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화 이정은 업과 남피를 공격해야한다 말하고, 이연은 이세민의 제안을 고민하다.
곡사정의 말에 을지문덕은 그의 등을 두들기며 위로한다.
“그것은 귀공이 잘못한 것이 아닙니다. 귀공의 재능을 양광이 몰라봤던 것일 뿐이고 거기다 핍박을 받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이겠지요.”
“압니다. 하지만 제가 태어난 나라는 수나라지 않습니까? 그것은 변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귀공을 윗사람이 제대로 써주지 않는 것은 물론 핍박을 하는 곳을 어디 조국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대모달께서는 태왕 폐하께서 핍박을 하면 다른 곳으로 투항하실 생각이십니까?”
을지문덕은 곡사정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저는 절대로 투항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죽고 말지요.”
“그렇다면 좀 전에 제가 하는 말과 다르지 않군요.”
“아니요. 다르지요.”
“……?”
“귀공께서는 우리 고구려에 투항을 했으니 말입니다. 나라면 투항을 하지 않고 죽는다는 것이 다릅니다.”
“…….”
“귀공이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변절자 같은 자라는 뜻이 아닙니다. 귀공은 내가 듣기에도 충성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귀공이 충성하는 조국에 대한 방식과 내 방식이 서로 다를 뿐이지요.”
“…….”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이 땅에서 버림받는 것이라면 저는 쓸모없어진 것이니 차라리 낙향을 하거나 스스로 자결하는 것이 낫다고 말입니다. 저는 제 조국에… 제 몸이 허락하는 한 뼛속까지 바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 말을 들으니… 제가 더 부끄러워지는군요…….”
을지문덕은 곡사정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좀 전에도 말했듯이 귀공이 생각한 것과 제가 생각한 것에 대한 충성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제가 듣자하니 귀공께서는 병법에 매우 능한 것으로 알며 능력도 매우 뛰어나다고 들었습니다. 헌데 양광이 그 능력을 홀대하는 것을 물론 핍박을 했으니 , 더 이상 충성을 다 할 수가 없었겠지요. 거기다 가족의 목숨까지 달려 있으니 말입니다. 제가 추측하자면 귀공은 본인 때문에 다칠 가족들이 걱정되어 우리 고구려에 투항했을 겁니다. 아닙니까?”
을지문덕의 말에 곡사정이 놀란다.
“마치 제 마음 속에 들어갔다 나오신 분 같습니다. 맞습니다. 대모달. 하아… 저 하나 죽어도 상관은 없지만 제 가족들이 저로 인해 죽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랬기에 이렇게 투항을 결정한 것입니다…….”
“역시 그랬군요. 하지만 이제 귀공은 우리 고구려에 투항했으니 고구려 사람이오. 귀공이 가족들 때문에 투항했다고는 하나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소이다. 그러니 이제부터 이 고구려에서 그 능력을 발휘해 보시오.”
을지문덕의 말에 곡사정이 감동하며 감사해한다.
“보잘 것 없는 항장인 소인을… 이토록 잘 챙겨 주시니 소인이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소인 곡사정… 앞으로 이 고구려와 태왕 폐하를 위해 일하겠습니다.”
“하하하! 그리 말해주니 정말 고맙소이다!”
을지문덕은 크게 웃음과 동시에 곡사정의 손을 잡고 흔들며 크게 반긴다.
그리고 늦었지만 술 한 잔까지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시기 양광은 곡사정이 갑자기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탁상을 크게 내리치며 분노한다.
“그게 무슨 소리야? 곡사정이 사라지다니?!”
“예! 그것이…….”
“……?”
“곡사정이 경계를 서는 군사들한테 고구려 군이 우리 진영 근처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다며 자신이 직접 고구려 진영을 살피기 위해 나간다고 말을 내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보터 소식이…….”
“이놈 곡사정… 그럴 줄 알았다! 양현감이랑 친분이 있는 놈이라 걱정했었는데… 역시나 예상대로였어! 제길…….”
