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3화 동현은 서세적이 이밀에게 돌아가려는 마음을 돌리고, 고구려 도성에서는 갑작스러운 급변이 일어나다.
동현의 말에 서세적은 어이없어 한다.
“수나라의 영토가 얼마나 큰 줄 아시오?”
“물론 아네.”
“그런데도 그런 허황된 꿈을 꾸시는 것이오?”
“허황됐다라… 그렇다면 그대들 입장에서는 우리가 하북 지방을 차지한 것도 허황된 꿈이었다고 말할 텐가?”
“…….”
“과거에 너희들은 항상 그랬지. 동쪽에 있는 나라들은 절대 우리 영토를 점령하지 못한다고 말이야. 그 근거로 인구수를 항상 들었지 않나? 헌데 우리는 해냈네. 자네들이 말하던 허황된 하북 지방 점령을 말이야. 심지어 허도까지 점령을 했지. 헌데 우리가 이루어 낸 것들을 허황 된다고 말할 수 있나?”
“하북 지방은 가능했을지 모르나 수나라 전토는 너무 크오. 절대 불가능하오.”
“좀 전에 말하지 않았나? 우리가 너희 영토인 하북 지방을 점령하는 것도 너희들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했었다고 말이야. 그런데 뭐가 두렵지?”
“…….”
“목표를 향해 하나씩 나아가면 못 이룰 것도 없다. 그리고 지금 모든 것은 우리의 계획 하에 이루어지고 있고 말이야.”
동현은 그렇게 말을 하며 무언가를 펼쳐서 그의 앞에 보여주며 말한다.
“보게.”
“……?”
“우리가 지금까지 한 계획과 앞으로 해야 할 계획들일세.”
“……!”
“우리는 모든 계획을 이미 장기적으로 다 세워두었지. 그런데 불가능 할 것 같나?”
“…….”
“마음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렇게 하지. 일단 자네의 포박을 풀어주고 자유롭게 해주겠네. 단 자네의 곁에는 감시가 붙을 거야.”
“내가 감시하는 자를 죽이고 달아나면 어쩌려고 그러시오?”
“그게 가능하겠나?”
“나는 내 무예에 자신이 있소이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해 봐. 내 제자 중 한 명을 붙이는건데 말이야.”
“후회하지 마시오.”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넌 내 제자를 절대 이길 수 없거든.”
“…….”
“너에게 자유를 주고 이 백암성 내를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해 줄 거다. 감시를 붙인 채 말이야. 닷새 동안 너에게 자유를 준 후 네게 다시 물을 것이다.”
서세적은 동현의 말에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그렇게 해서 나를 설득하면 나를 고구려로 등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오?”
“최소한 갈등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경 또한 그랬으니 말이야.”
“……!”
“여봐라! 연개소문을 불러와라!”
“예! 대막리지!”
동현은 자신의 제자 중 한 명인 연개소문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스승님.”
“그래. 네가 이 녀석을 닷새 동안 따라다니며 감시해 주어야겠다. 너 혼자 힘들면 너랑 비슷한 수준의 무력을 가진 사람과 함께 번갈아 가면서 이 서세적이라는 녀석을 감시하면 된다.”
“알겠습니다.”
“저 녀석의 처소는 따로 마련해 두었으니 네가 같이 생활하면서 감시하면 된다.”
그렇게 연개소문은 동현의 명령을 받자마자 서세적의 포박을 풀어주며 말한다.
“가자!”
연개소문은 서세적의 등을 밀며 서세적이 배정되었다는 처소로 향했다.
다음 날 오후.
“대막리지, 들으셨습니까?”
“뭘?”
“서세적 있지 않습니까?”
“그래. 무슨 사고라도 친 것인가?”
“예. 연개소문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달아나려 했던 모양입니다.”
“역시… 하지만 실패했겠지?”
“그렇습니다. 서세적이 집요하게 달아나려 하자 연개소문이 주먹 한 방으로 기절을 시켜버렸다고 합니다.”
동현은 사훈의 보고에 빙그레 웃으며 대답한다.
“연개소문을 그저 어린 장수로만 본 모양이군. 내가 본 그 녀석은 무예 수준이 꽤 올라온 정도였는데 말이야.”
“그런 듯 보입니다.”
“어찌 되었든 그 일은 넘어가고… 서세적은 어찌 되었다고 하던가?”
“예. 오전에 연개소문에게 맞고 잠시 처소에서 누워있다고 합니다.”
“그랬구만.”
“그 자를 그대로 두실 겁니까?”
“그래야지. 닷새(5일)간의 말미를 주었으니 말이야.”
“허나 이번 일과 같은 일이 또 일어난다면…….”
동현은 사훈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서세적이란 자는 영민한 자다. 특히 한 번 붙어봤으니 더 이상 연개소문을 상대하려 하지도 않겠지.”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만…….”
