니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너는 이만 나가 보거라. 내 잠시 여기 있는 신하들에게 할 말이 있어서 말이야.”
“알겠습니다.”
세작은 그렇게 막사를 나갔다.
그렇게 세작이 나가는 것을 확인 한 소선은 여러 장수와 신하들에게 말한다.
“경들은 들으라.”
“예, 폐하.”
“나는 이번 상황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해보려고 머리를 굴려보았지. 허나 도무지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다. 굳이 남은 방법 하나라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것이지…….”
“…….”
“허나 나는 그대들에게 죽음을 강요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짐은… 크흡… 항복을 하기로… 결정했다.”
소선이 눈물을 보이며 어렵게 말을 꺼내자 신하들은 무릎을 꿇으며 슬퍼한다.
그러면서 무장인 장수들은 절대 항복은 아니 된다며 외친다.
“폐하! 소장들이 폐하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그러니 어떻게든 이곳을 탈출하시여 다른 곳에 나라를 세우시옵소서!”
“그렇사옵니다! 폐하! 소신들이 계속해서 폐하를 돕겠습니다!”
피를 토하는 듯한 장수들의 말에 소선은 눈물을 흘리며 대답한다.
“그대들의 충성심에 고맙다. 허나 나 하나로 인해 모두를 죽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 항복하자…….”
“폐하!”
“미안하다. 모두들 나를 따라주었는데… 이토록 못난 군주를 말이야…….”
그렇게 소선은 항복하자는 말을 하고는 여러 신하들과 함께 한 동안 눈물을 멈추지 못하고 흘렸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사신을 보내도록 하게. 항복을 하겠다고 말이야.”
“예. 폐하…….”
“그리고 나를 위해 여전히 싸워주고 있는 강하성에도 소식을 알리게.”
“예.”
그렇게 소선은 항복을 결정했다.
그리고 자신이 막사 안에 앉아 있던 높은 자리에서 내려오는데 한 장수가 앞으로 나와 말한다.
“폐하의 말씀대로 저희는 모두 항복할 것입니다. 다만…….”
“……?”
“고구려 놈들이 폐하를 홀대한다면 저희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이, 이보게!”
“저희는 평생 폐하를 위해 충성을 다해 싸워왔습니다. 영원히 폐하의 신하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항복을 해도 저희가 모신 주인이니 영원히 폐하시라는 겁니다.”
“…….”
“폐하께서 한 나라를 다스린 군주였던 만큼 고구려에서 우리가 항복한 것을 받아들여 잘 대해줄 것이라 생각하지만 만일 폐하를 홀대하고 막 대하는 사람들이 나온다면… 저희는 고구려에게 진심으로 항복하지 않고 다시 군을 일으킬 겁니다. 그리고 다시 폐하를 옹립할 겁니다. 저희가 실패하는 한이 있더라도 말입니다.”
한 장수가 그렇게 말을 하자 옆에 있던 장수들도 매우 옳은 말이라며 동조한다.
그런 장수들의 모습에 소선은 속 안에서 무언가 크게 울컥하지만 애써 참으며 말한다.
“정말 나를 위해 끝까지 충성을 다해줘서 고맙네. 만약 그렇게 해서 내가 다시 높은 자리에 올라간다면 그대들을 반드시 중히 쓸 것이야. 헌데, 고구려에서 나를 홀대하지 않고 오히려 매우 신경을 써주고 대접을 해주면 어찌 할 것인가?”
소선의 물음에 장수들이 대답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폐하께 충성을 하면서도 고구려에도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 말은… 고구려를 위해 일하겠다는 소리구만…….”
“소장들은 폐하를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가장 최우선은 폐하의 안전이지요. 허나, 우리가 고구려에 항복을 하고 나면 폐하께서 가진 그 신분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저희에게는 영원한 폐하이시지만 말입니다.”
“…….”
“그래서 폐하의 안전이 보장되면 고구려에도 충성을 해 공을 세운 뒤, 폐하께서 적어도 작은 지역이라도 다스릴 수 있도록 고구려의 태왕에게 상소를 올리겠습니다.”
장수들의 말에 소선이 매우 놀란다.
“끝까지 내 생각만 해주는가… 자네들 스스로도 챙겨야지.”
“저희야 공을 세우면 자연히 포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니 심려치 마십시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희에게는 폐하께서 가장 잘 되는 것이 최우선 순위입니다.”
충성스러운 장수들의 말에 소선은 다시 한 번 크게 감동을 받았다.
소선은 계속해서 자신에게 충성하는 신하들을 보며 말한다.
“내 그대들의 충성에 정말 고마움을 느낀다. 그리고 미안하다. 나 때문에 이 나라를 잃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제 그대들은… 고구려 사람으로 고구려에 충성하며 살아라. 나에 대해서는 소홀히 해도 괜찮다.”
소선의 말에 다시 한 번 신하들은 눈물을 흘렸고 그렇게 소선과 신하들은 눈물로서 하루를 보냈다.
다음 날 아침.
“결정한 것인가?”
“예. 여기 항복을 뜻하는 서찰을 가지고 왔습니다. 곧 이리로 오실 겁니다.”
동현은 서찰을 받아 읽어보고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한다.
