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화 좋지 않은 일이 연달아 일어나다.
동현은 다음 날 아침 바로 날이 밝자마자 업성으로 향했다.
자신의 부인들과 자식들까지 모두 함께하는 길.
왕빈이 마지막 가는 길 만큼은 자신의 가족들도 왕빈의 영정 앞에 인사를 시키고 싶은 동현이었다.
그렇게 며칠 후…….
“집사!”
“대인 어른! 흐흐흑!!”
동현은 왕빈을 모시던 집사를 보자마자 그를 부둥켜안으며 같이 눈물을 흘렸다.
“미안하네… 미안해. 내가 근래에 한 번 왔어야 하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오지 못했네! 정말 미안해!”
“아닙니다. 대인 어른. 바쁘다고 하셨지만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씩은 오셨고 돌아가시기 한두 달 전에도 오시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돌아가신 왕 대인 어른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에게 이토록 잘하는 사람은 대인 어른 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그래? 그 말을 들으니 내 마음이 조금은 놓이는군. 헌데… 대인 어른의 임종은 어땠는가?”
“돌아가시기 전 몸이 좋지 않으셔서 며칠 동안 저와 함께 잠을 잤었습니다. 그리고 잠을 자기 전… 이 서찰을 건네셨습니다.”
“이건…….”
“예. 대인 어른의 유서입니다. 대인 어른께서 오시면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랬구만…….”
“그렇게 이 서찰을 주시고는 제게 그 동안 많이 고마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슨 사람이 죽을 사람처럼 말한다고 답을 했죠. 그리고 그런 말 하지 말라고 말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제게 물 한 잔을 떠달라고 부탁하셨는데… 제가 돌아오니 이미 돌아가신 뒤였습니다. 흐흐흑…….”
다시 한번 참았던 눈물을 흘리는 집사.
그런 집사를 보며 동현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이내 눈물을 닦고는 집사의 안내를 받아 왕빈의 영정 앞에 서는 동현.
동현은 왕빈의 영정 앞에서 풀썩 주저앉더니, 대성통곡을 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런 동현의 모습에 주변 사람들도 크게 슬퍼하는데, 그의 울음소리가 얼마나 마음을 후벼 팠는지 조문을 온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동현은 집사는 물론이고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업에서 사람들을 맞이해 조문을 받았고 모든 장례를 마치게 되자 집사를 따로 불러 자리를 마련했다.
“예? 어른의 무덤을요?”
“그렇다네. 내가 이미 고구려에 자리까지 다 봐두었어. 아주 좋은 자리이니 대인께서도 분명 평안해 하실 것일세.”
“그토록 대인 어른께서 저희 대인 어른을 신경써 주신다면… 저야 좋습니다.”
“고맙네. 그리고 말이야. 내가 잠시 짬을 내서… 어른께서 주신 유서를 읽어 보았네.”
“그렇습니까?”
“그래.. 자네도 한 번 봐.”
“대인 어른의 유서인데 어찌 제가 함부로…….”
“괜찮아. 자네가 봐도 되는 내용이니까 보는 거야.”
“아… 예.”
집사는 왕빈에 동현에게 준 유서를 동현에게서 받아 읽어 본다.
그러고는 또 다시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소인 집사 정산… 앞으로 대인 어른을 주인으로 모시며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고맙네… 왕 대인을 잘 보좌했던 것처럼… 나를 잘 보좌해 주게.”
“염려 마십시오. 대인 어른. 소인 정산의 절을 받으십시오.”
왕빈의 유서에는 집사인 정산을 곁에 두고 중히 써달라는 것과 이제부터 자신의 상단을 전부 동현에게 넘기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집사 정산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해 일했던 상단의 사람들도 모두 잘 챙겨 달라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으며 마지막에는 이런 말을 남겼다.
[동현아. 내가 직접 낳지는 않았지만 나는 너를 내 아들로 생각했다. 고맙다. 아들아. 뜻하지 않게 먼저 이승을 하직하게 되었으나 저승에서도 너를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최대한 늦게 저승으로 오거라. 이승에서 모든 것을 다 누리고 오라는 말이다. 알겠느냐? 후우… 오랜만에 붓을 들었더니 힘들구나. 이만 줄여야겠다. 그럼 나는 먼저 저승에 가서 네 친 아버지를 만나며 너를 지켜보고 있으마. 그럼…….]
그렇게 왕빈의 유서 내용을 읽은 동현은 다시 한번 뜨거운 눈물을 흘렸었다.
