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6화 동현, 영양 태왕에게 화폐를 만들자고 제안하며 앞으로 일에 대해 논하고, 새로운 조세 제도에 대해 상주하다.
영양 태왕은 동현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한다.
“울절(3관등으로 재무와 인사권을 담당하는 관직) 자네 덕분에 이 일을 쉽게 해결했구만. 정말 고맙네.”
“아닙니다. 태왕 폐하.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리 말해 주니 고맙군. 그래서 말인데…….”
“……?”
“내가 앞서 모두에게 말했던 것처럼 자네가 한동안 이 중앙에 남아 울절에 관련된 업무를 봐주었으면 좋겠네.”
“소신도 당분간은 이 도성에 머물려고 했습니다.”
“그랬는가?”
“예. 태왕 폐하. 태왕 폐하께 고할 것도 있고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그래? 그럼 고할 것이 무엇인지 지금 당장 말해 보게.”
영양 태왕의 말에 동현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건넨다.
“이것이 무엇인가?”
“한 번 펼쳐 보시옵소서.”
동현이 품에서 권자본(두루마리로 된 책)을 건네자 영양 태왕은 그것을 펼쳐 본다.
그리고 그 내용들을 보더니 흥미로운 표정을 짓는다.
“화폐를 만들자?”
“예. 태왕 폐하. 화폐를 만들어서 그것으로 통일을 시키면 상인들과 백성들 사이 불공정하게 거래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거기에 우리 조정에 바치는 세금을 거둘 때에도 눈속임 하는 것을 막을 수 있으니, 아주 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
“우리가 전체 시장을 주도하게 된다면 화폐로 수나라의 경제를 엉망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동현의 말에 영양 태왕이 깜짝 놀란다.
“수나라 경제를 엉망으로? 어떻게?!”
“그렇게 되자면 일단 왜와 말갈, 거란, 돌궐 등 여러 부족에게 우리 고구려의 강함에 대해 보여 줌과 동시에 우리만의 문화와 역사를 널리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널리 알린다라…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우리 고구려의 가장 큰 장점은 노비여도 능력만 있으면 잡과나 무예 대회에 응시하여 면천 할 기회를 준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몇 년 전에 해시계와 물시계, 측우기와 거중기를 만들어 내지 않았습니까? 이것들을 다 기록하여 주변 국가에 알리는 겁니다. 그리고 수나라와 전쟁에서 이기고 북평성과 영주성, 임유관 일대를 모두 장악한 것을 주변국들에게 알게끔 퍼뜨린다면 많은 국가들이 우리를 주목할 것이고 우리 고구려에 관심이 있어 오려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입니다.”
동현의 말에 영양 태왕은 크게 웃으며 대답한다.
“하하하! 좀 전에 말한 것들이 다 자네 덕분에 만든 것이 아닌가?!”
“황공하옵니다. 태왕 폐하. 이것을 제가 만들었다는 것에 대한 기록이 들어가지 않아도 좋습니다. 저는 과시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말입니다.”
“이 사람… 정말 겸손하군. 하지만 그건 내가 반대일세. 자네가 이런 기물들을 만들었다는 것은 꼭 들어가야 해.”
“…….”
“자네가 이만큼 큰 공을 세운 것인데 이것이 기록이 되어 있지 않아보게. 그렇다면 훗날 자네의 뒤를 잇는 가문의 사람들은 손해를 보게 될 것이며 크게 될 수가 없어.”
“그건 가문을 잇는 사람의 역량에 따라 달린 것이니 크게 되지 않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내 생각은 다르다네. 사람들이 갈고 닦아 많이 배워서 교육을 시키면 큰 사람이 꼭 나타난다고 나는 생각하네.”
“…….”
“그것은 자네도 같은 생각이지 않은가?”
“물론 그렇습니다만... 사람에게 천성이라는 것이 있어서 말입니다.”
“그 천성을 교육을 통해서 다스려 주면 될 일일세. 그리고 이건 꼭 필요해. 자네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야 자네 가문이 커질 것이며 그 가문 사람들도 중히 써줄 것이 아닌가?”
영양 태왕의 말에 동현은 잠시 고민하고는 대답한다.
“그렇다면 태왕 폐하. 저 말고 다른 사람들이 공을 세운 기록도 전부 같이 넣어 주십시오.”
“그건 당연한 것일세. 나는 우리의 공뿐만 아니라 실도 기록하여 모두에게 알릴 생각을 하고 있다네.”
“아주 좋은 생각이십니다. 단… 다른 나라에 알릴 때는 실을 빼시는 것이 좋습니다.”
“응? 어째서?”
“좀 전에 제가 말씀드렸다시피 우리는 수나라에 큰 힘을 보여 주었기에 주변국들도 우리 고구려가 어떤 나라인지는 높은 사람들은 많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겠지.”
