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7화 동현, 셋째 부인 양아오를 통해 양량을 등용하게 하고, 고보장은 양량에게 파격적인 벼슬을 내리다.
동현이 고보장을 자신의 제자로 받아들이고 난 뒤, 동현은 양아오와 함께 양량이 머무는 처소로 향했다.
“누님!”
“량아!”
양량은 아오가 왔다는 말을 하인에게 듣자마자 바로 문을 열고나오며 아오를 꼭 껴안았다.
“누님… 흐흑…….”
“잘 지냈느냐? 어디보자…….”
양아오도 동생 양량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잠시 동안 떨어질 줄을 몰랐다.
동현은 그런 두 사람이 진정되기를 기다려주었다.
“량아. 너도 알지? 이제 이 분은 나와 혼인한 사이다. 이 고구려의 대막리지이시지. 신하들 중 가장 윗자리에 있으신 분이다. 인사해라.”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렇네. 예전에 전쟁터에서 보고 처음이로군.”
“그렇습니다.”
“그나저나, 들어가서 이야기 할 수 있겠나?”
“예. 들어오시지요.”
그렇게 양량과 아오, 동현 셋은 탁자에 빙 둘러 앉았고 하인과 함께 차 한잔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량아.”
“예. 누님.”
“너도 이제 나이가 나이인 만큼 혼인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누님… 전 볼모일 뿐입니다. 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여기 서방님이 힘을 써주시고 계신 것이다.”
“부인의 말이 맞네. 처남. 허나 그 전에 자네가 약조를 해주어야 할 것이 있네.”
“음… 무슨 말씀을 하실지 알 것 같습니다. 고구려에 충성을 다해달라는 것과 이제 우리는 한 집안이니 함께 헤쳐 나가야 한다는 것 아닙니까?”
“맞네. 그 두 가지만 약속해주면 나도 자네의 가문이 명맥을 이을 수 있도록 해주겠네. 약간의 영토를 다스릴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며 그곳을 다스리는 왕이 될 수 있도록 말이야.”
“번국이 되라는 말이군요.”
“그렇다네. 왜? 싫은가?”
동현의 말에 양량은 잠시 고민하고는 대답한다.
“매형께서는 저를 얼마나 믿으십니까?”
“내 아내가 자네를 믿는 만큼 나도 믿네.”
“진심이십니까? 저는 한 때 적이었습니다.”
“물론 그랬지. 허나 지금의 현실은 자네는 볼모일세. 그리고 자네를 볼모에서 풀어줄 사람은 나뿐이고 말일세.”
“…….”
“그리고 내 덕분에 자네는 이 볼모에서 풀려나는 것은 물론이고 과거 자네의 수나라 명맥을 번국이 되게 함으로써 왕이 되는 기회를 얻게 되었지. 그 대가 끊길 수도 있다는 것을 내가 이어주는 것일세. 자네 누나인 부인은 이제 완전히 우리 가문의 사람이니 만큼 자네가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자네 수나라 황실의 직계 가문은 핏줄은 사라지는 것일세.”
“…….”
“나는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 않네.”
“어째섭니까?”
“이런 말 들어봤는가? 피는 피를 부르는 법이라고 말이야.”
동현의 말에 양량이 바로 되묻는다.
“하지만… 본래대로라면 그 싹을 잘라버리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그렇지. 허나 그 뒤의 결말은 어찌 되었는가? 모두 결말이 좋았는가?”
“…….”
“물론 자네 말대로 쳐낼 사람이 있기는 하지. 허나 자네는 아닐세.”
“어째서… 입니까?”
“내가 보기에 현재 자네 모습은 예전과 같은 모습이 많이 사라졌거든.”
“예전과 같은 모습이라면…….”
“우리 고구려를 반드시 무너뜨리겠다고 증오에 찬 모습 말일세. 마치 광기가 스며든 사람처럼 말이야. 쉽게 말해서, 자네 형 같은 모습 말일세.”
“저… 전! 그런 패륜아와 다릅니다!”
“아네. 하지만 과거 자네는 비슷한 모습이었어. 우리 고구려에 처음으로 자네가 침입해 왔을 때부터 떠올려보게. 자네가 어땠는지 말이야.”
동현의 말에 양량은 그때가 잠시 떠오른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동현은 그런 양량을 보며 계속 말을 이어간다.
“나는 지금처럼 자네가 자네의 누나인 내 부인을 보며 사람다운 모습을 보였을 때가 좋다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확신했네. 자네는 양광과 확연히 다른 사람이라고 말이야.”
“…….”
“그래서 자네를 믿는 것일세. 그리고… 내 부인이 말하기를, 동생은 자신이 잘 타이르면 잘 따른다고 했으니 믿어줘야 하지 않겠나?”
동현의 말에 양량은 자신의 누나인 아오를 잠시 쳐다본다.
