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1화 사훈, 왕세충과 소선을 무너뜨리기 위한 계책을 동현에게 고하다.
사훈은 동현의 설명을 주의 깊게 경청한다.
“왕세충은 소선과도 붙어봤고 우리 고구려 군과도 붙어봤지. 그래서 양쪽 다 어느 정도 전력인지 파악을 하고 있을 것이야. 특히 소선과는 우리와 전쟁에서 지고 익주로 도주하면서 싸웠을 때이니만큼 꽤 오랜 기간 전쟁을 한 걸로 알아. 그러니 소선이 가지고 있는 전력에 대해서는 훨씬 잘 알겠지.”
“예. 저도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습니다.”
“당시 첩보에 의하면 왕세충은 도망치는 와중에 소선에 큰 피해를 입혔다고 들었네. 허나 그것은 왕세충도 마찬가지였지. 우리에게 피해를 입은 것과 더불어서 소선에게도 큰 피해를 입었는데, 당시 왕세충은 소선에게 얼마나 혼이 났으면 익주로 도망칠 수 있었던 것이 자신에게 있어서 큰 대운이었다는 말까지 했다고 하더군.”
“그렇군요.”
“헌데 그런 소선이 우리 고구려 군에게 형편없이 밀리고 있어. 현재까지 우리 고구려 군에게 상대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말이지. 우리 고구려 군이 오기 전… 왕세충이 소선과 동맹을 맺은 것은 아니지만 자신은 이밀과 싸우고 있었기에 소선과는 적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고 들었네. 그리고 그것은 소선도 마찬가지였어. 과거 오나라 손권이 다스리던 동오 지역에서도 자신들의 세력을 위협하고 있으니 말이야. 거기다 당시 소선은 형주를 차지한지 얼마 되지 않아 시간도 필요했고 말이지.”
동현의 말에 사훈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예. 그 점에 대해서는 소인도 알고 있습니다. 다만 소인은 왕세충이 기회주의자라고 생각하여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그렇지. 그건 자네 말이 맞아. 허나 현실주의자이기도 하네.”
“현실주의자…….”
“그렇다네. 그는 자신이 불리한 것에는 일단 뜻을 감추고 철저하게 숨기는 사람이지. 그러면서 그 불리함을 어떻게 타개할까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말이야. 그랬기에 잡초처럼 살아남아 익주를 자신의 기반으로 다지지 않았나?”
“…….”
“좀 더 두고 보게. 그는 말만 소선에게 원군을 보낸다고 할 뿐 절대로 원군을 보내지 않을 테니 말이야.”
사훈은 동현의 확신에 불안하다가도 여태까지 동현의 예측이 한 번도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리며 대답한다.
“대막리지께서 그렇게 결정을 하셨다면 알겠습니다. 허나…….”
“……?”
“혹시 모르니 만일에 대한 대비는 해놓겠습니다.”
“하하하! 역시 자네는 준비성이 철저한 사람이야! 그래! 그렇게 하지. 1만의 군사를 왕세충이 원군으로 올지 모르는 길목에 두도록 해.”
“알겠습니다. 대막리지!”
그렇게 동현은 결정을 내리며 한동안 막사에서 사훈과 좀 더 이야기를 나눈 후 잠자리에 들었다.
며칠 뒤.
“대막리지! 저 사훈입니다!”
“들어오게!”
동현의 허락에 사훈이 급히 막사를 들어오며 인사를 한다.
“자네… 왜 이리 급하게 들어온 것인가? 숨 좀 돌리게.”
“아, 예… 허억… 헉! 좀 전에 들어온 첩보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
“예. 모든 것이 대막리지의 예상이 맞은 듯합니다.”
“왕세충이 원군을 보낼 기미가 없나보군?”
“그렇습니다. 오히려 남쪽으로 군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남쪽이라면… 교주 지역 쪽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동현은 사훈의 말을 듣더니 피식 웃으며 말한다.
“역시 왕세충이야. 기회주의자이면서 지극히 현실주의자다워.”
“그렇습니다. 소인도 이제 왕세충의 의도를 알겠습니다. 익주 하나로는 이밀과의 싸움이 장기화되면 많은 국력이 소모되고 내정이 흔들리니 교주 지역을 정복하여 많은 재물을 얻어 국력이 급격히 소모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 아닙니까? 군사를 동원하지 않을 때는 빠르게 내정을 안정시킬 수도 있고 말입니다.”
“제대로 봤군. 맞네. 과거 유비의 밑에 있던 제갈량은 익주 지역에서 위나라를 치기 위해 5차례에 걸쳐 북벌을 했지. 허나 제대로 성공하지 못해서 많은 국력을 소모했는데 몇 년에 걸쳐 겨우 국력을 회복한 뒤 다시 북벌을 하지 않았나? 왕세충도 그와 같은 경우와 같다고 보면 될 것이야. 그래서 그 자는 교주를 필히 차지하려는 것이지.”
