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화 진평왕, 절망적인 상황에 항복을 결정하다.
이석은 월성을 점령하자마자 신라왕을 잡으라고 명령했다.
“지금 바로 신라왕과 그 일족들을 모조리 잡는다! 모두 찾아라!”
“예! 장군!”
이석의 명령에 고구려 군사들은 신라의 궁궐을 이잡듯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장군! 없습니다! 신라왕은 물론이고 그 식구들 또한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
“예! 궁 모든 곳이 텅하니 비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금성(서라벌)에 있을 가능성이 크겠군. 석우 부총사에게 전령을 보내라! 금성에 신라왕이 있는 것 같다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장군!”
“이곳을 빠르게 장악하고 백성들의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민심을 안정시켜라. 우리도 군사들 전열을 가다듬은 후, 금성으로 향할 것이다. 그러니 준비해라.”
“알겠습니다. 장군. 하지만 이곳에 군사를 남겨 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하다. 일단 이곳에 3천의 군사를 남길 것이야.”
“그것만으로 충분하겠습니까?”
“괜찮을 것이다. 현재 신라에 있는 백성들의 민심은 고위층 사람들에게서 많이 떠나 있지. 그 이유는 골품제로 인해 많은 백성들을 핍박했기 때문이야. 그러니 우리가 백성들에게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면 이 신라의 백성들도 우리 고구려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이니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장군.”
명령을 받은 이석의 수하는 이석의 명대로 수행을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장군!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수고했다. 이곳은 네가 3천의 군사로 지키고 있거라. 화포는 석우 부총사에게도 있으니 이곳에 두고 가마. 혹시나 무슨 일이라도 생기거든 이곳의 성문을 닫고 굳게 방어하라. 그리고 화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장군!”
“그리고 성문이 깨진 곳에는 지금 바로 목책을 튼튼하게 세우도록 해. 지금은 전시 상황이니 임시방편으로 그렇게라도 성문을 막아 놔야 한다.”
“예! 장군!”
그렇게 명령을 내린 이석은 3천을 제외한 남은 모든 군사들을 이끌고 금성으로 향했다.
그 무렵 금성에서는…….
“총사! 이석 장군에게서 전령이 왔습니다!”
“그래?”
“예! 월성을 점령했는데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신라왕이 이곳에 있을 가능성이 크겠군.”
“그럴 것 같습니다. 다만…….”
“……?”
“우리가 이곳에 오기 전에 이 지역을 벗어났을 수도 있습니다.”
수하의 말에 석우는 고개를 젓는다.
“그렇게 결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찌 그렇게 확신하십니까?”
“지금 금성 성벽 위에 있는 군사들을 보면 알 수 있지. 저들은 지금 일반 신라 군사들과의 복장이 전혀 달라. 물론 복장만으로 단정 지을 수 없겠지만, 수도 그리 많지 않고 저런 복장을 한 것으로 보았을 때 분명 저들은 신라왕의 근위군이 분명하다.”
“만약 총사의 말이 맞다면, 왜 신라왕은 이 서라벌을 벗어나지 않았을까요?”
“자신의 수하와 군사들이 월성에서 자신의 조국을 위해 싸웠다. 헌데 그 수하와 군사들을 버려두고 이 서라벌을 벗어난다?”
“아… 신라왕은 부끄러웠던 것이군요. 자신의 판단이 잘못 됨으로 인해 수하와 군사들이 죽어가니 말입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내 생각은 그렇다. 내가 알기로 신라왕은 귀족들에게서 백성들이 핍박 받는 것을 안타까워했고 그래서 자신에게 충성하는 신하들을 이용하여 다른 귀족들을 견제하며 지금까지 국정을 운영해 왔으니 말이야. 만약 현재의 신라가 우리 고구려만큼 군사력이 강하고 골품제와 같은 제도가 없었다면 오늘 같은 일은 없었을 것이야. 아니… 백제 정도의 군사력만 되어도 신라는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석우의 말에 그 수하도 동감한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석우는 그런 수하를 보며 다시 말한다.
“하지만 절대 방심하지 마라. 지금은 그럴지라도 언젠가 마음이 바뀌어 이곳을 빠져나갈 수도 있다. 그러니 포위를 절대 풀지 말고 우선 화포로 적의 성문을 깰 준비부터 한다. 알겠나?”
“예! 총사!”
그렇게 명령을 받은 수하는 군사들에게 화포를 바로 준비시켰다.
그때 금성 안에서는 신라의 신하들이 진평왕에게 금성을 빨리 벗어날 것을 재촉하고 있었다.
“폐하! 병부령의 말을 잊으셨습니까? 얼른 이곳을 벗어나셔서 후일을 도모하셔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폐하! 후일을 도모하시옵소서!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합니다!”
