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5화 동현, 고대양에게 조언하다.
천마석이 직접 조문을 오자 고대양은 친히 그 손을 잡아 주며 고마워했다.
“이렇게 직접 찾아주니 고맙네.”
“아닙니다. 번국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구만. 그나저나… 자네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왕위에 오른 것인데… 어떤가? 직접 왕이 되어보니 말이야.”
“새삼 아버님이 대단하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모든 것을 두루 살펴야 하니 말입니다.”
“그렇겠지… 나도 자네처럼 같은 기분을 그대로 느낄 것 같다. 아니… 돌아가신 태왕 폐하는 위대하신 분이셨으니 자네보다도 내가 더 느낄 수도 있겠군.”
“저도 그럴 것이라 생각됩니다. 제가 보기에도 돌아가신 선제 태왕 폐하께서는 엄청난 업적을 세우셨습니다. 지금까지 고구려가 영토를 넓히고 주변의 나라들을 복속시킨 것은 선제 태왕 폐하만이 할 수 있었던 업적이 아닙니까?”
“그렇지. 과거에 광개토태왕 폐하나 장수 태왕 폐하가 있으시긴 하지만… 이제 그 분들도 선제 태왕 폐하와 비교하면 우리 고구려의 최전성기가 아닌 것이 되었지… 아… 참. 말이 너무 길어졌구만. 그래. 더 할 말은 없는가?”
고대양의 말에 천마석이 대답한다.
“저…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말해보게.”
“저희 불열말갈은 이 고구려에 제 여동생과 숙부 둘이 볼모로 와 있습니다.”
“그래. 그건 나도 알고 있다.”
“듣자하니 이제 제 숙부의 건강이 좋지 못 하시다고 들었는데… 그 분은 볼모 생활을 풀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마지막 여생을 본래 살던 우리 불열말갈에서 마치게 하고 싶습니다.”
“으음… 그 이야기에 답은 고민을 좀 해보고 내일 주도록 하겠네. 언제까지 이 고구려에 있을 생각인가?”
“예. 태왕 폐하의 답을 받는 즉시 돌아갈 생각입니다.”
“그렇군. 알겠네. 내일 내가 답을 해줄 테니 오전에 대전으로 나오게. 그때 우리 신하들이 모두 모여 조회가 열리니 말이야.”
“예! 태왕 폐하! 황명을 받들겠나이다!”
그렇게 천마석은 고대양을 만나고 물러났다.
고대양은 천마석이 물러가자 을지문덕을 호출했다.
“이보게. 막리지.”
“예. 태왕 폐하.”
“좀 전에 불열말갈의 천마석이 내게 와서…….”
고대양이 좀 전에 있었던 일을 을지문덕에게 그대로 전한다.
을지문덕은 그 말을 듣자마자 대답한다.
“정말 건강이 좋지 않은 것이라면 돌려보내는 것도 괜찮다고 봅니다. 어차피 여동생이 볼모로 있으니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음… 그런가? 하지만 내가 알기로 과거 천마석과 천설유는 후계 자리를 두고 다투던 사이야. 지금 돌려보내려는 숙부도 그 일에 관련이 되어 있지. 그렇다면 오히려 눈엣가시가 빠졌다고 생각하며 기뻐할 것 같은데…….”
“듣자하니 그런 이야기는 아주 오래 전에 풀렸다고 합니다.”
“오래 전에?”
“예. 과거 후계 자리를 두고 다투기는 하였으나 죽은 천석우가 이제는 절대 형제나 자매, 남매끼리는 싸워서는 안 된다며 신신당부를 했답니다. 과거 그것 때문에 우리에게 크게 당하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건 그렇군…….”
“하지만 제 의견만 가지고는 섣불리 결정하시지 마시고 대모달을 부르십시오.”
“대모달까지? 그럴 필요가 있을까?”
고대양의 말에 을지문덕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꼭 필요하십니다. 특히 저는 죽은 강이식 대모달과 연배가 비슷하니 언제 죽을지 모르지요.”
“어허… 이 사람… 죽음을 너무 쉽게 입에 올리는구만.”
“그것이 사실이지 않습니까? 저는 많이 늙었습니다. 허나 대모달은 아직 많이 남았지요.”
“49살도 적은 나이는 아니지 않은가?”
“물론 그렇습니다만 저에 비하면 많이 젊지 않습니까? 저는 올해가 85살인데 말입니다.”
“으음…….”
“그는 선제 태왕 폐하께서 저와 함께 같이 유언을 받은 사람이니 믿으셔도 됩니다. 태왕 폐하. 지금 바로 부르시지요.”
을지문덕의 말에 고대양은 영양 태왕의 죽기 전 유언을 잠시 떠올리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래. 지금 바로 대모달을 부르게.”
