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2화 아사나사리불은 훗날을 위해 큰 굴욕을 감내하고, 동현은 이간정을 활용한 계책을 실행하려 하다.
동돌궐의 아수인조불은 그렇게 아사나사리불의 명령을 받고 고구려와 경계를 이루는 국경 지역으로 향했다.
그리고 대중상을 만났다.
“전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행동을 멈추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아량을 베풀어 주십시오.”
“아주 잘 생각했다. 허나 뒤로 더러운 짓을 했으니 약간의 대가를 받아야겠다.”
“어떤 대가인지 말씀해주십시오.”
아수인조불의 말에 대중상 앞으로 한 서찰을 던진다.
아수인조불은 그 서찰을 받아 급히 읽어 보는데…….
“이건… 서역과 교역의 길을 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우리가 현재 하북 지방과 다른 지역들을 통해 여러 나라들과 무역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입니다.”
“허나 우리는 저 서역과의 무역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지.”
“서역이라 하시면…….”
“잘 알지 않나? 수나라에서는 비단길이라고 하더군. 내가 알기로 수나라의 수도인 대흥성(장안성)과 동도(낙양)에서부터 자주 서역과 거래를 한다고 들었네. 하지만 그곳은 현재 우리 영토가 아니야. 하지만 지금 자네들이 협조를 해준다면 우리 고구려는 동돌궐과 서돌궐을 통해서 서역과 제대로 된 무역을 할 수가 있지. 그렇기에 우리 상인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허락을 해달라는 것이네.”
“저희가 번국이 될 때 맺은 조약만으로도 이미 자유롭게 우리 영토를 드나들며 무역을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지. 하지만 저 서역과의 무역 이야기는 빠지지 않았는가?”
“…….”
“그 일을 도와주면 태왕 폐하께서 이번 일은 눈감아 주시겠다고 하셨네. 아… 물론 한 가지가 더 있어.”
대중상의 말에 아수인조불은 긴장한 채 다음 대중상 말을 기다린다.
“남은 한 가지는… 그대들이 조공을 바칠 때 많은 말들도 함께 바친다는 것을 알 걸세.”
“물론입니다.”
“그 양을 조금 늘렸으면 좋겠는데? 한 500필 정도 말이야.”
아수인조불은 대중상의 말에 놀라며 대답한다.
“대… 대장군. 솔직히 말해서 500필을 더 늘리라는 것은 너무 많습니다. 300필 정도로 안 되겠습니까?”
“300필이라…….”
“예. 부탁드립니다. 저희 돌궐은 많은 가축을 팔고 살아갑니다. 농사를 짓긴 하지만 그렇게 많이 짓는 것도 아니고… 반농반목이라고 봐야지요.”
“그래. 그건 나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렇게 제안을 하는 것이다.”
“좀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희가 반농반목이기는 하나 많은 가축을 팔고 살아간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대장군. 농사를 일부 짓는 것은 정말 배가 고플 때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한 것이니 말을 기존의 조공 품목에 500필을 더하여 바치라는 것은 거두어 주십시오.”
아수인조불의 말에 대중상은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꼭 그대들이 타는 말이 아니어도 되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다른 지역의 말들도 된다는 말일세. 내가 듣자하니 과거에 대완국이라는 나라던가? 그 나라의 말이 좋다고 소문이 났다고 하더구만.”
“그 지역 말들은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허나 그 말들이 워낙 좋아 비쌉니다.”
“그렇겠지. 그러면 이건 어떤가?”
“……?”
“전부 다 성체가 된 말이 아니어도 좋아. 그리고 그대들이 주로 우리에게 바치는 말의 종류가 아니어도 좋네.”
“그 말씀은… 말이 성체가 되지 않은 말을 바쳐도 된다는 말이십니까?”
“그렇네. 다만 튼튼한 망아지여야겠지.”
“…….”
“우리 쪽에는 말 전문가가 넘쳐 난다네. 그래서 말이 튼튼한지 아닌지 정확히 구분이 가능하니 허튼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만약 그렇게 해서 우리에게 걸리면… 우리는 진짜로 너희를 칠 것이다.”
“아… 알겠습니다.”
단호한 대중상의 말에 아수인조불은 여전히 긴장하며 대답한다.
그런 아수인조불을 보며 대중상은 말을 이어 간다.
