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화 천명 공주, 김용수와 이혼하고 새롭게 혼인을 결정하다.
영양 태왕은 동현의 말을 듣고는 매우 흥미로워 한다.
“이상적인 나라라… 그래. 나도 그런 나라를 만들고 싶다.”
“그러자면 일단 내실을 튼튼히 다져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밖으로 영토도 넓힐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옳은 말일세. 그럼 자네 생각은 일단 백제가 최소한 우리를 공격하지 않도록 만들게 하라는 것이군.”
“그렇습니다. 신라가 우리 영토로 병합된 이상 백제는 영토를 넓히려면 우리 영토를 공격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러니 그러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일단 국경에 우리 군사들을 전면 배치하는 한편, 외교 사신이 오면 따뜻하게 맞이해 주시옵소서. 그와 더불어 백제 성왕의 목과 함께 성대하게 장사를 지내주면 백제에서 온 사신도 그 뜻을 받아들이고 이해 할 것입니다.”
영양 태왕은 동현의 말에 크게 웃는다.
“하하하! 알겠네! 모두 자네 말대로 하지! 자… 너무 국사에 관한 이야기만 나누었어! 이제 이런 이야기는 그만하고 계속 마시지!”
“예! 태왕 폐하!”
그렇게 영양 태왕과 동현은 물론이고 모든 신하들이 밤늦게까지 코가 삐뚤어지도록 술과 함께 고기를 먹으며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으며 시간을 보내 연회 자리를 파할 때가 되자 영양 태왕은 조금 취한 얼굴을 한 채 동현에게 말한다.
“이보게. 동현이.”
“예. 태왕 폐하.”
“생각해 보니 한 가지 고민이 더 있다네. 자네가 그 고민을 한번 들어 봐 줄 수 있겠는가?”
“물론입니다. 태왕 폐하. 하문하시옵소서.”
“우리가 신라를 멸망시키고 병합하면서 그 황실 식구에 대한 처분은… 모두 나에게로 왔네. 일단 신라 황실 식구들을 전부 노비로 삼고 싶으나, 그들도 엄연히 우리와 한 민족인 만큼 그것은 너무한 처사라 생각해 이 장안성(평양성) 외곽에 약간의 땅을 식읍으로 주고 살게 조치했지.”
“현명하신 결정이십니다. 그래야 신라의 민심을 안정시키는데 유리할 것입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서 그리 조치했어. 헌데 말이야.”
“……?”
“신라 황실 여자들에 대한 조치를 내가 따로 내리지 않았는가? 공주나 어린 여자들 말이야.”
동현은 영양 태왕의 의도가 무엇인지 바로 눈치를 챘다.
“아… 혹시 그 여자들을 우리 고구려 사람들과 혼인을 시키는 문제 때문에 그러십니까?”
“그래. 신라 황실이 우리와 혼인을 하여 하나가 되어야 신라를 통치하는데도 훨씬 유리하다고 생각 돼서 말이지. 헌데… 누구와 혼인을 시킬지가 고민이야. 특히 공주들 말이야. 공주들을 제외한 다른 어린 여자들은 천천히 혼처를 찾아줘도 되지만… 공주들은 아닐세. 이들이 하루라도 빨리 혼인을 하고 그 모습을 대외적으로 보여야 우리 고구려와 신라가 비로소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될 것이고 신라 쪽에서도 반발이 적을 것이 아닌가?”
동현은 영양 태왕의 말에 잠시 고민하더니 묻는다.
“첫째 공주부터 먼저 혼인을 시키실 생각입니까?”
“그렇다네.”
“하지만 현재 천명공주에게는 남편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김용수(김용춘이라고도 부름.)라는 자가 있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지. 하지만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자신의 딸과 사촌이 혼인을 한다니 말이야. 물론 우리 고구려에도 예전에는 형사취수제라는 것이 있어서 형이 죽으면 그 부인을 동생이 이어받는 풍습이 있었지. 하지만 그것도 형이 죽는 아주 특별한 경우였어. 그리고 근래 들어서는 그런 풍습도 많이 없어졌고 말이지. 그래서 나는 거부감이 아주 크게 든다네.”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합니다. 다만 걱정 되는 것이 있습니다.”
“……?”
“태왕 폐하께서 황명을 내리시면 신라왕의 공주는 반드시 혼인을 해야 합니다. 다만… 그 공주가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문제입니다.”
동현의 말에 취기가 오른 영양 태왕의 표정은 심각해진다.
“자네 말은… 공주가 절개를 지키기 위해 자결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인가?”
“소신의 생각엔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으음…….”
