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화 양적선과 이밀은 관중 지역으로 도망을 치고, 동현은 수나라를 더욱 혼란하게 하려하다.
양현감이 그렇게 이밀의 말을 받아들여 관중으로 향하던 그날 밤.
바쁘게 움직이던 양현감 군은 드디어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하지만 양현감과 그 측근들은 쉽게 쉴 수가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관중을 점령해야 자신들의 목숨을 보전할 수 있기 때문… 그렇기에 양현감은 지도를 펼치고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구만.”
“그렇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관중입니다. 그리고 영풍창(곡식 저장 창고)도 있으니 희망이 보입니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니 제 계책대로 해주셔야 합니다.”
“알겠네. 헌데 말일세.”
“……?”
“이곳은 어디인가?”
“아… 예. 이곳은 홍농성이라고 합니다.”
이밀의 말에 같이 회의에 참석했던 수하가 말한다.
“제가 듣기에 홍농성에도 많은 식량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곳을 얻으면 우리가 관중을 얻어 세력을 넓혀 가는 것보다 훨씬 수월할 겁니다. 그리고 제가 세작들에게 듣기로 그곳에 현재 병력이 얼마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수하의 말에 솔깃한 양현감을 이밀이 말린다.
“그렇다 하더라도 홍농성을 공격해서는 안 됩니다.”
“응? 어째서?”
“홍농성은 적은 군사만 있어도 쉽게 지켜 낼 수 있는 성입니다. 거기다 현재 우리 군은 이미 동도(낙양)에서 번자개에게 패하고 공성에 실패한 뒤라 군사들의 사기도 떨어져 있고 말입니다. 그러니 홍농성 공격은 불가합니다.”
“하지만… 홍농성만 점령한다면 모든 것이 해결되고 군사들의 사기 또한 회복되지 않겠는가?”
이밀은 양현감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점령하는 것 자체가 현재 우리 군에게 있어서 불가능 할 겁니다.”
이밀의 말에 양현감은 벌컥 화를 낸다.
“이보게! 자네는 어찌 우리 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말만 하는 것인가?”
“저는 그저 객관적으로 보고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현재 군의 상태로는 홍농성으로의 공격은 절대 불가합니다.”
동생 양적선 또한 이밀을 지지하는데 양현감은 그런 동생에게 화를 낸다.
“이 군을 이끄는 수장이 나냐? 이밀이냐?! 나는 이미 결정을 내렸다!”
“형님! 오시기 전까지 이밀님의 조언을 듣지 않다가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잊으셨습니까?”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반드시… 반드시 홍농을 점령할 것이야!”
그렇게 갑자기 변덕스럽게 마음을 바꾸어 버린 양현감 덕분에 또 다시 계획은 틀어지게 되었다.
그런 양현감을 보자 이밀은 다급하게 말한다.
“정 그렇게 결정하실 것이라면… 홍농보다 여기 동관을 먼저 공격하십시오.”
“동관?”
“예. 현재 우리 군의 움직임을 저들도 모르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현재 저희가 있는 위치는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위치인 만큼 빨리 결정을 내리셔야 합니다.”
“음… 동관을 왜 공격하라고 하는 것인가? 그것부터 듣고 싶다.”
“적을 속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적을 속여야 한다?”
“예. 주군. 좀 전에도 말했듯이 지금 이대로 홍농성을 공격하면 우리는 필패입니다.”
“……”
“하지만 동관을 공격하여 점령한 뒤 홍농을 공격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어째서?”
“동관은 우리가 노리는 대흥성(장안성), 즉 관중과도 가까운 곳이면서 주군께서 노리는 홍농과도 가까운 곳입니다. 쉽게 말해서 저들 입장에서 보았을 때 우리가 어느 성으로 갈지 모르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밀의 말에 양현감은 여전히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 군량이 가장 급하다. 그 동관에는 많은 식량이 있지는 않지 않느냐?”
“제가 세작에게 보고를 듣기로 아주 많은 식량은 아니지만 한 달 정도를 버틸 군량이 동관에 있다는 것을 파악했습니다.”
“겨우 한 달이잖은가? 난 홍농성을 바로 공격하겠네.”
“주군!!”
“이미 결정을 내렸으니 더 이상 아무 말 말게!”
양현감이 그렇게 말을 하며 홍농성으로 길을 잡자 이밀은 탄식한다.