‘대인 어른. 아니… 아버지! 소자가 죽을 때까지 크게 명성을 드날리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 가문과 상단, 더불어 맡기신 상단까지 크게 일으켜 아무도 넘볼 수 없게 만들겠습니다. 그러니 저승에서 저를 지켜봐 주시고 행여나 제가 잘못된 행동을 하거든 꿈에 나타나 저를 꾸짖어 주시옵소서!’
동현은 그렇게 왕빈을 친 아버지를 부를 때와 같은 아버지로 부르며 생전 그의 모습을 추억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대인 어른. 이제 돌아가실 시간입니다.”
“알겠네. 그나저나… 이 집은 어찌하기로 했나?”
“대인 어른의 생전 뜻대로 이곳을 상단으로 이용하는 동시에 고아원으로도 쓸 생각입니다.”
“고아원이라… 역시 아버님이시다. 정 집사는 이곳의 일을 잘 챙기게. 이 고아원에 쓸 자금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내게 말하고…….”
“예. 대인 어른.”
“아. 그리고 이제 내 신분은 장군이야. 그러니 이제부터는 장군으로 부르도록 해.”
“예. 장군. 그리하겠습니다.”
“아버님의 관은? 고구려로 갈 준비를 해놓았나?”
“물론입니다. 장군.”
“좋아. 그럼 이제 출발하지.”
그렇게 동현은 자신의 양아버지인 왕빈의 상여를 자신의 근거지인 백암성으로 운구했다.
그러고 백암성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이 봐둔 곳에 왕빈을 묻었다.
군례를 올려 인사를 하고는 업무를 위해 관청으로 돌아왔는데 눈 주위가 뻘겋다.
하지만 이내 눈물을 감추고 관청의 일을 본다.
그런데 그때…….
“장군! 장군! 급보입니다!”
“급보?!”
“예! 장군! 지금 막리지 연태조 어른께서… 위독하시다 합니다!”
“지금 뭐라 했느냐?! 막리지께서 위독해?”
“그렇습니다! 장군! 지금 태왕 폐하께서 빨리 도성으로 오라는 전령이 왔습니다!”
“그래. 알았다. 금방 채비해서 도성으로 출발을 하겠다. 그렇게 전하라!”
“예! 장군!”
그렇게 동현은 왕빈을 떠나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연태조가 세상을 떠나려는 안 좋은 상황을 연속해서 맞이하고 있었다.
며칠 뒤… 동현은 쉼 없이 말에 채찍질을 해 달리고 달려 장안성(평양성)에 도착을 했다.
도착을 하자마자 영양 태왕을 알현하려는데, 대전을 지키던 군사로부터 영양 태왕이 막리지의 집으로 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동현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연태조의 집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영양 태왕은 물론이고 강이식과 대중상, 그리고 을지문덕과 우식, 이석을 보게 되었다.
동현은 빠르게 모두 인사를 한 뒤 병상에 누워있는 연태조를 보는데, 몸 상태가 심각한 듯 엄청나게 야위어 있었다.
그런 연태조를 동현은 진맥해 보았다.
“어찌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참으셨습니까? 그 동안 고통이 엄청 나셨을 텐데요?!”
“허허허… 자네도 알았나보군.”
“예. 막리지… 소인 미력하지만 의술에 조금 재능이 있어 사람 머리도 열어 수술도 해보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진맥은 쉬울 수 밖에요.”
“그렇겠지… 진맥은 의원들에게 매우 쉬운 것이니 말이야.”
“통증이 생겼거나 할 때 제게 말씀을 해주셨다면… 제가 진맥을 해보고 수술을 해볼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어찌 미련하게 참으신 겁니까?”
“미안하네. 하지만 내 몸보다 중요한 것은 나랏일이 아니겠는가?”
“막리지…….”
동현이 연태조의 말에 슬퍼하는데 연태조는 그런 동현을 보더니 손을 붙잡으며 말한다.
“이보게 동현이.”
“예. 막리지…….”
“내가 죽더라도… 이 고구려를 잘 이끌어주게. 나는 이제 천수를 누릴 만큼 누렸어.”
“어찌 그런 말씀을…….”
“이 고구려를 부탁하네. 그리고 나와 같은 연배인 대모달과 대장군.”
“막리지. 정신을 놓으면 안 되오!”
“허허허… 대모달과 대장군도 아시지 않소? 이제 난 힘들다는 것을…….”
“…….”
“하아… 정말 멋지게 살았소이다. 그리고 매우 기쁘오. 수나라 대군을 막는 것을 물론 하북 지방을 손에 넣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았으니 말이오. 이제 더는… 여한이 없소이다.”
“막리지…….”