“만약 공주가 태왕 폐하께서 생각하는 혼인을 받아들인다면… 소신이 주선해 볼만한 곳을 한 곳 알고 있긴 합니다만…”
“그래? 그곳이 어딘가?”
“강이식 대장군의 아들인 우식입니다. 현재 개모성의 처려근지로 있습니다.”
“우식이라… 그래! 내가 왜 우식이를 생각 못했지? 과연… 아주 좋은 혼처다. 헌데 우식이도 혼인을 하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만약 신라 공주와 혼인을 하게 되면 두 번째 혼인입니다.”
“그렇군. 허어… 그나저나 그 공주를 어찌 설득한다?”
동현은 영양 태왕의 고민에 바로 대답한다.
“태왕 폐하. 소신이 일단 신라왕의 공주를 만나 보겠습니다.”
“응? 첫째 공주를?”
“예. 태왕 폐하. 소신이 말을 해보고 뜻을 물어보며 설득을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이 혼인에 신라왕도 이용해서 성사를 한 번 시켜보도록 하겠습니다.”
“오! 역시 자네 밖에 없구만. 그럼 부탁하네. 이 일은 우리 고구려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야.”
“예. 태왕 폐하. 반드시 성사시켜 보이겠나이다.”
그렇게 동현은 또 하나의 일을 맡았다.
연회 자리가 파해지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신라의 천명 공주를 보기 위해 진평왕과 함께 살고 있는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소인 울절 김동현. 낭자를 뵙습니다.”
“반갑습니다. 우리… 구면이죠?”
“그렇습니다. 예전에 제가 벼슬을 하기 전 상인일 때… 신라에서 한 번 뵌 적이 있습니다.”
“역시… 제 예상이 맞군요. 한데… 무슨 일이십니까?”
“그나저나 폐하께서는…….”
“잠시 산책을 나가셨습니다.”
“그렇군요.”
“무슨 일로 오셨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천명 공주는 예전과 달리 많이 싸늘한 표정으로 동현에게 묻는다.
‘예전과 확실히 다르군. 하긴… 그럴 수밖에 없지. 나라가 멸망했는데…….’
동현은 천명 공주의 반응이 당연하다는 것으로 여기고는 바로 본론을 꺼낸다.
“우리 고구려에는 혼인을 할 때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져 있더군요.”
“……?”
“낭자의 남편 분 말입니다.”
“설마…….”
“예. 그 설마입니다. 태왕 폐하께서는 낭자의 남편 분이 왕의 사촌 동생이라는 것에 매우 못 마땅해 하십니다.”
“하… 하지만 그건 우리 신라의 오래된 혈연관계로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그곳은 신라였지요. 하지만 이제 그 나라는 없어졌습니다.”
“…….”
“신라도 이제 고구려가 된 만큼 우리의 법과 풍습을 따라야 합니다.”
“그 말은… 파혼이라도 하라는 말씀입니까?”
“맞습니다. 낭자.”
동현의 말에 천명 공주는 어이없어 한다.
“아무리 그래도 한 번 혼인을 한 나입니다. 헌데 나보고 남편과 연을 끊으라니요?”
“좀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이곳은 고구려입니다. 그러니 고구려의 법과 풍습을 따라주셔야 합니다.”
“난 그리 할 수 없습니다!”
“그럼 어쩔 수 없군요. 낭자께서 거부하시면 다른 분들이 불이익을 받으실텐데 말입니다.”
동현의 말에 천명 공주는 벌떡 일어나며 대답한다.
“나… 나를… 협박하는 것입니까?!”
“저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씀드리는 것 뿐입니다. 낭자께서 태왕 폐하의 황명을 받들지 않아서 진노하실 태왕 폐하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분노가 누구에게 미치겠습니까? 제일 먼저 말입니다.”
“서… 설마…….”
“똑똑하신 분이니 역시 바로 아시는군요.”
“…….”
“아… 그리고 태왕 폐하께서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낭자께서 자신의 황명을 받들지 않고 자결하려 하면 신라 황실 사람들을 전부 노비로 만들 것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
“그리고 또 하나… 낭자께서는 우리 고구려에서 알아주는 신하에게 시집을 가라고 황명을 내리셨습니다.”
천명 공주는 동현의 말에 손까지 부들부들 떨며 대답한다.
“시… 시집을…….”
“예. 낭자. 저는 그저 황명을 전달하러 온 사람일 뿐입니다. 이런 소식을 전하게 되어 죄송합니다만…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황명을 받드셔야 할 겁니다.”
“…….”
동현이 이렇게 말을 하는데 그런 동현의 말을 밖에서 진평왕이 들었는지 급히 방문을 열며 대답한다.
“정말… 그렇게 하면 우리 집안을 보존할 수 있는 것인가?”