그러자 아오는 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제야 양량은 무언가 결심을 한 듯 말한다.
“그 두 가지만 제가 잘 지키면 정말 매형께서도 약속을 지켜주시는 겁니까?”
“물론!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네. 자네가 그리 말하니 한 번 더 말해주지. 내가 이번에 과거 손권이 다스렸던 영토와 한 때 유비가 다스렸던 서주 지역을 공략하려 한다네. 거기서 과거 손권이 오나라를 다스렸던 건업… 말릉이라고도 했던가? 그곳을 얻게 되면 자네가 그곳을 다스리도록 해주지.”
“……!”
“그곳은 땅도 비옥하며 강이 있어 여러 지역과 교류를 하기에도 좋지. 특히 우리 고구려와도 배를 타고 자주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위치니 그만큼 좋은 위치는 없을 것이야. 어떤가?”
양량은 동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매형이 그렇게 말하고, 누님께서 그리 말하시니 저도 믿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만 더 지켜주실 것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만약 제가 있던 동도(낙양)를 되찾게 된다면… 저희 어머니와 아버지 시신을 수습하여 성대하게 장사를 지낼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 점에 대해서는 솔직히 쉽게 약조를 해주지 못할 것 같군. 본래 우리와 수나라는 적국이었으니 말이야.”
“…….”
“여기 부인도 그 점에 대해서 이해를 해주었네. 일단 그 점에 대해서는 우리가 동도를 점령하면 그 때 다시 한 번 고려를 해볼 테니 믿고 기다려주게. 그래 줄 수 있겠나?”
동현의 말에 양량이 말이 없자 양아오가 무언가 불안한 듯 양량에게 눈으로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제발 남편의 뜻을 믿어달라는 눈빛.
양량은 그런 누나의 눈빛에 한 번 믿어주기로 결심했다.
“좋습니다. 솔직히 마지막 이야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만… 제 누님이 그렇게 말을 했으니 믿겠습니다.”
“고맙네. 내가 자네가 말한 약조를 지킬 수 있도록 노력 하겠네.”
동현과 양아오는 그제야 한시름 놓은 듯 미소를 짓는데 양량은 아직 할 말이 끝나지 않은 듯 또 묻는다.
“헌데… 언제 그 지역들을 차지할 수 있는 것입니까?”
“지금 내 책사들이 그곳을 공략하려 나섰다네. 조금은 시일이 걸려. 그러니 내 책사들이 그곳을 공략할 동안 자네는 나와 함께 해야 할 일이 있네.”
“그게 무엇입니까?”
“하북 지방으로 가 자네의 모습을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일세. 그리고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을 하게.”
동현은 그렇게 말을 하더니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양량에게 준다.
양량은 그것을 받아 바로 읽어보는데…….
[수나라가 무너진 것은 내 형으로 인해 그리된 것이다. 내 형이 마음대로 아버지를 죽이고 황제의 자리에 올라 수나라를 망쳤으니 나는 그 망친 무리들을 벌하려 고구려에 항복했다. 이것은 수나라의 초대 황제이신 아버지의 막내아들로써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버지께서는 백성들을 항상 위하는 마음을 가졌던 것으로 알기에 나는 그것을 실천해야 했고 백성들을 살리려면 이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는 여러 나라로 분열된 여러 지역의 군웅들로부터 백성들을 구하고자 한다.]
[허나 나 혼자 이 일을 하기에는 너무나 힘이 부족한 터… 그래서 나는 고구려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다행히 고구려에서도 내 사정을 딱하게 여겨 이제는 나를 더 이상 볼모로 대하지 않으며 오히려 내가 정통성을 가진 왕이라는 것을 인정하며 한 지역을 주어 왕으로 삼아주겠다는 약조까지 해주었다.]
[그러니 여러 군웅들에 속해 있는 기존의 수나라 백성들이여… 나를 도와달라. 내가 곧 고구려 군사의 힘을 빌려 이 양량의 깃발을 걸고 내 형이 다스렸던 수나라가 아닌 과거 아버님이 다스렸던 수나라와 같은 나라를 다시 세우겠노라.]
[비록 한 단계 격하된 왕의 자리이고 고구려의 도움을 받는 것이지만 나는 백성들을 위해서라면 어떤 굴욕이든 감수할 터. 다시 한 번 말하노니 여러 백성들은 나를 도와달라. 우리 다시 새로운 나라를 고구려와 함께 만들어 보자!]
동현이 서찰에 쓴 편지 내용을 다 읽어본 양량은 속으로 매우 참담했다.
‘어찌 우리 수나라가 이리 될 수 있단 말인가? 하아…….’
“이제 처남은 우리 고구려 전 지역을 돌아다닐 수 있다. 그러니 준비가 다 되는대로 바로 하북 지방으로 가거라. 현재 그곳을 살피고 있는 박준과 왕고중이 업성에 있는데 그곳에서 하북 지방을 다스리고 있지.”
