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8화 대중상과 이정은 백제 수도인 사비성을 점령하고, 백제 무왕은 사비성을 탈출해 웅진성으로 향하다.
대중상은 이정의 말에 그의 어깨를 두들기며 위로한다.
“본디 나라가 위태로울 때는 마지막 충신이 한명쯤은 꼭 있더군. 지금의 백제가 그렇다고 생각을 하게.”
“예. 대모달…….”
“그나저나 은상은 어찌 되었나?”
“좀 전에 보고 받기를, 전사했다고 합니다.”
“그래?”
“예. 칼과 화살이 자신의 몸에 크게 상처를 내고 박히는 상황에서도… 그는 정신을 잃기 전까지 계속해서 싸웠다고 합니다.”
“그래, 그렇겠지. 그는 백제의 충신이다. 성대히 장사를 지내줄 수 있도록 대군사가 조치를 취해주게.”
“예. 대모달. 그리하겠습니다. 헌데…….”
“……?”
“이렇게 저항이 거셀 줄 알았으면 파진포를 투석기로 던질 걸 그랬습니다.”
“아니야. 사비성의 상황이 어떨지 모르지 않는가? 항상 만일을 대비하고 있어야 해. 그런 면에서 자네가 전투가 있기 전 했던 말이 더 옳아. 그리고 이미 벌어진 일… 후회하지 말게.
“예, 대모달.”
“이제 빠르게 군을 정비하고 바로 사비성을 포위하도록 하지. 시간이 너무 지체 되었어.”
“예! 알겠습니다!”
대중상과 이정은 거센 백제의 저항을 이겨내며 사비성으로 향했다.
그 시기 백제 사비성에는…….
“어라하! 얼른 피해야 합니다!”
“…….”
“지금 벗어나지 못하면 고구려 군이 이 사비성을 포위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곳을 더 이상 벗어날 방도가 없습니다!”
“…….”
“어라하!”
“태자는…….”
“태자마마를 비롯한 황후마마, 그리고 황실 식구들은 모두 웅진성으로 피신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내가 이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인데 백성들을 버려두고 어디를 간단 말이더냐?”
“어라하! 지금은 백성들을 따질 때가 아닙니다! 어떻게든 몸을 피해야 이 사직을 보전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야 이 나라의 백성들도 어라하를 도울 것입니다!”
“…….”
“어라하!”
위사좌평 황우는 본래 낙향하였으나 무왕이 고구려가 잠시 혼란한 틈을 타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듣고는 다시 입궐해 그를 적극 말렸다.
허나 이미 결심이 선 무왕을 말릴 수 없던 황우… 무왕은 황우의 조언을 무시하고 고구려를 공격했고 그 결과는 매우 처참했다.
거기다 오히려 역으로 고구려가 공격을 해오자 백제군은 줄줄이 무너졌고 백제로 들어오는 관문 중 하나인 탄현과 최후의 보루인 황산벌도 무너지자 황우는 무왕에게 일단 웅진성으로 몽진을 갈 것을 권유했다.
그렇게 생각을 한지 30분 정도가 되었을 때… 드디어 백제 무왕은 결정을 내린다.
“위사좌평. 자네의 말에 따르겠네.”
“감사합니다! 어라하! 그럼 절 따라 오시지요!”
황우는 노구를 이끌며 백제 무왕을 빠르게 데리고 나와 말을 탔다.
그런 황우의 행동에 백제 무왕도 말에 올라 빠르게 성문을 빠져나가려 한다.
그런데 그 때.
“보고 드립니다!”
“말하라!”
“사비성의 성문이 열렸습니다!”
“뭐라? 그렇다면 고구려 군이 벌써 사비성까지 왔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우리 백제의 병관좌평인 예사선이 고구려 군에게 문을 열어줬다고 합니다!”
“뭐라? 예사선이?”
“예! 어라하!”
“그 놈이… 내가 그 놈을 얼마나 믿었는데……!”
황우가 무왕의 말에 바로 대답한다.
“어라하. 그러기에 제가 예사선은 절대 믿을 족속이 못 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습니다. 일단 비밀 통로로 빠져나가시지요.”
“비밀 통로라… 그래. 거기 밖에 없겠어. 좋아. 거기로 가지.”
“예. 어라하.”
“헌데…….”
“……?”
“자네 아들은?”
“제 아들놈은… 사비성을 끝까지 지키겠답니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말입니다.”
“…….”
“소신과 함께 어라하를 모시자고 했으나, 시간을 끌어야 어라하께서 빠져나가실 수 있다며 이 사비성에 남기를 자처했습니다.”
무왕은 황우의 말에 눈물을 흘리며 대답한다.
“흐읍… 내가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게 되면… 그대와 아들에게 언젠가 꼭 보답하겠네. 꼭 말이야!”
“알겠습니다. 자,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얼른 가시지요.”
“그래…….”
황우와 무왕은 그렇게 궁성 안쪽 깊숙이 자신들만이 아는 비밀통로로 측근들과 함께 향했다.