“하늘이 우리를 살펴 주지 않는구나. 이를 어찌할꼬? 잘못하면 내 몸을 누일 곳이 없겠구나.”
그렇게 양현감은 이밀의 조언을 듣지 않고 홍농성을 공격했다.
그리고 그 결과… 이밀이 예측했던대로 홍농성을 점령하지 못했고 도리어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그제야 양현감은 이밀의 조언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모든 희망은 이제 사라진 상황.
그렇게 모든 것을 체념한 양현감은 동생인 양적선에게 자신의 목을 베어 황제에게 가 바치라고 말했다.
그러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것이라며 말이다.
양적선은 형인 양현감의 말에 피눈물을 흘리며 언젠가 이 복수를 자신이 할 것이라 말하며 목을 벤다.
그러고는 그 목을 가지고 양광에게 바치고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려는데 이밀이 다가와 말린다.
“이보게. 적선이! 그 목을 가지고 가도 자네는 죽어!”
“하… 하지만 형님의 말씀이…….”
“그래. 주군의 말씀은 어떤 뜻인지 나도 아네. 하지만 현재의 황제는 미치광이야! 자네가 그렇게 해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야!”
“그럼 전… 어찌해야 합니까?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형님의 복수를 해야 합니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지. 탈출하는 게 우선이야. 내가 저쪽에 미리 길을 봐두었네. 빨리 따라오게!”
“예… 그 전에 상자 하나만 빨리 주십시오. 형님의 목이라도 제가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복수를 하면 장사를 지낼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래… 그리하지.”
그렇게 이밀과 양적선은 추격군을 간신이 따돌리며 현장을 벗어났다.
그때 양광의 명령을 받고 뒤를 추격해왔던 우문술은 양현감의 목이 없다는 것을 보고는 혀를 찼다.
“쯧쯧… 변변치 못한 놈… 보아하니 수하에게 목이 잘린 것이로구만.”
“그런 듯 보입니다.”
“그렇다면 그 잔당들이 분명 이 근처에 있을 것이다. 특히 양현감의 동생인 양적선과 이밀! 그 놈들을 잡아야 한다! 분명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것이니 이곳을 샅샅이 뒤져라! 그리고 반드시 생포해!”
“예! 총사!”
그렇게 우문술은 뒤늦게 양적선과 이밀을 잡으려고 했다.
조금만 늦었더라도 잡힐 뻔한 둘… 그렇게 두 사람은 현장을 벗어나자 이밀이 양적선에게 말한다.
“주군의 복수를 하려면 어떻게든 기반을 잡을 곳이 있어야 하네. 그리고 흩어진 군사들도 다시 모으고 말이지.”
“하지만… 이미 흩어졌지 않습니까? 모여 봐야 얼마나 모이겠습니까?”
“10만의 군사가 우리에게 있었네. 그 중 1만만 모여도 성공이야.”
“으음…….”
“일단 우리 군사들이 가장 많이 달아난 곳이 관중 지역이었나?”
“그럴 겁니다.”
“일단 그곳으로 가지. 가서 흩어진 군사들을 일단 모을 수 있는 데까지 모아 봐야겠어.”
“알겠습니다.”
그렇게 이밀과 양적선은 관중 지역으로 향했다.
* * *
그 시기… 동현은 을지문덕, 강이식과 함께 계성의 군부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드디어 우리가 목표한 유주와 기주 지역을 모두 점령했군. 거기다 병주 지역까지 말이야.”
“그렇습니다. 기대 이상의 성과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입니다.”
“그래. 민심이 현재 안정되어 가고 있다고는 하나 점령한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니 만큼 아직 불안 요소가 분명 있다. 내 생각엔 이 세 지역에 대한 민심 장악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되는데?”
“옳은 말씀이십니다. 이곳의 내정을 잘 살펴서 백성들을 한 동안 잘 보살피면 그들도 진심으로 우리 고구려를 따를 것입니다. 다만 문제는 시간입니다.”
“시간이라…….”
“예. 한 동안 수나라의 혼란이 계속 될 것이긴 하나 언제까지 계속 되리라고 생각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혼란이 계속 될 동안 이 지역의 민심을 빠르게 장악하고 내실을 다져야 합니다.”
“음… 그러자면 식량이 문제겠군.”
