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화 우식은 신라 첫째 공주인 천명 공주와 혼인을 하고, 수나라와 백제는 요동치는 국제정세를 살피다.
동현은 울절 관부로 들어가 우식과 같이 차 한 잔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개모성은 좀 어때? 예전에 비해 많이 나아졌어?”
“응. 이제야 자리가 좀 잡히기 시작했다. 아… 참! 그때 고마웠어. 네가 우리에게 식량을 보내준 거 말이야. 그 덕분에 우리가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네.”
“하지만 여전히 고민은 있어. 이제 개모성 안의 백성들은 잘 해결이 됐는데, 외곽에 있는 백성들이 문제야.”
“그건 나도 백암성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부터 심각하게 고민하던 문제야. 네가 직접 외곽을 순행해 보고 살펴야 해. 그리고 문제점을 찾아서 아랫사람들이랑 이야기를 해보고 식량을 베풀든지 해야지.”
“후우… 그래야지.”
“그나저나… 대장군께서도 같이 오신 거 아니었어? 어디 가셨어?”
“응. 아버지는 막리지 어른 집에 가셨어. 그곳에 대모달께서도 오셔서 다 같이 모인다고 하셨거든.”
“그렇군. 태왕 폐하 알현은?”
“그곳에서 이야기가 끝나면 여기 울절 관부로 사람을 보내기로 했어.”
“그렇군.”
동현이 우식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식은 그런 동현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는 듯 물끄럼이 쳐다본다.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보네? 말해 봐.”
“너… 태왕 폐하한테 신라 첫째 공주를 내게 시집 보내라고 했다며?”
“응. 그랬지.”
“왜 나야? 난 지금 부인도 있는데… 솔직히 말해서 내 부인이 그 소식을 듣고 많이 우울해 했어. 그래서 달래 주느라 혼났다고…….”
“그래? 그건 미안하네. 하지만 너에게 이번 일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어.”
“어째서?”
“나도 너처럼 태왕 폐하에 의해 수나라의 공주와 혼인을 했지. 이건 우리가 수나라를 훗날 공격해서 점령하였을 때 나와 수나라 공주가 혼인한 모습을 보고 잘 지내는 것을 보여 준다면 수나라 백성들의 거부감도 빨리 없어지지 않겠어? 민심이 빠르게 안정되고 말이야. 아… 멀리 갈 것도 없겠다. 우리가 점령한 북평성이나 영주성, 임유관 일대를 나와 부인이 간다면 앞서 말했던 것처럼 기존의 수나라 백성들 민심이 다른 때보다 빠르게 안정이 되겠지. 우리와 수나라를 하나로 묶어 줄 수 있고 말이야.”
“그래서 신라의 일에는 나를 적임자로 택했다?”
동현은 우식의 말을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맞아. 태왕 폐하께서는 신라가 멸망하고 우리 고구려 백성들이 된 만큼 그들의 민심을 빠르게 안정시키고 싶어 하셔. 그리고 하루 빨리 우리 고구려에 충성을 다하기를 바라시지.”
“…….”
“그에 대한 적임자는 바로 너 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했어. 그리고 먼 훗날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말이야.”
“멋 훗날?”
“응. 잊었어? 시간이 흐르면 결국 우리보다 춘추가 훨씬 많으신 태왕 폐하께서 승하하시게 될 거야.”
동현의 말에 우식은 깜짝 놀란다.
“야! 그… 그런 말을…….”
“걱정 마. 우리 집안의 군사와 사람들은 다 내 사람들이라 들어도 괜찮으니 말이야.”
“그… 그래도 임마. 조심해.”
“그래. 걱정 마라. 아무튼… 태왕 폐하뿐만 아니라 막리지 어른과 대모달 모두 연배가 높으시지. 대장군께서도 그러하시고 말이야. 그렇게 되면 그 밑에는 바로 우리 차례다.”
“…….”
“좀 전에 말한 분들이 모두 세상을 뜨시고 태왕 폐하께서 붕어하시면 기존에 태왕 폐하의 강력한 황권에 눌려 있던 귀족들이 하나 둘 씩 머리를 쳐들 것이 분명해. 우리는 그것을 잘 지켜내고 방어해야만 한다. 그러자면 우리는 그 전에 세력을 많이 만들어 놔야 해.”
“그 말은…….”
“너와 내가 훗날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말이야.”
“……!”
“태왕 폐하께서는 지금의 영광을 계속해서 이어 나가려면 귀족들의 세력을 반드시 눌러야 한다고 생각하고 계신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력한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계시지. 특히 자신의 사후를 무척이나 걱정하고 계시기 때문에 귀족들에 대항할 자신의 세력들을 많이 만들어 놓는 게 마땅하다고 여기셔.”
“그래서 이번 혼인을…….”