동현이 말을 이었다.
“자네는 그 업성에 머물러 기회를 보아 다른 군웅들이 겨루고 있는 곳을 군사를 동원하여 가게 될 것이야. 그리고 자네가 갔을 때 내가 좀 전에 한 말을 실천하면 그들은 서로 반목할 것이고 싸우게 될 것일세. 그렇게 되면 적들의 세력은 크게 약해질 것이니 그 때가 우리에게는 공격할 수 있는 큰 기회가 될 것일세. 어떤가? 해낼 수 있겠는가?”
동현의 말에 양량은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대답한다.
“할 수 있습니다.”
“좋아. 그곳에는 박준이라는 자가 있으니 그 자의 말을 충실하게 따르도록 하게. 내 밑에 있는 책사 중 한 명이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매형.”
“자, 모든 것이 결정이 되면 태왕 폐하께서 자네를 데리고 오라고 했네. 같이 갈까?”
“예? 고구려 왕… 아니 태왕 폐하께서요?”
“그래. 태왕 폐하께서는 이번 계책에 아주 큰 기대를 하고 계시지. 그리고 네가 큰 역할을 할 열쇠라는 것을 알고 있기도 하고 말이야. 그러니 부르시는 걸세. 자, 얼른 가지. 부인도 갑시다.”
“예. 서방님.”
그렇게 동현은 두 사람과 함께 고보장을 알현했다.
비록 동현이 세운 허수아비 태왕이지만 상징성이 있는데다가 고보장은 동현이 하는 일을 그대로 따르고 있기에 양량을 반갑게 맞이했다.
고보장은 양량을 격하게 반기려는 듯 친히 옥좌에서까지 내려와 양량의 손까지 잡고 흔들며 말한다.
“어려운 결정을 해주어서 고맙네.”
“아, 아닙니다.”
“여기 대막리지를 많이 도와줘. 그것이 우리 고구려가 부강해질 수 있는 길이니 말이야.”
“소신… 신명을 다 바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양량은 이렇게 말을 하며 절까지 하자 고보장은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는 시선을 돌리더니 양아오를 보며 말한다.
“그대가 대막리지의 셋째 부인이로군. 양아오라고 했던가?”
“그렇사옵니다. 태왕 폐하.”
“어려운 결정을 내려줘서 참으로 고맙다. 네 덕분에 이 일이 쉽게 풀리게 됐어.”
“황공하옵니다. 태왕 폐하. 저는 그저 서방님께서 하자는 대로 따랐을 뿐입니다.”
“하하하! 그래. 그리 말해주니 고맙구나.”
고보장은 양아오를 위로 한 뒤 동현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한다.
“어려운 일을 잘 풀었구만. 대막리지.”
“그렇습니다. 이 모든 것을 태왕 폐하께서 지지해주시지 않았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겁니다.”
“자네는 너무 겸손해. 아무튼… 그럼 이제 양량 저 자를 하북 지방 박준이 있는 업성으로 보내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그곳으로 양량이 가야 본격적인 일이 시작 되었을 때 우리도 바로 일을 진행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구만… 그렇다면 그에 맞는 벼슬도 내려주어야겠어. 양량은 듣거라!”
“예! 태왕 폐하!”
“너에게 문관직으로는 5관등인 위두대형 자리를… 그리고 무관직으로는 좌장군의 자리를 내린다. 좌장군의 자리는 1만의 군사를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자리이니 맡은 바 책임을 다하라!”
고보장은 파격적으로 양량을 대우했다.
물론 이것은 모두 동현이 고보장에게 서찰을 미리 보내 자신의 뜻을 전달하여 이루어진 것.
이렇게 파격적인 벼슬을 내린 것은 그가 마음을 바꾼 만큼 대우를 제대로 해줘서 더욱 고구려에 충성하게 만들려는 동현의 의도였던 것이다.
본래 투항한 사람에게 이 정도의 벼슬은 절대 주지 않는데 동현은 과감하게 이를 실행에 옮겼다.
양량은 고보장의 말을 듣고는 너무 놀라 말까지 더듬으며 간신히 대답한다.
“화…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하하하! 그래! 본래 투항한 자들에게는 이런 벼슬을 처음부터 주지 않는다. 허나 너는 다르다. 대막리지의 처남이며 앞으로 우리가 영토를 차지하면 그곳의 번왕이 되어 다스릴 사람이 아니더냐? 그러니 이 정도 대우를 처음부터 받는 것이 옳다. 태대사자는 내 황명을 울절에게 그대로 전하여 양량이 바로 벼슬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해라.”
“예! 태왕 폐하!”
동현은 모든 것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자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런 동현의 기분을 알았던 것일까?
고보장은 동현은 물론 양량과 양아오를 데리고 연회장으로 향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