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화 동현, 글필하력을 수하로 얻다.
고경의 말에 글필하력은 동현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처음 뵙겠습니다. 글필하력이라고 합니다.”
“응? 우리말에 굉장히 능숙하시군요.”
“아… 예. 돌궐로부터 우리 철륵 부족들이 이곳저곳으로 떠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랬군요…….”
“말씀 낮추십시오. 장군. 저는 어디까지나 글필 부족의 추장일 뿐입니다.”
동현은 그 말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나이가 어리다고는 하나 엄연히 한 부족을 이끄는 추장… 그렇다면 함부로 말을 낮추어서는 안 되지요.”
글필하력은 그 말에 감동하는데 동현은 그런 상대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궁금한 것이 있는지 묻는다.
“한데… 기존에 살던 곳에서 왜 이 백암성까지 오게 된 것입니까? 돌궐이 점령했다고는 하나 그곳을 피해서 다른 곳에 어떻게든 정착을 한 것이 아닙니까?”
동현의 말에 글필하력은 한숨을 쉬며 대답한다.
“하아… 맞습니다. 우리 철륵의 여러 부족들은 돌궐을 피해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정착을 했었습니다. 한데… 그것도 오래가지 못하더군요.”
“……?”
“돌궐이 우리가 정착한 곳을 알아내어 사신을 보냈었습니다. 항복을 하라고 하더군요.”
“…….”
“항복을 하지 않으면 기병들로 다 쓸어버리겠다고 협박을 했습니다. 그 말에 우리는 깊은 분노를 느꼈으나 힘이 없으니 어쩌겠습니까? 일단 비위를 맞추어 사신을 돌려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길로 그곳을 벗어나기로 결정을 내렸지요.”
“그래서 밑에 사람들과 상의한 뒤 이 백암성으로 온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이 북방에서 백암성은 소문이 자자합니다. 외곽 백성들도 잘 산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일단 올 한해를 버틸 가축과 식량만 실어서 이곳에 온 것입니다. 이 일대로 오면 가축은 다시 번식을 시킬 수 있고 괜찮은 땅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농사를 지어서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동현은 글필하력의 말에 안타까워하더니 그의 손을 붙잡으며 말한다.
“그렇다면 이 백암성으로 진작에 연통을 주지 그랬습니까? 이곳으로 온다는 것은 우리 고구려의 사람이 된다는 뜻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는데 말입니다.”
동현의 말에 글필하력은 깜짝 놀란다.
“예? 저… 저희를 받아 주신다는 말씀입니까?”
“물론입니다. 왜 그리 놀라십니까?”
“허어… 소문과 너무 달라서 말입니다.”
“소문?”
“예. 고구려 사람들은 북방 사람들을 배척한다는 소문을 들어서 말입니다.”
동현은 그 말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그 소문은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아마도 그 소문은 우리가 말갈과 싸울 때 많이 퍼졌겠지요. 그 부족들은 우리 고구려의 변방을 약탈하고 공격을 했기에 우리가 그들에게 반격하여 소탕을 한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다시는 얕보이지 않기 위해 아주 강하게 공격을 했지요. 그래서 그런 소문이 났을 겁니다.”
글필하력은 동현의 말에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런 것이라면 저도 이해합니다. 공격을 당하는데 가만히 있는 것이 바보지요. 힘만 있다면 말입니다.”
“하하하! 맞습니다. 그리고 정말 잘 오셨습니다. 제가 글필 족이 머물만한 땅이 있나 한 번 살펴볼 테니 그곳에 정착하십시오.”
“예? 저… 저희에게 정착할 땅을 주신다고요?”
“그렇습니다. 이곳은 산 쪽이라 괜찮은 땅이 있다고 해도 땅의 규모가 크지 않아서 농사를 짓기에 부적합합니다. 군사적 요충지로는 좋지만 말입니다.”
“…….”
“이 고구려에 살기 위해 오셨으니, 이제 그대도 고구려의 사람입니다. 다 받아들이도록 하지요. 아… 참! 수가 얼마나 됩니까?”
“아, 예. 2만 명 정도 됩니다.”
“2만 명이라… 알겠습니다. 며칠만 이곳에 계시면 정착할 땅을 알아보고 연통을 하지요.”
동현의 말에 글필하력은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넙죽 절을 하며 큰 소리로 외친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장군! 항상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천대만 받았는데… 이토록 환대해 주시니 말입니다! 앞으로 소인은 고구려 사람으로서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장군께 충성을 다 할 것입니다!!”
글필하력의 행동에 동현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그를 일으킨다.
“그리 말해 주니 고맙습니다. 앞으로 이 고구려와 나를 위해 일해 주십시오!”