“폐하. 이렇게 된 이상 빨리 군을 물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본래도 군을 물리기로 하였으나 그것보다 더 빠르게 퇴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나도 동감이다. 곡사정은 우리 군의 사정을 잘 아는 병부시랑의 자리에 있었던 만큼 여기서 고구려 군과 부딪친다는 것은 자살행위다. 우선 수도로 돌아가서 빠르게 반란을 해결하고 정비를 한 후에! 다시 고구려를 치겠다!”
“예! 폐하!”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군. 지금 즉시 퇴각할 준비를 하라고 해라. 군사들을 전부 깨워!”
“예!! 황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렇게 수나라의 양광은 바로 퇴각을 결정했고 군사를 수도인 동도(낙양)로 군을 물리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수나라 양광과 대치를 했던 우식과 허손, 이정은 양광이 군을 물리고 있다는 소식을 보고 받았다.
그러자 허손이 말한다.
“군사. 저 양광의 뒤를 추격해야 하지 않겠소?”
“그건 안 됩니다.”
“어째서?”
“장군께서는 우리가 이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야… 유주와 기주 지역을 손에 넣기 위해서가 아니오?”
“맞습니다. 건위장군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지금은 그게 먼저입니다.”
“허어… 정말 아쉽군. 저 양광이 놈에게 더욱 간담이 서늘하게 해 줄 수 있었는데 말이오.”
“어차피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겁니다.”
“하긴… 그럼 이제 어찌하면 되겠소?”
“일단 장군께 서찰을 보내 이곳의 상황을 전하고 업성을 공격하겠다고 하십시오.”
“업성을? 그곳은 이 하북 지방에서 제일 큰 성이 아니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화포도 있으니 금방 점령할 수 있을 겁니다. 좀 전에도 말했듯이 이 작전은 속전속결이 핵심입니다. 그리고 모두 점령하면 빠르게 우리 군을 정착시켜서 민심을 안정시킨 후… 요새화를 해야 합니다.”
“으음… 알겠소.”
“그리고 우식 처려근지께서는 기주 지역의 남피성을 점령해 주십시오.”
이정의 말에 우식이 묻는다.
“남피를? 남피를 가려면 그 근처에 있는 고양현이나 낙성현을 지나야 하네. 그곳에는 별다른 저항이 없을까?”
“작은 저항은 있을 수 있으나 큰 저항은 없을 겁니다. 처려근지께서도 아시다시피 현재 수나라는 양광으로 인해 많은 군사들이 전 지역에서 비어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쳐서 점령해야 합니다. 지금 점령하지 못하면 후에 분명 수나라 군벌들이 들고 일어날 텐데, 그리 되면 그들이 이 성들을 점령하게 됩니다. 그러니 지금이 기회입니다.”
“알겠네. 그리하지.”
“군사는 저희 쪽 군사 1만을 더 붙여 드릴 테니, 3만의 군사로 남피를 점령하십시오.”
우식은 이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
그렇게 모든 행동이 결정되자 허손은 빠르게 서찰을 써서 동현에게 보냈다.
* * *
그 시기 병주 진양성의 태원에서는…….
“이거 큰일이군. 원군을 보내려 해도 현재 고구려 군이 국경에 배치되어 있으니 군을 움직이지 못한다. 하아…….”
태원 유수로 있는 이연이 한숨을 내쉬자 장남인 이건성이 말한다.
“고구려 군의 기세가 만만치가 않습니다. 아버님.”
“그러게 말이다. 유주 지역과 기주 지역이 고구려 군에 공격을 당함에도 원군을 보낼 수가 없으니…….”
이연의 말에 둘째 아들인 이세민이 나서서 말한다.
“소자가 추측하기로는 이 모든 것이 고구려의 계획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병력을 국경 근처에 배치해 묶어둔 후… 유주 지역과 기주 지역을 점령하는 방식을 쓰는 듯 보입니다.”
“그래. 나도 그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당하고 있음에도 원군조차 보내지 못한다니… 허… 이런…….”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아버님. 우리가 다스리는 이 지역까지 잃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 네 말이 맞다만… 하지만 말이야.”
“……?”
