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0화 소선은 왕세충에게 도움을 청하고 왕세충은 그 도움을 이용할 생각을 하다.
소선의 말없는 고개 끄덕임에 신하는 사람을 시켜 은밀히 익주의 왕세충에게 사람을 보냈다.
“고구려 군이 형주를 공격해서 위기에 몰렸다?”
“예! 폐하! 폐하께서 도와주십시오. 도와주시면 무릉과 영릉을 드리겠습니다!”
“말로만?”
“조약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문서에 표기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왕세충.
그는 자신이 옹립하던 황제를 동현에게 빼앗기고 난 뒤 익주로와 기반을 다졌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세력을 다지자 자신도 소선처럼 스스로 황제를 칭하여 나라를 세웠는데 나라를 세운지 얼마 되지 않아 소선에게서 사람이 온 것이다.
“일단 내 신하들과 잠시 논의를 해본 뒤에 결과를 알려줄 테니 잠시 객관에 가 쉬고 있거라.”
“예. 폐하. 되도록 빨리 결과를 내주셨으면 합니다.”
“알겠다.”
그렇게 소선이 보낸 사람이 잠시 대전을 나가자 왕세충이 신하들에게 묻는다.
“모두 들었겠지?”
“예. 폐하.”
“어찌 생각하는가?”
“소신은 도와주는 것에 반대입니다.”
“어째서?”
“지금 고구려는 떠오르는 태양입니다. 하북 지방을 모두 점령한 것은 물론이고 형주의 형북 지역 또한 점령할 것이 기정사실이지요.”
“허어, 고구려가 그토록 강하다니…….”
“소인이 알아보니 소선 군이 계속해서 밀리는 중이라 합니다.”
“음…….”
“폐하,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북쪽에 있는 이밀과도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쪽에도 적을 둔다면 양쪽에 적을 두는 셈입니다. 저희가 지금 내실을 다지고 병력이 충분하다고는 하나 양쪽으로 군이 밀고 들어온다면 큰 낭패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 신하의 말에 왕세충은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대답이라는 듯 묻는다.
“하지만 저들이 무릉과 영릉을 준다고 하지 않은가? 형남의 4군 중 2군을 준다는 것이야. 우리는 저 형주가 꼭 필요해. 그런데 마다할 필요가 있을까?”
왕세충이 이렇게 말을 하자 그 신하는 바로 반박한다.
“폐하. 생각을 해보십시오. 우리가 이 익주에 자리 잡은 과정을 말입니다.”
“과정?”
“예. 폐하. 우리가 이 익주에 자리를 잡을 때 고구려 군의 추격을 피해 간신히 이곳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이동을 할 때 소선이 있는 형주를 거쳐서 와야 했지요. 그때 그 어려움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으음…….”
“그 당시 우리가 워낙 상황이 좋지 않기도 했지만 소선과 붙었을 때 결코 만만한 군사들이 아니었습니다. 꽤 강군이었지요. 폐하께서도 스스로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 분명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런 소선의 군사들이 고구려에게 계속해서 밀리고 있습니다. 이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것이겠습니까?”
“고구려 군이 우리 예상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고구려에 고개를 숙이더라도 동쪽에 있는 형주 세력과는 절대 적대해서는 안 됩니다. 차라리 다른 곳을 보십시오.”
신하의 말에 왕세충이 의아해하며 묻는다.
“다른 곳?”
“예. 폐하. 바로 남쪽에 있는 교주 지역을 점령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교주? 그곳에는 여러 이민족들이 많고 해서 다스리기 어려운 곳이 아니냐?”
“그러니 저희가 가서 정리를 해 점령을 한다면 큰 이득이 될 것입니다.”
“어째서?”
“그 교주 지역은 무역을 하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무역?”
“예, 폐하. 이 익주가 물산이 풍부한 곳이라 저희가 이곳으로 오기는 했지만 이곳은 서쪽으로 치우쳐 있는 만큼 군사를 일으켜 이밀과 상대를 하자면 금방 국력이 약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밀과 휴전도 했고 말입니다. 그러니 일단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서 그 국력을 빠르게 보충시키고 백성들을 살찌울 수 있는 것을 생각해야합니다. 저는 그 방법이 교주를 점령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 일리 있는 말이구만. 헌데 그곳은 내가 알기로 독천과 밀림이 우거져 있어서 공략하기가 힘들지 않겠나? 과거 제갈량이 그곳을 공략하는데 꽤 힘을 쏟았다고 들었다. 매우 고생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습니다. 특히 기후도 변덕스러울 때가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믿을만한 장수를 보내셔야 할 겁니다.”
왕세충은 신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고민한다.
“음… 그렇다면 그곳에는 누구를 보내는 것이 좋겠는가?”