동현은 우식의 말에 차 한 잔을 마시고는 대답한다.
“맞아. 그래서 내가 추천 한 거야. 너와 내가 힘을 합치면 훗날을 위한 대비도 쉽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이건 태왕 폐하의 황명이기도 하지. 어때? 나랑 같이 태왕 폐하의 뜻을 함께 하는 것이……?”
우식은 동현의 말에 잠시 고민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것이 태왕 폐하의 뜻이라면 당연히 따라야겠지. 좋아. 그렇게 할게.”
“고맙다. 우식아! 앞으로 나만 믿고 따라와! 우리 둘이 이 고구려를 크게 키워 보자고!!”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 의기투합을 했다.
며칠 뒤… 드디어 우식이 혼인을 하는 날이 되었다.
영양 태왕이 직접 주관을 하여 아주 성대하게 치러졌고 진평왕의 딸인 천명 공주 또한 이 혼인을 신라 황실 사람들을 위해 순순히 받아들임으로써 순조롭게 진행 되었다.
동현도 혼인식에 참여를 하여 마음껏 먹고 마시며 즐기는데, 그곳에서 크게 귀하게 보이는 젊은 여자를 보게 되었다.
“음? 저 여자는?”
“저 여자는 신라의 두 번째 공주인 덕만이라고 합니다. 예전에 우리 볼모로 와서 한 번 보신 적이 있지 않습니까? 인사도 나누셨고 말입니다.”
“아… 그렇군. 너무 오랜만이라…….”
“하하하! 그러실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울절께서 워낙 바쁘시니 말입니다.”
동현의 벼슬보다 낮은 한 신하가 동현과 함께 덕만으로 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저 덕만이라는 여자도 미색이 매우 뛰어납니다. 아마 저 여자와 혼인을 하는 사람은 땡잡은 겁니다.”
그 신하의 말에 옆에 있던 다른 신하들도 그 말에 동조한다.
그런데 그때 덕만과 동현의 눈이 마주친다.
일전에 한 번 보았던 덕만은 동현에게 먼저 눈짓으로 인사를 했고 동현도 그 눈짓을 받아 인사를 나누었다.
혼인식이 끝나고 며칠 뒤.
영양 태왕은 동현의 뜻을 받아들여 화폐에 관련된 일에 대해 다른 신하들과도 본격적으로 논의했다.
이 일에는 당연하게도 동현이 나서서 가장 적극적으로 일을 꾸몄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렸다.
그리고 조세 제도도 마찬가지로 부족한 점이 없는지를 살펴보고 바로 대외적으로 공표를 하려 했다.
“이만하면 된 것 같습니다. 다만… 화폐를 만드는 것은 시간이 좀 걸리니 이것은 제쳐두고 조세 제도부터 공표를 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짐도 같은 생각이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어떤가?”
“태왕 폐하의 말씀이 매우 지당하십니다!”
몇몇 귀족들은 이런 영양 태왕의 조치에 불만을 품었지만 드러낼 수가 없었다.
영양 태왕이 너무나도 강력한 황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말 한 번이라도 잘못 놀렸다가는 바로 목이 달아날 수 있으니 말이다.
거기다 이제는 그 주변 세력도 커져서 예전처럼 귀족들이 영양 태왕을 누르려 한다면 분명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니 함부로 나설 수도 없었다.
‘제길… 연태조와 을지문덕보다 저 놈이 더 문제야. 저 놈만 어떻게 없애면 좋은데…….’
‘야. 못 들었냐? 예전에 저 자한테 자객들이 덤볐다가 오히려 반격 당했다잖아. 그러니 섣불리 나서면 안 돼. 그저 우리는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불만을 품은 귀족들은 이를 갈며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한편, 수나라에서는…….
“뭐라? 고구려가 신라를 병합시켜?!”
“예. 폐하. 좀 전에 세작에게서 소식이 왔습니다.”
“이런!! 우리가 고구려를 칠 때 백제와 신라를 이용해서 후방을 쳐야 수월하다! 그런데 신라가 멸망을 하다니?!”
“본래 신라는 고구려, 백제, 신라 중 가장 약해빠진 놈들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폐하. 하지만 아직 백제가 남았으니 그들을 이용하시옵소서.”
“한반도에 삼국이 존재함으로써 그나마 힘의 균형이 유지되어 왔었다. 한데 백제가 고구려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저들은 우리 수나라와 적대를 하고 있으며 여전히 후방에 백제를 두고 있습니다. 함부로 군을 움직이지는 못 할 것입니다.”
양광은 신하의 말에 고개를 젓는다.
“그건 너희가 고구려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잊었느냐? 선제께서 30만 대군으로 공격하였을 때 그들은 밑에 백제와 신라가 있었음에도 우리의 공격을 막아 냈다! 심지어 우리 영토를 공격하여 점령까지 했지.”