“그렇습니다. 다행히 현재 제 상단에서 많은 식량을 비축해 두었으니 그것을 쓰면 될 것 같습니다. 더불어 우리가 이 세 지역을 점령하기 전… 이 세 지역의 관리들이 양광에게서 반기를 들 뜻이 있었던 모양인지 군량을 보내지 않고 창고에 보관 중인 식량도 꽤 많이 발견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우선적으로 양광의 폭정에 시달렸던 백성들에게 식량을 나누어 주어 민심을 달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민심은 빠르게 잡힐 것이라 생각합니다.”
동현의 말에 을지문덕이 크게 웃으며 대답한다.
“하하하! 역시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은 건위장군 밖에 없네! 좋아! 자네의 뜻에 따르지!”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음? 말해보게.”
“저희가 수나라를 확실하게 누르고 세 지역을 공격해 점령한 만큼 동돌궐도 많이 불안해하고 있을 겁니다. 우리가 사신을 보내어 공격하지 말라고 하였으나… 우리가 밀렸으면 분명히 공격을 하고도 남을 자들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우리가 수나라 군에 계속해서 패하고 무너졌다면… 동돌궐은 분명 우리 고구려를 공격했을 것이야.”
“하지만 대모달. 무조건 동돌궐이 공격을 한다는 보장은 없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돌궐의 행보를 보면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음… 하긴……”
“아무튼 계속해서 건위장군의 생각을 들어봅시다. 자… 계속 말해 보게.”
“예. 대모달. 좀 전에 제가 대모달의 말을 따라 동돌궐이 우리를 공격할 수도 있다고 말을 했었습니다.”
동현의 말에 을지문덕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래. 분명히 그렇게 말했었지. 하지만 이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어. 건위장군 자네도 보다시피 우리는 수나라 군의 침입을 막은 것도 모자라 세 개 지역을 우리 영토로 만들었지.”
“맞습니다. 대모달. 그러니 그 점을 동돌궐한테 이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용?”
“예. 현재 그들은 공격만 안 하고 있다 뿐이지 우리와 수나라 중에 고민을 하고 있을 겁니다. 계속 수나라를 따를지… 아니면 우리 고구려에 신종을 하거나 동맹을 맺을지 말입니다.”
“음… 자네는 동돌궐이 어떻게 반응하리라고 생각하나?”
“일단 동맹을 맺으러 먼저 사신을 보내겠지요. 하지만 돌아가고 나면 그 생각이 전혀 달라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째서?”
“자신들의 생각보다 우리가 점령한 지역을 빠르게 장악하는 모습을 볼테니 말입니다. 거기다 오게 된다면… 우리 군사의 규모와 훈련 정도를 보겠지요.”
“그렇다면 사신이 왔을 때 일부러 삼엄한 경계를 서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좋겠군.”
“삼엄한 경계라면… 아! 혹시…”
“그 혹시가 맞네. 삼엄한 경계를 보이는 동시에 동돌궐의 사자에게 화를 내며 쫓아낸다면 분명 반응이 있을 것이야.”
을지문덕의 말에 동현도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아주 좋은 생각이십니다. 만약 모든 것이 잘 된다면 그 때는 동돌궐을 확실하게 이용하면 되겠군요.”
“그래. 일이 잘 된다는 가정 하에 말이지. 너는 이 일이 잘 풀리면 동돌궐을 어떻게 이용할 셈이냐?”
“수나라를 더욱 분탕질 치는 것에 이용하려 합니다.”
“분탕질이라…….”
“예. 수시로 수나라의 국경이나 성들을 빠른 기병들로 드나들게 하여 공격을 한다면 수나라의 혼란은 더욱 오래갈 것이고 길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확실하게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
“서돌궐 또한 이용을 할 겁니다.”
“서돌궐까지?”
“예. 다만 서돌궐은 애초에 우리 고구려와 싸우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고 오히려 수나라의 후방을 공격해 준 고마운 나라이기도 합니다. 그들까지 이용해서 수나라를 분탕질 해놓으면 우리가 원하는 시간까지는 충분히 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수나라에서 많은 군웅들이 일어나 더욱 더 혼란에 빠지겠지요. 우리는 그 틈을 이용해 성장하고 군을 키운 뒤… 또 다시 수나라를 공격하여 영토를 차근차근 넓히는 겁니다.”
동현의 말에 을지문덕과 강이식은 동의한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