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8화 고요종은 죽령을 점령하고, 석우와 이석은 서라벌로 향하다.
고요종과 일행들은 전장을 빠르게 정리한 뒤 군사들을 이끌고 빠르게 죽령으로 향했다.
잠시 후.
죽령 근처에 다다르자 고요종은 생포를 한 석품과 칠숙을 앞세워 그곳을 지키고 있는 군사들에게 외친다.
“너희들을 이끄는 석품과 칠숙이 여기 모두 생포 당했다! 그리고 여기 보이느냐?! 군사들도 모조리 우리에게 잡혔다!! 그러니 항복해라!! 항복하지 않으면 이곳을 모두 너희의 무덤으로 만들어 주마!!”
그렇게 고요종이 외치자 죽령을 지키고 있던 신라군은 웅성거린다.
그러더니 그들 중 그나마 벼슬이 높아 보이는 자가 외친다.
“우리가 항복하면 정말 죽이지 않을 것인가?”
“그렇다! 약속하지!! 너희의 가족들까지도 절대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무장을 해제하고 내 앞으로 와 항복하라!”
고요종의 말에 다시 한번 신라군에서 웅성거리더니 큰 목소리로 외친다.
“알겠소이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그렇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하더니 잠시 뒤, 죽령의 영채의 문이 열리고는 신라군이 쏟아져 나온다.
고요종이 신라군을 살펴보니 모두 무장을 해제한 상태로였다.
이에 만족감을 느끼며 그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저희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 항복하겠습니다.”
“아주 잘 생각했다.”
“약속은 지켜 주시는 것이지요?”
“물론이다. 너희의 목숨은 모두 살려 줄 것이다. 가족들까지 말이다. 하지만 현재 너희는 포로의 신분. 일단 포박을 받고 모든 전투가 끝날 때까지는 포로 생활을 해야 한다.”
“목숨만 살려 주시면 모든 것을 감수하겠습니다.”
항복한 신라군 중 벼슬이 높아 보이는 장수가 대답하자, 고요종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구려 군사들에게 명령한다.
“지금 저들을 모두 포박하라!”
“예!”
그렇게 죽령을 지키던 남은 5천의 군사들도 모조리 고구려 군에게 포박을 당했다.
그리고 그 덕분에 고구려 군은 죽령을 손쉽게 점령할 수 있었다.
“흐음… 진지를 제법 잘 구축해 두었군.”
“듣자하니 이곳을 예전에 김서현이라는 자가 구축했다고 합니다.”
“김서현이라면… 용양장군과 현재 조령에서 대치하고 있는 자가 아닌가?”
“그렇습니다. 이걸 보면 만만치 않은 자임은 분명합니다.”
“그렇군. 하지만 그 자는 결정적인 실책을 했다. 사람을 잘못 써서 이 죽령을 내주었으니 말이지. 이제 우리는 이곳을 지나 손쉽게 서라벌을 공격할 수 있게 되었다.”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직 방심하면 안 되는 것이 서라벌과의 거리는 여기서 꽤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곳으로 가기까지 많은 성이 있고 말입니다.”
“그건 그렇지. 자네 말대로 방심은 금물이야. 하지만… 이 죽령이 최대 걸림돌인 만큼 앞으로 군사들이 전진하는데 훨씬 쉬울 것이라는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
“그건 그렇습니다. 이 죽령도 뚫었으니 보급 부대가 움직일 때도 수월할 것이며 군량을 공급받는 것도 매우 쉬워질 것입니다.”
“그래. 그리고 또 하나… 이곳이 뚫렸다고 하면 조령에 있는 김서현이라는 자는 분명 군을 물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 생각도 그러합니다. 아마 군을 서라벌로 물릴 수밖에 없겠지요. 수도만큼은 꼭 지켜야 하니 말입니다.”
박준의 말에 고요종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 전에 이제 우리 수군이 서라벌을 점령해야 한다. 우리가 이만큼 시간을 끌어 주고 죽령을 점령했으니 말이야. 지금쯤이면 서라벌을 점령했어야 할 텐데…….”
“조만간 소식이 올 것입니다. 그리고 소식이 오기 전까지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고 있다고 보고 신속하게 서라벌로 군을 움직여야 합니다. 양쪽에서 같이 압박을 해줘야 우리 수군도 훨씬 수월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신라군의 초점은 오직 육군에만 맞춰져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 그래야겠지. 일단 빠르게 군을 정비한 후 군을 바로 서라벌로 이동시킬 준비를 하지. 아… 그 전에… 이 죽령을 이제 누군가 지켜야 할 텐데 말이야.”
고요종의 말에 단석한이 앞으로 나서더니 대답한다.
“제가 지키겠습니다. 부장님.”
“오! 단석한 자네가?”
