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8화 동현, 고보장에게 부탁을 받다.
고보장은 기분이 좋은지 동현과 양아오를 좌우에 앉히고 연회를 즐겼다.
“자, 대막리지. 한 잔 받게.”
“예. 태왕 폐하.”
동현은 정중하게 두 손으로 술잔을 들어 고보장에게 술을 받는다.
“자, 마시지.”
고보장이 먼저 술을 들이키자 그제야 동현도 술을 들이켰다.
동현이 술을 마시고 잔을 내려놓자 고보장이 묻는다.
“이보게, 대막리지. 내가 물어볼 것이 있네.”
“예, 태왕 폐하. 하문하시옵소서.”
“돌아가신 선제 태왕 폐하께서 신라를 병합하고 이제 남쪽에는 백제만이 남았네.”
“그렇습니다.”
“솔직히 말이야, 난 예전에 백제가 수군을 이용해 우리를 공격하려 했을 때 나는 그 때 자네가 백제를 벌하고 신라처럼 병합시킬 것이라 생각했다네.”
“저도 한 때는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허나 바로 그리 하면 부작용이 있습니다.”
“그래. 그 이유에 대해 저번에 말을 했었지. 신라도 그렇게 해서 병합한 것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듣자하니 지금의 백제가 국력을 키우는데 여념이 없다더군. 자네가 말하기를 신무기까지 만들려고 노력 중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그래서 계속 주시 중입니다.”
“음… 불안하군.”
“……?”
“만약에 말이야. 우리의 무기를 뛰어넘는 것이 백제에서 개발된다면, 큰 문제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고보장의 말에 동현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저도 그 생각을 안 해본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세작을 더욱 많이 늘려 백제 내부에 침투하도록 해 신무기를 어떤 방식으로 만들려고 하는지 알아봤습니다. 헌데…….”
“……?”
“안심해도 된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래?”
“예. 저들은 저희가 가지고 있는 화포와 파진포가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는지 전혀 모릅니다. 심지어 염초를 어떻게 대량으로 만드는지 방법도 모르지요. 제가 알아보니 백제에서는 염초의 상당량을 서토에서 가지고 온다 합니다.”
“우리에겐 아주 좋은 소식이로군.”
“그렇습니다. 우리 고구려도 과거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백제는 우리보다 영토도 적으니 염초를 자체적으로 아무리 많이 생산한다고 해도 대량 생산 하는 방법을 모르니 염초를 모으는데 한계가 있을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토에서 염초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것이고 말입니다.”
“흐음…….”
“그리고 결정적으로… 저들은 아직도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파진포와 화포를 만들었는지 전혀 갈피를 못 잡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도 주시만 하고 놔두고 있으며 태왕 폐하께 따로 보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동현의 말에 고보장은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랬구만. 헌데 그 정도까지 자세히 알 정도면 백제에 대체 세작을 얼마나 많이 침투시킨 것인가?”
“상인으로 위장해 침투한 세작만 2백여 명 정도가 되며, 대장장이 일을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인력으로도 세작으로 보냈습니다. 그 인원이 20명 정도가 됩니다. 그 중 5명은 꽤 높은 대우를 받고 있는 상황이고 그들이 현재 백제의 무기 개발 상황을 모두 보고하고 있습니다.”
동현의 말에 고보장이 놀란다.
“그렇게나 많이 침투를 시켰단 말인가?”
“정보란 많이 얻을수록 정확해지고 좋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처도 빨라지니 말입니다.”
“하긴. 그건 그래. 저번 수나라와의 전쟁에서도 자네가 침투시킨 세작들이 아주 큰 역할을 했지.”
“황공하옵니다.”
“허나 말일세.”
“……?”
“나는 뒤가 꺼림칙해서는 앞에 집중할 수 없다고 생각하네. 언젠가는 뒤를 깨끗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동현은 그 말뜻을 이해하고는 바로 대답한다.
“제가 오래 전부터 백제 조정에 침투시켜 놓은 고위직에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통해서 일을 꾸미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그래? 고위직이라면 누군가?”
“이곳은 연회자리라 말씀드리기 그러니 나중에 따로 알현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으음, 알겠네. 다른 사람의 시선도 있으니 말이야. 그나저나 언제 이 도성을 떠날 것인가? 다시 백암성으로 돌아갈 것이 아닌가?”
“예. 태왕 폐하. 그믐(30일)뒤에 돌아가려 합니다.”
“그러는 이유가 있는가보군.”
“그렇습니다. 소신이 한 동안 도성을 비우고 백암성에 있으면서 또 다시 몇몇 귀족들이 불순한 움직임을 보인다는 보고를 받아서 말입니다.”
“뭐라? 그것이 사실인가?”