“걱정하지 말게. 연개소문이 어디 쉽게 당할 녀석이던가?”
동현의 이런 예상은 적중했다.
서세적은 고구려의 백암성에 있으면서 더 이상 연개소문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그리고 동현이 사전에 말을 해 놓은 것처럼 백암성 내부의 백성들을 자유롭게 살펴볼 수 있도록 해주라는 명령에 서세적은 백암성 내의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며 백성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서세적의 뒤를 연개소문이 그림자처럼 따라 붙으며 감시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며칠 뒤.
드디어 동현과 서세적이 약속한 닷새째가 되는 날이었다.
동현은 다시 한 번 서세적과 독대를 했다.
“이 백암성에 있으면서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며 백성들의 소리를 들어 보았을 텐데… 그대가 보기에는 어떻던가?”
“인정하기는 싫지만 솔직히 말해서 제가 있던 백성들보다 훨씬 밝아 보이며 아무 걱정이 없어보였습니다.”
“잘 봤군. 자, 이제 어찌할 것인가? 결정을 내리게. 자네가 내가 준 기회에도 돌아간다고 하면 나는 더 이상 잡지 않겠네.”
“…….”
“아직도 결정을 못하겠나?”
서세적은 동현의 말에 솔직히 털어놓는다.
“후우… 솔직히 말하겠소이다. 이 백암성은 엄청나게 발전이 되어 있소. 수나라에 있던 어떤 지역보다도 말이오. 마치 도성과 같은 분위기였지… 그래서 나는 궁금해졌소이다. 어떻게 이 성을 말도 안 되게 발전을 시켜놓았는지 말이오. 그 궁금함에 그대의 수하는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이 고구려에 있으면서 그대를 지켜보고 싶었소이다. 그리고 후에 이 고구려를 내 새로운 조국으로 삼을지 결정을 내리고 싶었지…….”
“그랬군. 헌데 바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이유는?”
“당신도 잘 알 것이라 생각하오.”
“……?”
“가족들이 아직 그곳에 남아 있지 않소? 만약 내가 변절해서 이 고구려로 투항했다는 소식이 들린다면 그 피해는 오롯이 내 가족들에게로 돌아가오.”
“그랬군. 그렇다면 그대의 가족들을 구해주면 이 고구려에 머물 생각은 있다는 것인가? 바로 등용되는 것이 아닌 나를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지만 말이야.”
“그렇소. 좀 전에도 말했다시피… 이 고구려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소이다.”
“잘 되었군. 그대가 이런 결정을 내렸다니 정말 기쁘다네. 그리고 가족들은 걱정 하지 마. 우리가 당신 가족들을 모두 안전하게 내가 있는 이 백암성으로 데려올 수 있도록 할 것이니 말이야.”
“음… 알겠소이다. 당신을 믿겠소.”
그렇게 동현은 서세적이 고구려에 등용된 것은 아니었지만 혹시 모를 잠재적인 위험인물을 고구려에 두는데 성공했다.
그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인 셈.
동현은 일단 이것만으로도 성과라고 생각했다.
동현은 자신의 호위를 하고 있는 호위대장인 허손과 가동, 단석한 형제와 함께 업성에서 돌아와 있던 자신의 의형제 근혁을 호출했다.
“너희가 이밀이 있는 동도(낙양)로 가서 서세적의 가족들을 탈출시켜줘야겠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동도의 정보 수집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라. 동도에는 우리 고구려의 많은 세작들이 있다. 이미 많이 띄워놓았으니 그들의 정보가 오는 것을 토대로 서세적의 가족들을 탈출 시키면 될 것이야.”
“알겠습니다. 형님.”
“이틀 정도 뒤에 동도에서 세작들에게 많은 정보들이 들어올 것으로 보이니 그 때 모든 정보들을 취합해서 동도로 잠입해 들어가라. 단, 너무 무리하지는 마. 경계가 너무 삼엄하다 싶으면 다른 방법을 강구하면 되니 말이야.”
“예. 형님. 일단 제가 그곳에 가서 종종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그래. 허손 너는 서세적의 가족들을 탈출시키되 내 동생인 근혁이의 호위를 철저하게 해주거라. 알겠느냐?”
“염려 마십시오. 대막리지. 제 목숨을 걸어서라도 근혁 총사를 지키겠습니다.”
동현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근혁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한다.
“여기서 너를 보내는 것은 이 중 네가 머리를 쓰는 것이 가장 낫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보내고 싶으나 그들은 할 일이 너무 많아. 믿을 사람이 너 밖에 없구나. 그러니 부탁한다.”
“예. 형님.”
근혁은 그동안 많은 공부를 통해 지략과 정치력 면에서 많이 상승해 있었다.
과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치… 나이가 먹어서 수치가 확 뛰는 대기만성형이었던 것이다.