“예. 대막리지.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
“교주 정복을 이끄는 장수가 흥미롭습니다.”
“그래? 누군데?”
“독고수덕이라는 자입니다.”
“독고수덕이라면… 그 아버지가 독고기였던가?”
“그렇습니다. 대막리지. 제가 알기로 왕세충에게 큰 원한을 품고 있는 자라고 들었습니다.”
동현은 사훈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대답한다.
“그렇다면 뻔하군. 가족들은 왕세충에게 잡혀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명령을 따르는 것이겠지. 내가 듣기에 그 독고수덕이라는 자는 아버지를 잃은 이후 유독 가족들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다고 들어서 말이야.”
“그렇습니다. 대막리지. 그래서… 저희가 그것을 이용해보면 어떻겠습니까?”
“그래? 좋은 계책이 있는가?”
“일단 익주로 갈 믿을 만한 자를 선발하여 독고수덕의 가족들을 우리 쪽으로 빼내오는 겁니다. 그리고 독고수덕이 교주를 차지하면 반란을 종용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독고수덕 곁에 붙어 있는 왕세충의 눈들을 모두 죽여야겠군.”
“그렇습니다. 허나 이 일이 실행되기 전에 먼저 독고수덕을 만나는 것이 순서입니다.”
“음… 왕세충의 눈을 피해 그 자에게 들어가자면 조심해야 한다.”
“그래야지요. 그래서 저는 이 일에 특출난 장수를 보내고자 합니다.”
“음? 그런 장수가 있었나?”
“예. 대막리지. 왕고중이 있지 않습니까?”
“왕고중?”
“예. 왕고중은 과거 산적이었습니다. 헌데 그 모습을 잘 감추면서 살아갔습니다.”
“그거야 당시 고건무 태제 전하께서 그들을 먼저 발견했기 때문이 아닌가?”
동현의 말에 사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것도 맞는 말씀입니다만 그 전까지 꽤 오랫동안 산적 생활을 했습니다. 헌데 잘 잡히지도 않고 살았었지요. 물론 이것이 왕고중의 과거에 대한 큰 치부일 수는 있겠으나 저는 그 속에서도 왕고중의 장점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
“왕고중은 산적 일을 하면서도 사람들 속에서 잘 섞여 들어갔다는 것 말입니다.”
“사람들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라…….”
“예. 제가 백암성에 있을 때 왕고중과 종종 술 한 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술이 좀 취했는지 왕고중이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랬는가?”
“예. 당시 너무나도 먹고 살기가 힘들어 산적질을 해야 했다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산적질을 끝내고 자신이 이끄는 사람들에게 돌아왔을 때는 마음이 정말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허나 자신의 사람들을 먹여 살리려면 그 방법 밖에 없었다고 하면서 자신이 사람들을 모두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답니다.”
“왕고중이라면 능히 그럴 자이지. 책임감이 강한 자니깐 말이야.”
“그렇습니다. 그와 더불어 또 하나 왕고중이 고백한 것이 있는데…….”
“……?”
“주변에 산적들이 자신들을 공격하지 않을까 그곳 주민으로 위장하여 직접 들어간 적이 있다고 합니다.”
동현은 사훈의 말에 매우 놀란다.
“그것이 정말인가?”
“예. 왕고중의 수하에게도 물어보니 그 이야기가 정말인 것 같습니다. 자신이 스스로 몸을 던져서 적대적일 수 있는 산적들의 소굴로 직접 들어가 그곳의 사정을 모두 알아내고 나왔다고 합니다.”
“허어… 그래서 이번 일에 자네는 왕고중이 적임자라고 했던 것이군.”
“그렇습니다. 대막리지.”
“하지만 이번 일은 꽤 위험한 일인데… 독고수덕에게 갔다가 그 자가 허락하면 익주에서 그 자의 가족들도 빼내 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건 그렇습니다만 왕고중 말고는 적임자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동현은 사훈의 말에 잠시 고민하고는 묻는다.
“하지만 왕고중은 지금 백암성에 있을 것이다. 오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려.”
“그것은 염려 마십시오. 제가 미리 서찰을 보내두었습니다.”
“뭐라?”
“서찰을 보았다면 금방 말을 달려 올 것이니 며칠만 기다리십시오.”
“백암성에서 맡은 임무는 어찌하고?”
“그곳은 왕고중에게 말하여 믿을 만한 수하에게 맡기라고 했으니 괜찮을 겁니다.”
“이 사람… 내가 이렇게 물을 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로군?”
