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4화 영양 태왕과 강이식은 하늘의 별이 되고, 고구려는 새로운 태왕을 맞이하다.
을지문덕과 동현이 영양 태왕의 부름에 의해 바로 편전으로 들어오자 영양 태왕은 두 사람의 손을 잡으며 말한다.
“부디 이 고구려를 계속 강성하도록 이끌어 주게. 그리고 내 동생이 부족한 것이 많으니… 훌륭한 군주가 될 수 있도록 잘 보필해 주게. 이것이 진짜 나의 마지막 부탁이네.”
“염려 놓으시옵소서. 태왕 폐하. 소신들이… 태제 전하를 잘 모셔서 고구려를 계속 부강하게 만들겠나이다.”
“고맙네… 그나저나 막리지는 고생하는구만. 자네도 적지 않은 나이가 아닌데 말이야…….”
“태왕 폐하의 명이시라면 불구덩이라도 뛰어 들어갈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허허허… 그래… 자네는 그런 사람이지. 허나 말이야. 내가 자네에게 이 말 하나만 해줌세.”
“하문 하시옵소서.”
“내가 이번에 쓰러지고 나니 가장 걱정되는 것이 내 후대의 문제이더군… 그래서 이렇게 급하게 자네들을 불러… 이렇게 유언을 남기는 것일세. 내가 오늘 내일 하여 언제 갈지 모르니 말이야.”
“태왕 폐하…….”
“내가 한 말이 무슨 말인지 자네는 영민한 사람이라 당연히 알 것이라 생각하네. 더 이상 말하지 않겠으니… 잘 준비를 하도록 하게… 후우…….”
“예. 태왕 폐하.”
“이제 내가 할 말은 다 전했네. 태제에게도 말이야. 태제는 이 두 사람을 내가 말하는 것처럼 귀담아 듣고 국가를 잘 이끌도록 해라. 알겠느냐?”
영양 태왕의 말에 고대양은 울먹이며 대답한다.
“예… 흐읍… 태왕 폐하…….”
“그래. 이제 그만 쉬고 싶구나… 다들 나가 보거라.”
그렇게 세 사람은 편전을 나오게 되었다.
편전을 나오자 태제인 고대양이 동현에게 묻는다.
“태왕 폐하께서… 얼마나 버티실 것 같은가?”
“정말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번 주를 넘기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토록 위중하시단 말인가? 자네의 의술로도?”
“송구합니다… 현재 태왕 폐하의 몸에는 기력이 하나도 없는 상태입니다. 먹는 것이라도 잘 드시면 일단 먹는 것으로 약간의 기력을 회복하게 한 후 탕약이나 침을 놓아 기운을 북돋게 하여 낫게 할 수는 있으나… 현재의 태왕 폐하는 남은 기력이 하나도 없으니 저로서도 방법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하아… 그렇구만…….”
“아무것도 하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태제 전하.”
“그게 어디 자네 탓인가? 천하의 명의라도 정해진 수는 어쩔 수가 없는 법이지…….”
고대양은 그렇게 한탄을 하며 을지문덕과 동현의 곁을 떴다.
고대양이 멀어지자 을지문덕이 말한다.
“기분도 좋지 않은데… 우리 집에 가서 가볍게 한 잔 하겠나?”
“예. 막리지. 저도 기분이 그러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강이식 대모달의 집에도 가보려 합니다.”
“아… 그렇군. 태왕 폐하 생각만 하느라 깜빡했어. 지금 당장 가지.”
“예. 막리지.”
그렇게 동현은 영양 태왕과 함께 오늘 내일 하고 있는 강이식의 집으로 향했다.
본래 강이식은 요동성에 있었으나 몸이 좋아지지 않자 대장군의 직을 내놓고 도성으로 와 요양을 하려 했었다.
하지만 대장군에서 대모달로 승차가 되었고 강이식은 태왕이 자신을 믿고 써준다는 생각에 더욱 더 무리하여 일을 한 것이다.
그래서 건강이 악화될 대로 악화된 상황… 영양 태왕은 쓰러지기 전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놀라 요동성을 대중상을 보내 임시로 맡게 하였고 강이식은 그제야 도성으로 돌아와 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악화된 몸 상태는 회복하기가 어려워 보였다.
을지문덕과 동현은 그런 강이식을 보고는 마음 아파했다.
“이보시오. 대모달. 나 막리지 을지문덕이오! 눈 좀 떠 보시오!”
“마… 막리지… 을지문덕?”
“그렇소. 내가 보이오?”
“허허… 그렇소이다. 막리지. 그리고 옆에는… 내 제자 동현이구려.”
“그렇습니다. 스승님. 제가 보이십니까?”
“그래… 질기게도 아직 명이 붙어 있구나.”
“그런 소리 하지 마십시오. 일단 제가 진맥을 해보겠습니다.”