“예. 그래서 소신이 이곳에 있으면서 그 귀족들에 대해 파악을 좀 해보려 합니다.”
“그거라면 내가 원하는 바다. 하나도 빠짐없이 철저하게 조사를 해서 보고를 하도록 하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렇게 고보장은 동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일부러 양량에게 자신이 누구보다도 나라를 생각하는 태왕이라는 모습을 의도적으로 보여줬다.
이것 또한 모두 동현에 의해 꾸며진 연극.
이런 태왕의 모습을 보자 양량은 고구려의 태왕이 나이가 어림에도 나라를 잘 운영한다고 생각하며 앞으로 더욱 충성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완벽하게 동현의 의도에 의해 이루어지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연회가 막바지에 이르자 고보장이 묻는다.
“이보게, 대막리지."
"예. 태왕 폐하.”
“자네의 제자였던 청명 공주 말일세.”
“……?”
“자네도 알겠지만 청명 공주가 선제 태왕 폐하께서 살아계실 때 혼인을 한 번 했다가 남편이 일찍 죽어버려 과부가 되지 않았는가?”
“물론 압니다. 헌데, 공주님께서 새롭게 혼인을 하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십니까?”
“후우… 그렇다네. 그래서 내가 너무 불편해. 어떻게든 배필을 찾아줘야 하는데 말이야… 이 일을 차일피일 미루었는데 이제는 나이도 많아져서 데려 갈 사람이 없을 것 같아. 이런 말을 직접 하자니 너무 실례이고 말이야.”
“태왕 폐하의 말씀은 제게 공주님과 어울릴만한 새 배필을 찾아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군요.”
“맞네. 예전 공주의 남편처럼 몸이 약한 사람이 아니면 좋겠어. 당시 내가 알기로 공주가 워낙 그 남편을 좋아해서 혼인을 했지… 상태왕 폐하께서도 말렸거든. 남자가 워낙 몸이 약해서 말이야.”
“…….”
“결국 그 결정은 비극이 되고 말았지. 허나 이제 세월이 흐른 만큼 그 일을 공주가 떨쳐버리게 하고 새롭게 혼인을 시키고 싶어. 자네가 공주를 설득해서 새롭게 혼인할 수 있도록 해줄 수 있겠는가? 어울릴만한 배필이 있다면 말이야.”
동현은 합의가 되지 않은 고보장의 말에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는 대답한다.
“한 사람이 있긴 합니다만 이 사람도 병으로 아내가 죽었던 사람입니다. 아들은 이제 장성해서 20살이 되었고 말입니다. 아들도 있는데 괜찮으시다면… 이 사람에게 의사를 물어보고 공주님을 설득해 보겠습니다.”
“오, 그래! 오히려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으니 좋을 것 같군! 그 아들에게도 이해를 구한다면 말이야.”
“그렇습니다.”
“헌데… 그 사람이 누군가?”
“과거 신라 정복을 할 때 저를 따라 나섰던 고요종이라는 장수를 기억하십니까?”
“아, 그 사람인가?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본 것 같은데…….”
“예. 나이는 저보다 조금 많기는 하나 공주님과 많은 나이 차이는 아니니 둘이 동의만 한다면 잘 어울리는 한 쌍이 될 겁니다.”
“좋아! 하루라도 빨리 했으면 좋겠군. 청명 공주가 다시 혼인을 해서 살아가야 우리 황실의 권위도 크게 설 것이니 말이야.”
“그럼 제가 고요종 장군에게 의사를 물어보고 이 일을 추진해보겠습니다.”
“그래. 부탁하네. 아, 그나저나 고요종 장군은 현재 어디 있나?”
“위장군 벼슬에 있으면서 신성을 지키고 있습니다.”
“직접 만나서 그 의사를 들어보게! 잠시 사람을 교대시키게 하고!”
동현은 고보장의 말에 그러겠노라 대답했다.
다음 날.
동현은 날이 밝자마자 고요종에게 전령을 띄웠고 고요종은 연통을 받자마자 자신을 대신해 신성을 지킬 자를 지정하고는 빠르게 도성으로 와 동현을 만났다.
그리고 동현에게 청명 공주와 혼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가 공주님과 혼인을 말입니까?”
“그렇다네.”
“하지만 저는 공주님보다 나이도 많고, 거기다 아들까지 있는데… 그리고 돌아가신 남편 분은 공주님께서 정말 사랑하셨던 분이 아닙니까?”
“자네만 허락한다면 내가 설득을 해보겠네. 어떤가?”
“공주님이 허락하신다면 저도 하고 싶습니다. 다만… 공주님이 거절하신다면 저도 굳이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알겠네. 그럼 자네는 동의한 것으로 알고 내가 공주님을 설득해 보겠네. 그 동안 자네는 이 도성에서 푹 쉬면서 있게.”
