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화 흑수말갈의 예선정기, 고구려에 신종을 고민하다.
천마석은 천석우의 보고를 받고는 잠시 고민한다.
“이미 고구려를 돕겠다고 답은 했습니다. 전하. 그러니 보내야 할 것입니다.”
“그래. 나도 안다.”
“한데 무슨 고민을…….”
“군사를 얼마나 보낼지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
“수를 많이 보내자니 우리 국력에 대한 소모는 피할 수 없으니 말이야. 거기다 만약 패하기라도 한다면 우리의 군사들도 많이 희생을 당할 테니 우리는 또 그만한 군사를 길러내려고 국력을 또 소모할 것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하지만 고구려는 지금 어느 나라보다 강합니다. 어느 정도 성의는 보여야 할 겁니다.”
“그 정도가 네가 보기에는 어느 정도라 생각하느냐?”
“1만입니다.”
“1만이라…….”
“예. 1만과 함께 제가 그 군사들을 이끌고 간다면 최소한의 성의는 보였다고 생각을 할 겁니다. 전하.”
천석우는 천마석의 말에 깜짝 놀란다.
“네가 직접 가겠다고?”
“예. 아바마마. 제가 직접 가야 고구려에서도 저희의 사정을 눈치 채고 이해해 줄 것입니다.”
“으음……”
“허락해 주십시오. 아바마마.”
천마석의 거듭된 말에 천석우는 어렵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네가 그렇게까지 나라를 위해서 하겠다니… 알겠다. 다만 명심해라. 예전과 같은 네 모습을 보인다면 너는 또 당하게 되어 있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예. 아바마마. 제가 함부로 나서지 말라는 말씀 아니십니까?”
“맞다. 그리고 나서더라도 예전과 같이 분노하여 앞뒤를 보지 않고 달려들지 말라는 말도 된다. 절대 그리해서는 아니 돼. 알겠느냐?”
“예. 아바마마.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그렇다면 기병 5천과 보병 5천으로 편성으로 해서 1만의 군사를 너에게 주마. 그리고 호천이도 데려가도록 해.”
“예. 아바마마.”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호천이 말을 무조건 귀담아 듣도록 해라. 그리고 항상 조언을 구하도록 해. 알겠느냐?”
“예. 아바마마. 소인 다시 이 나라에 큰 누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입니다.”
“그래. 그런 결심이라면 되었다. 바로 출진 할 준비를 해.”
그렇게 천마석 또한 고구려의 명령에 의해 1만의 군사를 북평성으로 보냈다.
* * *
그 시기… 흑수말갈에서는…….
“뭐라? 수나라가 고구려에 패하여 퇴각을 해? 그리고 수나라를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예. 가한! 현재 북평성에 고구려의 군사들이 집결 중이랍니다. 그리고 그 번국인 거란의 부족들과 불열말갈, 속말말갈, 백돌말갈, 안거골 말갈도 고구려의 명령을 받고 군사를 보내거나 군량들을 보내 지원까지 하고 있다고 합니다.”
“허어… 정말 대대적으로 수나라를 공격할 생각인가?”
“세작들의 보고에 의하면 그래 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큰일이 아닌가? 우리는 본래 수나라의 비호 아래 있었는데 말이야.”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가 감히 청합니다.”
“……?”
“이제는 고구려로 상국을 바꾸십시오.”
“이보게 두송. 나는 지금까지 고구려와 크게 척을 졌던 사람이야. 특히 그 번국인 불열말갈을 공격하다가 큰일을 당했지. 헌데 이런 나를 고구려에서 쉽게 받아 줄까? 영토도 크게 빼앗겼는데 말이야.”
두송. 예선정기를 곁에서 보좌하던 죽은 두종의 아들이다.
예선정기는 본국에 돌아오자마자 두송을 극진히 살폈는데 두송은 그런 보살핌을 받으며 쑥쑥 자랐다.
그리고 어느 정도 나이가 찼을 때… 스스로 예선정기를 보좌하겠다며 선언을 하며 아버지처럼 군문에 들겠다고 말을 했다.
예선정기는 그런 두송을 기특하게 보고는 받아들여 주었다.
두송은 아버지 두종처럼 매우 총명했는데, 예선정기를 보좌하자마자 나라 안의 내정을 살피는 것은 물론이고 군사들을 조련하는데 두각을 나타냈다.
그런 모습을 본 예선정기는 두종을 떠올렸다.
