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화 을지문덕은 거짓 항복을 해 수나라 진영을 염탐하고, 큰 비가 내리기 시작하다.
동현의 물음에 고경은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는다.
“일단 포로를 그만큼 많이 잡은 만큼 군량도 그만큼 많이 소모하게 됩니다. 저들을 군사로 받아들이든 말든 말입니다.”
“그건 나도 아네. 하지만 현재 우리의 여력으로는 충분하지 않은가? 풍년이 들은데다가 구휼미도 넉넉해.”
“그 구휼미라는 것은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어려울 때 써야 하는 것입니다. 장군. 그리고 장군께서 이번 전쟁에 대비하여 많은 식량을 사전에 구입했다고는 하나 그것도 언젠가는 떨어질 것입니다. 특히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짐에 따라서 더 빠르게 떨어지겠지요.”
“하지만 고경. 인구 수는 나라의 국력이라고 했네. 저들을 전부 방면하거나 풀어 줄 수는 없는 노릇이야.”
“저도 압니다. 그래서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은 2만 모두를 군사로 받아들이지 말고 1만은 군사로 1만은 땅을 개간하게 하는 겁니다.”
“개간을?”
“예. 장군. 좀 전에 제가 말했듯이 장군께서도 인구 수와 함께 식량에 대한 중요성을 예전부터 강조해 오셨습니다.”
동현은 고경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래. 지금도 그렇게 자주 말하고 있다.”
“저도 그 의견에 매우 동감합니다. 그리고 그런 장군의 선정 덕분에 현재 이 백암성은 많이 풍족해졌고 말입니다. 하지만 소인의 눈에는 아직도 부족합니다.”
“그렇겠지. 이 백암성은 동쪽 태자하가 흐르는 쪽으로만 대부분 평야일 뿐 다른 곳은 개간이 어려우니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야.”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을 대체할 훌륭한 작물을 장군께서 발견하시지 않았습니까?”
“설마…….”
“1만은 수나라 군사들을 우리 고구려 군사로 받아들이시고 남은 1만의 군사로는 땅을 개간하며 감자를 심게 하는 겁니다.”
“……!”
“장군께서 말씀하시길 감자는 우리가 흉년이 들었을 때 그것을 대체 할 훌륭한 작물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란다고 말입니다.”
“그래. 분명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고경은 동현에게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계속 말을 이어 간다.
“현재 이 백암성 평야 쪽은 장군의 보살핌 덕분에 대부분의 백성들이 나라에 땅을 빌려 소작을 하거나 자신의 땅을 갖고 살아감에 따라 삶이 윤택해졌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장군께서 말씀하신대로 인구를 늘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 인구를 먹여 살리려면 더욱 많은 식량이 필수적이고 말입니다.”
“그렇지.”
“제가 근래 백암성의 인구를 조사해 보니, 백성들의 삶이 윤택해짐에 따라 아이들을 많이 낳았더군요. 장군께서 이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전쟁에 대한 군량뿐만 아니라 백성들이 먹고 사는 식량에 대해서도 충분히 대비를 해놓으셨습니다. 하지만 지금 백암성에서 아이들이 자라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거기에 이 수나라 포로들이 한꺼번에 들어온다면 현재 비축된 식량으로 얼마나 버티겠습니까?”
“자네도 알겠지만 현재 비축된 식량은 엄청나게 많다.”
“저도 창고를 봐서 당연히 압니다. 제 말은 당분간 우리가 수나라 포로를 잡게 되면 이런 식으로 사람들의 수가 늘어날 가능성이 더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금방 식량이 모자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것을 대비하자는 것입니다.”
“으음… 그래서 그에 대한 대안으로 평야뿐만 아니라 주변 다른 곳에 농사가 잘 될만한 곳을 찾아서 그 땅을 개간하게 함과 동시에 감자를 심자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장군.”
동현은 고경의 말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아주 좋은 의견을 내주었네. 내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을 말해줘서 고맙군.”
“아닙니다. 소인은 그저 제 생각을 말한 것 뿐입니다.”
“아닐세. 내가 봐도 아주 좋은 의견이야.”
“하하하! 거 보게! 사훈조차도 자네 의견에 일리가 있다 하지 않나?”