신하들이 그렇게 계속해서 재촉하지만 진평왕은 그런 신하들의 말에도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병부령도 월성에서 우리 신라를 지키다가 비명에 죽었다. 헌데 내가 무슨 염치로 이 신라를 계속 지킨단 말인가…….”
“폐하! 병부령의 유언을 잊으셔서는 아니 됩니다! 병부령이 폐하께 직접 한 말을 잊지 마시옵소서!”
“그렇습니다! 폐하! 병부령의 죽음을 헛되이 하셔서는 아니 됩니다!”
“헛되이 하지 말라…….”
“폐하! 마침 제가 이 금성을 벗어나는 비밀 통로를 알고 있습니다! 그곳으로 나가면 이 금성과 꽤 떨어진 곳에서 나올 수 있게 되니 몸을 안전하게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병부령이 말했던 상가(경북 고령의 옛 이름)나 금관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곳으로 가셔서 우리 신라의 수도를 옮기실 것을 천명하시고 고구려에 대항하는 것입니다!”
신하들의 말에 진평왕은 한 동안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후우… 알겠소. 경들이 그렇게까지 말하니… 그 말에 따르지.”
“황공하옵니다! 폐하!”
“허나… 이것은 말이오! 내 불찰로 인해 죽은 군사들과 병부령 같은 사람들 때문에 움직이는 것이오! 그들의 희생을 헛되이 할 수 없으니 말이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폐하! 그렇다면 이제 바로 움직이셔야 합니다!”
“황후와 가족들은?”
“이미 몸을 피할 준비를 모두 하고 계십니다. 폐하의 결심만 있으시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랬군. 갑시다.”
그렇게 진평왕은 금성의 비밀 통로를 아는 신하의 안내를 받아 금성을 벗어나려고 움직였다. 그런데 그때.
“폐하! 한시가 급합니다! 지금 이 금성의 성문이 돌파 되었다 합니다!”
“뭐라?!”
“빨리 저를 따르시옵소서!”
“황후와 가족들은?”
“황후마마와 가족 분들께는 이미 사람을 보냈으니 이동 중일 것입니다. 소신을 얼른 따르시옵소서!”
“알겠네.”
진평왕은 신하의 안내를 받아 허겁지겁 금성의 비밀 통로로 이동했다.
그때 금성으로 들어온 석우는 진평왕과 가족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에 군사들에게 명령한다.
“현재 이 금성을 벗어나고 있을지 모른다! 금성 주변을 샅샅이 수색해라!”
“예! 총사!”
석우는 진평왕과 가족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듣자 초조해졌다.
‘신라왕만 잡고 항복을 받으면 신라는 전부 우리 고구려 영토가 되는 것이다. 헌데 왕이 보이지를 않는다? 이거 낭패로군. 이를 어찌한다?’
석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하는 그 때 한 군사가 들어와 보고한다.
“총사. 이석 장군께서 오셨습니다.”
“오! 모시거라!”
“예.”
군사의 말에 석우가 뒤를 돌아보자 이석이 보였다.
“오셨습니까? 장군.”
“그렇소. 헌데… 이곳에도 왕이 보이지 않는다고?”
“예. 정말 이상합니다. 분명 이곳을 포위하고 도망 칠 공간이 없을 텐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비밀 통로라도 만들어둔 모양이군.”
“비밀 통로 말입니까?”
“그렇소이다. 본디 한 나라가 위기에 처해 궁지에 몰리면 그곳을 벗어날 비밀 통로 하나쯤은 만들어 둔다고 들은 적이 있소이다.”
“으음… 그렇다면 큰 낭패이지 않습니까?”
석우의 말에 이석은 잠시 고민하더니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이렇게 하면 어떻겠소?”
“……?”
“만약 신라왕이 이곳을 벗어난다면 내 예상으로는 상가나 금관으로 갈 것이 유력하니 그곳에 소문을 퍼뜨리는 거요.”
“소문 말입니까?”
“그렇소. 현재 신라왕이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귀족들과 결탁하여 방탕하게 지내다가 고구려 군의 공격에 수도를 잃었다고 말이오. 그리고 상가나 금관으로 수도를 옮겨 올 것이라고 소문을 낸다면…….”
“아… 그렇다면 그곳의 백성들이 신라왕을 받아들이지 않겠군요.”
“바로 그렇소. 현재 신라 백성들이 귀족들에 대한 민심이 좋지 않으니, 그것을 현재 신라왕과 연관 지어 버리면 신라왕도 같은 한통속으로 볼 거요. 그렇다면 그곳을 지키고 있는 장수는 민심이 좋지 않음을 알고 성문을 열지 않으려고 하지 않겠소?”
“아주 좋은 계책이십니다. 헌데 의문점이 하나 있습니다.”