“…….”
“일단 백제로 사신을 보내라. 저들이 협박을 해오거든 비위를 맞추라고 말이야. 그리고 내 명령이 떨어지면 뒤를 공격하라고 전해라. 알겠느냐?!”
“예! 폐하!”
“그리고 함부로 고구려를 도발하지 말라고 해. 여기서 백제까지 먹혀 버리면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것이 모두 사라지니 말이야.”
“황명을 받들겠나이다! 폐하!”
그렇게 양광은 백제로 급히 사신을 보냈다.
그 시기 백제는 동현이 예상한 것처럼 고구려와 약속한 내용에 대해 따지러 왔다.
하지만 영양 태왕이 직접 나서서 성왕의 목을 돌려주겠다고 사신에게 말하고는 참나무를 깎아 몸뚱아리를 만들어 목을 붙여 성대히 장사를 지내 주었다.
백제 사신은 자신들의 왕이었던 자의 목을 돌려주며 성대히 장사를 지내 주기까지 하는데 약속한 것에 대해 따지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백제 사신은 고구려에서 성왕이 성대히 장사를 지내는 것을 직접 보고는 그 목을 가지고 백제로 돌아왔다.
백제 무왕과 신하, 백성들은 성왕의 목이 돌아왔다는 말에 크게 울며 슬퍼했고 백제에서도 다시 한번 크게 장사를 지내고 천도재(죽은 자의 영혼을 극락으로 보내기 위해 치르는 불교의식 중 하나이다.)를 올렸다.
그러면서 사신에게서 고구려로 가 있었던 일에 대해 보고를 받는데 백제의 무왕은 보고를 받고는 탄식한다.
“고구려에는 인물이 많구나. 아니면 고구려의 태왕이 정말 똑똑 하던가 말이야.”
“제가 보기에는 둘 다 해당되어 보였습니다.”
“그래?”
“예. 어라하. 태왕뿐만 아니라 그 신하들 또한 일치단결하여 뭉치는 모습이 참으로 대단해 보였습니다.”
“후우… 그렇다면 우리는 더 이상 영토를 넓히기가 힘들다는 것인데…….”
“그렇습니다. 어라하. 고구려가 신라를 멸망시키는 바람에 우리는 이제 이 한반도에서 영토를 넓힐 수 있는 방법은 없다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손 놓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인가?”
“한 가지 있긴 합니다만… 매우 위험한 방법입니다.”
“그것이 무슨 방법인가?”
“수군을 활용하는 방법입니다.”
“수군이라…….”
“예. 어라하. 수군을 활용해서 땅이 비옥한 섬들을 골라 점령하면 영토를 넓힐 수 있습니다.”
무왕은 신하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현재 우리 수군 전력으로 그것이 가능하다보는가?”
“물론 어렵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수군을 강화하자는 것입니다.”
“강화라…….”
“예. 어라하. 수군을 강화해서 땅이 비옥한 작은 섬들부터 점령해 우리 백제의 영토로 삼고 그 섬들에 우리 관리들을 임명하여 다스리게 하면 조세도 더 많이 거둘 수 있으며, 나라 안의 내실도 튼튼해지고 군사들도 늘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수군을 제대로 양성하시옵소서.”
한 신하의 말에 무왕도 동감한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좋다! 오늘부로 수군을 제대로 양성해 보자! 수군의 수를 늘리는 것은 물론이고 제대로 훈련시킬 자들을 찾도록 해라! 알겠느냐?!”
“예! 어라하! 황명을 받들겠나이다!”
“그리고 이제는 당분간 고구려를 자극하지 말라. 이제 고구려는 수나라와 싸웠을 때도 그랬지만 신라를 병합한 지금이 더욱 더 위협적이다. 그러니 일단 그들이 말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그리고 수나라를 이용해야 한다.”
“수나라를 말씀입니까?”
“그래. 이번 일에 대해 수나라도 분명 알게 되었을 것이다. 분명 수나라에서 우리에게 사신이 올 것이야. 그러니 우리는 고구려와 수나라 간의 저울질 하면서 우리 백제에 큰 이득이 되는 것을 챙겨야 한다. 알겠느냐?!”
“예! 어라하! 명심하겠습니다!”
백제 무왕은 국제정세를 잘 파악하는 왕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이것을 오히려 기회로 여기고 활용하려 했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다. 일단 고구려를 절대 자극하지만 말고 기회를 엿보자. 분명 고구려와 수나라 사이에서 전쟁이 터지면 후방이 소홀해질 터… 그 기회를 노리는 것이다! 내가 있는 한… 우리 백제는 절대로 신라처럼 되지 않을 것이다!’
백제 무왕은 자신의 나라 백제를 신라와 같은 멸망의 길로 들어서지 않게 하려 마음을 굳게 다잡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