동현은 그렇게 말을 하며 강이식을 진맥했다.
‘하아… 어찌 이렇단 말인가? 태왕 폐하도 그렇게 스승님도… 몸에 기력이 하나도 없구나. 스승님은 그래도 워낙 강골이시고 장수였던 분이시라 기대를 했는데… 역시 정해진 수는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인가?’
동현이 그렇게 진맥을 하던 손을 힘없이 내려놓자, 강이식은 그 모습을 보고 직감한다는 듯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명의라고 불리는 네가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처음 보는구나.”
“스승님… 송구합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되었다… 너도 진맥해서 알겠지만 난 이제 가망이 없다.”
“스승님!!”
“허허허… 나는 지금의 태왕 폐하보다도 나이가 많은 사람이다. 그러니 갈 때도 되었지. 그런 거 보면… 막리지는 정말 대단하시구려.”
“나도 기력이 예전 같지 않다오. 한 몇 년 이 직책을 지내다가… 내려놓고 쉴 생각이오.”
“그렇소? 하긴… 막리지와 내 나이가 비슷하니 충분히 그럴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대모달. 태왕 폐하는 뵈어야 하지 않겠소? 마지막으로 말이오.”
“그토록… 상태가 위중하시오?”
“그렇소이다… 여기 동현이가 대모달을 진맥했을 때와 같은 모습을 보였으니 말이오.”
“이런 불충이… 내가 태왕 폐하보다 먼저 가서는 아니 되는데…….”
“그러니 마지막 모습이라도 뵙게 조금의 기력이라도 차려보시구려.”
을지문덕의 말에 강이식은 동현에게 부탁한다.
“동현아.”
“예. 스승님.”
“일시적이나마… 내 기력을 회복시킬 수 있느냐?”
“예? 설마…….”
“그래. 지금 태왕 폐하께 가야겠다.”
“아니 됩니다! 스승님! 제가 그 방법을 쓰게 되면 잠시 회복은 되시나… 없었던 기력을 쥐어짜 끌어 쓰는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지금보다 급격하게 상황이 악화되실 겁니다! 명을 재촉하실 수 있습니다!”
“이미 다 죽어 가는 몸… 조금 빨리 죽는 것이 무엇이 대수겠느냐? 그러니 해주거라.”
“스승님…….”
“태왕 폐하께서도 나처럼 이런 모습을 보이시는데… 마지막 가시는 길을 내가 보지 못한다는 것은 더욱 불충이다. 그러니 부탁하마.”
동현은 강이식의 말에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더니 품 속에 침을 꺼낸다.
“시작하겠습니다…….”
“고맙다…….”
동현은 그렇게 강이식에게 침을 놓아 잠시나마 온몸을 쥐어 짜 기력을 끌어 쓰는 침을 쓰게 되었다.
그리고 잠시 후…….
“신기하구나. 조금은 나아진 것 같아.”
“그러나 그것도… 짧으면 두시진(약 4시간)… 길면 세시진(약 6시간)입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여봐라. 내 관복을 내오거라. 태왕 폐하를 뵈러 가야겠다.”
가족들과 하인들은 강이식을 말리고 싶으나 들을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어쩔 수 없이 관복을 입혀 준다.
그 아들인 우식도 강이식이 위독하다는 말에 잠시 도성으로 와 있었는데, 그런 아버지를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를 부축하여 영양 태왕이 있는 편전으로 향한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니… 이게 누군가? 대모달이 아닌가?”
“태왕 폐하…….”
“괜찮은 것인가?”
“송구합니다. 태왕 폐하…….”
“…내 마지막 모습을 보려고 없는 기력을 짜내서 온 것이로구만… 왜 그리 했는가? 쉴 때는 쉬어야지…….”
“태왕 폐하께서 좋지 못하신데… 제가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정말 미련한 사람 같으니라고…….”
영양 태왕은 강이식의 행동에 고마워하며 손을 잡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는 어렵게 말을 한다.
“내가 죽게 되고… 자네가 죽게 되면… 우리 저승에서 같이 술 한 잔 기울이도록 하세. 그때도 내 옆에 있어 주게. 그래 줄 수 있겠는가?”
“여부가 있겠습니까? 소신… 죽어서도 태왕 폐하의 사람입니다.”
“고맙네. 내가 먼저 가서 기다릴 테니… 이곳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오도록 하게.”
“예. 태왕 폐하. 소신 강이식… 그 동안 이 이승에서 태왕 폐하를 모실 수 있게 되어 감사했사옵니다.”
강이식은 그렇게 말을 하며 있는 힘을 다해 절을 한다.
그런 강이식을 보며 영양 태왕은 말없이 그의 손을 잡아 쓰다듬더니 이제 그만 나가보라는 듯 손짓한다.