황우와 무왕이 도망치고 있을 때 대중상과 이정은 예사선에 의해 열린 성문으로 입성하고 있었다.
백제군들이 공격을 하긴 했지만 성문이 열린 덕분에 보다 수월하게 백제군을 제압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 그들의 기세를 꺾으려고 온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황우의 아들 황훈이었다.
황훈은 이제 예전과 같은 망나니 같은 모습이 아니었고 장수다운 모습을 갖추며 실제 여러 전투에서 전과를 올려 꽤 높은 벼슬에 올라 있었는데 이런 일이 생기자 자신이 직접 나선 것이다.
“역시… 대막리지께서 한 때 가르친 자 답군요. 그 때는 망나니처럼 굴었다고 들었는데…….”
“맞네. 허나 개과천선했지. 그리고 백제의 뛰어난 장수가 되었어.”
“죽여야겠군요.”
“아니. 그렇게 하면 대막리지가 슬퍼하지 않겠는가? 사로잡아야지.”
“그렇게 되면 우리 보병들의 희생이 커질 겁니다.”
“내가 직접 나서면 되네. 걱정 말게.”
“괜찮으시겠습니까? 꽤 무예가 뛰어나 보였습니다.”
“내가 비록 나이가 많이 들었다고는 하나 아직 저런 젊은 놈들에게 질 정도는 아니네. 너무 걱정하지 말게.”
“으음… 알겠습니다. 대모달. 믿겠습니다. 꼭 이겨서 저 자를 생포해 주십시오.”
“걱정 말고 내게 맡겨두게.”
대중상은 그렇게 말을 한 후 황훈에게 말을 타고 달려간다.
“네놈이 황훈인가?”
“그렇다! 네 놈은 누구냐?”
“나는 고구려의 대모달 대중상이다! 너에 대한 이야기를 대막리지께 많이 들었지.”
“…….”
“허나 이제는 적국의 장수이니 만큼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법! 한 번 붙어보자!”
“좋다! 하아압!”
그렇게 대중상과 황훈은 불꽃 튀는 대결을 벌였다.
깡! 까아앙! 까앙! 깡! 까아앙!
계속해서 부딪치는 창과 창의 대결.
그렇게 서로 50합을 주고받았다.
대중상은 황훈의 실력이 제법이라고 생각하면서 예전 젊었을 적을 떠올리며 더욱 강하게 힘을 쏟아 황훈에게 창을 내질렀다.
그 덕분일까? 황훈은 점점 밀리기 시작했고 결국 60합이 되자 대중상의 창대에 복부를 맞고 낙마하고 만다.
“하아아압!”
퍼어억!
“커어억!”
“자… 장군!”
“뭣들 하느냐? 이 놈을 생포해라!”
“자… 장군을 구해야 한다!”
황훈이 말에서 떨어지자 그의 부장이었던 장수가 수하들에게 황훈을 구하라고 명령을 했고 반대로 대중상의 명령을 받은 고구려 군은 낙마한 황훈을 생포하려고 포승줄을 가진 채 달려들었다.
고구려 군의 움직임이 한 발짝 빨라서 황훈은 고구려 군에 생포를 당했고 황훈의 부장은 그 모습을 보고 필사적으로 군사들을 독려해 황훈을 구하려고 하지만 고구려 군에게 바로 막히고 말았다.
그렇게 황훈은 고구려 군에 생포되어 고구려 군의 후방으로 이송이 되었다.
대중상은 황훈이 후방으로 가는 모습을 확인하고는 이정이 있는 본진으로 돌아왔다.
“고생하셨습니다. 대모달.”
“후우… 생각보다 강하더군.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았다면 죽는 것은 내가 되었을 것이야.”
“대막리지께서 그만큼 가르쳤으니 그런 것이겠지요.”
“맞아. 아마 황훈이 좀 더 전쟁 경험을 많이 쌓고 했다면 죽는 것은 내가 될 수도 있었겠어.”
대중상이 그렇게 이정에게 말을 하는데 한 군사가 달려오더니 군례를 올리며 말한다.
“보고 드립니다!”
“말하라.”
“현재 궁성을 모두 장악하고 백제왕을 찾으려고 샅샅이 뒤지고 있는데… 어디 있는지 보이지가 않습니다!”
“뭐라?! 그게 정말인가?”
“예! 지금도 계속 뒤지고 있사오나… 보이지 않습니다!”
군사의 보고에 대중상이 다음 행동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데 이정이 말한다.
“대모달. 소신이 보기에 백제왕은 분명 웅진으로 도망칠 것입니다.”
“이곳으로 천도하기 전 수도라 그런 것인가?”
“그렇습니다. 이곳을 제외하고 백제에서 수도로서 기반이 가장 잘 닦여있는 곳은 그곳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그 길목에 매복을 해놓았다가 백제왕을 사로잡으면 됩니다.”
“알겠네. 헌데 필시 우리가 모르는 비밀통로로 갔을 것이며 진작 몸을 뺐을 것인데… 그들을 앞질러 가서 길목을 막을 수가 있을까?”