“예. 동생이 이번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고 싶어 하니 이번에 모든 공을 동생에게 양보하려 합니다. 그러니 제가 이곳을 지키겠습니다.”
“허어… 전에도 봤지만 참으로 우애 깊은 형제애로군. 알았네! 그럼 2만의 군사 중 5천의 군사를 여기에 남겨 두지. 자네도 알겠지만 이 죽령은 지금 우리가 있는 이 위치만 잘 고수해도 적은 병력으로 큰 병력을 손쉽게 막을 수 있는 곳이야. 그러니 함부로 이곳을 벗어나지 말고 그저 굳게 지키면서 적을 상대하게. 만약에 신라군이 온다면 말이야.”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빠르게 전열을 정비한다!”
그렇게 고요종은 빠르게 서라벌로 진군 할 준비를 한다.
* * *
한편, 우산국에서 출발했던 고구려의 수군은 서라벌 근처 해안가에 다다르고 있었다.
“저기 육지가 보입니다!”
“그래. 나도 보고 있다. 이제 해안가에 배를 대야겠어. 이제부터 모두들 빠르게 움직이면서 최대한 소리를 죽인다!! 알겠느냐?!”
“예!!”
석우의 명령에 군사들은 일제히 대답하고는 그 이후부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고구려의 판옥선은 해안가에 도착을 했고 배를 정박시켰다.
보통이라면 이곳에 몇 명의 신라 수군이 경계를 서 있었을 테지만 고구려와의 조약으로 인해 없어진 상태였고 거기다 이번 육군의 전투로 인해 많은 군사가 동원되어 신라군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석우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군사들에게 소리를 내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면서 배를 정박시키고는 배에서 빠르게 군수물자들을 내리게 했다.
“부총사님. 모든 군수물자와 군사들이 모두 내렸습니다.”
“수고했다. 우장군. 여기까지 우리 수군이 한 역할은 다 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제 우장군께서 저희를 이끌어 주셔야 합니다.”
“수고했소이다. 부총사. 이제 모든 것은 내게 맡기시오.”
“물론입니다. 장군.”
“아… 그 전에… 이 배를 지킬 사람은 있어야 하지 않겠소? 약간의 군사와 함께 말이오.”
“그것은 염려 마십시오. 저와 항상 함께 했던 호창이라는 자가 2천의 군사와 함께 지키기로 했으니 말입니다.”
“2천으로 충분하겠소?”
“충분합니다. 그리고 저희가 떠나면 이 판옥선 배들은 여기서 정박이 아닌 다시 바다 위로 올라가 그 위에서 닻을 내리고 한 동안 정박할 것입니다. 뭍에 배를 정박시켜 놓으면 혹시나 모를 신라군의 공격에 제대로 대응을 할 수 없을 테니 말입니다.”
“과연…….”
“거기다 신라군은 현재 수군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적은 군사로 바다 위에 닻을 내리고 띄워 두면 문제가 없을 겁니다. 행여나 저희를 발견하고 신라군 배들이 다가오면 화포를 쏴서 그들을 무력화 시키면 됩니다.”
석우의 말에 이석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거기까지 생각을 해두었으니 걱정할 것이 없겠군. 한데…….”
“……?”
“저 화포들을 서라벌을 공략할 때 가지고 갔으면 좋을 텐데…….”
“저도 그런 생각은 했습니다만 그렇게 하면 기동성이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저 화포들은 크기도 매우 크고 하니 서라벌까지 이동시키기가 매우 까다롭습니다.”
“으음… 아쉽군. 그럼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떤가?”
“……?”
“여기에 1천명의 군사를 더 남겨서 화포를 몇 개만이라도 가져오도록 하는 것 말이야. 쓸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혹시나 서라벌 쪽의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경우 화포가 꼭 필요하지 않겠나?”
“우장군의 말씀은 일단 저희 본대는 서라벌을 공략하되,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화포를 기다린 다음 서라벌을 공략하자는 말씀이십니까? 화포를 통해서 말입니다.”
“맞네. 어떤가?”
“음… 나쁠 것 같지 않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군사 1천명을 더 이곳에 남겨서 화포를 서라벌까지 운반해오게 하겠습니다. 일단 화포 10개만 동원하겠습니다.”
“오! 부탁하네.”
이석은 그렇게 석우에게 부탁을 한 뒤 오랜만에 큰 목소리를 내며 군사들에게 외친다.
“자! 이제 이 신라를 우리 고구려의 것으로 만들 때가 왔다! 전군! 신속하게 서라벌로 진군한다! 빠르게 이동한다! 나를 따르라!”
“와! 와! 와!”
그렇게 이석과 석우는 배를 지키고 화포를 운반하는 자들 3천의 군사를 제외하고 나머지 1만 7천 여명의 군사로 빠르게 서라벌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개마무사들이여! 내가 멈추라고 할 때까지 계속해서 달려라!! 이랴!!”