“예. 태왕 폐하. 상선. 부탁하네.”
“예. 막리지.”
그렇게 고대양은 동현까지 호출하여 이번 일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동현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언젠가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가? 그럼 어찌하면 좋겠나?”
“천석한을 돌려보내면서 새로운 볼모를 요구하십시오.”
“새로운 볼모?”
“예. 사실 이 일에 대비하여 제가 의원을 위장해서 천석한을 몰래 진맥을 해보았습니다.”
동현의 말에 고대양이 깜짝 놀란다.
“아니… 어떻게?? 자네 얼굴은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을 텐데?”
“그들이 저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얼굴을 최대한 꾸며서 갔더니 알아보지 못하더군요.”
“음… 그랬구만. 그래? 상태는 어떻던가?”
“예전보다 몸이 확실히 쇠약해지기는 했습니다. 허나… 죽을 만큼 건강에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지요."
"그래? 그렇다면 천마석에 거짓을 말한 것은 아니로군.”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제 나이가 많으니 그를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여 여생을 보내게 하려는 의도이겠지요. 물론… 숨은 의도가 있지만 말입니다.”
“숨은 의도라니?”
“막리지께 태왕 폐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천설유와 관계가 되어 있습니다.”
“천설유와?”
“예. 태왕 폐하. 어리석은 소신의 생각으로는… 아마 천마석이 천설유를 태왕 폐하께 바치려고 할 것입니다.”
동현의 말에 고대양이 깜짝 놀란다.
“뭐라? 내게?”
“예. 태왕 폐하. 천석한을 볼모로 돌려보내는 동시에 천설유를 태왕 폐하께 바쳐 혼인을 하게 되면 본인은 불열말갈에서 입지가 더욱 강해지고 왕권은 강화됩니다. 그리고 우리 고구려와 혈연관계로 맺어지게 되는 것이니 볼모도 없어지게 되는 것이고 말입니다.”
“정말 대단한 계책이군. 허나 그것이 정말 일어날까?”
“5할은 내일 바로 그 자가 말을 할 것이며 남은 5할은 기회를 보아 나중에 말을 할 것이라 생각 됩니다.”
“바로 말하면 바로 말하는 것이지 나중에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들의 계책이 누군가에게 간파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지금쯤 아마 천마석은 숙소에서 그 시기가 언제가 좋을지 혼자 생각하며 끙끙대고 있을 겁니다.”
“허어…….”
고대양은 믿을 수가 없었다.
천설유를 자신에게 시집을 보낸다니… 그렇지만 동현이 워낙 이 일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말하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어찌 대처하면 되겠나?”
“좀 전에 말했다시피 천석한을 돌려보내는 것이면 다른 볼모를 데리고 오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 요구를… 저들이 받아들일까?”
“무조건 받아들일 겁니다.”
“어째서?”
“저들의 힘은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니 말입니다. 우리 고구려는 이제 저 서토의 오랑캐 놈들도 무시하지 못하는데… 번국인 나라들이 우리 요구를 듣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군. 허나… 너무 그렇게 하면 원한을 사는 것이 아닐까?”
“태왕 폐하. 이 볼모에 대한 것은 예전부터 조약 내용에 있던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증거로 들이밀면 그들도 어찌할 수 없을 겁니다.”
“으음…….”
“태왕 폐하. 너무 정에만 치우치시면 아니 됩니다. 다시 말해서… 한 나라의 사신을 인간 대 인간으로 보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한 나라의 사신이 대표해서 우리나라에 온 순간… 그들은 그들의 왕과 한 국가의 운명을 짊어지고 오는 사람으로 봐야합니다. 즉 국가 대 국가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이 나라의 국익만을 생각하시옵소서.”
“대모달의 말이 옳도다. 내가 아직 부족한 것이 많으니 옆에서 많이 조언해 달라.”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태왕 폐하.”
“그럼 볼모로 달라고 한 뒤에는 그들의 반응을 지켜보면 되는 것인가?”
동현은 고대양의 물음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둘 중 하나 일 겁니다. 그렇게 되면 천설유를 태왕 폐하께 바치려는 것을 무르던가… 아니면 그대로 강행하던가 말입니다.”
“대모달은 어떤 것이 더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후자입니다.”
“앞서 말했던 이유 때문인가?”
“그것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일단 볼모가 한 명이라도 줄어듭니다. 그리고…….”
“……?”
“태왕 폐하와 천설유 그 여자가 혼인하여 아이를 낳게 되면 그 아이가 태왕이 되었을 때 이용하려 하겠지요.”
“지금 나에게는 이미 장성한 아들이 있다.”
“압니다. 하지만 아이만 낳으면 그를 이용해서 어떻게든 위로 올리려 할 것입니다. 저희는 그 때 그것을 잡아내어 오히려 역이용해야 합니다.”