“비밀통로가 왜 비밀통로이겠습니까? 아무리 미리 몸을 뺐다고 해도 비밀통로이기에 이동하기가 오히려 불편할 것입니다. 속도 면에서는 우리에게 기병들이 있으니 훨씬 빠를 수 있습니다.”
“과연…….”
“마침 우리와 함께 고흘중이 왔으니 고흘중에게 개마무사 3천을 이끌게 하여 보내시지요.”
“알겠네. 고흘중!”
“예! 대모달!”
대중상은 고흘중을 부르더니 품 안에 있던 지도를 펼치며 말한다.
“백제왕은 분명 웅진성으로 도주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너는 개마무사 3천을 이끌고 가서 바로 이 숲 속에 군사들을 매복시켜라. 그리고 백제왕이 지나갈 때 바로 덮쳐서 생포를 하도록 해. 알겠나?”
“예! 대모달! 명을 받들겠습니다!”
“매복했을 때 사람들의 말소리나 말의 투레질 소리도 각별히 조심하고 말이야. 지금 바로 가라! 움직여!”
대중상의 말에 고흘중은 군례를 올리며 개마무사 3천을 이끌고 웅진성으로 향하는 길목의 숲으로 향했다.
고흘중이 가는 모습을 확인한 대중상은 이정에게 말한다.
“사비성을 점령했고 백제왕을 쫓고 있다고 장계를 보내야겠어.”
“알겠습니다. 그 일은 제가 하겠으니 대모달께서는 좀 쉬십시오. 황훈과 1대1 대결을 벌이느라 많은 힘을 빼셨으니 말입니다.”
“허허허. 이 사람… 내가 나이를 많이 먹었다고 해도 아직 그 정도로 힘든 사람은 아닐세.”
“그래도 쉴 수 있을 때 쉬어줘야 합니다. 대모달. 대막리지께서 과거 스승이신 강이식 대모달과 연태조 막리지께서 돌아가신 후 얼마나 상심하셨는지 아십니까? 그러니 쉴 수 있을 때 쉬십시오. 대모달.”
“하하하! 알겠네. 알겠어.”
이정의 단호한 말에 대중상은 크게 웃으며 대답한다.
그렇게 둘은 잠시 더 이야기를 나누더니 각자의 막사로 돌아갔고 이정은 돌아가자마자 바로 장계를 써서 도성에 보냈다.
며칠 뒤, 보고를 받은 고보장은 매우 기뻐한다.
“오! 사비성을 이렇게 쉽게? 역시 대중상이로다! 하하하!”
“그렇습니다. 다만 백제왕을 바로 잡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고흘중이 갔다고 했으니 곧 잡히겠지. 하하하! 이제 이 삼한을 통일하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고보장의 말에 동현이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삼한이 통일이 되면 신라를 병합했을 때처럼 민심을 빠르게 안정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제가 알기에 백제에도 우리 고구려만큼 인재가 많다고 들었으니 그들을 이용하여 백제의 민심을 안정시킴과 동시에 비옥한 백제 영토를 활용하여 군량미를 많이 비축해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음… 그렇겠지. 저 서토는 아직도 계속 혼란하니 우리가 그것을 이용해 앞으로 나아가자면 더 많은 군량이 필요할 테니 말이야.”
“그렇습니다. 태왕 폐하.”
“그나저나… 사비성을 점령했으니 지금 그곳을 잠시 맡아줄 장수가 필요한데?”
“마침 그곳에 고흘중이 갔다고 하니 백제와 전쟁이 끝나면 잠시 동안은 그에게 맡기십시오. 고흘중은 수성에 매우 능한 자이며 이 고구려에서도 백성들의 신망을 얻은 자이니 그곳에 두면 금방 민심을 안정시킬 것입니다.”
“좋아. 알겠네.”
“그리고 한 두 명의 장수를 백제로 더 내려 보내십시오.”
“한두 명의 장수를 더? 이유가 있는가?”
“예. 태왕 폐하. 우리가 백제왕을 잡든 못 잡든 간에 백제 전체가 병합되는 것은 기정사실입니다. 그러려면 점령된 영토를 지켜야 할 장수가 더 필요할텐데 그것을 위해서는 우리 고구려의 장수가 더 내려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백제의 민심을 빠르게 안정시킬 수 있고 말입니다.”
동현의 말에 고보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음… 그래. 옳은 말이군. 그렇다면 수성에 능한 자로 보내는 것이 좋겠어.”
“아주 옳으신 판단입니다.”
“일단 웅진성의 경우에는 왕고중에게 그곳을 맡게 하게. 그곳도 옛 백제의 수도였던 만큼 매우 중요한 곳이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태왕 폐하.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그밖에 다른 지역에는 누구를 배치할지 자네가 선별해서 보내도록 하게. 나에게 따로 재가를 받을 것 없어.”
“예. 태왕 폐하.”
동현의 계획 하에 고구려는 드디어 삼한 통일을 눈앞에 두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