“다시 말해 줄 테니 잘 들어. 말의 종류는 너희가 우리에게 늘상 바치는 종류가 아니어도 좋다. 단 튼튼해야 할 것. 그리고 또 하나… 말을 바칠 때 500필을 다 채우지 못하겠으면 임신한 말들을 우리에게 보내게. 그 말들도 새끼를 낳으면 어찌 되었든 간에 수가 늘어나니 말이야. 그렇게 해서 500필을 채워. 그러면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거라면…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우리 태왕 폐하께서 아량을 베풀어 주시는 것이니 지금부터 잘 하는 것이 좋을 것이야. 그러니 내가 말한 비단길을 열어 서역과 무역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과 말 500필을 더 바치는 것… 이 두 가지를 잘 하도록 해. 특히 말의 경우에는 어떤 식으로 말을 우리에게 바쳐야 하는지 방법까지 알려 줬으니 실수를 하면 그 날로 너희는 끝이다. 알겠나?”
“예. 대장군. 헌데…….”
“말해 봐.”
“저희가 서역으로 가는 길 여는 것을 도와준다고 해도 서돌궐이 있습니다. 서돌궐에서 고구려가 가는 길을 막으면 어찌합니까?”
아수인조불의 말에 대중상은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한다.
“서돌궐은 그 일에 대해 이미 협조를 하기로 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같이 무역을 하자고 하더군. 며칠 전, 우리와 품목까지 정하고 갔네.”
“……!!”
“서돌궐의 왕이 아주 현명하더군. 그 덕분에 현재 서돌궐은 부강해지고 있고 백성들이 평안해 보인다고 그곳에 간 사신이 말해 주었다.”
“…….”
“우리로서 서돌궐 또한 번국이니 만큼 나쁠 것 없는 일이지. 헌데 너희들에게는 아니겠군.”
대중상의 말에 아수인조불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그런 아수인조불을 본 대중상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본래 서돌궐과 동돌궐은 하나의 나라였네. 그리고 우리 고구려와도 아주 친하게 지냈지…….”
“…….”
“헌데 분열되고 난 뒤부터 무언가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고 그 시기부터 우리 고구려와 사이가 안 좋아지기 시작했었지. 뭐… 과거 친했을 시기에도 약간의 마찰이 있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별 문제가 아니었다네. 서로 잘 이해하고 하며 넘어 갔으니깐… 그런데 말이야. 둘로 갈라지고 나서 특히 너희 동돌궐이 우리 고구려의 변방을 본격적으로 침범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너희들도 알 것이야.”
“그 점에 대해서는 저희 전하께서도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 고구려로 찾아가 사죄를 드린 것이고 말입니다.”
“그래. 그래서 우리가 참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 일 때문에 너희를 아예 정복하자는 의견도 많았다. 헌데 그것을 태왕 폐하께서 한 번 더 기회를 주자고 말씀하셨지.”
“…….”
“내가 이 말을 자네에게 하는 것은 이제 마지막 경고라는 뜻일세. 한 번 더 우리의 뜻을 거역하면… 그때는 정말 자네들을 칠 것이야. 알겠나?”
아수인조불은 대중상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다.
“명심하겠습니다.”
“자네들과 번국 조약 내용을 맺은 거 외에 우리는 절대 타국의 일에 절대 관여 하지 않네. 그 나라는 본래 너희들의 나라이니 말이야. 이것은 다른 나라도 마찬 가지야.”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본래 다른 나라들의 경우에는… 번국으로 삼은 나라들에게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상국들이 대부분이니 말입니다.”
“아주 잘 아는군. 자네 말이 맞아. 그러니 우리가 잘 대우해 줄 때, 너희도 잘하라는 것이야.”
“알겠습니다.”
“내가 자네와 이야기 한 것을 태왕 폐하께서 상소를 써서 보낼 테니, 그동안 자네는 이곳에 머물며 답신을 기다리도록 하게.”
“예. 대장군. 그리 하겠습니다.”
그렇게 아수인조불은 대중상과 이야기를 끝내고 막사를 나왔다.
그리고 자신에게 배정된 막사로 같이 온 하인과 들어가는데, 아수인조불은 막사를 배정 받아 들어가자마자 지필묵을 가져오게 한다.
하인이 지필묵을 가져오자 거침없이 무언가를 쓰고는 하인에게 건넨다.
“이 소식을 전하께 전달해 드리도록 해라.”
“예! 근위장!”
그렇게 아수인조불은 서찰로 아사나사리불에게 소식을 전했다.
아사나사리불은 서찰의 내용을 받고는 처음에 매우 분노했지만, 주변 신하들이 이 정도 선이면 아수인조불이 잘 막아낸 것이라 말하며 그를 달랬다.
그제야 아사나사리불은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
특히 그의 분노를 가라앉힌 것은 볼모로 가 있는 어머니 때문이었다.
신하들이 볼모로 가 있는 어머니를 생각해서 참아야 한다고 말을 했기 때문.
그렇기 때문에 아사나사리불은 애써 분노를 참을 수밖에 없었다.
“제기랄…….”
“전하. 잘 참으셨습니다.”
“참기는 하지만… 아직 내 분노가 다 가라 앉은 것은 아니다.”
