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8화 백제의 무왕은 황우의 조언을 받아들여 황훈을 은밀히 동현에게 보내 협상을 시도하다.
황우는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후 무왕의 물음에 대답한다.
“일단 세 가지가 있습니다.”
“세 가지나? 역시 위사좌평이로군. 말해 보게.”
“일단 첫째… 고구려에 이번 일에 대해 우리가 사신을 먼저 보내 사과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앞으로 조공을 바치겠다고 하는 것이지요.”
“그건 너무 저자세가 아닌가?”
“저자세이긴 하나 조공 한 번으로 고구려를 달래고 나라를 보존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고구려가 강하다고 말씀하시니 말입니다.”
“으음… 두 번째는?”
“두 번째는 저 서토와 손을 잡고 고구려에 대응하는 겁니다.”
“서토와? 하지만 지금 서토는 혼란하지 않은가?”
“물론 그렇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큰 세력이 있을 겁니다. 그런 세력에 사신을 보내어 앞뒤로 적을 두게 하여 고구려를 견제하는 겁니다.”
“음…….”
“마지막 세 번째는 고구려에 동맹을 제의하는 겁니다.”
“동맹을? 하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나?”
황우는 무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맞습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다만…….”
“……?”
“고구려의 실세와 이야기를 해보면 다를 수 있습니다.”
“고구려의 실세? 태왕이 아니라?”
“예. 어라하.”
“내가 알기로 고구려에서 귀족들의 세력은 힘을 못 쓰고 태왕의 권위가 상당하다고 들었다. 그런데 실세가 있다?”
“그렇습니다. 어라하.”
“그게 누구인가?”
“현재 두 사람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라…….”
“예. 현재 막리지인 을지문덕과 대모달인 김동현이라는 자입니다. 특히 김동현이라는 자는 과거 제 아들과 인연이 있었던 자이니 만큼 말이 조금은 통할 겁니다.”
“그 가능성이 어느 정도라고 보나?”
“반반입니다. 그 자는 어렸을 때부터 신동으로 불렸던 자이고 저도 한 번 본적이 있사온데 보통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저희 백제에 있었다면… 전군을 맡겨도 될 만한 인물입니다.”
황우의 칭찬에 무왕이 놀란다.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몇 년 전 벌어졌던 고수 전쟁 때 을지문덕의 명성이 널리 퍼졌고 강이식과 수군의 장수들의 널리 퍼졌습니다만, 이자의 명성도 많이 퍼졌습니다. 그건 어라하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 하지만 도무지 믿기지가 않아서 말이지.”
“모든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고수 전쟁에 대한 전체적인 책략이 그 자의 머리에 나왔다고까지 들었으니 말입니다.”
“허어…….”
“일단 은밀하게 그자에게 사람을 보내어 의중을 들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태왕의 권위가 높다고는 하나 현재 태왕은 태왕 위에 오른 뒤 얼마 되지 않았으니, 특히 이 두 사람에게 많은 것을 의지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조언에 의해 고구려의 정책들이 많이 운영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상하군. 내가 알기로 대모달보다 막리지 벼슬이 더 높다고 들었다. 헌데 을지문덕은 아예 말도 안하는군.”
황우는 무왕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그자는 이제 많이 늙어 곧 은퇴를 할 사람일 겁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는 제가 듣기만 하였을 뿐 직접 만나 보지를 못했고 파악도 안 된 상태이니, 한 번이라도 만나본 상대와 이야기를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군. 그럼 누구를 보내는 것이 좋겠는가?”
“소신의 아들놈을 보내고 싶습니다.”
“훈이를?”
“예. 어라하. 제가 직접 가고 싶으나 제가 워낙 몸이 안 좋아 제 아들놈을 보내는 것이 나을 겁니다.”
“그래… 자네 아들의 능력은 증명이 되었지. 좋아. 준비가 되는대로 가서 동맹을 제안해 보게.”
“예. 어라하. 우리가 동맹을 제안하면 그 쪽에서도 무언가 조건을 걸 테니, 서로 조율을 해보는 것이 좋을 겁니다. 허나 만약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그때는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이것까지 미리 생각해 두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두 번째 계책이 좋지 않겠는가?”
“솔직히 말씀 드리면… 그 계책 또한 추천하지 않습니다.”
“어째서?”