“독고수덕을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독고수덕을?”
“예. 폐하. 그는 무예 뿐 아니라 지략도 뛰어난 자이니 만큼 그에게 군사를 지휘토록 하여 교주를 공략하게 하소서.”
왕세충은 그 신하의 말을 듣고 매우 기뻐했다.
독고수덕은 독고기라는 자의 아들이었는데 왕세충은 독고기에게 자신의 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어겼다는 말을 하며 죽였던 적이 있었다.
사실 이것은 완벽한 왕세충의 계략이었다.
독고기가 가지고 있는 세력이 워낙 커서 왕세충이 하는 일에 사사건건 간섭이 많았는데 왕세충은 그것을 매우 좋지 않게 여기고 독고기를 벼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독고기가 자신의 명령에 반박하는 모습을 계속 보이자 왕세충은 그에게 명령불복종이라는 말을 하며 그를 죽였다.
사실 독고기는 진심으로 왕세충에게 조언을 했는데 그것을 아니꼽게 여긴 왕세충이 독고기를 죽였으니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독고수덕은 그 이후 왕세충에게 큰 원한을 품었다.
그 하나로 인해 자신의 가문이 기울었음은 물론이고 자신의 세력에 붙어 있던 많은 세력이 왕세충에게 붙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독고수덕의 의중을 잘 아는 왕세충은 독고기를 죽인 후 아들인 독고수덕도 죽여 후환을 없애려 했는데 주변의 신하들이 만류했다.
“그 집안은 영향력이 꽤 큰 집안이니 더 이상 죽이지 말고 이용을 하시는 것이 더 좋을 겁니다. 그래야 폐하께서 입지를 더욱 탄탄히 다질 수 있습니다.”
“이제 독고기를 죽여서 그 가문을 지지하던 세력이 대부분 내게 넘어왔네. 그런데 주저할 필요가 있나?”
“그렇다고는 하나 그동안 독고기가 이끌었던 그 가문의 위세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한동안은 그를 품고 가야합니다.”
“자네들도 알지 않나? 그가 내게 큰 원한을 품었을 거라는 걸 말이야.”
“압니다. 그 자의 성품을 잘 아는 저희들인데 왜 모르겠습니까? 허나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왕세충은 만류하는 신하들의 말을 듣고 독고수덕을 죽이는 것을 잠시 보류했다.
그런데 그런 독고수덕을 군사를 주어 외지로 보내라니 왕세충에게 있어서는 눈엣가시 같은 자가 자신의 눈앞에서 사라져 주니 매우 좋았던 것이다.
허나 신하들에게는 그런 감정을 보이지 않기 위해 애써 감정을 감추며 묻는다.
“독고수덕이 문무를 겸비했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폐하.”
“으음…….”
“폐하께는 좋은 선택이실 겁니다. 그 자는 본래 폐하께 원한을 크게 품은 자이니 만큼 그 자가 살아 있는 한 안심할 수 없으실 테니 말입니다.”
자신의 의중을 꿰뚫고 있는 신하의 말에 왕세충은 헛기침을 하며 묻는다.
“크흠… 자네 말은 그 자를 이용해서 우리 영토를 넓히자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그 지략을 활용하자는 것입니다.”
“군사를 내주면 배신할 수도 있지 않은가?”
“곁에 우리의 측근들을 붙여주어 딸려 보내면 되지 않겠습니까?”
“음…….”
“그리고 배신할 수 없는 것이 그의 가족들은 여전히 폐하 밑에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잡고 있는 한 독고수덕은 폐하를 배신하지 못합니다.”
“그래. 그 녀석은 가족을 끔찍하게 아끼는 놈이니 말이야.”
“그렇습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폐하께 죽고 난 이후 그것이 더욱 심해졌다고 하더군요.”
“우리에게는 듣기 좋은 소리구만.”
“그렇습니다. 폐하.”
“그렇다면 군사는 얼마나 주면 되겠는가?”
“10만입니다.”
“그렇게나 많이?”
“예, 폐하. 그렇게 해야 우리가 확실히 교주를 점령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으음…….”
“그리고 설사 실패하더라도 전부 독고수덕 탓으로 돌리면 됩니다. 이때는 명분이 되니 그를 과감하게 베어버릴 수 있습니다.”
왕세충은 신하의 말에 매우 기뻐한다.
“과연… 그렇게 되면 독고수덕도 어쩔 수 없겠지!”
“그렇습니다. 폐하. 그리고 또 하나…….”
“……?”
“일단 소선의 사신에게는 곧 지원군을 보낼 것이라고만 말을 하십시오.”
“음? 어째서?”
“그래야 저들이 희망을 품고 결사항전을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원군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말입니다.”
