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화 동현, 고경을 설득하여 고구려 장수로 등용하려 하다.
동현은 백암성에 관련된 문서를 꼼꼼히 읽어보다가 어느 부분에서 시선을 멈추며 말한다.
“음? 고경이라고?”
“예. 장군. 양견이 수나라 황제이던 시절 잡았던 장수가 있지 않습니까?”
“나도 기억하네. 헌데 그 자가 어떻게 우리 백암성에 와 있는가?”
“태왕 폐하께서 고경을 보내셨다 합니다.”
“태왕 폐하께서?”
“예. 장군.”
“이유가 무엇인가?”
“태왕 폐하께서 장군의 말씀 때문에 고경을 고구려 사람으로 등용하기 위해 매우 애를 쓰고 계신 것은 알고 계실 겁니다.”
“그렇지. 하지만 그것이 지금까지 잘 되지 않았지. 그래서 내가 그 사람을 설득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니, 어차피 볼모인 만큼 죽이지 말고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보라고 말을 했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온 것인데 태왕 폐하께서 설득이 잘 안 되시니 장군께서 이 백암성에 돌아오기 며칠 전… 고경을 이 백암성으로 먼저 보내셨다 합니다.”
“앞서 보내셨다라… 이 의미는 나보고 고경을 설득해 보라는 의미겠군.”
“그런 듯 보입니다.”
동현은 고경이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져서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지금 고경은 어디 있는가?”
“예. 군사들의 감시를 받으며 백암성에 마련된 집에서 한가로이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잘 됐군. 고경을 데리고 오게. 내가 이야기를 나누어 봐야겠어.”
“알겠습니다.”
동현의 명령에 사훈은 관청을 나가 고경에게로 향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예전 전쟁 때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오늘에서야 보는군. 만나서 반갑소이다. 나 고구려의 건위장군 김동현이라 하오.”
“고경이라 하오. 귀국의 태왕 폐하께 귀공에 대해 많이 들었소이다. 우리 수나라와 전쟁을 할 때 대부분의 계책이 그대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이오.”
“하하하! 다 그렇지는 않소이다. 그나저나 우리말을 잘하는구려.”
“볼모로 잡힌 지 꽤 되었소이다. 당신들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고 싶어서 말이오. 다행히 잠시 공부를 하니, 이 정도로 말할 수 있게 되었소.”
“그랬군. 아무튼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반갑소이다.”
“나를 따로 부른 이유가 무엇이오? 듣고 싶소이다.”
동현은 고경의 말에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태왕 폐하께서 귀공을 이곳까지 보낸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시오?”
“나도 알고 있소. 나를 고구려의 신하로 받아들이려고 한다는 것 말이오. 하지만 난 말했다시피 그럴 마음이 전혀 없소이다. 차라리 나를 바로 죽여 주었으면 좋겠소.”
“하하하! 잘 알고 있구려. 태왕 폐하의 의도를 말이오. 하지만 그것 말고도 태왕 폐하께서 의도하신 것이 하나 더 있소이다.”
“……?”
“그대는 이 백암성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 했을 것이오. 볼모인 신분이라 군사들의 감시를 받고 있기에 그대에게 배정된 집을 벗어나려면 군사들이 제재를 했을 테니 말이오.”
“…….”
“내일 아침 일찍 나와 함께 이 백암성을 돌아보게 해주겠소. 아니… 며칠 동안 그렇게 해주겠소. 이곳을 돌아보고 그대의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나도 단념하리다.”
“그것이 무슨 말이오? 이 백암성을 모두 둘러보게 해주겠다니… 적군인 볼모에게 모두 보여 주겠단 말이오?”
“그렇소. 태왕 폐하께서 그대를 이 백암성까지 보낸 가장 큰 이유는 그대를 고구려의 신하로 만들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오. 나보고 설득을 해달라는 것이지.”
동현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계속 말을 이어간다.
“하지만 태왕 폐하께서 나에게 그대의 설득을 맡긴 것은 그냥 설득을 하라는 의미가 아니오. 말로만 설득한다면 그대는 당연히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이겠지. 하지만 백암성의 모습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니 태왕 폐하께서는 그대를 이곳으로 보낸 것이오.”
“이곳이 대체 어떤 특별함이 있기에…….”
“그건 나와 함께 내일 보면 될 것이오! 자… 내일은 하루 종일 돌아다녀야 하니 일단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 푹 쉬시구려. 잠을 푹 주무셔야 할 것이오! 하하하!”
동현은 그렇게 고경을 다시 백암성에서 배정된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오셨구려. 자… 그럼 같이 둘러봅시다.”
동현은 수하들은 물론이고 고경도 같이 백암성 안을 꼼꼼하게 돌아보기 시작했다.
잠행을 위해 변복까지 하면서 둘러보는 동현과 수하들.
고경도 그런 사람들과 함께 섞여서 백성들의 모습을 살폈다.
“올해도 풍년이네 그려!”