황우는 무왕의 물음에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현재 서토는 본래 지배하던 수나라가 여러 군웅들에 의해 완전히 찢어진 상황입니다. 이 말은 그 나라가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거기다 고구려는 현재 저들이 지배하던 하북 지방까지 차지한 큰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북 지방은 물산이 워낙 풍부한 곳이니 만큼 고구려는 그것을 기반으로 무섭게 성장할 겁니다.”
“그러니깐 자네 말은… 지금은 고구려의 완전한 전성기이니 건드리지 말고 오히려 철저하게 숙이라는 말처럼 들리는데…”
“직설적으로 말하면… 그렇습니다.”
“…….”
“달솔 백기는 과장이 없는 자이니 만큼 말한 것이 모두 사실일 겁니다. 거기다 주변의 모든 장수들까지 증언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것이 패전을 위한 핑계라면…….”
“어라하께서도 아시겠지만 백기가 이곳에 돌아오기 전에 저도 그 소식을 듣고 전황을 알아보고자 사람을 보냈었습니다. 헌데…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
“어라하께서는 직접 보시지 못하셔서 믿지 못하시겠지만 믿으셔야 합니다. 지금의 고구려에게 대항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입니다.”
무왕은 황우의 냉정한 말에 한숨을 쉬며 대답한다.
“하아… 조공을 바치는 것까지 그렇다고 치세. 하지만 직접 입조하라고 까지 말을 하면 어찌하나?”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지요. 전군이 다 죽을 때까지 몸을 불사를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각오를 보여줘야 고구려가 우리 백제를 믿어 줄 겁니다. 아니… 믿지 않더라도 최소한 먼저 우리 백제가 자신들을 더 이상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낫겠군요.”
“…….”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과제는 내정의 안정도 중요하지만 고구려처럼 신무기를 빨리 개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국력 면에서는 뒤쳐져도 질적인 면에서라도 따라가 줘야 버틸 힘이라도 생기지 않겠습니까? 고구려가 수나라를 상대한 것처럼 말입니다.”
“후우… 알겠네. 자네 말에 따르지. 하지만 이 결정은 자네의 아들이 다녀온 후 다시 이야기를 나누어봐야 할 것 같구만.”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그렇게 백제 무왕은 황우의 아들 황훈을 은밀하게 동현에게 보냈다.
황훈은 아버지 황우에게 지시를 듣고는 매우 놀라면서도 오랜만에 동현과의 만남이 기대 되었다.
* * *
며칠 후… 동현에게서 황훈 밑에 있는 수하가 찾아왔다.
동현은 서찰을 받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알겠으니 시간이 되면 내 방으로 오라고 해라.”
“예. 대모달. 그리 전하겠습니다.”
그렇게 황훈의 수하가 물러나자 동현은 급히 사훈을 호출하여 이번 일에 대해 논의했다.
“소인의 생각으로는 수군에서 우리에게 박살이 났으니 어떻게든 우리의 공격을 늦추려는 생각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무기를 봤는데 그런 행동을 한다고? 그게 말이 된다고 보는가? 우리는 힘의 일부이긴 하지만 그들에게 화포를 씀으로써 우리 무력을 제대로 보여 주었네. 헌데 이런 우리를 상대로 백제가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그건 좀 이상하구만.”
동현의 말에 사훈도 한 동안 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었다.
동현은 그런 사훈을 앞에 두고 계속 말을 이어간다.
“아마 내 생각으로는… 무언가 협상을 시도하려 할 것 같군.”
“협상 말입니까?”
“그래. 아마 우리에게 동맹을 시도하든가… 조공을 바치겠다고 하겠지. 그러니 자신들을 치지 말아달라… 이런 협상을 하지 않겠나?”
“너무 뻔뻔한 것 아닙니까? 자신들이 먼저 우리를 쳐 놓고 말입니다.”
“그렇지. 허나 지금 백제는 어떻게든 자신들의 나라를 유지하고 싶을 것이야. 그리고 그것을 피하려면 조공이라도 해야겠지.”
“음… 듣고 보니 대모달의 말씀이 옳습니다. 헌데 동맹은 왜…….”
“그게 백제에게 있어서는 최상이기 때문일세.”
“어째섭니까?”
“현재 서토는 양광으로 인해 찢어지기 시작했네. 그 응집력을 완전히 잃었지.”
“그렇습니다.”
“만약… 그들이 밀려나 더 이상 승산이 없을 때는 어디로 갈지 생각을 해보았나?”
동현의 말에 사훈이 놀란다.
“설마… 우리가 있는 이 한반도로 넘어 올 가능성이 크다는 말씀입니까?”