동현은 물론이고 사훈도 고경의 의견에 동의하며 좋은 의견이라고 말을 하자 고경은 말없이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런 고경을 본 동현은 명령을 내린다.
“고경의 말대로 하지. 1만은 우리 군사로 받아들여 사훈 자네가 말한대로 훈련을 시키도록 해. 남은 1만은 고경의 말대로 개간되지 않은 땅을 골라 개간하게 하면서 감자를 심게 할 것이다. 1만의 포로들을 절반인 5천씩 나누어서 말이야. 그러니 둘이 이 일을 맡아 주게.”
“맡겨만 주시옵소서!”
“수나라 군사들이 우리 포로가 되어 무기도 없이 약자가 되었다고는 하나 아직까지 속에 내재된 분노가 있을 수 있다. 그러니 그 포로들을 우리 군사로 훈련을 시킬 때 각별히 감시를 하도록 해라. 이것은 땅을 개간하거나 감자를 심는 포로들도 마찬가지다. 알겠나?”
“예. 장군. 염려 마십시오.”
동현은 이렇게 인근 수나라 군사들을 확실하게 몰아내며 백암성의 평화를 되찾았다.
그러고는 전령의 띄워 장안성(평양성)에 바로 소식을 알렸다.
* * *
“하하하하!! 역시… 역시 건위장군이야!”
“건위장군이 수나라 군을 물리치기라도 했습니까?”
“그렇다네! 한번 이 장계를 봐!”
연태조는 영양태왕에게서 장계를 받아 읽어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역시 건위장군입니다.”
“암! 그리고 그와 동시에 조의들도 큰 역할을 했지. 조의들이 회원진의 군량을 불태우지 않았다면 이 일은 성공 할 수 없었을 것이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밖으로 먼저 나간 3천의 군사로 본국에서 오는 군량도 끊는다고 보냈다는데… 이것이 잘 되리라 생각하는가?”
“저는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수나라는 지금 우리 고구려의 성 대부분이 포위된 상황에서 군사를 내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 할 겁니다.”
“하긴… 그건 그래. 현재 수나라 군 본대가 있는 요동성만 해도 우리가 큰 피해를 입혔다고는 하나 아직도 엄청나게 많은 대군이 남아 있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태왕 폐하.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것보다 더 문제인 곳은 수나라 30만의 별동대입니다.”
“그래. 을지문덕 대모달이 잘 해주어야 할 텐데… 그곳을 어떻게든 막아 주어야 우리가 수나라에 역공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을지문덕 대모달이 어디 보통 사람입니까? 문무를 겸비했으며 여태까지 크고 작은 전투에서 한 번도 지지 않은 불패의 장수입니다.”
연태조의 말에 영양태왕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을지문덕을 믿는다.
* * *
그 시기 을지문덕은…….
“예? 대모달!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거짓 항복이라니요?!”
“그렇습니다. 대모달! 그건 너무 위험하니 제게 맡겨 주십시오!”
“아니야. 이 일은 내가 직접 봐야 한다.”
“대모달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습니다.”
“현재 우문술과 우중문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고 들었네. 그것을 이용하면 내 목숨은 보전하는 것을 물론이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 것이야.”
“하지만 대모달!”
“이미 결정을 내렸네. 그러니 자네는 수나라 진영에 전하게. 내가 항복을 한다고 말이야.”
을지문덕의 거짓 항복을 하러 적진에 직접 간다는 말에 장수들은 적극 만류했다.
하지만 을지문덕은 그런 장수들의 요청을 뿌리치며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고 결국 수나라 진영에 가게 되었다.
“배짱도 좋군! 목숨이 두 개라도 되는가 보지?!”
“나는 태왕 폐하를 대신해서 항복을 전하러 온 사자요. 그런데 이리 무례하오?!”
“뭐라?!”
총사인 우중문이 분노하는데 옆에 있던 우문술이 우중문을 말리며 말한다.
“을지문덕 장군의 말씀이 옳소이다. 장군은 우리에게 항복을 하러 온 사람이요. 그러니 총사는 우리 수나라의 대국에 맞게 처신을 하시오!”
“뭐라? 이이익……!”