“이 일로 인해 주변국들이 현재 우리 고구려에게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실을 범한 내용이 주변국에 흘러들어가 보십시오. 그렇다면 그들의 반응은 어찌 되겠습니까?”
“으음… 관심을 거둘 것이란 말이군.”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렇게만 된다면 다행입니다. 그 실중 몇 가지가 우리 고구려에 치명타가 되는 것이라면 그들은 다시 수나라의 편으로 돌아설 수 있습니다. 우리의 발전 가능성을 수나라보다 훨씬 낮게 보고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해서 돌아서는 것이겠지요. 일을 그렇게 만들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럼 어찌하면 좋겠나?”
“우리가 득이 되는 것들만 기록하여 다른 나라들로 상인들로 하여금 책들을 보내십시오.”
동현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계속 말을 이어 간다.
“그렇게 된다면 상인들이 그 책을 보고 책의 내용이 정말 사실인지 호기심에 우리 고구려에 많이 넘어오게 될 것입니다. 그리 되면…….”
“발전된 모습을 보고 놀라며 배워 가려 할 것이고 우리와 더욱 크게 무역을 하려고 한다는 것이겠군.”
“바로 보셨습니다. 우리가 원하는대로만 된다면 상권이 더욱 활성화가 될 것입니다. 규모가 커지고 우리의 화폐가 완성이 되었을 때 이 화폐들을 상용화를 하면 분명 큰 힘을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수나라는 고립이 되겠지요.”
“하하하! 아주 좋은 생각이다! 때로는 붓이 칼보다 강한 법이지!”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리 고구려에 대한 내용들이 상인들뿐만 아니라 그곳의 백성들에게도 퍼지면 유리걸식하는 이들이 우리 고구려로 넘어오려할 것입니다. 인구는 곧 국력! 그런 백성들을 모두 우리 고구려 사람들로 받아들이셔서 나라 안의 내실을 더욱 더 크게 다지시고 그와 동시에 군사력을 크게 키우시옵소서!”
“알겠네. 정말 좋은 생각이군.”
“그리고 또 하나가 있습니다.”
“음? 또?”
“예. 태왕 폐하. 연분구등법(年分九等法)과 전분육등법(田分六等法)을 실시하시옵소서.”
동현의 말에 영양 태왕은 궁금해 한다.
“연분구등법과 전분육등법? 그것이 무엇인가?”
“연분구등법이라는 것은 나라의 농작물에 대한 풍흉에 따라 등급을 9개로 나누어 조세를 부과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비사성에 있는 곳에 농사가 너무 안 되어서 흉년이 들었을 때는 아주 낮은 등급을 매기면 그 비사성에서는 그 만큼의 조세만 부과하여 걷는 것이지요. 반면 전분육등법은 땅의 비옥도에 따라 조세를 부과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였는가? 대단하이!”
“여기 소신이 적어 온 것이 있습니다. 한 번 보십시오.”
동현은 또 다른 품에서 연분구등법에 대해 적은 것을 영양 태왕에게 건넨다.
영양 태왕은 그 글을 펼쳐서 읽어 보고는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짓더니, 동현의 손을 잡고는 흔든다.
“자네는 정말 이 고구려의 빛이네.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황공하옵니다. 태왕 폐하.”
동현은 회귀하기 전 세종대왕 때 실시했던 연분구등법을 떠올리고 영양 태왕에게 고했다.
영양 태왕은 글을 보고는 역시 매우 흡족해 하며 자신의 손을 잡고 빛이라는 말까지 하자 동현은 부끄러워졌다.
‘이거 세종대왕님께 정말 죄송하군. 내가 그분의 업적을 다 뺏어가고 있으니 말이야. 하지만… 지금부터 나라를 강하게 만들어 놓아야 훗날 우리나라가 저 중국이나 일본에 휘둘리지 않고 강국이 될 거야. 그래… 분명 잘한 결정이다!’
동현이 그렇게 마음을 다잡는데 영양 태왕이 말한다.
“자네의 노고가 보이는구만. 전쟁을 하면서도 이런 일까지 다 신경을 쓰고 있었으니 말이야.”
“황공하옵니다. 태왕 폐하.”
“좋아. 일 이야기는 이제 이쯤 하고 자네의 새롭게 맡은 자리에 대해서 말을 해보도록 하지.”
“……?”
“이제 자네의 자리는 재무와 인사를 담당하는 자리네.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아는가?”
“물론이옵니다. 태왕 폐하. 나라 안의 살림을 살피고 주변 사람들을 잘 살펴보라는 태왕 폐하의 뜻이십니다.”