“예! 장군! 이제 장군은 제가 모시는 분이니 하대를 하십시오!”
“하하하! 알겠네! 그리 하지! 그대 같은 사람이 있으니 든든하구만! 여기 고경에게 들으니 힘이 그렇게 장사라 하던데?”
“고경님께서 소신은 추켜 세워 주는 것뿐입니다. 보잘 것 없는 힘입니다.”
“참으로 겸손하군. 아무튼 이렇게 자네를 얻게 되어 기쁘다네! 앞으로 잘 지내보세!”
“예! 장군!”
그렇게 동현은 뜻하지 않게 회귀 전 당나라 황제 당태종 이세민의 수하 장수였던 글필하력을 수하로 얻게 되었다.
‘내가 알기로 글필하력은 출생을 언제 했는지 기록으로 정확히 알 수가 없었지. 그런데 지금 15살이라니… 고수 전쟁 시기에 15살이니 정말 좋은 나이다. 어리긴 하지만 무력이 70대에 지력도 60대라 충분히 성장가능성이 높아. 타입도 신동이고 말이야. 앞으로 잘 가르쳐 봐야겠어!’
동현은 글필하력을 수하로 얻은 것에 매우 기뻐하며 관청으로 돌아갔다.
며칠 뒤… 동현은 글필하력의 부족들이 머물 수 있는 땅을 골라 그곳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동현은 직접 정착을 하기로 한 땅에 감으로써 글필하력과 그의 부족들을 위무했다.
“미안하네. 더 넓은 땅을 줬어야 하는데 말이야.”
“아닙니다. 장군. 이 정도만 해도 2만 명이 사는데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땅을 주변으로 우리 백성들이 개간도 하고 있으니 상황을 보아서 괜찮으면 그 땅도 글필 부족이 살 수 있도록 해주겠네.”
“정말 감사합니다. 장군…….”
“그래. 부족한 것이 있으면 말하고… 아, 참! 그리고 자네들이 버틸 만한 식량도 좀 더 보태 주겠네. 그리고 2년간 세금을 받지 않을 것이니, 그 동안 가축을 잘 키우고 농사를 잘 지어서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도록 하게. 그때쯤이면 이곳의 형편이 나아질 것이니, 그때 세금을 받도록 하지.”
글필하력은 동현의 말에 감격한다.
“이토록 신경을 써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소인이 제 부족들을 이곳에서 잘 통솔하고 다스려서 꼭 이 백암성과 고구려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그래. 아…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이 있네.”
“……?”
“자네 부족들은 말을 잘 키우고 다룰 수 있지?”
“물론입니다. 저희가 북방에 있으면서 가장 큰 이문을 남길 수 있는 것이 말장사와 그 외 가축들 장사였으니 말입니다.”
“맞아. 그리고 자네들은 그 말들을 잘 다루어서 그런지 기병들이 참으로 용맹했지.”
“그렇습니다. 장군.”
“잘 되었군. 자네에게 한 가지 일을 맡기고 싶어서 말이야.”
“하문 하십시오! 장군!”
“우리 고구려에는 개마무사라는 기병들이 있네. 자네도 알지?”
“물론입니다. 돌궐과 말갈은 물론이고 수나라도 벌벌 떤다던 철갑기병들이 아닙니까?”
동현은 글필하력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맞네. 우리 고구려의 기병들은 누구보다도 강하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내가 보기엔 아직 부족한 것이 있어.”
“……?”
“자네도 알겠지만 말에도 여러 종류가 있네. 잘 알지?”
“물론이옵니다!”
“헌데 내가 들으니 말이 어떤 종류에 따라 교배를 하면 더욱 좋은 말이 탄생한다고 하더군. 이 말이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장군. 서로 다른 종의 말 교배는 북장에서는 매우 흔한 일입니다.”
“그런가?”
“예. 다만 강제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애기 때부터 섞어 놓고 생활하게 하면 자연스럽게 자신들이 교배를 하게 되어 탄생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태어나면 말들이 성체가 되었을 때 더욱 튼튼하고 좋은 말이 됩니다!”
“그렇군. 그래서 그 일을 자네에게 맡기고자 하네. 우리 고구려에서 키우는 말을 100필정도 줄 테니 그대들이 키우는 말이 교배를 시켜서 말의 수를 늘려 보게. 그리고 그 말들로 자네가 기병들을 키워 봐.”
동현의 말에 글필하력이 매우 놀란다.
“기병들을 말입니까?”
“그래. 우리 고구려 군에서 개마무사가 되려는 자들은 많으나 경기병이 되려하는 자들은 현저하게 적네. 그 이유는 자네도 알겠지만 경기병의 경우에는 무장이 가벼워서 죽기 쉽다는 것이지. 그렇기 때문에 경기병이 되길 꺼려하고 있어.”