“과연… 과연 묘책이로다! 그렇게 해서 고구려 군의 힘도 빼놓자는 것이군?”
“그렇습니다.”
“하하하! 참으로 묘책이로다! 좋아. 그 계책대로 하지. 일단 독고수덕부터 불러라.”
“예! 폐하!”
그렇게 왕세충은 한 신하의 청을 받아들여 교주 지역으로 영토를 넓히기로 결정을 내렸다.
며칠 뒤, 소선은 세작을 통해 가져온 소식을 듣고는 매우 기뻐했다.
“오! 왕세충이 우리의 요청을 받아줬구만! 무릉을 먼저 공격해준다고 했네!”
“잘 되었습니다! 그들로 인해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이겠군요.”
“그러게 말일세. 허나 이곳이 포위된 만큼 들려오는 소식들도 아주 띄엄띄엄 들리고 있다.”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세작들이 그만큼 이곳을 드나다는데 힘드니 말입니다.”
“그렇겠지… 그나저나 장사와 계양이 잘 버텨주어야 할 텐데… 특히 장사 말이야. 그곳이 잘 버텨야 그나마 우리가 이 강릉성에서 오래 버틸 수 있지 않겠나? 여차하면 그곳에서 군량을 공수해 와야 하니 말이야.”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이 강릉성이 모두 포위된 지금 군량을 안으로 들여올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군량을 들여오려면 또 다른 계책이 있어야 합니다.”
“일단 지금으로서는 버티는 방법 밖에 없다. 한두 달쯤 지나서 계책을 써야지…….”
“두 달… 말입니까?”
“그래. 지금 적의 기세를 봐라. 너무나도 날카롭지 않느냐?”
“그건 그렇습니다.”
“저런 상황에 우리가 군량 하나를 위해 계책을 쓴다는 것은 자살 행위다. 차라리 두 달 정도 버티고 버텨서 우리의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고 시간을 끈다면 적들의 기세도 누그러지겠지. 그 때가 방심하고 있을 때이니 그 때 계책을 쓸 것이야.”
소선의 말에 그제야 신하도 동조한다.
“듣고 보니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폐하. 송구합니다.”
“아니다. 그럴 수 있지… 그나저나 며칠 간 공격을 아예 안 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그렇다는 건 저들도 이 강릉성의 군량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입니다.”
“아마 당분간은 이 성을 공격하지 않을지도 모르겠군. 허나 혹시 모르니 경계는 철저히 하도록 해. 양양성에서와 같은 일을 교훈으로 삼아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되니 말이야.”
“예. 폐하. 명심하겠나이다.”
소선은 그렇게 자신의 계책대로 시간이 잘 흘러가주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선의 생각이었다.
“그래? 왕세충에게 사람을?”
“예. 대막리지.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습니다.”
동현은 사훈의 말에 크게 웃는다.
“하하하!”
“……?”
“내가 장담하지. 왕세충은 소선을 돕지 않을 걸세.”
“예? 하지만 그에게 확답을 줬다는 첩보가 입수되었습니다.”
“그렇겠지. 허나 말만 그렇게 하고 군사를 절대로 보내지 않을걸세.”
“어찌 그렇게 확신하십니까?”
“이보게, 사훈.”
“예, 대막리지.”
“우리가 처음 왕세충의 본거지인 허도를 차지하고 저들의 황제를 빼앗을 때 저들은 익주로 도주를 했어. 안 그런가?”
“그렇습니다. 대막리지.”
“그것도 자신이 옹립해 놓은 황제를 버리고 도주를 했지. 그것만 해도 왕세충은 자신만의 안위를 위해 도망쳤다고 말할 수 있지만… 좋은 말로 하면 자신의 야심을 실행시키기 위해서 익주로 도망쳤다는 것이 맞아.”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게 지금 일과 무슨 관련이…….”
동현은 사훈의 말에 빙그레 웃으며 대답한다.
“생각해보게. 그는 우리 고구려 군에 처참하게 깨졌어. 그리고 익주로 도망쳐 세력을 규합한 뒤 새롭게 세력을 일으켰지. 이것만 봐도 그 자는 정세 판단이 정확한 자라는 것이야.”
“정세 판단이 정확한 자라…….”
“그래. 아마 이번 일에 대해 고민을 했겠지. 허나 지금의 상황을 분명 접하고 있을 터… 거기다 그는 소선과도 전쟁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자로서 원군을 보내지 않을 것이야.”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왕세충이 우리와의 전쟁에서 지고 허도에서 도망치고 있을 때긴 하지만 그는 도망치면서 소선과 붙어봤네. 내가 보았을 때도 소선의 군사들은 꽤 훈련이 잘 되어 있었지. 왕세충 그자도 군사를 많이 다뤄본 사람이라 그것을 모르진 않을 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