“물론입니다. 태왕 폐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저를 보내셔서… 선택권을 주라고 하시더군요. 이런 소식을 전하고 싶지 않았습니다만… 죄송합니다.”
“…….”
“하지만 혼인을 하면 좋은 점도 있습니다. 혼인을 할 집안이 아주 좋은 집안이니 말입니다.”
“어떤 집안이길래?”
“우리 고구려에서 무관 벼슬 중 두 번째로 높은 강이식 대장군의 아드님과 혼인을 하시게 될 겁니다. 두 번째 부인으로 말입니다.”
“두 번째 부인으로…….”
“예. 태왕 폐하께서는 우리 고구려와 신라 사람들이 혼인을 해야 나라를 하나로 통합하여 다스리는데 좋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
“바로 결정하시지 못 하시겠다면 내일 아침까지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동현이 장안성에 머물고 있는 진평왕의 집을 나왔다.
동현이 집을 나서자 진평왕은 천명 공주에게 말한다.
“천명아.”
“…….”
“나는 굳이 네게 선택을 강요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구나.”
“…….”
“미안하다. 이 아비가 못 나서 망국의 군주가 된 뒤로 이런 일을 당해서 말이야.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이 말 밖에 해줄 수가 없구나… 모든 것을 이 아비를 원망해라.”
“아바마마…….”
천명 공주는 진평왕을 보더니 소리 없이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진평왕을 안는다.
진평왕도 그런 천명 공주를 안으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데 그 이야기를 밖에서 황후와 가족들이 들었는지 다 같이 들어와 부둥켜안으며 운다.
그리고 잠시 후.
“저 하나의 희생으로 신라 황실 사람들을 살리고 신라 사람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수 있다면… 제가 어찌 마다하겠습니까? 이 혼인… 받아들이겠습니다.”
“정말 괜찮겠느냐?”
“물론입니다. 아바마마… 다만…….”
“……?”
“본래 제 남편이었던 용수 공께도 이 소식을 알렸으면 합니다.”
“우리는 이곳을 벗어날 수 없으니, 내일 울절 벼슬에 있는 이가 오면 말하자꾸나. 그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이 좋겠다.”
“알겠습니다. 아바마마.”
“그리고 이거 하나는 더 알아 두었으면 좋겠다.”
“……?”
“우리 신라 황실 사람들… 특히 어린 여자들이 여기 고구려 사람과 혼인하는 것이 너 하나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 다음 사람은… 네 동생인 덕만이가 될 것이야.”
진평왕의 말에 옆에 같이 있던 덕만 공주가 대답한다.
“저… 저도요?”
“그래. 대외적으로 고구려와 우리 신라가 하나가 되었다는 모습을 보여 주려면 높은 사람들부터 혼인을 해야 하는 법이다. 지금 천명이 너는 내 자식들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여자이니만큼 너에게 이런 제안이 온 것일 테고 말이야.”
“…….”
“그러니 덕만이 너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거라. 알겠느냐?”
“예… 아바마마…….”
그렇게 신라 황실 집안은 영양 태왕에 의해 반 강제적으로 혼인을 하게 되었다.
동현은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을 그대로 영양 태왕에게 전했고 영양 태왕은 동현의 조치에 크게 웃는다.
“하하하!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구만?!”
“그렇습니다. 태왕 폐하. 그리고 죄송합니다.”
“응? 뭐가?”
“소신… 감히 태왕 폐하의 허락 없이 함부로 태왕 폐하의 황명을 사칭했습니다. 벌을 내려 주십시오!”
동현의 말에 영양 태왕은 오히려 빙그레 웃으며 대답한다.
“내가 그대에게 신라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맡긴 일이야. 그리고 그에 대한 전권을 주었고 말이지. 그리고 이렇게 내게 보고를 하지 않았는가? 만약 내가 생각하기에 맞지 않는 조치가 있었다고 하면 오늘 이 자리에서 내가 거부감을 나타냈을 것이나 들어보니 전혀 그렇지가 않네. 아주 마땅한 조치였어. 정말 잘했네.”
“황공하옵니다. 태왕 폐하!”
“그럼 이 소식을 강이식 대장군에게 우선 알려야겠군.”
영양 태왕은 이렇게 말을 하더니 겸백(글을 쓸 수 있는 비단.)과 필묵을 가져오게 하여 무언가를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잠시 후…….
“이것을 강이식 대장군에게 전달해 주거라.”
“예! 태왕 폐하!”
겸백에 자신이 내린 명령을 쓴 후 밖에서 사람을 불러 바로 강이식 대장군에게 전령을 띄운다.
그러고는 다시 동현에게 시선을 돌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