“알겠습니다.”
동현은 그렇게 고요종과 이야기를 하고는 청명 공주를 만나러 갔다.
“아니… 스승님!”
“공주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얼마 전 왔다는 소식을 들어서 한 번쯤 오실 것 같아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시지 않은 것을 보고 많이 바쁘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시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셔서 너무 기쁘네요.”
“그리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헌데, 의정이가 보이지 않는군요?”
“아, 스승님이 너무 바쁘신 것 같아 연락을 못 드렸었습니다. 의정이는 석우 총사와 혼인을 해서 운두산성 쪽에 살고 있어요. 아, 이제는 동해 수군 도독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군요.”
석우는 신라 정벌에 대한 전공으로 인해 동해에 있는 모든 수군을 맡게 되었다.
영양 태왕이 명을 달리 하기 전, 새로운 벼슬을 신설했는데 바로 도독이라는 자리였다.
이 도독이라는 벼슬은 3관등에 준하는 벼슬이었으며 예전에 임시직이었던 총사 벼슬도 신설하여 3관등 벼슬로 두었다.
이런 석우와 함께 청명 공주를 곁에서 모시던 의정이 석우와 혼인을 했다니… 동현은 매우 놀랐다.
“전혀 몰랐군요.”
“죄송합니다. 늦게라도 소식을 전했어야 하는데…….”
“아닙니다. 저를 배려해 주신 것이니 말입니다. 허나 이제부터 그런 소식은 제게 꼭 전해주십시오.”
“그러겠습니다.”
“헌데, 의정이가 없으면 이제 공주님 곁은 누가 지킵니까?”
동현의 말에 청명 공주는 누군가를 부른다.
“이 분은 대막리지이시자 내 스승이시다. 인사하거라.”
“예. 공주님. 안녕하십니까? 대막리지. 저는 온사문이라 합니다.”
동현은 이름을 듣고 깜짝 놀란다.
“온사문이라면… 온군 근위장님의 아들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대막리지.”
“허어, 벌써 이렇게나 컸다니… 네 나이가 올해 몇이더냐?”
“올해 15살이 되었습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것이로구만.”
“그렇습니다.”
“듣자하니 네 아버님께서는 선제 태왕 폐하께서 돌아가시고 난 뒤 관직을 내려놓고 난 뒤부터 쭉 쉬고 계실 텐데…….”
“그렇습니다. 헌데, 요즘 건강이 좋지 못 하십니다.”
“그래? 그래서는 안 되는데… 잘 됐구나. 공주님을 뵙고 너희 아버님을 좀 뵈러 가야겠다. 가서 네 아버지 건강을 내가 한 번 살펴보마.”
“감사합니다!”
“그래. 네가 어리긴 하다만 풍기는 모습을 보니 영락없는 장수감이로구나. 공주님의 호위를 앞으로 잘 부탁한다.”
“예! 대막리지! 이미 호위를 명령 받은 바, 위험한 일이 생기면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공주님을 살릴 것입니다.”
동현은 온사문의 대답에 만족하며 청명 공주에게 말한다.
“어리지만 아주 좋은 호위대장을 얻으셨습니다.”
“그렇게 보이십니까?”
“예. 제가 이 녀석을 보니 훗날 고구려에 아주 큰일을 할 겁니다.”
“그리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의정이가 혼인을 하고도 제 곁에 있으려고 하기에 제가 그래서는 안 된다고 했더니 의정이가 자신을 대신 할 호위무사를 찾더군요. 그리고 며칠 뒤에 온사문을 데리고 왔습니다. 호위에 대한 문제를 온군 근위장에게 말했다고 하더군요. 그랬더니 자신의 아들이 저 한 명 정도 지킬 힘은 되니 자신의 아들을 호위로 붙이라고 말을 했다며 온사문을 제 호위대장으로 붙여주었습니다.”
“그랬군요. 온군 근위장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믿을 만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온사문은 오자마자 자신이 어리다고 얕잡아 보는 호위무사들을 모조리 제압하고는 훈련까지 아주 체계적으로 시키고 있으니 제가 다 안심이 되었습니다.”
“하하하!”
동현과 청명 공주의 말에 온사문은 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적인다.
동현은 그런 온사문을 보며 말한다.
“우리가 이렇게 칭찬해주었다고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계속 정진하거라. 무예와 학문에는 끝이 없는 것이니 말이다. 알겠느냐?”
“예. 대막리지.”
“그래. 네가 맡은 바 임무로 돌아가거라. 나는 공주님과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
“예. 말씀 나누십시오.”
온사문은 그렇게 다시 방을 나가 그 앞을 지킨다.
온사문이 방을 나가자 동현은 진지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청명 공주에게 민감한 말을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