“알겠네. 그럼 그 일에 대한 계책은 자네에게 맡기지.”
“알겠습니다. 태왕 폐하.”
“그나저나… 만약 자네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두 번째로 혼인을 하게 된다는 것인데… 그리되면 지금의 황후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 되는구만.”
고대양의 말에 이번에는 을지문덕이 나선다.
“태왕 폐하. 나라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가 없는 겁니다. 선제 태왕 폐하께서도 많은 것을 희생하여 지금의 나라를 이루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황후 마마께서도 이해해 주실 겁니다. 너무 염려치 마십시오.”
“그랬으면 좋으련만…….”
“만약 태왕 폐하께서 황후마마의 마음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느껴지시면 소신을 불러 주시옵소서. 소신이 황후마마께 모든 일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겠습니다.”
“고맙네. 막리지.”
고대양이 그렇게 두 사람에게 조언을 듣고난 다음 날 아침.
조회 때가 되자 모든 신하들이 대전으로 모였고 천마석이 무릎을 꿇은 채 고대양을 알현했다.
그리고 어제 말했던 것에 대해 한 번 더 말을 하자, 고대양은 동현이 조언해 주었던 대로 대답한다.
그런 대답에 천마석은 예상하지 못한 듯 조금 당황한 모습이었다.
“또 다른 자 말씀입니까?”
“그렇다네. 자네들도 알겠지만 자네의 나라가 우리의 번국이 되면서 조약문을 쓴 것이 있어. 그곳에는 항시 볼모를 꼭 두 명씩은 데리고 있어야 한다고 되어 있네.”
고대양의 말에 천마석은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후 대답한다.
“그렇다면 태왕 폐하. 현재 볼모로 있는 제 여동생인 설유를 태왕 폐하께 바치겠나이다.”
“음? 바치겠다니?”
“태왕 폐하의 두 번째 여자로 받아 주시옵소서.”
천마석의 말에 다른 대신들이 웅성거린다. 그런 대신들을 고대양은 진정시킨 뒤 말한다.
“그 말을 한다는 것은… 그 대가로 볼모를 한 명으로 줄여 달라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태왕 폐하.”
“으음…….”
천마석의 말에 고대양이 고민하자 을지문덕과 동현이 나선다.
“태왕 폐하. 합당한 제안이니 받아들이시지요.”
“그렇습니다. 저들은 현재 우리 고구려의 충성하고 있는 번국이니 만큼 한 명 쯤은 줄여 줄 수 있을 듯합니다. 단… 그 한 명이 올 때는 지금 불열말갈의 왕 밑의 직계 가족을 볼모로 받으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알기로 현재 왕에게는 아들과 딸이 둘씩 있다고 하던데… 그 자식들 중 한 명을 받는다면 공평한 제안이라 봅니다.”
동현의 말에 천마석은 순간 얼굴이 굳는다.
자신의 자식들을 타국의 볼모로 보내라니… 순간 천마석은 이런 제안을 한 동현을 쳐다보았으나 그는 본 척도 하지 않고 고대양을 향해 고하고 있었다.
고대양은 동현의 제안에 만족해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게 좋겠군. 그거라면 아주 공평하지. 천석우도 살아 있을 때, 그 딸인 천설유를 이곳에 보냈으니 말이야. 그게 합당하다.”
“그렇습니다. 태왕 폐하.”
“어떤가? 천마석. 우리 제안을 받아들이겠는가?”
“소인 천마석… 태왕 폐하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다만…….”
“……?”
“아직 본국에는 오늘 이 결정을 전혀 모를테니 제가 직접 가서 이 말을 전해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작별인사도 해야 하니 말입니다.”
고대양은 천마석의 말을 받아들인다.
“그래야겠지. 부모와 자식 간에 멀어지는 것이니 말이야. 좋을대로 하게.”
“감사합니다. 그럼 저… 돌아가기 전에 제 동생인 설유를 만나고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하게.”
그렇게 천마석은 대전을 나왔다. 그리고 그 길로 바로 천설유를 만나는데…….
“전하를 뵙습니다.”
“그래. 설유야. 잘 지냈느냐?”
“예. 전하.”
“확실히… 어렸을 때에 비해서 네 불같은 성격이 많이 사라진 것 같구나.”
“전하. 저도 이제 나이를 먹은 만큼 어릴 때와는 다릅니다.”
“하하하! 그래. 그렇겠지. 헌데… 오늘 네 그 성격이 또 한 번 크게 일어날 수도 있겠구나.”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예전에는 서로 칼을 겨누고 원수처럼 지내던 남매사이였으나 이제는 오히려 끈끈해진 둘이었다. 하지만 서로 다시 끈끈해지기 무섭게 천마석은 어려운 말을 천설유에게 꺼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