“다만 딱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이 있다면… 이제는 내부적으로 많이 안정 되어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태왕 폐하와 우리가 말하고 있는 것을 거부하는 세력들이 있소. 반대를 하더라도 이미 결정을 한 사안이면 그것에 따르고 도와주야 하는데 여전히 그것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소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그 세력들을 필히 경계하고 살피도록 해야 할 것이오. 그것만 주의 한다면 우리 고구려는 더욱 더 부강해질 것이니 부디 내가 한 말을 절대 잊지 않도록 하시오.”
연태조의 말에 을지문덕과 강이식은 그러겠노라 대답했다.
곁에 있던 영양 태왕 또한 연태조의 말에 동의하며 반드시 그리하겠다고 대답을 하는데, 다시 한번 연태조는 동현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한다.
“그… 그리고 동현아.”
“예. 막리지.”
“여기서 네가 가장 젊고 믿을만 하니 부탁 하나만… 하마.”
“말씀하십시오. 막리지 어른.”
“내가 죽으면 이제 내 자식들끼리 살아가야 한다. 개소문과 정토의 나이가 아직 어린 만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그리고… 내 딸 막내인 수영이도 말이야.”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막리지. 제가 아이들을 잘 챙기겠습니다.”
“고맙네. 특히.. 첫째인 개소문… 개소문이를 잘 보살펴 주게. 내 아이 셋 중 가장 총명하기는 하나 워낙 성격을 불 같아서 자신의 입맛대로 모든 것을 행동하려 할지 모르네. 그러니 자네가 잘 살펴 줘…….”
“그러겠습니다. 막리지.”
“이왕 이렇게 된 거… 내 자식 셋을 전부 다 제자로 받아주면 좋겠군. 쿨럭! 쿨럭! 자네가 바빠 차일피일 미루던 일이네만… 오늘은 확답을 받았으면 하네. 쿨럭! 쿨럭!!”
“막리지의 뜻대로 하겠으니 말씀을 아끼십시오! 막리지!”
“허허허… 이제 곧 죽을 거 말을 아껴서 무엇하겠는가? 하아… 아버님께서 오시는구나…….”
“마… 막리지!”
연태조는 자신의 아버지가 보이는 듯 허공에 손을 저으며 계속 말한다.
“허허허… 알겠습니다. 아버님. 소자 그만 가겠습니다. 태왕 폐하…….”
“마… 막리지! 이리 가면 아니 되네!”
“송구하옵니다. 태왕 폐하… 소신에게 허락된 수가 여기까지인 모양입니다. 소자의 아버지께서 저토록 애타게 저를 부르시니 가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막리지…….”
“다들 몸 건강히 잘 챙기고 우리 고구려를 위해 살다가 천천히 저승으로 오시오.”
연태조는 그렇게 말을 하더니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고는 잡고 있던 영양 태왕의 손을 놔버렸다.
그러자 순식간에 연태조의 집은 울음바다가 되었고 영양 태왕 또한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영양 태왕은 연태조를 이렇게 보내기는 싫다는 듯 자신의 손에서 빠져나간 손을 다시 한번 잡고는 계속 눈물을 흘렸다.
대성통곡에 가까운 영양 태왕의 울음.
자신이 태자시절부터 곁을 지키며 동고동락을 해왔던 존재이기에 슬픔이 더욱 큰 영양 태왕이었다.
그런 영양 태왕을 보며 을지문덕과 강이식이 말한다.
“태왕 폐하… 너무 많은 눈물을 흘리셔서 옥체가 상할까 두렵습니다. 이제는 막리지를 마음속에서 놓아주시고 보내 주시옵소서.”
“그렇습니다. 태왕 폐하… 슬프지만 산 사람은 계속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막리지도 자신 때문에 태왕 폐하께서 자신의 손을 놓지 못하고 이러는 것을 보면 결코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 고정하시옵소서.”
영양 태왕은 두 사람의 말에 간신히 마음을 추스렸고 그제야 연태조의 손을 놓는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명령한다.
“막리지는 내게 정신적 지주였으며… 내가 태자 시절부터 함께 한 벗이나 마찬가지였다. 항상 내게 직언을 아끼지 않아 나라를 바른 방향으로 이끌려고 노력했던 사람이지… 아주 성대하게 장사지내 줄 것이다. 국장의 예로 장사를 지내게 하라.”
“태왕 폐하의 황명을 받들겠나이다!”
그렇게 연태조의 장례는 나라 전체가 알 수 있도록 국장의 예로 치러지게 되었다.
동현은 연태조의 장례를 치르며 그 자식들을 보았다.
연태조의 자식들은 마지막 유언을 자신들도 곁에서 들었기에 동현을 스승으로 모시기로 결정을 내렸고 잠시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그에게 절까지 함으로써 스승과 제자 관계를 맺었다.
동현은 세 사람의 절을 받으며 연태조가 말한 연개소문을 눈 여겨 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