“…….”
“솔직히 말해서 내가 형님 전하의 뒤를 이어 이 자리에 앉기 전에는… 왜 형님 전하께서 처음에 고구려에 적대하려고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허나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앉고 보니 알겠어. 왜 형님 전하께서 고구려를 적대하려 하셨는지 말이야.”
“그만큼 무서운 힘을 가진 나라이기 때문이겠지요.”
“맞아. 커져도 너무 커졌어. 저 수나라의 공격을 막아내고 하북 지방을 공격할 점령할 정도니 말이야. 애초에… 다른 나라와 합심해서 고구려를 공격하여 영토를 나누어 먹었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인데…….”
“전하의 생각이 옳은 생각이기는 하나 뜻대로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어째서?”
“각자의 나라마다 자기 속셈이 있는데 전부 전하의 뜻에 따라 주겠습니까?”
한 신하의 대답에 아사나사리불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래. 자네 말이 맞군. 내 뜻에 따라 주려면… 나라가 힘이 있어야 하겠지.”
“그렇습니다. 현재의 고구려처럼 말입니다. 지금 고구려는 아무도 넘보지 못하는 나라입니다. 저 흑수말갈은 물론이고 주변 이민족들도 그렇고… 특히 수나라가 갈라져 일어난 여러 군웅들 까지도 고구려에 선을 넣고 있다고 합니다.”
“그 힘을 뒤에 업어서 자신들의 나라를 만들려고 하겠지.”
“맞습니다.”
“하아… 한숨만 나오는군. 그래도 내 대에서는 우리나라가 강하고 부강해져야 하는데 말이야… 그것이 너무나도 어려워.”
“어느 정도 부강해지는 것은 가능하겠으나… 고구려 정도 수준이 되려면 한참이 걸릴 겁니다. 이런 말이 조금 송구하오나…….”
“……?”
“현재 전하의 대에서는 이루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전하께서는 훗날을 위한 발판이 되게 하셔야 합니다.”
“발판이라…….”
“예. 전하. 전하의 뒤를 잇는 후손들이 전하께서 잘 해놓은 나라를 기반으로 급성장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 말입니다. 지금은 그것이 가장 필요할 때라고 봅니다.”
신하의 말에 아사나사리불은 무릎을 탁 치며 대답한다.
“맞아! 그것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지. 그 날을 위해서 오늘날의 난… 모든 굴욕을 감내할 것이다. 그러니 내가 만약 잘못된 행동을 한다면 오늘처럼 거침없이 지적해 주거라!”
“소신뿐만 아니라 다른 신하들도 모두… 전하의 뜻에 따를 것입니다!”
그렇게 아사나사리불은 불열말갈과 흑수말갈, 그리고 천마석처럼 후대에 자신들의 나라가 부강해지기를 바랐다.
* * *
한편, 그 시기 동현은 백암성의 한 관청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있었다.
“그래. 그 동안 잘 지냈는가?”
“예. 대모달. 대모달께서도 강녕하셨습니까?”
“나야 별 문제없이 잘 지냈지. 그나저나… 자네 정말 흰 머리가 많이 늘었구만. 하긴… 내가 어주 어렸을 적에 자네를 만났으니 그럴만 하겠구만.”
“그렇습니다. 하아… 원수를 갚지도 못하고 죽을까봐 불안합니다.”
“걱정 말게. 이간정. 이제 조만간 기회가 올 것 같으니깐…….”
이간정. 예전에 거란의 한 부족 사람으로 지금은 다른 거란 부족에게 자신이 모시는 이굴가가 죽은 뒤 간신히 목숨을 건져 고구려로 도망쳤다.
동현은 그런 이간정이 고구려로 올 것을 예상해 당시 영양 태왕에게 상주하여 그들을 받아들였고 동현의 백암성에서 무리를 이루고 살아가고 있었다.
이간정은 꼭 복수를 하겠다며 이를 갈고 있었는데, 동현은 그런 복수심을 언젠가 활용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를 곁에 두며 챙겨 주었다.
그러다가 동현은 이제 고구려가 강대국이 되었고 나라는 점점 커지고 있으며, 수나라는 멸망의 길을 걷자 이제야 이간정을 활용할 때가 왔다고 생각하여 호출한 것이었다.
“예? 기회가 올 것 같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자네가 받들던 이굴가의 영토를 되찾을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말일세.”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 단… 영토를 되찾게 되면 우리 고구려의 요구를 따라줘야 할 것이 있어. 이 조건들을 받아들이면 내가 적극적으로 자네를 도와주겠네.”
“하문하시옵소서! 소인 이간정! 복수만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것입니다!”
이간정은 활활 타오르는 눈빛을 하며 동현의 말을 기다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