‘희한하게 근혁이 만큼은 타입이 변했단 말이야. 내가 예전에 봤을 때는 보통이나 신동이었는데 말이야… 근래 또 바뀌었어. 다른 사람은 다 그대로인데 말이지. 이럴 수가 있는 건가? 뭐, 나야 좋지만.’
동현은 근혁의 성장타입이 바뀐 것을 기억해냈고 그 수치를 확인했을 때 정말 놀랐다.
그리고 이것을 이번 기회에 활용하려 했기에 근혁 또한 부른 것이었다.
“그럼 모든 정보를 취합하게 되면 바로 동도로 가겠습니다.”
“그래. 조심히 다녀와. 너희들도!”
“예!”
그렇게 근혁과 허손, 가동과 단석한 형제까지 다섯 사람은 동도에 대한 정보를 얻자마자 몇 명의 수하를 거느리고 상인으로 위장하여 동도로 향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서세적에게 알려주자 서세적은 고마워한다.
“고맙소이다. 대막리지.”
“고맙긴. 난 한 번 한 약속은 절대 깨지 않는다네. 자, 한 잔 마시지. 한 잔 마시면서 그대가 있던 중원의 사정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어.”
“이미 세작들을 통해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래도 그곳에서 오래 생활한 것과 세작들에 의해 듣는 것은 또 다른 법이지. 그러니 내가 물어볼 때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그대로만 말해주게.”
“알겠소이다. 대막리지.”
동현은 서세적과 의도적으로 술을 기울이며 점점 친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대막리지! 대막리지! 급보입니다!”
“급보?”
“예! 대막리지! 여기……!”
사훈이 갑자기 헐레벌떡 관청 안으로 들어와 서찰로 보이는 것을 건넨다.
동현은 그것을 펼쳐보는데 내용을 보고는 탁상을 내리친다.
“이 귀족 놈들!”
“한시가 급할 것 같습니다. 빨리 군을 소집하겠습니다!”
“그리하게!”
동현은 서찰을 보고 매우 분노하고 있었다.
같이 술을 기울이던 서세적이 그 모습을 보고는 매우 놀라며 묻는다.
“대막리지. 대체 무슨 일이길래…….”
“역모의 징조가 보이는 귀족들이 있어서 말일세.”
“역모 말씀입니까?”
“그렇다네. 몇몇 나라를 좀 먹는 귀족들이 도성을 공격해 점령하려 시도를 했다는군! 다행히 대중상 대모달이 미리 간파를 하여 내성을 굳게 지키고 있기는 하나 외성은 현재 귀족들에게 장악을 당한 상태이고 내성만 필사적으로 막고 있다고 하네.”
“도성에 대한 방비는 대막리지께서 미리 조치를 취해놓으셨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동현은 서세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렇다네. 분명히 조치를 다 취해놓았지. 헌데… 한 군데에서 허점이 뚫렸어.”
“한 군데라면…….”
“장안성(평양성)동문을 지키던 대장이 그 부장이 제대로 된 임무를 수행하지 않자 크게 벌을 내린 모양이야. 헌데 그 놈이 귀족의 자제였던 것이지. 그 놈은 앙심을 품고 귀족들과 작당하여 동문 대장을 죽이고 군사들을 끌어 모아 동문을 장악한 것이야. 그리고 나머지 다른 성문도 기습적으로 공격을 했지. 다행히 군사가 잘 훈련된 강군이라 귀족들의 사병들도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그래도 외성은 돌파를 당한 상태네.”
“허어, 그런 일이… 헌데 그 규모가 대체 얼마나 되길래…….”
“5천 정도가 된다고 하더군. 내성에서 대모달이 지키고 있는 군사는 3천 정도 되고 말이야.”
“이상하군요. 제가 알기로 장안성에는 항상 5만의 군사가 주둔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만… 그게 아니었습니까?”
“본래는 그렇지만 지방에 소금을 운반할 것이 많아 많은 병력들을 그곳으로 병력을 차출시킨 모양이야. 그리고 이번에 장안성 근처에 새로운 성을 쌓았는데 그곳으로 병력을 보냈고 말이야. 그래서 나도 새롭게 병력을 충원해야 한다고 태왕 폐하께 상주하려 했는데… 하필 그 전에 일이 터져 버렸네.”
동현이 모든 것을 서세적에게 솔직히 털어놓는 그 때 사훈이 들어온다.
“대막리지!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래. 지금 당장 동원할 수 있는 개마무사들은 얼마나 되나?”
“5만은 바로 동원할 수 있습니다. 허나 빠르게 이동하려면 1만 정도가 적당합니다. 거기다 혹시 모르니 공성병기도 챙겨가야 합니다.”
“공성병기는 가는 도중 다른 성들에서 보급 받으면 된다. 지금은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 우선이야! 자, 가자! 서세적. 자네도 가겠나?”
“그러지요.”
동현은 그렇게 갑자기 일어난 급변으로 인해 개마무사들을 이끌고 장안성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