그러자 강이식은 주변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 편전을 나온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강이식.
강이식은 아직 동현이 침을 놓아 준 덕분에 기력이 조금 남아 있어서 그런지 우식과 가족들을 불렀다.
“우식아.”
“예. 아버님…….”
“이제 이 집안은 너에게 달렸다. 우리 집안을… 부탁한다.”
“예. 아버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우리 며느리들… 항상 우리 가문을 위해… 또 우식이를 위해 애써 주어서 고맙다.”
“아닙니다. 아버님.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구나. 그나저나… 손주와 손녀는 어디 있느냐? 둘을 내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보고 싶구나.”
“예. 뒤에 있습니다. 우호야. 우미야.”
“할아버지.. 아프지 마세요… 흐읍… 흡!”
“미안하다. 애들아. 할아버지가… 이제 더는 안 될 것 같구나.”
“할아버지… 흐윽… 흑…….”
“우미는 그렇다 쳐도 우호는 쉽게 울어서는 안 되느니라. 너는 사내이지 않느냐? 그리고 네 아버지의 뒤를 이어야 하니 강해져야 한다. 아버지가 없을 때는 네가 이 집을 맡아야 한다는 뜻이야. 알겠느냐?”
“예. 할아버지… 참겠습니다…….”
“그래. 대견하구나. 네가 비록 아직 성인이 되지 않고 어리다고는 하나 네 아비가 어렸을 때보다는 훨씬 총명하니 앞으로 많이 배우거라. 특히… 여기 네 아비의 벗인 대장군에게 많이 배우도록 해. 자… 대장군이 이제 너의 스승이니 절을 올리도록 해라. 우미도…….”
강이식의 말에 우호와 우미는 동현에게 스승의 예로 절을 한다.
갑작스러운 말에 동현은 당황하며 절을 받으며 강이식에게 말한다.
“스승님. 이렇게 갑자기…….”
“이건 내 결정이 아니다… 우식이가 내게 말을 한 것이기에 나도 허락한 것이야.”
“우식이가…….”
“그래. 동현아. 솔직히 네가 나보다 더 뛰어나잖아.”
“별 말을… 너는 신동은 아니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많은 발전을 이룬 사람이야. 대기만성의 사람이랄까? 그런 너로도 충분할 텐데…….”
“그건 내가 경험을 쌓으면서 그랬던 것이지. 하지만 아직도 나는 너에 비해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러니 이렇게 부탁하마.”
“우식아… 후우… 알았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고맙다. 아니… 고맙습니다. 대장군.”
“지금은 너와 나 벗으로서 있는데 무슨 존대야. 그건 공적인 자리에서만 하면 되는 거야.”
동현의 말에 우식은 말없이 피식 웃는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강이식이 미소를 지으며 기뻐한다.
“두 사람의 우정이 참으로 보기가 좋구나… 내가 눈을 감아도 안심해도 되겠어… 후우… 서로 도와가며 앞으로 힘든 일을 헤쳐 나가도록 해라. 알겠느냐?”
“명심하겠습니다.”
“내가 이제 할 말은 다했다. 그만 쉬고 싶구나. 다들 나가 보거라.”
“예.”
그렇게 강이식과 가족들, 을지문덕과 동현은 방을 나왔다.
그리고 그날… 동현은 을지문덕의 집에서 가볍게 술 한 잔을 걸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며칠 뒤…….
“태왕 폐하!”
“태왕 폐하! 흐흐흐흑!!”
영양 태왕은 그렇게 하늘의 별이 되었다.
그리고 영양 태왕이 하늘의 별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아 강이식 또한 마치 그 뒤를 따른다는 듯 하늘의 별이 되었다.
새롭게 태왕이 된 고대양은 이 소식을 듣고 강이식의 장례 또한 소홀함 없이 국장의 예로 치르라는 황명을 내린다.
그렇게 고구려는 새로운 태왕이 황위에 오름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막리지에는 을지문덕을 그대로 유임할 것이며 공석인 자리에는 김동현 대장군을 대모달로 승차를 시켜서 채울 것이다. 그리고 빈자리인 대장군 자리는 대중상을 임명할 것이니, 모두들 나를 잘 보좌해서 이 고구려를 이끌어주길 바란다.”
“황명을 받들겠나이다!”
그렇게 고구려는 새로운 태왕을 맞아 국장을 치르고 공석이 된 자리를 채우며 빠르게 내부 정비를 해나갔다.
영양 태왕이 하늘의 별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주변의 번국에서 조문단을 보내 조문을 했으며 강이식 또한 그 명성이 워낙 크기에 같이 조문을 하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불열말갈의 경우에는 천석우가 죽고 천마석이 왕이 되었는데, 천마석은 이 소식을 듣고 직접 조문까지 왔다.
그런 천마석의 모습에 고대양은 고마워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