“바로 봤네. 나라 안의 살림을 살피는 것에 대해서는 내가 크게 걱정하지 않네. 자네는 본래 상인인 만큼 이 일에 관해서는 워낙 뛰어나지. 하지만 인사는 조금 달라. 냉정하게 보고 사람을 등용하여 써야 한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특히 자네가 만든 과거 제도를 통하여 급제한 사람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보도록 해. 아… 물론 배치하기 전 내게 보고를 하는 것은 잊지 말고. 내가 검토를 해보고 그 자리에 적합한지 볼 테니 말이야.”
“예. 태왕 폐하. 그리하겠습니다.”
“그럼 이 도성에 있는 동안 잘 부탁하네. 아, 그리고…….”
영양 태왕은 동현과 이야기를 마무리 하려다 무언가 다시 떠오른 듯 묻는다.
“자네가 울절로 승차를 하면서 태대사자 자리가 공석이 되었네. 용양장군의 지위도 말이지. 추천할 사람이 있다면 말해 주게. 두 자리를 겸임해서 감당할 수 있는 능력자면 좋겠군.”
“예. 태왕 폐하. 소신이 살펴보고 마땅한 인물을 추천하겠습니다.”
“그리하게.”
그렇게 동현은 영양 태왕의 편전을 나왔다.
그리고 울절 관부로 가 추정호에게 인수인계를 본격적으로 받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제 인수인계가 모두 끝났군. 앞으로 이 일을 잘 부탁하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나저나… 바로 고향으로 돌아가시는 겁니까?”
“그래야지. 나도 이제 손주들 재롱이나 보고 여생을 보내야겠어. 내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 말이야.”
“그래도 어른 같은 분이 이 고구려 조정의 중심을 잡아 주셔야 하는데 말입니다.”
동현의 말에 추정호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법. 그리고 나 같은 고인물이 계속 머물러 있으면 계속 틀에만 박혀 있는 생각만 할 뿐 혁신적인 생각을 못하게 되네. 지금 같은 시기는 자네 같은 젊은 자들이 필요해.”
“어르신…….”
“그리고 자네에게 미안하네. 과거 자네가 과거에 급제하고 난 뒤 태왕 폐하께서 지나치게 높은 벼슬을 주시는 것 같아서 내가 반대했었는데 말이야. 그게 지금도 마음에 걸리는군.”
“아닙니다. 어르신. 이미 다 지나간 일이며 충분히 그러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리 말해 주니 고맙네.”
추정호는 미소를 유지한 채 동현 앞으로 다가가더니 어깨를 두들기며 말한다.
“앞으로 우리 고구려를 더욱 부강하고 강한 나라로 만들어 주게. 내가 먼발치에서 응원하며 지켜보겠네!”
“어르신…….”
“이제 돌아가 봐야겠군. 나는 이제 고향에 돌아가서 손주들 재롱과 함께 후진 양성을 해야겠어. 손주들 재롱을 보면서 후진 양성을 하면 나도 언젠가 하늘의 부름을 받을 날이 오겠지. 하하하하!”
그렇게 추정호는 동현을 격려하고는 울절 관부를 나간다.
동현은 그런 추정호의 뒤를 끝까지 따라 나가 배웅하며 그가 시야에 사라질 때까지 고개를 숙여 배웅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분명 이 자리에 남아 있으려고 했을 거다. 남아 있겠다고 했으면 울절이 2명이 되었을 수도 있는 일이지. 헌데 저 분께서는 과감하게 그 자리를 벗어 던지셨다. 그리고 부탁하셨다. 이 고구려를 부강하게 만들어 달라고 말이야. 그래… 내가 반드시 이 고구려를 강하게 만들어서 훗날 우리나라가 미국처럼 세상의 흐름을 주도하는 나라로 만들고 말겠다!’
동현은 그렇게 각오를 다지며 울절 관부로 들어가 업무를 보았다.
며칠 뒤.
강이식 대장군과 우식이 장안성(평양성)에 혼인 때문에 들어오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나게 된 동현은 우식과 반갑게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오랜만이다! 이게 몇 년 만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장군.”
“엥? 갑자기 웬 존대야?”
“벼슬이 저보다 훨씬 높으니 당연한 처사입니다.”
동현은 우식의 말에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공적인 자리도 아니고 사적인 자리인데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다. 평소 하던 대로 해.”
동현의 말에 그제야 우식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후우… 그래. 그게 좋겠다. 나도 그게 편해. 사실 아버지께서 이제는 나보고 존대를 해야 한다고 해서 말이지. 공적인 자리에서는 그래야 하니, 적응하려고 너에게 지금부터 존대를 한 거야.”
“그럴 줄 알았다. 스승님이라면 그럴만 하지. 하지만 너도 곧 승차를 하게 될 거야.”
“너처럼 되기 어렵다. 임마.”
그렇게 동현은 우식과 울절 관부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