“그러게 말이야! 이게 다 장군님 덕분이지! 예전에 그 이앙법인가 뭔가 하는 것 때문에 여유도 생기고 말이야!”
“맞아! 비가 많이 오지 않을 때는 저장해 둔 물을 쓸 수 있도록 조치까지 해주셨잖아! 그 덕분에 농사가 계속해서 잘 되고 있는 것 같아!”
“내가 보기에 장군께서는 분명 하늘이 내려 주신 사람일 거야. 마치 앞날을 보시는 것 같지 않은가? 장군께서 이곳에 부임하시기 전을 생각해 봐! 그 때는 가뭄이 들면 꼼짝없이 굶어야 했잖아.”
“그랬지. 그때마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초근목피로 근근이 연명을 했었던 것이 기억나. 정말 간신히 살아남았잖아.”
“그러게 말이야. 정말 장군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으셨으면 우리 고구려는 어땠을까? 두창도 연구하셔서 퇴치하셨고 백성들을 위해서 비가 오는 양을 알기 위해 측우기도 만드셨고 말이야.”
“암! 어디 그 뿐인가? 농사의 풍흉에 따라서 세금을 걷는 법도 장군께서 태왕 폐하께 상주한 것이라고 하네! 정말 대단하지!”
“그렇고 말고! 하지만 난 그것보다도 더 좋은 것이 있어.”
“응? 그게 무엇인가?”
“지들 배만 불리려고 하는 귀족들이 이제 보이지 않는 거 말이야! 그게 가장 좋아!”
한 백성이 이렇게 말을 하자 옆에 있던 백성이 동조한다.
“맞는 말이야! 사실 그게 가장 크지. 예전 같으면 우리가 이렇게 농사가 잘 되었을 경우 귀족들이 대부분 가져갔잖아? 이제는 그런 경우가 없어서 진짜 살만하지.”
“맞아. 그런 놈들이 감히 태왕 폐하를 해하려고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장군을 모함하려고 했다고 하잖아. 그리고 자객까지 보냈었다고 하던데… 들었어?”
“물론 들었지! 죽일 놈들이야. 그런 놈들이 죽어야 해! 우리 자식 놈이 그러더군. 경당에서 글을 배웠는데 거기서 가르치는 선생이 이렇게 말했다는 거야.”
“……?”
“지금의 고구려는 명군과 명신이 동시에 있어서 두 사람이 다 살아 있는 한 고구려는 태평성대를 누리며 더욱 부강해질 것이라고 말이야. 그러니 우리 백성들도 태왕 폐하의 의지에 동참해야 한다고 말을 했대.”
“옳은 말을 했군. 아… 아무튼 너무 좋다! 계속 이런 세상이 이어지면 좋겠군!”
“명군과 명신이 살아있는 한 우리 고구려는 더욱 부강해질 것이라고 선생이 말했다고 하지 않은가? 이제 우리 고구려의 전성기인 것이지. 그리고 나라가 잘 되고 있으니 서쪽의 오랑캐인 수나라 놈들도 다시는 우리 고구려를 넘보지 못하게 될 것이고 말이야!”
동현은 백성들의 소리를 들으며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반면 고경은 그런 백성들의 소리에 놀라워했다.
‘군주와 신하의 신뢰가 굳건하고 백성들 또한 윗사람을 믿고 따르는구나. 하아… 반면 현재 우리 수나라는 계속 암울한 소식 뿐이니…….’
고경은 본래 볼모로 잡혀 있으면서 수나라에 관련된 소식은 들을 수 없게 되어 있었으나, 영양 태왕의 배려에 자신을 감시하는 고구려 군사들을 통해서 가끔씩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랬기에 지금 백암성의 모습과 현재 수나라의 소식을 들으며 비교를 하게 된 것이다.
“자… 본래 이곳은 아무나 데려갈 수 없게 하는데… 고경 공은 특별히 내가 데려가겠소.”
“그곳이 어디오?”
“보면 아오.”
동현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고경을 어디론가 데려간다.
그리고 잠시 후…….
“허억… 헉! 허억…….”
“이제 다 왔소. 조금만 힘내시오.”
동현은 그렇게 고경을 이끌며 백암성에서 깊숙한 숲 속에 있는 산 쪽으로 들어간다.
고경이 숨을 헉헉 거리며 올라가는데 드디어 동현이 말한다.
“도착했소. 보시오.”
“여긴…….”
“비밀스럽게 무기를 개발하는 장소라오. 이곳은 태왕 폐하께도 알리지 않았지.”
“……!”
“그중 몇 개는 벌써 신라 정벌 때 썼다오. 태왕 폐하께는 내가 생각한 것이 있어 그대로 만들어 보고 시험을 해보았는데 잘 되었다고 보고를 했고 말이오.”
“이렇게 중요한 장소를 내게 왜 보여 주는 것이오? 태왕 폐하께서도 이곳을 모르신다면 나 역시 보지 않아야 하는 것이지 않소?”