“바로 보았다.”
“그건 너무 큰 기우인 것 같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 허나 저들이 지푸라기라도 잡고자 하는 마음인 만큼 반드시 백제로 넘어올 것이다. 그리고 백제에 들어오게 되면 세력을 은밀히 키우거나 해서 백제 정권을 몰아내어 자신들의 나라를 세우려 할 것이야. 그렇게 되면 우리는 적을 앞뒤로 두게 되지.”
“백제는 그것을 예상하고 그럼…….”
“그렇지. 아마 백제 안에 인물이 있을 것이야. 만약 동맹을 제안한다면… 자신들이 불리한 조건이라도 자신들이 따르겠다고 할 것이다.”
“음… 일단 그 말을 들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새벽에 오기로 했으니 기다려보자.”
그렇게 동현은 사훈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날 새벽… 황훈이 직접 동현을 보러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암! 나야 항상 잘 지내고 있었지! 자… 이럴 것이 아니라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 하지. 얼른 앉게나!”
“예. 대모달.”
황훈이 의자에 앉자 동현은 미리 준비를 해둔 차를 따라주며 묻는다.
“그래. 위사좌평 어른께서는 잘 계시는가?”
“그렇습니다. 허나 근래에 건강이 나빠지고 계셔서 이제 그만두고 낙향하실 생각입니다.”
“저런… 자네가 돌아갈 때 아버님의 기력을 보하는 이 인삼을 드리도록 하게. 이 인삼이 건강에 큰 도움이 될 것이야.”
“감사합니다. 대모달.”
“그나저나… 자네가 이렇게 야심한 시각에 온 것은 아마도 백제에서 우리 고구려 의중을 알아내기 위해서겠지?”
“역시 대모달이십니다. 특히 대모달께서는 이 고구려의 기둥이고 실세이시니 이렇게 찾아와 묻는 것이 아닙니까?”
“실세라… 하하하! 나는 그리 생각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대모달이시라면 그렇게 대답 하실 줄 알았습니다.”
동현은 황훈의 말에 차 한 잔을 마시더니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그래서? 우리 고구려가 백제를 칠 것 같은지 아닌지를 알아보는 동시에 칠 것 같으면 우리와 협상을 하러 온 것 같다만?”
“맞습니다. 일단 제일 처음 제안할 것은… 동맹입니다.”
“동맹이라…….”
“예. 저희 백제도 큰 꿈이 있습니다. 서토의 오랑캐 놈들을 물리치고 많은 영토를 차지해 큰 나라를 경영하고픈 꿈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어라하께서는 태왕 폐하와 그 꿈을 함께하고 싶어 하십니다.”
“말은 바로 해야지. 꿈을 바로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공격을 하면 지도에서 지워질지 모르니 차라리 우리를 등에 업고 나라를 보전한 뒤, 틈을 보아 다시 고구려를 공격할 생각이 아닌가?”
“그것은 너무 나가셨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무슨 생각으로 우리에게 동맹을 제안하는 것이지?”
“현재 서토는 수나라가 찢어져 군웅들이 일어나고 있는 만큼 그들이 일이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이 한반도로 넘어올 것이 분명합니다.”
“그 말은… 후방은 백제에서 그들을 막아 주겠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믿고 백제에게 후방을 맡기겠나? 우리를 먼저 공격하는 놈들인데 말이야.”
동현의 말에 황훈이 바로 대답한다.
“우리 백제 측에서 황실 사람을 볼모로 보내겠습니다.”
“볼모로 보낸다?”
“예. 그와 동시에 조공을 바치겠습니다.”
“조공을 바치겠다라… 입조는 하지 않고 조공만 바친다는 것은 우리의 하사품을 많이 가져가려는 속셈이로군.”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으나 저희가 먼저 고개를 숙인 셈이니 타국의 입장에서는 우리 백제가 고구려에 고개를 숙인 것으로 보고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겁니다. 그게 가장 큰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좋아.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나를 설득할 수 없을 것이다. 그대의 나라 백제가 겉으로는 우리의 속국처럼 표현하나 이 정도 조건이면 그대들 입장에서는 동맹으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입장이지. 입조도 하지 않았고 겉으로만 조공을 바친다고 하며 서토에서 넘어오는 오랑캐들에 대한 대비를 너희들이 하겠다는 말만 할뿐 증명할 것이 없으니 말이야. 이 말에 책임을 지고 증명할 만한 것이 있어야 할 것이다.”
동현의 말에 황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가를 말하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