‘두종. 보고 있나? 자네의 아들이 이제 나를 보좌하며 힘을 보태고 있네. 자네가 생전에 내게 항상 그런 말을 했었지. 우리 흑수말갈을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국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이야. 그 꿈을… 이제 자네의 아들이 이어 받았어.’
예선정기는 두종을 한 동안 떠올리며 생각에 잠기는데 무언가 속에서 울컥하는 감정들이 올라왔다.
하지만 겉으로 눈물을 보일 수는 없는 법.
예선정기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두송이 군사들을 조련하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런 두송이 조회에서 고구려로 상국을 바꿀 것임을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저희가 고개를 진정으로 숙이겠다는 것을 진심인 것처럼 보여 주면 분명 받아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심인 것처럼 보여 주라?”
“예. 가한.”
“그럴만한 것이 있느냐?”
“딱 하나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가한께서 직접 고구려로 가 고구려의 태왕에게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는 것입니다.”
두송의 말에 예선정기는 이맛살을 찌푸린다.
“그것만으로 고구려의 태왕이 받아들여 줄까? 절대 받아들여 주지 않을 것이야.”
“그럴 겁니다. 아마 소신의 생각으로는… 가한이라고 부르는 호칭을 쓰지 못하게 할 것임은 물론이고 아마 가한의 아들과 딸을 보내라고 하겠지요.”
“설마… 그것을 모두 들어 주라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그건 너무하다. 내 아들과 딸에게 너무 미안한 처사니 말이야.”
“저도 압니다. 하지만 가한. 훗날을 위해서는 모든 굴욕을 감내해야 합니다.”
“굴욕을 감내하라?”
“예. 가한. 지금 불열말갈을 보십시오. 고구려에게 엄청나게 공격당하고 완전히 망가져 있었는데 금세 회복한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현재 국력이 강해지고 있지 않습니까?”
“…….”
“그들은 고구려의 보호를 받으면서 점점 성장해 가고 있습니다. 가한. 아마 고구려의 힘이 약해지면 그들은 분명… 반기를 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 물론 현재가 아니라 먼 훗날에 그럴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 말은… 우리 흑수말갈이 고구려에 대한 복수는 내 대에 이룰 수 없다는 말이 될 수도 있겠군.”
예선정기의 말에 두송은 고개를 숙으며 대답한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후우… 그래. 솔직히 말해 줘서 고맙군. 아무튼 두 사람을 볼모로 보내라는 것이지? 그쪽에서 이야기를 꺼낸다면 말이야.”
“그렇습니다. 가한.”
“이 이야기는 섣불리 결정할 수가 없군. 우리 식구들과 논의를 해보고 생각을 좀 해볼 테니 조금만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 보세.”
“예. 가한 그리하십시오. 다만 되도록 빨리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우리가 오래 망설이는 동안 고구려의 번국들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말입니다.”
“그들이 고구려를 돕는 만큼 얻어가는 것도 있을 테니… 늦으면 늦을수록 우리가 얻어가는 것이 적어질 것이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가한. 분명 그들은 전쟁이 끝나면 고구려에서 공에 따라 포상을 할 것이 분명합니다. 일단 우리도 고구려에게 고개를 숙이기로 했으면 앞장서서 공을 세우고 받을 것을 확실하게 받아 국력을 키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
“우리는 과거에 영토를 많이 잃었습니다. 그리고 잃은 그 영토는 매우 비옥한 곳들이었지요. 하지만 그곳은 이제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두송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계속 말을 이어 간다.
“그리고 현재 우리 영토는 대부분이 척박한 곳이지요. 그래서 겨울이나 흉년이 들면 식량이 매번 부족해집니다. 다행히 한 동안 다른 지역의 상인들과 거래가 잘 되어 지금까지 버텨왔습니다만… 우리와 거래를 하던 상인들이 하나만 없어지면 우리는 크게 곤경에 빠질 것이 분명합니다.”
두송의 말에 예선정기가 탄식한다.
“내가 과거 네 아버지 두종의 말만 들었더라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정말 두고두고 후회가 되는구나.”
“이미 지난 일을 들춰봐야 뭐하겠습니까? 앞으로가 중요합니다. 일단 그 첫 번째로는 고구려에 철저히 신종하면서 고구려의 번국으로서 공을 세워 많은 재물들을 얻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군량과 재물을 넉넉하게 비축을 해두고 우리 흑수말갈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지금 불열말갈도 그로 인해 많이 발전했습니다. 이제 그들의 군사력은 우리 흑수말갈의 군사력과 비등할 정도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래. 나도 들었다. 군사들의 수도 우리와 비슷해졌다고 하던데?”