“……?”
“신라왕이 상가와 금관으로 간다는 보장은 없지 않습니까? 꼭 그곳으로 간다고 생각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석우의 말에 이석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그곳들은 과거 가야의 수도였던 곳이오. 대가야와 금관가야의 수도 말이오. 이 지역은 철광석이 풍부하고 땅이 비옥하오. 그리고 그에 맞는 방어 시설도 갖추었지. 다시 말해서 이 두 곳이 새로운 신라의 수도로서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곳이라는 말이라오. 이 두 곳 외에는 그런 곳이 없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소.”
이석의 말에 석우는 수긍하며 대답한다.
“그랬군요. 저는 거기까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역시 장군이십니다. 그렇다면 장군의 뜻대로 하십시오. 저는 일단 용양장군께 전령을 띄우겠습니다.”
“그러시오. 그리고 이제 이 서라벌의 금성과 월성의 민심을 본격적으로 안정시킵시다. 이곳 백성들이 우리 고구려 군의 갑작스러운 공격으로 인해 많이 놀랐을 것이오.”
“예. 저도 동감입니다.”
“그리고 용양장군에게서 좀 전에 전령이 왔소이다. 조령의 김서현을 생포하고 이 서라벌로 오고 있다고 하는구려.”
“그렇습니까? 역시 용양장군입니다. 조령을 그렇게 쉽게 돌파하다니 말입니다.”
“그렇소이다. 죽령으로 보낸 장수도 용양장군의 안배가 아니었소? 두 곳의 군사들이 이 서라벌로 오고 있다고 하니 우리는 상가와 금관에 세작을 띄워 소문을 내는 동시에 조령과 죽령에서 이곳으로 오는 군사들을 맞이할 준비를 합시다.”
“예. 장군. 저는 이 금성 쪽을 맡겠습니다. 그러니 장군께서는 월성 쪽을 맡아 주십시오.”
“그리 하겠소.”
그렇게 진평왕이 신라의 수도를 버리고 도망침으로써 고구려와 신라의 전쟁은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보름 후, 신라의 진평왕은 신하들과 함께 어렵게 고구려 군을 피해 상가로 오게 되었다.
“이곳인가…….”
“예. 폐하…….”
“후우… 오래 걸렸군.”
“고구려 군의 추적을 피하다보니 그리 되었습니다. 폐하. 하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이곳에 오게 되었으니 이제 이곳을 기반으로 삼아서 다시 우리 신라를 일으키면 됩니다.”
“그래. 그래야지. 상가로 전령을 보냈는가?”
“예. 폐하. 이제 곧 소식이 올 것이옵니다.”
신하가 그렇게 말을 하는데 어딘선가 전령이 달려온다.
“폐하! 큰일 났사옵니다!”
“무슨 일인가?”
“그것이… 상가를 지키는 장수가 성문 열기를 거부했습니다.”
“뭐라?! 그것이 무슨 말이냐?!”
“그, 그것이…….”
“얼른 말해보라 하지 않느냐?!”
“그게… 나라를 망친 왕은 이제 필요 없다고 말하면서. 귀족들과 결탁하여 백성들의 고혈을 그렇게 빨아먹더니 잘 되었다고 소리를 치고는 저에게 활까지 쏘려 했습니다!”
“뭐라?!”
“고, 고얀! 어찌 신라의 장수라는 자가 그런 참담한 말을 한단 말이냐? 그 말이 사실이냐?!”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입니다!”
“어찌 이럴 수가. 폐하. 이렇게 된 이상 금관으로 가셔야겠습니다. 그곳은 괜찮을 겁니다.”
“폐하?”
“하하하. 내가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왕이었다라…….”
“상가를 지키는 장수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지껄이는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마음에 담아두시지 마십시오.”
그렇게 신하들은 진평왕을 다시 한번 재촉하며 억지로 금관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금관에서도 마찬가지로 장수가 성문 열기를 거부했다.
“아… 하늘이 우리 신라를 버리려 하심인가?”
“폐하. 모든 것들이 신들의 불찰이옵니다!”
“흐흐흑, 병부령! 미안하오!! 그대의 부탁을 듣지 못하게 되었소!!”
진평왕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을 보고 신하들은 물론이고 황후와 가족들 또한 눈물을 흘린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항복하세… 고구려에 말일세.”
“폐하!! 흐흐흑!!”
결국 진평왕은 고구려에 항복을 결정했고 자신의 신하를 보내 항복 의사를 전한다.
이 시기 동현은 서라벌을 거쳐 진평왕이 달아난 금관으로 진군하고 있었는데, 신라의 신하가 와 항복 의사를 말하자 매우 기뻐하며 신라왕의 항복 의식에 대한 절차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