“아…….”
“그래서 경기병이 상대적으로 많이 부족해. 그렇기에 자네들이 경기병을 키우기 위한 말들을 키워 주었으면 하네. 자네가 그 역할을 해주었으면 좋겠어.”
“알겠습니다! 장군! 경기병 위주로 훈련을 시켜 보이겠습니다!”
“고맙네. 다만 경기병 위주로 훈련을 시키되, 다른 훈련들도 어느 정도는 해야 할 것이야. 개마무사보다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 무장한 중기병들도 필요하기 때문이지. 그 무장을 한 무기와 갑옷들은 내가 조만간 줄 테니 자네가 훌륭하게 훈련을 시켜보도록 하게.”
동현의 명령에 글필하력은 군례를 올리며 대답한다.
“소인 글필하력! 장군께서 내리신 명령을 반드시 이행하겠나이다! 맡겨 주십시오!”
그렇게 동현은 글필하력에게 일을 주고는 관청으로 돌아왔다.
고경은 그런 동현을 따라 같이 관청으로 돌아오면서 말한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장군. 북방에 있는 자들은 복종시키기 어려운데 장군의 말 한 마디에 복종을 했으니 말입니다.”
“자네 말대로 글필하력이라는 자가 말이 통하는 자였기에 가능한 것이지. 아무튼 잘 되었어. 그자 덕분에 우리가 기병을 더욱 수월하게 키울 수 있으니 말이야.”
“그렇습니다. 장군. 다시 생각해 보아도 이번에 그들에게 내린 명령은 정말 잘 하신 선택이십니다. 분명 수나라와 전쟁이 벌어지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동현은 고경의 말에 매우 만족해하며 계속 일을 보았다.
동현이 그렇게 글필하력을 얻고 백암성에서 계속 일을 보며 지내던 어느 날… 시간은 또 다시 빠르게 흘러갔고 해가 바뀌었다.
* * *
612년 음력 1월. 동현이 42살이 되었을 시기.
수 황제 양광은 드디어 고구려 정벌을 알리며 군사들을 출진시켰다.
수는 무려 113만 8천여 명.
동현은 자신이 짠 작전으로 회귀 전과 다르게 영주성과 북평성, 임유관 일대를 점령해서 군사들의 수가 약간은 줄었을 것으로 생각 했으나 수가 그대로라는 보고를 듣자 속으로 매우 어이없어 했다.
‘진짜 미치광이 황제가 맞군. 그래도 이 일대를 조금 점령해서 몇 만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똑같이 113만이라니… 하지만 이렇게 쳐들어 올 것이라는 예상은 충분히 했잖아? 이제 시작이다! 수나라의 2차 침입을 반드시 막아내고… 바로 반격한다! 이번 거만 제대로 막으면 수나라는 와르르 무너지는 모래성이 될 거다!’
동현은 그렇게 전방으로 나간 세작들로부터 보고를 듣고는 장수들을 모두 불러 모음과 동시에 도성인 장안성(평양성)으로 바로 전령을 띄웠다.
“모두 모였나?”
“예! 장군!”
“좋아. 그럼 회의를 시작하지. 내가 예전에 말했던 예상대로 수나라가 우리 고구려를 향해 쳐들어오고 있다. 그 수는 무려 113만 8천여 명.”
“……!”
“내가 전에도 말했듯이 현재의 수 황제 양광이라면 충분히 그 수를 동원할 것이라고 했었다. 100만 대군을 동원 할 것이라고 말이야. 아마 보급 부대까지 합한다면… 그 수가 300만은 되겠지.”
“…….”
“하지만 수나라 군은 예전에도 그랬듯이 우리를 얕보고 있다. 우리는 일단 성 안에서 출진하지 않고 성을 굳게 지키면서 그들을 상대해야 한다.”
동현의 말에 글필하력이 묻는다.
“장군. 그렇다면 신무기들은 아직 쓰지 않는 것입니까?”
“일단 신기전은 배치를 해두었다. 그리고 편전도 있는 수량만큼 다 나누어 주었고 말이야.”
“그럼 그 화포라는 것은…….”
“화포는 아직 때가 아닐세.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 미리 배치는 해두었지.”
“보이지 않는 곳이라 하시면…….”
“그것은 차차 알게 될 것이네. 자… 일단 본격적으로 수나라 군을 상대할 계책을 말하도록 하지. 이번 작전은 사훈과 고경이 합심하여 낸 것이니 잘 듣도록 해. 알겠나?”
“예! 장군!”
“그럼 사훈과 고경. 설명을 시작하게.”
“예!”
동현의 명령에 사훈과 고경은 지도를 펼치며 설명을 하기 시작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