“양나라 황제 소선의 뜻을 받아들이지. 반시진(약 1시간)뒤에 이곳으로 오라고 하게. 정식 항복 절차를 밟을 것이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아, 다만 그대들의 황제에게는 함벽여츤의 1등 항복 의식은 하지 않겠다고 전하게. 2등의 항복 의식인 삼배구고두례로 할 것이라고 말이야. 이 예법에 대해서는 그대들도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하네.”
“물론입니다. 그럼…….”
그렇게 소선의 수하가 물러가자 사훈이 옆에서 묻는다.
“대막리지.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뭔가?”
“왜 소선에게는 1등 항복 의식인 함벽여츤으로 하지 않는 것입니까? 우리의 숙적인 서토의 오랑캐인 만큼 함벽여츤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동현은 사훈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내가 소선이 왕세충과 같은 자였다면 그리했을 것이나 소선은 아닐세.”
“어째서 그렇습니까?”
“소선은 우리 고구려가 이 형주를 치기 전 형주를 지배하고 있던 자이네. 비록 모든 형주 지역을 차지 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선정을 베푼 덕에 백성들도 매우 좋아하고 있는 상태였지. 헌데 그런 소선에게 함벽여츤 1등 항복 의식을 하라고 해보게. 이 형주의 민심이 어떨 것 같나?”
“아…….”
“백성들은 물론이고 이름 있는 무관, 문관들이 크게 반발할 것은 자명한 일. 그러자면 우리는 소선을 힘으로서 무릎을 꿇리는 것이 아니라는 모습을 최대한 보여주어야 하네. 소선이 우리 고구려의 신하들이 입는 관복을 입고 삼배구고두례를 하되 그가 이 나라의 한 때 지배자였다는 것을 동시에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지. 고구려의 신하가 되는 것을 보여주고 이 나라의 한 때 지배자였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주고 대우해 주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이 형주의 사람들도 납득을 할 것이며, 그 신하들도 반발하지 않을 것이야.”
“거기까지 생각하셨다니… 대단하십니다.”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는 것일세. 다만 자네에게 딱 한 가지만 충고를 해주고 싶군.”
“하시옵소서.”
동현은 앞에 놓은 차 한 잔을 마시며 대답한다.
“자네는 전쟁에 대한 계책이나 나라를 흔드는 계책에 대해서는 매우 능하네. 그건 나도 자네를 따라 갈 수 없어. 허나 딱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너무 그 계책에만 몰두하여 생각한다는 것이야.”
“좀 더 설명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쉽게 말하자면 자네는 우리 고구려가 승리하는 것만을 생각한다는 것일세. 그게 옳은 생각이기는 하지만 나는 자네와 다르게 한 가지를 더 생각한다네.”
“……?”
“상대방의 입장.”
“상대방의 입장 말씀입니까?”
“그렇다네. 상대가 항복했는데 무슨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아. 우리가 정복하려고 하는 곳에는 여러 가지 명분이 있지. 우리 고구려에 반발을 한다던가, 아니면 겉은 우리 편이지만 검은 속내를 지녔다던가… 허나 그 나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것은 당연해. 그 나라를 다스리는 자가 폭군이 아니라면 자신의 나라를 강하게 만들려고 하는 시도이지.”
“물론 그럴 것이옵니다.”
“그러는 와중에 그 뜻이 군주와 신하, 백성들이 모두 일치가 되는 경우가 있어. 그런 경우를 성군이라고 하지. 헌데 그 나라를 우리가 점령했단 말일세. 그럼 어찌할 것인가?”
동현의 말에 사훈이 대답한다.
“오늘 대막리지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들을 잘 구슬리는 방법을 써야겠군요.”
“맞아. 내가 자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나라마다 상황이 다르니 그 나라의 입장과 상황을 잘 보라는 것이야. 쉽게 말해서 깊게 들여다보라는 말일세. 그리고 바로 앞에 것만 보지 말고 멀리 생각을 하도록 해보게. 이번 일도 그래. 우리가 이 형주를 점령한 뒤 함벽여츤 1등 항복 의식을 시행했다면 이 형주가 어찌 되었을 것 같은가?”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대막리지. 어리석은 소인을 깨우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 말을… 나는 그저 자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충고 한 마디를 해주는 것뿐일세. 자네는 이 나라 전체를 경영할 재상임과 동시에 전략가야. 물론 내가 있겠지만 많은 일들을 자네에게 맡기겠지. 그러니 앞으로는 내 말을 잘 유념해서 행동하도록 해 봐. 알겠나?”
동현의 말에 사훈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다.
“예. 대막리지. 명심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얼른 준비를 해야지. 삼배구고두례를 내가 태왕 폐하를 대신해서 받는 것이니 만큼 이곳에서 준비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하게. 최대한 크게 말이야.”
“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우리의 신하가 되었다고는 하나 한 나라의 군주이며 백성을 사랑했던 사람인만큼 그만한 대우를 해줄 것이다. 그리고 형주 백성들에게 보일 것이야. 그가 오면 삼배구고두례를 받으면서 상석에 앉을 수 있도록 해라.”
동현의 말에 사훈은 그러겠노라 대답하며 막사를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