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6화 아사나사리불, 동현에게 조언 아닌 조언을 듣다.
영양 태왕은 그렇게 아사나사리불과 그 사신단을 데리고 연회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풍악을 울리고 술을 마시며 연회를 즐기는데 옆에 있던 모르는 사람이 자신에게 술을 권한다.
“아사나사리불님 되십니까?”
“그렇소만…….”
“소인은 이정이라 합니다. 건위장군을 모시고 있지요.”
“건위장군이라 하면…….”
“역시 아시는 눈치시군요. 자… 일단 술 먼저 받으시지요.”
“예…….”
그렇게 술 한 잔씩 나누어 마신 이정은 바로 본론을 꺼낸다.
“제가 듣자하니 우리 건위장군을 보고 싶어 하셨다고요?”
“그… 그렇습니다.”
“왜 보고자 하십니까?”
“우리 동돌궐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조언을 구하려 함입니다.”
“음… 그게 다입니까?”
“솔직히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말씀해 보십시오. 제가 건위장군께 미리 말씀을 드려놓겠습니다.”
“그럼… 믿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예측하기에 우리 동돌궐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일단 내실을 먼저 다지는 것입니다.”
“그렇겠지요.”
“헌데 그 사이 누군가 공격을 해오거나 한다면 우리도 맞대응을 하고 그들을 몰아내야 합니다. 그런 뒤 그들을 완전히 공격해서 없애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우리가 상국인 고구려의 허락 없이 타국을 침범한 것이 됩니다.”
이정은 아사나사리불의 말이 무엇인지 이해를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건 어렵지 않은 문제이군요.”
“어렵지 않다고요?”
“예. 일단 동돌궐에서도 세작들을 운영할 것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적이 동돌궐에 쳐들어오면 세작들이 먼저 보고를 해서 소식을 알리겠지요. 그러면 그 때 동돌궐에서 우리 고구려에 빠르게 이번 일에 대해 어떻게 대처를 할지 허락을 구하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 고구려가 동돌궐이 싸우고 있는 동안 그들을 영토에서만 몰아낼지… 아니면 몰아내는 것은 물론 어느 지역까지는 점령해도 된다고 지역을 정해줄지를 태왕 폐하께서 직접 칙서로 보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금방 해결되는 문제입니다.”
“음…….”
“무언가 개운치 않은 표정이시군요.”
“예. 건위장군을 직접 보고 고견을 묻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제가 말해 보겠습니다. 저쪽에 건위장군께서 계시니, 시간이 될 때 따로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지요.”
“알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그렇게 이정은 아사나사리불에게 말을 하고는 동현이 있는 쪽으로 향한다.
이정이 귓속말로 동현에게 무언가를 말하는데, 동현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무언가 이정에게 똑같이 귓속말로 대답한다.
그러자 이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아사나사리불에게 가더니 말한다.
“건위장군께서 내일 오후 미시(13시 ~ 15시)에 보자고 하십니다. 그때 가능하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건위장군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돌아가는 시간을 늦춰서라도 뵙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저희 쪽에서 귀공의 처소로 사람을 보내도록 하지요.”
“예. 기다리겠습니다.”
그렇게 둘은 서로 약속시간을 정한 후 연회를 즐겼다.
그리고 다음 날…….
“끄으으응…….”
“장군. 기침하셨습니까?”
“그래…….”
“꿀물을 좀 타왔습니다.”
“고맙구나. 들어와서 놓고 나가거라. 그리고 씻을 물도 준비를 좀 하고…….”
“예. 장군.”
늦게까지 연회를 즐긴 터라 아사나사리불은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다.
그는 하인이 가져온 꿀물을 단숨에 들이키며 속을 달랬고 씻을 물을 가져오자, 급히 씻은 후 의관을 정제했다.
그러고는 수하에게 시간을 물었다.
“지금 오시(오전 11시 ~ 13시)쯤 되었습니다.”
“그래? 후우… 다행이군. 잘못했다가 결례를 범할 뻔했어. 나중에 연회가 있는 날 다음 날에 중요한 일이 있는데도 내가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면 나를 깨우러 들어 오거라. 알겠느냐?”
“예. 장군.”
아사나사리불은 늦잠을 자서 고구려 쪽 사람을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는 것에 큰 안도감을 느꼈다.
그런데 그때…….
“장군. 건위장군의 하인이라는 사람이 왔습니다.”
“그래? 들이거라.”
“예.”
아사나사리불이 허락하자 하인이 들어와 인사를 하고는 말한다.