우중문이 손까지 떨며 분노하는데 우문술의 말에 옆에 있던 유사룡까지 말을 보탠다.
“우문술 대총관의 말씀이 옳습니다. 예로부터 항복하러 온 사자를 막 대하는 법은 없었소. 그러니 대국인 우리가 잘 맞아 줍시다. 저들이 항복을 하러 왔다는데 거부할 것도 없잖소?”
“폐하께서는 을지문덕이나 강이식을 잡으면 죽이지 말고 꼭 생포를 하여 붙잡아 두라고 하였소이다! 그거 아시오?!”
“물론 아오. 하지만 그것은 우리와 전쟁을 치렀을 때 이야기 아니오? 그런데 오히려 고구려에서 스스로 고개를 숙이며 들어왔소. 한 나라의 병권을 쥐고 있는 장수가 말이오. 그러니 그것과 이야기가 같을 수 없소이다!”
“으으윽……!”
우중문은 자기가 별동대를 이끄는 총사인 만큼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처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별동대가 아닌 전체적인 군사에 대한 병력 총괄은 우문술이 가지고 있었기에 그의 뜻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 유사룡까지 우문술의 편을 드니 여기서 자신의 뜻대로 했다가는 나중에 전쟁이 끝나고 자신이 큰 피해를 입게 될 것 같아 뜻을 관철시킬 수가 없었다.
‘역시 본래 지위가 우문술이 높으니 지휘 체계에서 혼란이 온 것이군. 내 예상대로야. 큰 약점으로 이용 할 수 있겠어. 거기다 들어올 때 군사들을 보니 모두 보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 굶주리고 있으며 픽픽 쓰러지고 있는 자들이 속출하는군. 우리 고구려한테는 아주 좋은 상황이다. 하지만 적을 완전히 궤멸시키려면 이 상태에서 더 지치게 만드는 것이 좋겠어.’
을지문덕은 자신 앞에서 싸우는 장수들을 보며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런 을지문덕을 보며 유사룡은 정중하게 자리까지 권하며 앉게 했고 항복을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 논의했다.
을지문덕은 거짓 항복을 그럴 듯하게 꾸며 우문술과 유사룡이 자신의 편을 들게 만들었다.
우중문은 자신의 의도를 어느 정도 의심하는 듯 계속 공격적인 말을 했지만, 그때마다 우문술과 유사룡이 말리며 계속해서 서로 반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덕분에 을지문덕은 적진을 모두 염탐하고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뭐라? 일이 급해 돌아가야 한다 했다고?”
“예. 총사! 깜빡하고 말을 하지 않은 것이 있다고 다시 돌아오라고 말을 했지만… 일이 한시가 급하니 돌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젠장… 이건 분명 거짓 항복이다! 을지문덕을 좀 더 이곳에 묶어 두었어야 하는 건데…….”
“그것을 총사가 어찌 확신하시오? 만약 정말로 을지문덕이 항복하는 것이라면 그때 총사는 어찌 할 것이오? 그러니 이미 지나간 일을 가지고 더 이상 거론 하지 말도록 하시오!”
우문술의 말에 우중문은 그저 두 손을 꽉 쥔 채 부들부들 떨 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을지문덕이 그렇게 거짓 항복을 하고 무사히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간 뒤, 고구려군은 정말 항복할 것처럼 계속 이야기를 하며 군을 물렸다.
우중문은 그런 을지문덕의 의도를 알고 계속 추격을 했지만, 굶주리고 사기가 떨어질대로 떨어진 군사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을지문덕을 계속 쫓아 평양성으로 향하는 움직임 때문에 군사들이 더욱 지치게 되었다.
거기다…….
우르르 쾅쾅!!
설상가상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수나라에게 최악의 시나리오인 우기가 다가온 것이었다.
비를 만나게 되자 30만 별동대는 물론이고 요동성 부근에서 진을 치고 있던 양광도 잔뜩 굳은 얼굴로 막사 밖의 비를 쳐다보았다.
“하필 이런 시기에 비라니…….”
“지금 시기가 우기일 때입니다. 폐하.”
“그래. 그건 나도 안다. 하지만 하필 이런 시기에 비가 오다니… 좋지 못한 징조다.”
양광의 말에 수하 장수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