“계속해서 서라벌로 달린다! 이랴! 이랴!!”
질풍 같은 속도로 진군하는 고구려군들.
특히 수군과 배에 함께 탄 육군들은 오랜만에 말을 타고 계속해서 달리게 되자 잔뜩 신난 듯 환한 표정으로 말을 몰았다.
그때 신라 서라벌 근처에 있던 작은 성이나 지역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군사들이 빠르게 자신들을 지나쳐 가자 매우 놀랐다.
작은 성에 있던 어느 한 군사가 경계 중에 그 모습을 보고는 윗선에 보고를 했고 이에 성주는 급히 전령을 띄워 진평왕이 있는 서라벌로 보냈다.
며칠 뒤… 신라의 수도 서라벌은 발칵 뒤집혔다.
죽령이 돌파당한 소식이 당도함과 동시에 고구려 수군이 서라벌 근처로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 어떻게! 고구려 수군이 우리 서라벌 근처까지 온단 말이더냐?!”
“예전에 고구려와 맺었던 조약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 때문이 그런 듯합니다. 그리고 현재 그 군사들도 조령과 죽령에 대부분 차출되어 있지 않습니까?”
“제기랄…….”
“이렇게 된 이상 이 월성에서 결사항전을 해야 합니다.”
“군사는 고작 5천뿐이오! 그런데 어찌 저항을 하겠소?!”
“제가 이곳을 지킬 테니 폐하께서는 예전 수도였던 금성(서라벌)으로 가십시오.”
“이곳이나 그곳이나 똑같은 서라벌이다. 그곳으로 옮긴다고 수가 있겠는가?”
“적은 폐하께서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이곳이 점령당하더라도 이곳에서 제가 발목을 붙잡고 시간을 끌 수 있습니다. 그러니 폐하께서는 그곳으로 일단 몸을 피하셨다가 틈을 보아서 남쪽으로 몸을 빼십시오!”
“남쪽으로 말인가?”
“예. 폐하. 예전에 대가야의 수도였던 상가(경북 고령의 옛 이름)로 가시거나 금관가야의 수도였던 금관으로 가셔서 후일을 도모하시옵소서.”
병부령인 김후직은 이런 날이 있을 것이라고 미리 예상을 했다.
그랬기에 진평왕에게 자신이 나서서 고구려 군을 막으며 시간을 끌겠다고 말한 것이다.
“병부령… 꼭 이렇게 피해야 하오? 나는 이 신라의 왕이오.”
“저도 압니다. 폐하께서는 이 나라의 지존이십니다. 허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나라의 종묘사직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꼭 피하셔야 합니다. 지금 저희 신라군으로는… 절대 고구려군을 이길 수 없습니다.”
“병부령… 이대로 내가 가면… 그대는 어찌 하려오?”
“소신은 이 나라를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사옵니다. 폐하.”
“병부령… 흐흐흑… 못난 나 때문에 병부령이 목숨을 던지게 하는구려…….”
“폐하. 그게 어찌 폐하의 탓이겠습니까? 지금까지 폐하의 신하들이 제대로 보좌를 못한 탓입니다. 특히 자기 이익만 탐내는 귀족들 말입니다.”
김후직의 말에 옆에 있던 몇몇 신라의 귀족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런 귀족들을 보며 김후직이 벌떡 일어나더니 큰 소리로 호통을 친다.
“너희들은 폐하를 안전하게 모셔야 할 것이다!! 그래야 지금까지 너희가 지은 죄를 씻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만약… 이 전쟁이 끝나고 나서 너희들이 폐하를 제대로 보필하지 못했다는 말이 들릴 때에는!! 내가 직접 너희들의 목을 벨 것이야! 알겠나?!”
“아… 알겠습니다. 병부령.”
귀족들은 김후직의 말에 매우 놀라면서도 불만을 품었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죽지 않으려면 대답하는 수밖에…….
“폐하! 얼른 가십시오! 근위장!”
“예! 병부령 어른!”
“현재 근위군의 수는 얼마나 되느냐?”
“예. 약 500명 정도 됩니다.”
“현재 여기 있는 5천의 군사를 제외한 숫자인가?”
“그렇습니다.”
“후우… 그래. 그거라도 있어서 다행이군. 내가 좀 더 폐하를 보좌하기 위해 남은 중앙군 5천 중 일부를 떼어 주고 싶으나 지금은 그럴 수가 없을 듯하군. 그러니 자네가 폐하를 곁에서 잘 보필해 주게.”
“염려 마십시오. 병부령 어른. 그리고… 무운을 빌겠습니다.”
“그래… 폐하. 그럼 살펴 가십시오.”
“병부령…….”
진평왕은 충신인 김후직을 보며 나가지 않으려 했지만 신하들이 억지로 끌고 나가는데… ….