“저희 장군께서 장군을 관청으로 모시라 했습니다.”
“관청으로?”
“예. 그곳에서 가볍게 차나 한 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십니다.”
“그래? 알았다. 앞장 서거라.”
“예. 모시겠습니다.”
그렇게 아사나사리불은 하인을 따라 동현이 있는 관청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처음 뵙겠습니다. 동돌궐의 아사나사리불이라 합니다.”
“건위장군 김동현입니다. 자… 앉으시지요.”
“예.”
두 사람은 서로 자리를 정하고 앉자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장군의 명성을 예전부터 들어왔는데 이렇게 뵙게 되어 참으로 영광입니다.”
“별 말씀을… 그 명성은 그저 허명에 불과하오.”
“아닙니다! 제가 이곳에 들어오면서 장군이 한 일에 대해 보고를 들었으니 말입니다.”
“그리 말씀해 주시니 고맙소이다. 헌데… 동돌궐의 전하 가족에 대한 일은 참으로 안 됐구려. 이렇게 애도를 표하는 바이오.”
“그리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전하께 장군의 그 뜻을 잘 전하겠습니다.”
“고맙소이다. 헌데… 나를 보고 싶어 하셨다고?”
“예. 건위장군. 장군의 수하분께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앞으로 저희 동돌궐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군사적 움직임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싶어서 이렇게 직접 뵙게 되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소이다. 헌데 정말 괜찮겠소? 나는 그저 보잘 것 없는 식견이오.”
“장군의 의견을 경청하지 않으면 누구의 말을 경청하겠습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아사나사리불이 공손하게 묻자 동현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렇게까지 내 의견을 묻는다니… 알겠소이다. 그럼 내 생각을 말하지요. 단 내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대의 왕이 결정할 문제이니 나는 관여하지 않겠소이다.”
“물론입니다. 장군.”
“음… 그럼 말하지요. 일단 동돌궐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귀공도 알겠지만 내실을 다지는 것일 것이오.”
“물론입니다. 그 일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구려. 다만 내가 보기에 동돌궐이 내실을 다지는 데는 걸림돌이 하나 있어보이오.”
“걸림돌 말입니까?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대들 민족은 유목민족이라고 들었소이다. 그렇지 않소?”
“예. 하지만 농사도 일부 짓긴 합니다. 반농반목이라고도 하지요.”
“하지만 농사를 짓는 규모가 아주 적지 않소이까?”
“그건 그렇습니다.”
“그게 가장 큰 문제요.”
“예? 그게 무슨…….”
아사나사리불이 동현의 말에 의아해 하자 동현은 계속 설명을 이어 간다.
“내가 알기로 돌궐은 오래 전부터 반농반목을 해왔다고 알고 있소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식량이 모자라면 주변 국가들을 약탈하거나 대규모 사냥을 해서 그것으로 무역을 해 큰 이문을 남겼다고도 알고 있고 말이오.”
“후우…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돌궐이 통합 되었을 때 이야기입니다. 분열되고 나서는 그런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다만… 우리가 정말 궁할 때 국경 지역을 약탈하기는 했었지요. 솔직히… 고구려도 그 때 공격을 했었습니다.”
“…….”
“그리고… 돌궐로 통합되어 있던 시절에는 주변국들을 군사력으로 위협해서 공물을 바치도록 하기도 했고 말입니다.”
“잘 아시는군요. 하지만 현재의 돌궐은 그러지 못하오. 분열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군사력 또한 예전만 못하지요. 그래서 동돌궐은 수나라에 붙었던 것이 아니오?”
“그…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이 말을 하고 있는 것이라오. 어차피 우리의 번국이 될 경우 그대들이 병력을 늘리는 것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며, 그곳에는 일부 우리 군사가 주둔해 있을 것이니 만큼 군사적인 측면에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소이다. 하지만 군사만 강하다면 그 나라는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게 되어 있소.”
동현의 말에 아사나사리불이 재차 묻는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장군에게 조언을 구하러 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해하오. 헌데 내가 좀 전에 타개책을 전부 다 이야기 해주었는데?”
“이야기를 해주셨다고요?”
“그렇소. 좀 전에 내가 그대들은 반농반목을 하고 있다고는 하나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너무 적다고 말을 했소이다.”
“그렇다는 건… 저희 영토에서 많은 곳을 개간하여 농사를 지으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소이다. 내가 알기로 귀국의 영토는 척박한 곳이 많으나 비옥한 곳도 많다고 들었소이다. 솔직히 말해서 영토의 크기에 있어서만큼은 그대들의 나라가 꿀릴 것이 없지 않소?”