“그렇습니다. 가한.
“후우… 알았다. 일단 내 가족들과 상의를 해보고 빠른 시간 안에 답을 주겠다.”
“예. 가한. 되도록 빠른 결정을 부탁드립니다.”
“알았다. 사흘 안에 모든 것을 결정하도록 하지.”
그렇게 흑수말갈의 예선정기는 두송의 권유에 가족들을 불러 모아 상의를 했다.
“예? 우리 아들과 딸을 고구려에요?”
“그렇소. 미안하오… 지금 우리 흑수말갈의 상황이 그만큼 어렵소.”
“그 먼 타국에 우리 아이들을 보내야 한다니… 말도 안 돼요.”
“부인. 너무 미안하오. 하지만 그들이 요구를 하면 꼭 보내야 하오.”
“……”
예선정기의 말에 그 부인은 화가 난 듯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때…
“아버님. 정말 제가 고구려에 볼모로 가면 우리 흑수말갈이 예전보다 잘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까?”
“확실하다. 특히 이번 전쟁에 나서서 큰 공을 세우면 더더욱 확실해지지.”
“그렇다면 아버님. 제가 볼모로 가겠습니다.”
“둘째 네가?”
“예. 아버님.”
“정우야! 가면 영영 돌아오지 못 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가겠느냐?”
“나라를 위한 일인데 무엇을 못 하겠습니까?”
아들 예선정우의 말에 예선정기는 울컥하는데 옆에 있던 첫째 아들인 예선정수가 동생을 말리며 말한다.
“아니다. 정우야. 내가 첫째인 만큼 내가 볼모로 가야 한다. 정우는 나 대신 아버님의 뒤를 잇도록 해라.”
“형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시겠지만 저는 형님의 자리를 단 한 번도 넘본 적이 없습니다. 형님이 아버님의 자리를 이으시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지만 동생아. 고구려는 위험해. 너를 보내자니 안심이 안 된다.”
“그래도 제가 가야 합니다. 형님. 형님은 이 나라를 이끌어 가실 분입니다.”
둘이 그렇게 말싸움을 벌이는데 갑자기 누군가 끼어든다.
“아버님. 만약 여자들 중 한 명을 볼모로 가야한다고 하면… 제가 가겠습니다.”
“……!”
“수… 수연아. 너는 우리 다섯 명 중 가장 막내야. 이제 겨우 20살인데 고구려로 간다고? 그건 아니 된다!”
예선정기의 아내는 막내 딸 예선수연이 자신이 볼모를 자청하자 극렬하게 반대한다.
그리고 그 말에는 예선정기도 동의한다.
“그래. 그 말은 나도 받아들일 수 없다. 넌 이제 20살이야. 그리고 네가 고구려로 가게 되면 분명히 너를 볼모로 삼는 것은 물론이고 그곳에 있는 고구려의 남자와 혼인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해서 우리를 같은 핏줄처럼 끌어들여 붙잡아 두려 하겠지. 그러니 허락 할 수 없다.”
“제 언니를 보낼 수는 없습니다. 아버님.”
예선수연의 말에 예선정기는 첫째 딸인 예선연수를 바라보며 말한다.
“연수야. 네가 막내인 수연과 5살 차이이면서 아직 혼인을 하지 않았으니 볼모로 가게 된다면 네가 가는 것이 옳다고 보는구나.”
“…….”
“너는 가기가 싫은 것이냐?”
예선정기의 말에 예선연수는 바로 대답한다.
“왜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말씀하십니까?”
“뭐?”
“그렇지 않습니까?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 가지고 말을 하는 것은 옳지 못 합니다.”
“후우… 그래. 네 말이 맞다. 하지만 곧 생길 것이다. 내가 직접 고구려로 가 고개를 숙이고 번국이 되기를 청할 것이니 말이야.”
“…….”
“그리 되면 고구려에서 무엇인가를 요구하겠지. 그럴 가능성으로 볼 때, 나는 아들과 딸이 여러 명이 있으니 한 명씩 분명 볼모로 요구 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내가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야.”
“…….”
“네 마음을 모르는 것 아니다. 연수야. 하지만 지금 우리로서는 이렇게 밖에 할 수가 없구나. 미안하다.”
예선정기의 거듭되는 미안하다는 말에 가족들은 한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