동현은 고경의 말에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고경 공께서 이 무기들을 보고 수나라와 우리 간의 힘의 차이를 깨달았으면 좋겠다 싶어서 이리 왔소이다.”
“힘의 차이?”
“그렇소. 그대는 모를 것이오. 우리가 신라 정벌 때 어떤 무기를 썼는지 말이오. 지금 보여 줄 것이니 우리의 힘이 어떤지 한번 판단해 보시오.”
“…….”
동현은 그렇게 고경에게 말을 하더니 한 군사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 군사는 동현의 그런 뜻을 바로 알아듣고는 어디론가로 바로 이동한다.
그리고 잠시 후…….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바닥을 건드린 이후 다섯을 세면 폭발합니다!”
동현에게 명령을 받은 군사는 그렇게 대답을 하더니, 땅을 빠르게 밟고는 반대편 숲 속으로 빠르게 몸을 피했다.
그러고는 큰 소리로 다섯을 세는데 다섯이 되는 순간, 군사가 있던 바닥에서 엄청나게 큰 소리와 함께 폭발이 일어난다.
콰아아아앙! 콰아앙! 콰아아아앙!!
“뭐… 뭐야?!”
고경은 큰 소리에 깜짝 놀라며 폭발이 일어난 장소를 쳐다본다.
폭발이 일어난 뒤 그곳의 많은 과녁과 허수아비들이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 있음은 물론이고 전부 불에 타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에 고경은 너무나도 놀라 멍하니 쳐다보는데, 동현은 이를 보고 피식 웃으며 말한다.
“하하하! 역시 놀랐구려.”
“대… 대체 이 무기는 어떤 무기요?”
“파진포라 하오.”
“파진포?”
“그렇소. 우리가 파진포를 묻어 놓은 곳에 적군이 밟게 되면 다섯을 센 뒤 바로 폭발을 하게 되어 있소이다.”
“허어…….”
“살상력이 엄청나서 우리가 원하는 곳에만 끌어들일 수 있다면 적군의 대군이 20만이든 30만이든 모조리 전멸시킬 수 있소. 수량만 많다면 말이오.”
“…….”
“자… 또 다른 무기를 보여 주겠소. 이것은 현재 이 백암성과 수군에만 조금 보급된 무기요. 태왕 폐하께는 말만 했을 뿐이고 다른 사람들도 이 무기에 대해 알더라도 그 위력에 대해 잘은 알지 못하지. 자… 여기요! 여봐라! 지금 당장 쏴 보거라!”
“예! 장군!”
콰아앙! 콰앙! 콰아아앙!!
동현은 이번에 고경에게 화포까지 보여 주었다.
고경은 화포의 위력에 입을 벌리며 놀라는데, 그런 고경을 보고 동현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귀공도 알다시피 우리 고구려는 귀국의 수나라에 비해 영토도 적고 인구 수도 적소. 그렇기에 전쟁이 장기화가 되면 국력이 더 큰 수나라에 우리가 불리하게 되지. 그래서 나는 밤낮으로 그 차이를 메울 방법이 없을까 연구를 했다오.”
“그 결론이… 무기 개발이라는 결정이 내렸구려.”
“그렇소이다. 저 무기들만 있으면 수나라의 많은 군사를 충분히 상대할 수 있소. 우리 고구려 군사들이 장기화 되어도 죽거나 다치는 사람들이 현저하게 줄어들겠지.”
“…….”
“이 무기 뿐만 아니라 다른 무기들도 연구해서 개발해 보려고 시도 중에 있다오.”
“……”
“어떻소? 귀공께서 전혀 예상치 못한 무기들을 보았는데 말이오.”
고경은 동현의 말에도 잠시 아무 반응이 없었다.
무언가 생각을 하는 듯 눈을 감고 생각을 하는데 그런 고경을 동현이 잠시 기다려 준다.
잠시 후… 고경이 생각이 정리가 다 된 듯 천천히 말을 꺼낸다.
“귀국의 태왕 폐하께서 왜 이 백암성으로 나를 보내라고 했는지 알겠구려.”
“그렇소?”
“귀국의 태왕 폐하께서는 내게 이 고구려가 군주와 신하들은 물론이고 백성들까지 한 마음 한 뜻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우리 수나라에 대항하려는 뜻을 이 백암성에서 가장 잘 볼 수 있을 것이라 여긴 것 같소이다. 그러니 나를 이곳으로 보냈지 않았겠소?”
“…….”
“귀공으로 인해 이곳에서 많은 변화가 시작되었으며 고구려가 큰 힘을 가지게 되었으니 많은 것을 보고 내 조국인 수나라와 비교를 해보며 느끼라는 것 같소이다. 그리고 그 비교를 해보았을 때 차이를 보고 느끼면서 수나라에 미래는 없고 고구려에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 같았소. 귀공도 그것을 알기에 내게 신라 정벌 때 사용된 무기를 보여준 것이 아니오?”
동현은 고경의 말에 빙그레 미소를 짓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