“그건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곡식이 자랄 시간이 필요한데 그렇게 되면 우리는 고구려에 공물을 바칠 수 없게 됩니다.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그대들에게는 말이 있지 않소?”
“말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소. 그대들이 있는 영토는 말을 키우는데 아주 적합한 환경이오. 그러니 그 곡식이 자랄 동안은 말을 바치는 것으로 대체를 하면 되지 않겠소이까?”
“그것을… 태왕 폐하께서 윤허해 주시겠습니까?”
“오히려 좋아하실 것입니다. 말을 키우는 데는 많은 힘이 드는데, 그것들을 바친다면 그 수고를 우리도 더는 것이 되니 말입니다.”
아사나사리불은 동현의 말에 그제야 표정이 밝아지며 대답한다.
“그렇게 되기만 한다면… 소인이 장군의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별 말씀을… 그 이야기를 내가 해볼 테니 걱정 마시오. 단… 그대들도 약속 할 것이 있소.”
“무엇입니까? 말씀하십시오.”
“그대들이 우리 고구려의 번국이 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우리를 본받아 상국으로 모시고 따르겠다는 의미요.”
“물론입니다. 장군.”
“그렇다는 것은 우리의 직제뿐만 아니라 교육에 관련해서도 우리 고구려를 상국으로 받드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이오. 무슨 말인지 알겠소?”
“아… 예. 물론입니다.”
“이런 내용 또한 그대들이 돌아왔을 때 내용으로 모두 넣어둘 것이니, 그대의 왕에게 돌아가 모두 이야기를 하도록 하시오. 그리고 이것을 반드시 지켜달라고 하시오. 그렇다면 우리 고구려는 그대들의 나라가 발전할 수 있도록 살필 것이오.”
“하나도 빠짐없이 전하겠습니다.”
그렇게 아사나사리불은 동현에게 조언 아닌 조언을 듣고는 관청을 나와 바로 동돌궐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사나사리불은 동현의 말을 듣고 나온 뒤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는데, 그 모습을 수하가 눈치 채고는 묻는다.
“좋지 않은 이야기라도 들으신 겁니까?”
“음… 좋다면 좋은 것이고 아니라면 아닌 것이겠지…….”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런 것이 있다. 이 이야기는 네게 할 것이 못 되는구나. 형님께 가서 말해야만 하는 내용이니 더 이상 묻지 말라.”
“아… 예. 장군.”
그렇게 아사나사리불은 속에 근심을 가득 안은 채 동돌궐로 돌아갔다.
아사나사리불이 돌아가고 있던 시기… 동현은 입궐하여 아사나사리불과 대화했던 것을 영양 태왕에게 밝힌다.
“그래? 그러더니 순순히 받아들이더냐?”
“그런 눈치였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아니니 동돌궐에 지속적으로 세작이 활동하도록 해 파악을 해야 합니다.”
“물론 그래야지. 아무튼 수고했어.”
“정말 기가 막힌 계책입니다. 군사 징병을 제한하는 것은 다른 번국들도 그리 했으니 그렇다 쳐도… 농사를 더 많이 늘려서 우리가 공물을 받을 때 더 많은 식량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저 우리는 그 정도 공물이 오지 않으면 계속 사신을 보내 요구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공격해서 영토를 뺏는 것이 다였는데 말입니다.”
“그렇지. 번국이 우릴 따르지 않으면 우리는 그 명분으로 그 번국들을 공격해 영토를 우리 것으로 만들었었지. 하지만 지금은 건위장군의 말대로 여러 나라들이 각축을 겨루고 있는 시대이니 만큼 다른 백성들에게도 우리 고구려에 대해 호감을 가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건위장군이 이 계책을 제안한 것 같은데… 맞는가?”
“역시 태왕 폐하께서는 영명하십니다.”
“별 말을… 거기다 이제 우리를 상국으로 받들고 우리의 학문이 훌륭하다는 것을 선생들을 보내 그쪽 사람들에게 교육을 하면 후대에는 그들이 우리에게 가지는 적대적인 세력이 점점 없어질 것이고 말이야. 아주 기가 막힌 계책이야. 아… 그리고 이것은 동돌궐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도 진행하고 있지?”
“물론입니다. 태왕 폐하.”
“아주 좋아. 우리 영향력을 넓혀 놓으면 후대에 우리나라가 흔들리더라도 충분히 버틸 수 있는 힘이 있을 것이다.”
영양 태왕의 말에 동현은 물론이고 연태조와 을지문덕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