“만약 이 모든 침입을 폐하께서 막아 내신다면 또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면 왜 우리가 군사를 파병하지 않았냐고 폐하께서 문책하실 수 있음이야.”
이세민은 아버지 이연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소자의 추측으로는 그러지 못 하실 겁니다.”
“응? 어째서?”
“현재 폐하께서는 오로지 고구려를 몰아낼 생각만 가득하신 분입니다. 그런 분이 우리 군사 파병 문제에 대해 신경을 쓰시겠습니까?”
“으음…….”
“만약 신경을 쓰신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 뭐라고 하지는 못 하실 겁니다.”
“어째서?”
“현재 고구려 군의 총 군사는 25만이라 들었습니다. 우리가 다른 지역을 도우러 갔다가 이곳을 점령당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우리 수나라는 더 많은 방면으로 고구려 군사들과 싸워야 합니다. 폐하께서는 제법 병법을 아시는 분이시니 그것 가지고 뭐라고 하지 않으실 겁니다.”
이세민의 말에 이연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묻는다.
“그래. 네 말에도 일리는 있구나. 그렇다면 너는 앞으로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느냐?”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두 가지나?”
“예. 아버님.”
“어디 한 번 들어보자꾸나.”
“예. 일단 첫째는… 우리가 이곳에서 거병하는 것입니다.”
“거.. 거병을?”
“예. 아버님.”
“그 말은… 수나라를 배반하라는 것이냐?”
“지금의 황제는 폭군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거병하면 백성들도 따를 것이고 여러 지역에서 호응을 할 것입니다.”
“거병을 해서 내가 다스리던 지역이 다 우리를 따른다고 치자. 헌데 언젠가는 수나라 군과 싸워야 한다.”
“우리 군은 강합니다. 이길 수 있습니다.”
이세민의 말에 이연이 한숨을 쉬며 대답한다.
“하아… 세민아. 네가 말하는 것이 어떤 말인지 안다. 하지만 수나라 군은 누구보다도 강해. 고구려 군에 밀려서 그렇지 결코 약한 군이 아니란 소리다.”
“군은 지휘관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아버님과 저희가 있다면 해낼 수 있습니다.”
“됐다… 그 이야기는 그만하자. 두 번째 이야기나 들어보자꾸나. 두 번째 이야기나 한 번 해 보거라.”
“예. 아버님. 두 번째 방법은… 고구려에 투항을 하고 이곳의 지위를 인정받는 것입니다.”
“고… 고구려에 투항을?!”
“예. 아버님.”
“세민아. 우리는 수나라 황실의 식구인 사람이다. 헌데 투항을 받아 줄까?”
“분명 받아 줄 겁니다.”
“어째서?”
“지금까지 고구려는 과거 폐하와 한왕 전하를 볼모로 잡았음에도 아무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그 증거입니다.”
“두 분의 신분은 황자였으니 당연한 것이 아니겠느냐?”
“물론 그럴 수도 있으리라 생각은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전쟁터에서 적장을 살려 보냈습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전쟁에서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보십니까?”
“…….”
이연이 이세민의 말에 아무 대답이 없자 이세민은 계속 말을 이어간다.
“아무리 전쟁이 끝나고 난 뒤라고 해도 생포한 적장을 쉽게 놓아 주는 것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헌데 고구려는 놓아 주었습니다. 심지어 지금의 황제 폐하뿐만이 아니라 양소도 함께 놓아 주었지요. 장수까지 놓아 주었다는 것은 고구려는 우리 수나라가 자신들의 나라보다 큰 나라인 것을 스스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음…….”
“이 둘 중에 한 가지 결정을 내리셔야 합니다. 아버님. 그래야 저희가 살 수 있습니다.”
이세민의 말에 이연은 여전히 고민이 되는 듯 했다.
“일단 오늘 하루는 이만 하자. 좀 더 고민해 보고 싶구나.”
“아버님. 이 일은 빨리 결정을 해야 하니 늦어도 사흘 안에는 결정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리하마.”
그렇게 이세민의 말을 들은 이연은 자식들을 내보내고 잠시 생각에 잠기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