“제가 모시는 주인의 생각을 자세히는 몰라도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훈의 말에 동현은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이미 왕고중에게 서찰을 보냈다니 어쩔 수 없구만. 왕고중이 올 때까지 며칠만 기다렸다가 왕고중에게 의중을 물은 후 그가 허락하면 자네의 계책대로 움직이는 것으로 하지.”
“예! 대막리지!”
동현과 사훈은 그렇게 계속 이야기를 나누는데 막사 앞으로 한 군사가 와 고한다.
“대막리지! 형남을 병합하러 갔던 좌군사로부터 서찰이 왔습니다!”
“오! 그래? 이리 주거라!”
동현은 고경에게서 서찰이 왔다는 말에 바로 펼쳐서 읽어본다.
그리고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는데…….
“하하하하!”
“……?”
“역시… 역시 좌군사 고경이로다! 이걸 보게!”
동현이 서찰을 건네자 사훈은 그 서찰을 받아 내용을 읽어보는데 표정이 확 밝아진다.
“역시 좌군사입니다. 그리고 역시 단석한 형제의 용맹도 대단하군요.”
“그래! 아주 잘해주고 있어! 벌써 무릉과 영릉, 계양까지 차지했다니 말이야! 이제 남은 것은 장사뿐이군!”
“그렇습니다. 허나 형남 중 그곳이 가장 차지하기 어려운 곳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그곳은 형주 지역에서 무역을 자주하는 곳이고 상업의 중심지로 불리기도 하는 곳이니 말이야. 분명 방비를 철저히 해 두었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벌써 3군을 차지한 것만 봐도 큰 성과입니다.”
“그래. 맞아. 하하하! 이 소식을 소선이 들으면 어찌 반응할까? 성문이 닫혀있고 우리 고구려 군에 포위되어 있는 만큼 소식을 원활하게 듣지 못할 터… 만약 이 소식을 듣게 되면 바로 무너져 내릴 것이야.”
“그럴 것 같습니다. 음… 대막리지. 소인에게 좋은 계책이 하나 생각났는데…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오! 역시 사훈이군! 말해보게!”
“제 계책에 속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한 번 시도를 해 볼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위험성이 큰 계책이 아니라면 내가 들어줄 것이니 얼른 말해봐!”
동현의 재촉에 사훈은 자신의 계책을 동현에게 설명한다. 동현은 그 계책을 듣더니 매우 놀라며 대답한다.
“역시 사훈이로군. 그런 계책을 내다니… 이 계책은 반드시 성공 할 것이야.”
“제 말씀을 잘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지금 바로 준비에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리하게. 바로 준비해!”
“예! 대막리지!”
동현은 사훈의 계책을 듣고는 매우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허락했다.
그러자 사훈은 동현에게 인사를 한 후 빠르게 막사를 나갔고 자신의 막사에 돌아오자마자 자신의 직속 수하를 불러 무언가 명령을 내린다.
며칠 뒤, 동현과 군사들은 강릉성을 여전히 위장 공격을 했다.
그런데 그 때.
“와! 와!”
“고구려 군을 공격하라!”
고구려 군 후방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무슨 일이냐?!”
“태군사! 후방이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뭐라? 누구에게?”
“소인들도 잘 모르겠습니다. 허나 딱 하나 알 수 있는 건 소선의 깃발이 꽂혀 있었습니다. 아마 원군이 온 것이라고 생각 됩니다.”
“이런… 일단 성을 공격 중인 군사들을 잠시 뒤로 물린다. 그리고 후방의 적부터 처리하도록 하자!”
“예! 태군사!”
그렇게 성의 포위는 잠시 느슨해졌다.
성 위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소선은 매우 기뻐한다.
“오! 다른 성들에게서 원군이 온 것 같군!”
“저도 그렇게 보입니다.”
“좋아. 저들이 무사히 이 성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주변 고구려 군에 집중 사격을 하도록 해라!”
“예!”
그렇게 고구려 군이 잠시 혼란한 틈을 타 소선의 깃발을 꽂고 고구려 군 후방을 공격했던 군사들은 어렵게 강릉성 안으로 들어간다.
성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군사들을 이끌고 온 듯 보이는 한 장수가 소선이 보이기에 예를 갖추어 인사를 한다.
“참으로 고생이 많았도다. 장사에서 오는 길인가?”
“그렇습니다! 폐하! 장사성의 태수님께서 폐하가 위기에 처했다는 말을 듣고 제게 3천의 군사를 주어 급한 위기를 풀어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랬는가? 장사성에서 원군을 보낼 여력이 되었나보군! 참으로 고맙네. 이번 일이 잘 해결되면 내가 장사성의 태수에게 꼭 답례를 하도록 하겠네!”
“예! 폐하!”
소선은 자신에게 원군이 왔다는 소식에 매우 기뻐하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논의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